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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도의 시사토론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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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토론 ●자유게시판 역사학도를 위한 친절한 5.18 이야기
이준형 추천 0 조회 387 08.01.12 05:09 댓글 9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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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1.12 21:17

    가짜 역사학도,순경 45명을 인질로 납치하여 묶어놓고 각목으로 때린것은 없었다고 내가 예전에 설명했었는데 또 이러시네..지난번 내가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릴까요?

  • 작성자 08.01.12 22:42

    아니 설령 그런 일이 있다고 하자고 역사학도야. 순경이 인질로 잡혀있는데 그 상황을 경찰이 더 잘 알까. 광주시 당국이 더 잘 알까? 경찰은 가만히 있는데 광주시 당국이 요청을 해? 있다면 광주시 당국 누가 요청을 했는데? 위에 내 댓글에도 전남도경국장, 광주경찰서장은 그런 요청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분명히 신문기사 인용해서 자료 제시해 놨다.

  • 08.01.16 09:47

    이준형/ 계엄군의 주장이라니요? 여기서 왜 계엄군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까? 광주경찰은 광주향토사단에 치안유지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따라서, 광주향토사단이라고 하면 될 것을 여기서 왜 계엄군이 언급되는지요? 10.26비상계엄 후에는 모든 군인이 계엄군입니다. 만약 지바고님이 환자에게 처방내렸을 때 지바고님이 처방내렸다고 말하면 되는 것을 대한민국 의사 혹은 한국의학협회가 처방내렸다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光州경찰서장 尹형용씨(67)가 어떤 표현으로 광주향토사단에 치안유지 협조를 요청하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치안유지 협조 요청을 한 적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 08.01.16 09:57

    그리고, 그가 치안유지 협조를 요청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하고, 그 사실은 정웅 소장에게 물어 보아서도 확인하실 수 있는 문제입니다. 4.19때도 내무부장관 이하 경찰 간부들이 총살형당하였기 때문에 1995~96년에는 칼자루 쥔 쪽에서 회유하는대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光州경찰서장 尹형용씨(67)가 軍 부대 투입을 요청한 사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증인이 있습니다. 기자들 증인이 있어요. 무장폭도들이 전남도청을 점령하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광주경찰이 광주향토사단 및 그 예하 공수부대에 도청기밀서류를 경찰이 안전한 곳으로 옮길 때까지 도청을 사수해 달라고

  • 08.01.16 10:03

    요청한 것을 기자들이 취재하였어요.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습니다. 5월 21일 공수부대가 퇴각하기 전까지 광주경찰 헬기들이 도청에 있는 도청기밀서류들을 계속 안전한 곳으로 나르고 있었지요? 왜 그렇게 했습니까? 시민군이라 불리는 무장단체가 전남도청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할 것이라는 첩보를 사전에 입수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그리고,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에 광주경찰이 도청기밀서류를 안전한 곳으로 수송할 시간을 1분이라도 더 벌기 위해 광주향토사단과 그 예하 공수부대에 도청을 사수할 수 있는데까지 최대한 사수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 아닌가요? 그 사실을 어떻게 부정한다는 말입니까?

  • 작성자 08.01.17 06:00

    자꾸 내 댓글 안 읽고 댓글 달래? 바로 위에 니 댓글 다시 읽어봐라. 내 글 어디에 계엄군의 주장이란 단어가 나오니? 도대체 너 정신질환 있는거야? 노파심에 다시 말하는데 니가 나보고 내가 댓글 내용을 삭제했네 어쩌네 헛소리할까봐. 댓글옆에 시간 표시 되있거든요. 내가 니 글을 읽고 댓글을 고쳤네 어쨌네 하는 헛소리는 하지 말아주길 바래. 진짜 궁금해서 말하는데 도대체 계엄군의 주장이란 단어는 어디서 본거야? 그리고 나에게 글을 써놓고 지바고님을 왜 찾아?

