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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ichel Basquia ( 이하 바스키아 ) 와 힙합!
이 둘을 논하기에 앞서 필요한 것은 이 두가지에 대한 좀 더 명
확한 판단이다. 우선 바스키아가 낙서화 즉 그래피티의 창시자
라는 면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단순하게 그래피티의 창시자
라는 이유로 힙합과 함께 논하기에는 조금 무리일 수 있다. 또
한 최근 힙합에 대한 편중된 편협한 인식으로 인해 힙합에 대한
명확한 이해 또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
Jean-Michel Basquiat!
미술학도와 건축학도를 친구로 두고 있기에 바스키아는 나에게 그렇게 낯설은 인물은 아니
다. 하지만 그 친숙함은 단지 그래비티의 창시자이며 2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코카인 중독으
로 요절한 천재 화가라는 정도일뿐이다. 그러나 우연히 수업시간에 보게된 영화 - 바스키아 -
는 나에게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용이야 지금까지 보아왔던 다른 전기영화들과 별로 다
를바 없었지만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게리 올드만(Gary oldman), 윌리엄 데포( Willem Dafoe ),
데이비드 보위등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들이 주연이 아닌 조연과 카메오로 등장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특히 전설적인 글렘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 )는 완벽한 연기로 비
교하기 힘들 정도로 앤디 워홀( Andy Warhol )을 보여주었다. 마치 영화 - 벨벳 골드마인 - 에
서 이완 맥그리거( Ewan McGregor )가 영화속 글렘록 스타 커트 와일드를 연기하면서 데이
비드 보위를 보여주었듯이 말이다. 이러한 사실은 바스키아란 인물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말
해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그의 짧지만 질곡이 가득한 삶을 현재의 예
술적 대가( 이 영화에 등장한 배우들은 일반대중 팬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 배우라기 보다는
연기력이 확실한 배우로 평가하고 싶기에 이런 표현을 사용하였다. )들이 대신 평가해 주는
것일 것이다.
좀 더 많은 그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기 위해서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하했고, 정말 기대대로
너무나 쉽게 수많은 그에 대한 평가와 작품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다른 사람들
의 평가는 될 수 있는 한 제외한 채로 그의 삶과 작품만을 택해서 읽어보고 감상하려고 노력
했다. 영화를 본 상황이어서 나름대로 그에 대한 이미지가 굳어져 있는 상황인 채로 또 다시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접하게 된다면 잘못하다간 내 생각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속에서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가장 먼저 확인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극적인 재미
를 더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그의 필로그라피는 영화와는 많은 부분이 달랐다. 지금은 현실
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주제와 상관없는 것이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그의 삶을 들여다 보았을 때 몇가지 코드를 확인할 수 있었다.
SAMO, 다운타운클럽, 그림, 마약 그리고 동성애가 그것이다. SAMO(Same Old Shit)는
그의 낙서 필명이자, 자신이 활동한 록 그룹의 이름이며 바로 그래피티의 시작을 의미한다.
다운타운클럽은 그의 예술적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던 장소로 많은 예술과들과 의견교
환을 비롯한 공연장소였다. 그림은 그의 터져나오는 영감들을 분출해내는 유일한 도구였으
며, 그림으로 펼쳐내지 못한 영감들을 달래기 위한 극단적인 표현이 마약중독으로 나타났고,
자신의 낙서와 그림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동성애로 나타난 것이다. 이 몇가지 코
드들은 결국 앞으로 이야기할 힙합이라는 거대한 문화 코드와 이어질 연결고리가 된다.
그의 직설적이지만 철학적이고 시적인 표현의 낙서들과 인종주의, 해부학, 흑인영웅, 만화,
자전적 이야기, 죽음등 자신의 주변에 펼쳐져있는 삶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을 단순히 모방
에 그쳐버리는 것이 아닌 아닌 해체해서 보여주는 그의 작품들 그리고 그의 자유분방한 삶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극단적인 모습들은 백인들 속에서의 어쩔 수 없는 배타성을 감당하기 위
한 저항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죽을때까지 품었다는 영웅에 대한 갈망도 결국
은 백인들 앞에서 더욱 당당해 지고 싶은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의 스승이자 애인인 앤디 워
홀 앞에서도....
힙합 ( Hip-hop )
그래피티, 랩, 브레이킨, B-boy, MC, 스크래치, 마약, 할렘 등등... 힙합하면 생각나는
것들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 힙합이 무엇이냐? - 고 묻는다면 듣게될 대답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절반정도의 대답이다. 힙합은 단순히 앞에서 언급했던 어떤 예술적 장르로서
나 일종의 트렌드로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정신문화이자 삶의 표현방식이기 때문이다.
힙합의 기원은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커다란 청바지를 엉덩이에 걸쳐 입은 부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보여지는 모습에서 Hip(엉덩이) - hop(춤)의 명칭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정설이
다. 중요한 것은 힙합의 시작은 가난과 편견에서 부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힙합 패션
이라 불리우는 똥자루 바지, 빗자루 바지가 현재는 트랜드화 되어 그 의미가 간과돼고 있다는
점이다. 그 바지는 가난하기에 대물려 입어야 하는 가난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징이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자연스러운 복장이 그들의 춤에서는 더 크고 화려한 동작으로 이어져
백인들의 보기에는 멋지게 보였다는 점이다. 그 화려함의 경제적 가치가 적절히 이용되어 결
국 지금의 힙합은 하나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정도의 유행이되어 버렸고 대중화 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힙합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대중화가 진정으로 일반 대중
과 함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돈벌이가 된다는 의미라는 점이다. 즉 안타깝게도 빈민층의 문
화가 자본과 어울려 만들어낸 미국 특유의 문화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렇기에 과연 그런 것들을 힙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라면 과연 진정한 힙합은
무엇인가?
