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7, 군중의 갈채, 천유런, 중국 외교, 신해혁명, 쑨원, 프랑스 조계, 파리강화회의, 쏭메이링, 송경령, 장제스, 모택동, 주은래, 국공합작, 태평천국의난
얼마 전 미국 대선이 끝났다. 한반도의 미래는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지난한 역사의 속내를 이해해야 하고 남한과 북한,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들여다봐야 한다. 『중국인 이야기 8』은 ‘중국과 이웃나라들’이라는 키워드로 읽을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이 남한과 북한, 소련, 미국, 대만, 홍콩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주제는 ‘한국전쟁’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1장 「냉전이 낳은 괴물」, 제2장 「지루한 후반전」, 제3장 「전쟁이 남긴 것」에서는 한국전쟁에 파견된 중국인민지원군의 행보를 통해 한국전쟁의 시작부터 정전회담까지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제4장 「중국의 날개」에서는 항일전쟁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성장한 중국 공군의 이야기와 한중 수교의 서막이 된 중국민항기 납치사건에 대해 말한다. 제5장 「복잡한 나라, 복잡한 시대」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과 대만의 숨 막히는 긴장관계를 다룬다. 제6장 「품위 있는 사람들」에는 중국의 마지막 사대부 양셴이와 진링여자대학 교장 우이팡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국전쟁은 만 3년 정도의 기간에 25개국이 참전한 전쟁이다. 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참전한 국제전쟁이었던 만큼 과정은 물론 그 내막도 복잡하다.
『중국인 이야기 8』은 한국전쟁의 과정을 중국의 시각에서 담아낸 최초의 이야기식 서술이다. 중국에서는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고 부른다. 이제 막 항일전쟁을 끝내고 국민당과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할 시기, 공산당을 중심으로 국내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하는 중차대한 시기에 중국은 한국전쟁에 왜 그렇게도 많은 지원군을 보냈을까. 또 자신들과 함께 일본에 대항하며 동지애를 쌓은 북한 연안파 독립운동가들의 몰락을 중국은 왜 지켜보기만 했을까. 중국과 소련, 북한 간의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 미국의 욕망까지 더해져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책에서 한국전쟁 이야기는 1983년 5월, 중국민항기의 춘천 불시착 사건으로 마무리된다. 대만으로 도망가려던 비행기 탈취범들의 송환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 ㆍ 중 수교의 밑거름이 마련되었다.
저자 김명호는 간결하면서도 위트 있는 문체로 어려운 이야기의 흐름을 리듬감 있게 이끌어 나간다. 또한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통찰력을 더해 냉철하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게 한다. 거대 서사에 가려진 인물들의 이야기와 생생한 사진 자료로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기상천외한 중국의 역사를 말한다.
앞에서는 평화, 뒤에서는 전쟁
외교와 육탄전의 콜라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반도는 냉전의 화약고가 되었다. 9월 15일 유엔군이 인천상륙 성공 후 북쪽으로 진군하자 10월 19일, 펑더화이는 지원군 총사령관 자격으로 중국인민지원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넘었다. “술 마신 다음 날은 전쟁에서 꼭 이겼다”는 쑹스룬은 대만 공격을 눈앞에 두고 방향을 틀어 한반도로 향했다. 이로써 대만 총통 장제스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밖에도 이 책에는 미군의 인천상륙을 예견한 덩화, 결혼한 지 나흘된 새신랑이자 마오쩌둥의 장남으로 전쟁터에 왔다가 목숨을 잃은 마오안잉 등 장정 시절부터 화려한 이력을 쌓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의 전쟁귀신들이 등장한다. 무기와 첨단 기술은 부족했지만 풍부한 경험과 신묘한 전술로 한반도를 인간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
“혈전이 벌어졌다. 지원군은 무기가 빈약했다. 낡은 박격포와 수류탄에 의존했다. 수류탄 투척거리는 30미터를 넘지 못했다. 미군 코앞까지 다가가 수류탄을 던지고 쓰러졌다. 밤새도록 줄을 잇는 지원군의 수류탄 투척에 미군은 경악했다.”_34쪽.
https://youtu.be/9OE2AermmF8
차오관화(왼쪽 둘째)와 중국 최초의 여성외교관 궁푸성을
대동하고 미국 기자초대회에 참석한 우슈촨(맨 왼쪽).
1950년 12월 4일, 뉴욕.
중국인민지원군이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그 순간, 중국공산당은 국제사회에서 평화를 외치며 선전 능력을 뽐냈다. 11월 14일, 전쟁의 부당성을 알리고 각국의 호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유엔 특파대사 우슈촨을 파견했다. 언론 플레이로 미국 정부를 혼란에 빠뜨리면서도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욕심을 덕행으로 포장할 줄 알아야 선전가 자격이 있다. 억지와 이간질,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은 기본이다. 국제무대에서 평화를 외치며 뒤로는 전쟁에 골몰했다.”_59쪽.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미국 정부는 은행에 예치된 중국인의 예금을 동결시키려 했다. 이를 막은 사람은 유엔 대표단 고문 차오관화의 경호원이었다. 국제사회는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였다.