  • 작성자 08.01.17 06:07

    바로 위에 있는 내 댓글도 똑바로 못 읽는 너의 정신상태가 심각하게 염려된다만 다시한번 말한다. 주구장창 말하고 있다만 광주경찰서장 윤형용씨가 31사단에 치안유지 협조 요청이든 뭐든 한적이 없다고 말하는데 니가 왜 했다고 자꾸 했다고 우기는 거야? 니가 윤형용이야? 또 정웅 소장에게 물어봐도 확인할 수 있다니 정웅 소장은 단 한번도 경찰의 군부대 투입 요청을 들었다고 말한적이 없는데 넌 도대체 누구한테 들었니? 또 기자들이 증인이라면 나같이 언론보도를 가져와 보란 말이다. 소설만 주구장창 써대고 근거란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지않니 니가 보기에도?

  • 08.01.18 17:31

    이준형님, 도경 및 光州경찰서장 尹형용씨가 군 병력을 요청하는 장면이 당시 취재기자 메모에도 여기저기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5월 21일에도 두차례 군 병력을 요청하였는데, 그 중 한 예를 여기 인용해 드립니다: <<우선 윤병룡 서장은 각과의 기밀문서를 챙기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회의는 [적절한 시기에 철수해야 된다. 군병력을 요청하자]는 등 서로 엇갈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윤서장은 회의 도중 전화로 도경에 현재의 상황을 보고하고 1개소대의 군병력을 요청했다. 여의치 않은 듯 서장의 표정이 무거웠다. 당시 서에는 지원 나온 전투경찰요원과 경찰관등 1백여 명이 있는 것 같았다.

  • 작성자 08.01.19 07:12

    아니 그러니까 당시 취재기자 메모를 제시하라고. 어디에 그런게 있다 근거를 가지고 쳐 말하라고 골백번을 더 말해야 되니? 그리고 윤형용씨가 그런 적이 없다는데 니가 왜 있다는거야? 진짜 제대로 미친 척 하는거야?

  • 08.01.18 17:36

    5시쯤 한 경찰 간부가 우리 팀에게 다가와 [신변을 보호할 수 없으니 피신해 달라]고 일러줬다. 총소리는 산발적으로 계속됐다. 우리 팀은 경찰서를 나와 동명동 D여관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서에서 외곽으로 빠져 나오자 또 다른 상황이 전개됐다. 지프와 트럭에 카빈 등으로 완전 무장한 청년들이 거리와 골목을 누볐다. 시민들은 공포에 질린 듯 말을 잃었다.>> 이렇듯, 尹형용 서장이 군 병력을 요청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경찰이 공포에 질려 있었어요. 경찰이 시민군에게 궤멸당해 있었던 것입니다. 시위 진압을 하여야 할 경찰이 속히 사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탈출하지 못하면

  • 작성자 08.01.19 07:12

    소설은 니 일기장에 쓰도록

  • 08.01.18 17:47

    시민군 총에 죽임을 당할 공포와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광주시민 역시 518무장폭도들의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도경과 도청의 요청으로 아침부터 도청을 사수하던 군인들도 더 이상 버티다가는 모두 시민군 기관총에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여 광주향토사단에 계속 구조를 요청했으나, 헬기로 병력을 탈출하는 길마저 시민군이 막았습니다. 그래서 시민군이 맹렬히 사격하는 도로상에서 시민군 총탄을 무수히 몸에 맞으며 퇴각하여야 했던 것이요, 도청 직원들도 경찰 병력도 공포에 질려 사지에서 벗어나려 안간 힘을 썼으며, 그 와중에서 군 병력을 요청하는 장면이 기자의 눈에 분명하게 목격되었습니다.

  • 작성자 08.01.19 07:13

    그 기자가 도대체 누구냐고 그러니까. 근거를 쳐 제시하란 말이다. 그 기자가 너냐?

  • 08.01.19 15:52

    조선일보 기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 작성자 08.01.20 04:04

    아니 그러니까 조선일보 기자 누구이며 그 관련기사가 몇월몇일자에 나와 있는지 쳐 대라고. 너 바보야?

  • 08.01.21 00:01

    http://blog.chosun.com/blog.log.view.screen?blogId=13793&logId=461136&menuId=81028&from=19000101&to=29991231&listType=2&startPage=1&startLogId=999999999&curPage=1

  • 작성자 08.01.21 06:03

    역사학도야 니가 제시한 자료에 가서 글을 읽어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단다. "우선 윤병룡 서장(광주경찰서장)은 각과의 기밀문서를 챙기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회의는 [적절한 시기에 철수해야 된다. 군병력을 요청하자]는 등 서로 엇갈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역사학도야 넌 글을 못 읽어? 군병력을 요청하자는 의견이 있긴 했으나 의견이 엇갈려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구나. 이 글 어디에 광주경찰서장이 군병력을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있니? 그러니 이제 제발 광주경찰서장이 군병력 투입을 요구했다는 개소리는 그만해주라.