그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그것은 포장되어 있지 않고 자연스러울수록 힙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앞으로 논할 바스키아와 힙합의 공통점인 것이다.
- 난 힙합의 진정한 의미를 자유로움에서 찾았다! -
이 의미는 단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면
그것은 단지 녹음기와 카메라와 다를바없다. 그것은 모방과 재생산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앤디워홀의 작품과 바스키아의 작품을 이야기 할 때 바스키아의 작품이 더 자연스럽
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이 때문이다. 워홀의 실크스크린을 통한 작품들은 조금씩 형태가 바뀌
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를 바 없는 복제품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공
을 거두었다. 팝아트라는 장르를 통해 대중문화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조금씩 더해
주는 변화를 통해 예술이 갖는 희소성을 만족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자유로움이 배
제 되어있는, 결국 가치를 높이기 위해 펼친 눈속임일 뿐이다.
예술에서의 자유는 바로 재생산이 아닌 재창조인 것이다.
바스키아의 작품들... 앞에서 언급했지만 그의 설명이 없이는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한 것인지
알아내기 참 힘들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확인하고 나면 그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
의 해체주의적 그림 표현은 더욱 자연스럽게 일상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비슷하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그려내는 그의 그림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희소성을 만족시키는 방법인 것이
다. 하지만 그 것이 전혀 의도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바스키아는
단지 자신의 일상을 이야기 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과 낙서의 주제를 보면 그것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의 표현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익숙한 기호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기호들이 때에 따라서는 원래 그 기호들의 의미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일상을
해체하는 도구로서 사용되었다. 그의 특유의 해체주의는 일상을 해체함으로써 특이성이 부각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보편성을 더욱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힙합도 마찬가지다.
혹자는 최근 힙합으로 말하는 많은 것들을 - 쓰레기 - 라고 까지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힙
합이 가지고 있던 그 자유로움은 사라져가고 상업적 대중문화의 성격이 커져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서야 조금은 주류 음악으로 ( 그만큼 상업성이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 인정받
고 있지만 힙합의 출발이 뉴욕 브루클린 흔히 말하는 할렘이라고 부르는 빈민촌에서 시작되
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않된다. 바로 힙합은 하층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다. 형식도 기교
도 필요없이 일상의 대부분의 것들을 나오는대로 하고싶은대로 읇조리고 노래하고 춤추고 했
던 것이 바로 힙합이다. 그들의 삶이 가난과 편견과 차별 그리고 마약, 섹스, 폭력으로 가득차
있기에 결국 그런 것들이 주제가 되는 것이다. 이 속엔 비판과 저항이라는 의미보다는 일상에
대한 넉두리로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한다. 이러한 힙합의 성격 때문에 현재 대중적으로
인기를 끄며 힙합을 추구한다는 많은 음악가들이 대중들에게 - 보편적인 자본주의 정서의 산
물! - 이라며 비난을 받는 것이다. 최근 - 8마일(8miles) - 라는 자전적 영화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있는 백인 랩퍼 - 에미넴 - 을 예를 들어보자. 그는 더욱 직설적이고, 더욱 폭력적이며,
좀더 자극적인 가사로 극단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힙합으로 포장된 자본주의 산물이라는 것
이다. 하지만 그의 영화를 통해 그는 그의 음악이 포장이 아닌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 어쩌면 이것 또한 또 다른 포장 일 수도 있지만... ) 그도 역시 빈민가 출신으로 어린시절 함
께 해왔던 편견과 차별과 가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로지 성공을 위해 매진해왔다는
것을 영화에서 보여주는데, 그러한 모습속에서 그동안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이 상업적인 가
식이 아닌 그의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그를 비난하던 사람들까지 공감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다. 만약 진정으로 그가 그런 사람이라면 그는 당당히 힙합 뮤지션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 하지만 솔직히 헐리웃 영화와 연예계의 포장기술을 조금은 알기에 그 것을 있는 그대로 받
아들이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
단순히 빈민층의 문화가 힙합이 될 수는 없다. 바스키아의 작품과 에미넴의 음악을 조금이나
마 힙합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빈민층 출신의 예술적 표현이기 때문은 아
니다. 그들의 다소 과장되고 해체된듯한 표현들 속에 가식없는 일상의 표현을 담아냈기 때문
이다. 이 것은 그 자체로 자연스럽고 특별한 느낌을 동시에 같게된다. 이 두가지 상반되는 관
점의 공유가 바로 힙합이며 조금더 나아가면 진정한 예술의 범주에 넣을 수 있지 않을까 한
다.
마지막으로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한마디 더 할까 한다.
전자는 짧았지만 한시대를 풍미한 예술의 거장이고 후자는 비주류를 상징하는 거대한 문화
이다. 이 두가지가 보여주는 모습들이 진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추구되어진다면 대중문화의 예
술성 논쟁은 의미가 없지 않을까 한다. 말그대로 이 두가지는 자유로운 일상의 표현이다. 바
로 대중들의 삶과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과 형식에서 보여지는 자
유로움속의 특이성 희소성은 예술로서의 가치를 더욱 분명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
쉽게도 결국 대중문화는 자본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돈이 결부되면 추해진다는 말이있다.
이 모순성.... 어쩌면 아무리 예술이라 불리우는 것도 대중들에게 평가를 받게되면 그 가치는
폄하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휘 ~ ~ 이 ~ ~ 익 !
ㅍ ~ ~ ㅓ ~ ~ ㅇ !
- 배추도사&무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