화약 냄새 진동하는 전쟁터
차마 웃지 못할 뒷이야기
『중국인 이야기』 시리즈의 진정한 묘미는 인물과 상황에 얽힌 뒷이야기다. 정통 역사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재미있는 야사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심각하고 긴박한 상황에서도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웃음 짓게 만드는 매력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야사라고 하지만 모두 기록을 근거로 한 팩션이며, 사건과 사건 사이에는 저자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대화체가 더해져 몰입을 유도한다. 어디에서도 보지 못했던 중국인의 민낯을 만난다.
격전지가 북쪽으로 이동할수록 “전쟁의 진정한 승자는 동장군(冬將軍)”이었다. 엄동설한에 “싸우다 죽는 사람보다 얼어 죽는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수류탄보다 ‘얼어붙은 배변’으로 위급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사병이 배를 움켜쥐고 간이화장실로 달려갔다. 몇 분 후 화장실에서 비명이 요란했다. 달려가 보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배출 중이던 변이 변기통에 얼어 있던 변과 언 채로 연결돼 엉덩이 사이에 붙어 있었다. 군의관이 톱으로 겨우 빙분(氷糞)을 떼냈다.”_30-31쪽.
전통극 가수 창샹위는 전국을 다니며 노래를 불러
6개월 만에 비행기 1대를 헌납해 국민영웅이 됐다.
중국공산당은 선전과 선동의 귀재들이었다. 미국의 성능 좋은 신무기를 인해전술로 맞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지원군이 필요했다. 미국의 전쟁 참여로 7함대가 대만해협을 봉쇄하자 중국공산당은 미국을 침략자로 규정했다. “조선을 도와 미국에 대항하고 가정과 나라를 지키자”는 구호를 내걸고 ‘항미원조총회’를 신설했다. 형식은 민간단체였지만 실권은 공산당 지하당원들이 쥐고 있었다. 위문품과 무기 구입에 쓸 헌금을 독려하자 노동자들은 봉급을 자진 헌납하고, 농민들은 쌈짓돈을 풀었다. 결혼을 늦추고 참전하겠다는 예비신랑들이 줄을 섰다. 온 중국이 광기에 휩싸였다. 땅 넓고 사람 많은 나라이기에 가능한 풍경이다.
포로수용소의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마오쩌둥의 관대한 포로 정책으로 포로들은 죄인 취급 받지 않고 수용생활을 끝낼 수 있었다. 고국으로 돌아간 포로들은 오히려 포로 생활을 그리워할 만큼 참혹한 대우를 받았다.
풀려난 포로들은 누구도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칠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1953년 9월, 개성.
이렇게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기존의 무미건조한 역사서에서는 알 수 없었던 역사의 이면을 접할 수 있다.
장제스에게 닥친 위기
대만과 미국의 동상이몽
저자는 “장제스나 장징궈는 대륙에 밀사를 보낸 적이 없다”며 부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은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산당이나 국민당이나 할 것 없이 그들은 서로 밀사를 파견해 상대방의 동태를 파악했다. 1957년, 마오쩌둥이 제3차 국공합작을 제안하자 장제스는 밀사를 보내 진심을 떠보기도 했다. 대만의 대표 월간지 『자유중국』의 장제스 퇴진 요구와 토종 대만인 랴오원이의 ‘대만공화국 임시정부’ 수립, 반미 풍조 등으로 불안정한 시국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휴전협정 4개월 후, 미국의 전략기지 대만을 방문한
미국 부통령 닉슨과 공항을 떠나는 대만 총통 장제스.
1년 후 미국과 대만은 공동방위조약을 체결했다.
1953년 11월 11일 오후, 타이베이 쑹산 공항.
“미국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 불한당이 따로 없다. 길가에서 여인을 희롱하고, 툭하면 술주정에 주먹질이다. 정부는 치외법권인지 뭔지 때문에 손도 못 댄다. 차라리 일본 통치 시절이 좋았다.”_292쪽.
때마침 터진 미군 레이놀드의 ‘류쯔란 살해 사건’으로 폭발한 반미 감정이 5ㆍ24 사건으로 확대되자 장제스는 자리를 보전하기도 어려울 만큼 안팎으로 위기에 처했다. ‘반공’을 내세워 미국을 등에 업고 대륙 수복을 꿈꾼 장제스와 대만을 자본주의 안전기지 정도로만 생각한 미국의 박진감 넘치는 줄다리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을 알면 한국의 미래가 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