  • 작성자 08.01.21 06:09

    역사학도야 위에 니가 쳐 한 말이다. "光州경찰서장 尹형용씨가 군 병력을 요청하는 장면이 당시 취재기자 메모에도 여기저기 나타납니다." 니가 제시한 글 어디에 윤형용씨가 군투입을 요청하는 장면이 있니? 또한 글을 읽어보면 5월 21일 상황에 대한 글이로구나. 20일 이미 11공수가 투입된 상황이란 것은 알지? 그러니까 경찰이 요청해서 군투입을 했다는 개소리는 제발 고만 쳐 해라.

  • 08.01.21 16:04

    만약 시력이 안 좋아서 못 보신 것이라면 여기 인용해 드립니다: <윤서장은 회의 도중 전화로 도경에 현재의 상황을 보고하고 1개소대의 군병력을 요청했다.> 광주경찰서장이 도경에 군병력을 요청했다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광주에서 폭동이 일어난 이래 광주향토사단은 광주시 당국의 요청에 따라 병력 지원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22일부터는 폭동 진압 책임을 계엄사가 뒤집어쓰게 되었지만, 21일까지는 폭동 진압의 주체가 광주시 당국과 광주향토사단이었으며, 광주향토사단은 도경이 요구하는만큼 각 경찰서에 병력을 지원해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 작성자 08.01.22 08:25

    너야말로 시력 뿐 아니라 이해력도 떨어지는 것 같아서 다시 설명을 해주겠다. 니가 인용한 글에 말이다 광주서장이 회의를 한 것은 5.21일 오후 4시 25분 상황이란다. 그리고 니가 이 까페 "광주사태의 진실탐구 마당"에 직접 퍼담아온 글 중에 이런게 있어요. 제목이 "3공수여단 15대대장의 5·18 체험기"라는 건데 거기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5월20일 광주로의 출동명령이 떨어졌다." 5월 20일 이미 광주에 도착한 3공수여단은 그럼 5.21일 광주서장이 요청할 줄 알고 미리 출동해 있었단 말이냐? 또한 1개 소대를 요청했는데 1개의 공수여단이 전체가 왔다는 것이냐?

  • 작성자 08.01.22 08:30

    역사학도야 넌 쥐새끼 처럼 자꾸 논의의 핵심을 바꾸고자 노력을 하고 있다만 공수부대는 이미 21일 이전 광주에 다 와 있는 상태였단 말이다. 경찰의 출동요청을 받고 온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리고 너도 눈이 있고, 머리란 것이 있다면 광주경찰서 회의에서 군투입에 결정된 사안은 없다는 말하고 다시 서장이 군투입을 요청했다는 말에 논리적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니? 또한 그런 요청을 했는지는 서장 본인이 더 잘 알지 않겠니? 서장 본인이 그런 적이 없다는데 자꾸 뭔 개소리를 하고자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구나.

  • 08.01.18 17:50

    해방구 설치에는 공산당 정부 영토 선언의 의미가 있으며, 518무장단체는 해방구를 설치할 목적으로 도청 점령 계획을 세웠는데, 518무장단체가 도청 점령 계획을 세운 시점이 언제인지 아시는지요.

  • 작성자 08.01.19 07:14

    가지가지 한다. 미쳐도 곱게 미쳐라.

  • 08.01.19 15:53

    518무장단체가 도청 점령 계획을 언제 세웠는지도 모르시는군요. 그럼 518무장단체가 도청을 점령한 이유는 아시는가요?

  • 작성자 08.01.20 04:06

    진짜 궁금해서 묻는다. 넌 이런 걸 어디서 배운거야? 니가 역사학도라니까 어느 대학 어느 교수님 밑에서 역사를 배웠는지 좀 밝혀봐라. 내 그 교수님에게 김대령이란 학생에 대해 좀 물어보고 싶구나. 아니면 그냥 니 혼자 독학으로 상상을 쳐 해가며 역사를 배운거니?

