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팅
더 나은 인생을 위한 그만두기의 기술
줄리아 켈러 지음/ 박지선 역
누구나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 지금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때, 들이는 노력에 비해 보상이 너무 적다고 느낄 때,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결과를 얻었을 때 우리는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느낀다. 어떤 경우든 방향을 바꾸기 위해선 속력을 늦추고 때로는 멈춰 설 필요가 있다. 내 인생에 새로운 것을 채워 넣기 위해서는 지금 가득 들어차 있는 것을 비워내야 한다. 두 손에 가득 들고 있는 것을 내려놔야 다른 것을 내 손에 쥘 수 있다. 이 모든 것에 관해 알려주는 책이 바로 《퀴팅(Quitting)》이다.
책은 저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학원생으로 조교 생활을 하던 저자는 혼자 살던 집 방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에 젖은 수건을 들고 집으로 전화해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후로 저자에게는 몇 번의 퀴팅을 더 경험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인생은 조금씩 확장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처음 그만두었을 때의 두려움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음을 떠올리며, 왜 우리는 그만두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퓰리쳐상 수상 작가답게 150여 명에 달하는 신경과학자, 진화생물학자, 심리학자 등의 전문가와 퀴팅을 통해 적극적으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며, ‘퀴팅’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가능성을 제한하는지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 과정을 담아낸 한 권의 책은 2023년 아마존 최고의 논픽션 작품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부에서는 ‘퀴팅’이 얼마나 중요한 생존 전략인지를 새와 벌, 체조선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준다. 꿀벌은 침을 쏘면 내장이 빠져나가 죽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꿀벌은 포식자가 집단을 가능성이 크고, 벌집에 알이 많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벌침을 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꿀벌은 벌집을 지키는 것을 그만둔다. 이처럼 동물은 어떤 일이 효과가 없으면 그 일을 하지 않고 멈춘다. 그들에게 불필요한 행동은 없고 적합한 행동만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노력의 대가를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계속 매달리는 사람에게 환호하고 응원한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그만두고 나면 괜히 마음 졸이며 고민하는 유일한 생명체다. 이 책에서는 퀴팅이 단순히 패배자의 마지막 선택지가 아닌 뇌가 보내는 구조신호에 대한 합당한 반응임을 알려준다.
또한 제브라피시, 생쥐, 집쥐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퀴팅’이 단순히 스위치 ‘OFF’ 상태가 아닌 뇌에서 얼마나 복잡한 프로세스를 거쳐 결정되는 것인지를 다룬다. 기존에 하던 일을 관성적으로 하는 건 뇌로서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뇌가 기존의 방침을 바꾸어 새로운 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려면 가능한 선택지를 모두 고려해야 한다. 계속할지, 그만둘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자료를 얻으려면 뇌의 여러 영역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즉 ‘인지적 유연성’이라는 능력이 필요하다. 과학자들도 ‘인지적 유연성’의 범위와 복잡함을 이제 겨우 이해하기 시작했다. 또한 뇌는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더 활발해진다. 그중에서도 그만두는 것은 가장 큰 변화를 요구하는 어려운 문제다. 즉, 퀴팅은 뇌에 있어서 에어로빅과 같다. 뇌를 민첩하고 유연하게 유지하고 싶다면, 방법과 목표를 지속적으로 재검토하고 때로는 기존에 하던 것을 그만두고 새로운 방향으로 가라고 요구하는 행위를 자주 해야 한다.
놀라운 건 인간 사회에서도 ‘퀴팅’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인식된 건 아니었다. 이 책은 그동안 대중문화와 문학에서 ‘퀴팅’이 얼마나 자주, 그리고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면으로서 다뤄지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며, 왜 현대에 이르러 ‘퀴팅’이 성공의 대척점에 있는 부끄러운 단어가 되었는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이처럼 1부에서는 ‘퀴팅’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 왔던 것과 다르게, 생존에 효과적이면서도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임을 생물학, 신경과학, 뇌과학, 사회학, 문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2부에서는 새뮤얼 스마일스의 《자조론》을 비롯해 그릿을 설파하는 자기계발 산업의 논리를 파헤친다. 그릿만을 최상의 성공 조건이자, 인간을 평가하는 항목으로 제한해 버리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릿에 대한 담론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분석한다. 하지만 퀴팅은 노력이나 끈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감지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작을 선택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럴 때도 가만히 지금 하는 일을 붙잡고 있을 것인가. 이럴 때 ‘퀴팅’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확실한 행동이 될 수 있다. 무작정 버티는 건 기본값이다. 인생에 또 다른 옵션을 추가하려면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퀴팅의 기술임을 이 책은 강조한다.
3부에서는 퀴팅이 단순히 지금 하는 일을 내팽개치고 완전히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퀴팅은 망설이는 행위일 수도 있고, 새로운 목표를 좇기 전에 심사숙고하는 기간일 수도 있으며, 잠시 멈추어 서서 방향을 전환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그러니 퀴팅의 기술을 다양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나의 상황에서 내 손에 쥐어진 일만 몇 가지 내려놓는 건 어떨까? 우리가 그동안 그만두지 못했던 이유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무섭기 때문이다. 지금의 관계를 놓는 게 마음을 무겁게 하기 때문이다.
3부에서는 퀴팅을 망설이는 이유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봄으로써 단순히 ‘그만둔다’는 결정을 뛰어넘어 퀴팅에 이르기까지 나만의 서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사실 그만둔다는 선택을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할 수 있다면 오히려 그 결정이 빠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둔다는 것은 지금의 일과 관계에 연관된 사람들과의 단절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만둔다는 결정에 대한 주위 사람의 시선과 기대, 평가 또한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특히 내가 그만둠으로써 죄책감을 일으킬 수 있는 상황들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도 알려준다. 무엇보다 SNS의 대중화로 모든 게 오픈된 사회에서 ‘퀴팅’이 공개됨으로써 벌어지는 상황을 다루어 사회적 인식에 변화가 필요함을 함께 이야기한다.
이 책은 ‘퀴팅’을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 과정에서 그만두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그만두는 것이 도망이나 회피가 아닌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그만두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버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하나의 방법으로서 그만두기를 선택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한층 자유로워질 것이고, 가능성은 더욱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만두기에 대한 이 책이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만두기는 실패가 아닌 용기 있는 결정이자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저자 줄리아 켈러(Julia Keller)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프린스턴대학교, 시카고대학교, 노트르담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저자는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이전에 웨스트버지니아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대학원생 조교로 일했었다. 그리고 그만두었다. 그만둔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절망과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꼈지만, 이후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워싱턴 DC로 가서 탐사보도 전문기자 잭 앤더슨 팀에서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시카고 트리뷴〉에 입사해 오랫동안 일했다. 2005년에는 일리노이주 토네이도에 대한 피해를 취재한 특집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자로서 탄탄대로를 걷던 저자는 다시 그 일을 그만뒀다. 2012년부터 8권의 소설 시리즈를 집필하기 시작했으며, 첫 작품인 《언덕 위의 살인(A Killing in the Hills)》은 우수한 데뷔작에게 시상하는 배리어워드Barry Award를 수상하고 ABC 스튜디오에 의해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다.
저자는 몇 번의 ‘퀴팅(그만두기)’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개척해 왔다. 이를 통해 인생에서 다음 단계의 문을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의 단계를 끝맺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그만두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저자는 인생을 역전시킨 사람들 150여 명을 인터뷰한 끝에 이 책을 완성했다. 무작정 버티는 건 기본값이다. 인생에 또 다른 옵션을 추가하려면 다른 행동을 취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퀴팅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