  • 08.01.21 00:12

    518무장단체가 5월 21일 전남도청을 점령한 이유에 대해서 님은 누구한테 어떻게 배우셨는지 먼저 말해 주셨으면.

  • 작성자 08.01.21 06:10

    사람이 질문을 하면 그 질문에 먼저 대답을 하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 아니냐? 다시 말한다만 말장난 걸려고 하지말고 내 질문에 먼저 대답을 쳐 하길 바란다.

  • 08.01.21 16:15

    저는 김대중이 직선제 개헌 반대 시위 선동하며 유언비어 퍼뜨려 김대중 내란을 일으키는 과정을 쭉 지켜보고 있었던 그 시대의 증인입니다. 님은 17대 대선을 역사 교수한테 배웠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님이 17대 대선을 목격한 이상으로 광주사태는 제가 느끼고 걱정하고 경험하였던 사건입니다. 386이 치매환자인척 하고 광주사태에 대한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기에 저라도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 나서야 했던 것뿐입니다.

  • 작성자 08.01.22 08:36

    그러니까 니 글 그대로 이해하자면 니 말은 니가 5.18을 경험했다는 것이구나. 니가 광주에 있었다고 주장하고 싶은거니? 나는 이 까페 어떤 글에서도 니가 5.18 당시 광주에 있었다는 말은 보지를 못했구나. 한방 썼다던 니 친구들이 광주를 왔다갔다 했다는 헛소리는 들어봤어도 말이다. 5.18 당시 광주에 없었다면 느끼고, 걱정하고, 경험했다던 니 말은 개소리가 되겠구나. 그렇지? 당시 그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뭘 경험했다는 것이냐? 지바고란 대화명 쓰시는 분은 직접 그 현장에서 경험을 하셨다더구나. 그런데 직접 경험한 사람의 말과 경험하지도 않은 사람의 말 중 어떤게 더 신빙성이 있을까?

  • 작성자 08.01.22 08:40

    또한 니 말대로 니가 시대의 증인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럼 시대의 증인이 아니냐? 96년도에 아주 잠시 미국 미시간 주립대에 있긴 했다만 그것을 빼면 온전히 대한민국에서 나고 자란 나 역시 시대의 증인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증인의 말이 서로 완전히 다르구나. 그렇담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가 증인의 적격을 판단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겠구나. 넌 이미 내 글에서 밝혔다시피 많은 거짓말을 해대고 있으니 증인 실격이로구나. 그러니 진실을 증언한다는 헛소리는 제발 그만두길 바란다.

  • 08.01.22 12:58

    광주사태의 본질은 전국적 민중봉기 일으켜 최규하 대통령 강제로 하야시키고 스스로 대통령이 되려 했던 김대중 내란입니다. 518측에서도 518에 뿌리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뿌리는 전국적인 것입니다. 님께서 대한민국에서 자랐다고 하셨는데 광주사태 이전에 국민이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는지요? 분명히 김대중의 전국적 민중봉기의 칼은 최규하 대통령의 목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그 시위를 전국적으로 확대시키려 하였고, 저는 그때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김대중이 운동권에 어떤 지령을 내려 어떤 방법으로 시위를 선동하였는지 쭉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 작성자 08.01.23 06:23

    이제 대놓고 미친 척을 하는구나 5.18 이전에 국민들이 전두환 이름 석자를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는 니 개소리는 내가 주구장창 신문기사 인용해 가며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역사학도 니가 김대중이 어떤 지령을 내려 어떤 방법으로 시위를 선동하였는지 쭉 지켜봐왔다면 너 역시 내란음모에 참여 했다는 것이냐? 아니면 내란음모를 목격했다면 당연히 신고를 했어야 하는데 넌 하지 않았으니 이미 불고지죄로 형사처벌을 받았어야 한단다. 제발 똑같은 이야기 반복하게 하지 말고 정신 좀 차려라. 니 멍청한 헛소리는 하나님도 구제하시기가 힘들겠구나.

  • 08.01.23 16:17

    이준형님, 양심껏 대답하세요. 님은 광주사태 이전에 (혹은 1980년 4월 중순 김대중이 신현확의 2원집정제 유언비어를 재야 정치권에 퍼뜨리기 전에, 그리고 5월 중순 김대중이 학원 운동권에 유언비어 퍼뜨리라 지령 내리기 전에) 전두환이란 이름 석자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 작성자 08.01.24 04:20

    역사학도야 너야말로 양심을 찾기 바라면서. 내가 내글에서 주구장창 설명해놨다만 다시 한번 쓴다. 니가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수사한 합수부장이 전두환이었단다. 전두환 합수부장의 수사경과 발표는 주구장창 신문보도에 나왔으며 심지어 9시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나왔단 말이다. 또한 80년 4월 전두환은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임명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단다. 중정부장 서리가 뜻하는 바는 전두환이 군 정보기관인 보안사령관 뿐아니라 민간 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에서 조차 탑이 되었음을 의미한단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면 군인신분인 전두환이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단다. 이해가 안되지?

  • 작성자 08.01.24 04:33

    군인 신분인 전두환이 군 행정의 최고 정점인 국방부 장관과 동일한 직급을 갖게 되는 것 자체가 문제란 말이다. 중정부장 자체가 부총리 급이니 말 그대로 모순인 상황인 것이지. 또한 민간과 군을 아울러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있으니 전두환이 그야말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실세가 된 것을 의미하고 그래서 국민들이 우려를 하게 된 것이란 말이다. 지금으로 따지면 기무사령관이 국정원장을 겸임하는 것이 말도 안되는 상황인 것 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려한다는 기사를 내가 분명 내글에 인용해서 썼다만 역사학도 넌 내 글은 죽으라고 안 읽는구나. 정신 좀 차리자 역사학도야.

  • 08.01.24 20:12

    <전두환 합수부장의 수사경과 발표는 주구장창 신문보도에 나왔으며 심지어 9시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나왔단 말이다>라고 하셨으니 마치 수사경과 중간발표가 두 번 이상 있었던 것처럼 말하시는군요.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날 영애 박근혜에게 개인적으로 보도한 것과 11월 7일의 중간발표 외에 다른 중간발표가 있었나요? 더구나 전두환 명의가 아니라, "합동수사본부" 명의로 했거든요. 그리고 이준형님의 "중간발표" 기사 주장이 바로 운동권조차 전두환이란 이름이 언론에 실렸을 때 읽지 않았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전두환 장군이 광주사태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을 국민은 1988년부터 비로서 알기 시작했습니다.

  • 08.01.24 20:21

    동교동 똘마니들이 전국 대학교 강당에서 518비디오를 상영하였다는 사실을 이준형님이 확인하셨습니다. 동교동 똘마니들이 전두환이 광주에서 광주시민 만명 학살하였다는 유언비어 퍼뜨리며 518비디오를 상영하였을 때 그가 합수부장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나요? 아닙니다. 그들은 전두환이 공수부대 대장이라고 했었습니다. 이준형님은 광주사태에 대하여 언제부터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운동권은 "전두환이 공수부대에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유언비어 퍼뜨렸었습니다. 전두환 장군이 1사단 사단장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는 저는 그 어른이 공수부대 대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 08.01.24 20:33

    그러나, 운동권에 속고 있었던 미개인들은 전두환이 공수부대 대장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공수부대 대장이라는 직급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88광주청문회 직전까지 미개인들은 전두환이 공수부대 대장이었다고 떠들어 대었습니다. 님에게 '88광주청문회 보는 방법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만약, 광주사태 당시 광주시민 주장을 따르려 한다면 5월 19일 11공수와 20일 3공수가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아니라, 특전사령관 명령으로 동원되었다는 사실이 먼저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은 두가지 이유로 불가능합니다. 첫째로, 정호용 특전사령관은 광주로 동원된 부대들에 대한 지휘권을 가지고 있지

  • 08.01.24 20:47

    않았었다는 사실이 과거사위원회의 몇년간의 조사에 의해서도 이제는 명명백백합니다. 둘째로, 광주시민은 광주사태가 8년이 지나서야 비로서 광주사태 당시 공수부대 대장은 전두환이 아니라, 정호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만약 광주사태 당시 광주에 동원된 공수부대 지휘체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광주시민들이 가지고 있었다면 특전사 사령관이 정호용이었다는 사실이 언급되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8년간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88광주청문회 때 비로서 광주사태 당시 특전사 사령관은 전두환이 아니라, 정호용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518사기꾼들은 "명령체계에 2원화"가 있었다는 새로운 주장을

  • 08.01.24 20:47

    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광주사태 당시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이었다는 사실을 518사기꾼들이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주장을 바꾸어야 했을 이유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518사기꾼들이 말을 바꾸었습니다. 광주사태 당시에는 "전두환이 공수부대에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88광주청문회 때는 "정호용 특전사 사령관과 광주향토사단 사단장 정웅간에 명령의 2원화가 있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물론 두가지 주장 모두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518사기꾼들 낯짝이 두꺼워도 그들의 처음의 유언비어와 나중의 주장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광주청문회 때 갑자기

  • 08.01.24 20:56

    말을 바꾸었다는 사실이 이준형님이 언급한 신문기사조차 518사기꾼들이 읽거나 확인해 보지 않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만약 전두환이 보안사령관인 줄 알았는데도 공수부대 대장이었다고 속여 유언비어 퍼뜨렸으면 그들이 사기꾼이었다는 증거이구요. 문화방송국 사이트에서 '88광주청문회 동영상을 다시 보세요. MBC가 비겁하게도 장세동씨의 증언 등 518측에 불리한 장명은 올려놓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정호용 당시 특전사사령관이 광주사태 진압에 관여했었다"는 우기려고 미개인들이 고성을 지르는 모습을 보실 것입니다. '88광주청문회 화두는 정호용 당시 특전사사령관이 명령계통에 있었느냐였습니다.

  • 08.01.24 21:08

    그러니 이준형님께서 설명을 해 보세요. 518사기꾼들이 '88광주청문회 때 정호용 당시 특전사 사령관에게 책임이 있다고 그토록 목소리 높여 주장할 것이라면 80년 광주사태 때부터 88년 광주청문회까지 8년간 단 한번도 정호용이란 인물을 언급하지 않았던 까닭이 무엇인가요? 그리고,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최소한의 팩트, 즉 당시 전두환 장군이 보안사령관이었다는 팩트조차 공개하지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전두환 장군이 공수부대 대장이었다는 착각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당시 특전사 사령관은 정호용이었다는 기본적인 팩트를 영화가 제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작성자 08.01.25 04:07

    참 개소리도 주구장창 이구나 니가 니 댓글 첫머리에 쓴 거 그대로 옮겨와본다. "<전두환 합수부장의 수사경과 발표는 주구장창 신문보도에 나왔으며 심지어 9시 뉴스에서도 심심찮게 나왔단 말이다>라고 하셨으니 마치 수사경과 중간발표가 두 번 이상 있었던 것처럼 말하시는군요.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날 영애 박근혜에게 개인적으로 보도한 것과 11월 7일의 중간발표 외에 다른 중간발표가 있었나요? 더구나 전두환 명의가 아니라, "합동수사본부" 명의로 했거든요. 그리고 이준형님의 "중간발표" 기사 주장이 바로 운동권조차 전두환이란 이름이 언론에 실렸을 때 읽지 않았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 작성자 08.01.25 04:12

    이제 니 개소리를 알아듣기 쉽게 반박을 해줄게. 넌 수사경과 발표가 11.7일 단 한번 뿐이었다고 개수작을 떨고 있구나. 그럼 언론에 보도된 그대로 당시 합동수사본부장 전두환 기사를 다시 보여줄게. ▲10.28=전두환 계엄사합동수사본부장 수사중간 발표 ▲30일=전두환 본부장,『김계원 전비서실장을 연행수사중』이라고 2차수사결과 발표 ▲6일=합동수사본부.『군부·외세개입없다』고 수사전모 발표와 기자회견===>이 것은 79년 12.4일자 중앙일보 이고 내 글 "5.18당시 전두환을 몰랐다는 논의에 대해"에 당시 중앙일보 전두환 관련 기사 전부가 나가 있단다. 언제까지 이럴래? 지겹지도 않냐 거짓말하기가?

  • 작성자 08.01.25 04:23

    또한 니 댓글에서 ["전두환이 공수부대에 전라도 사람 씨를 말리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라고 하고 나서는 전두환이 공수부대장인줄 광주사람들이 착각했다는 개소리를 쓰고 있구나. [전두환이 공수부대에 전라도 씨를~~~ ]이 문장에서 어떻게 넌 전두환이 공수부대장이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니? 전두환이 공수부대를 보내서 라고 판단하는 것이 보편적인 독해 아니겠니? 또한 광주사람들이 전두환이 공수부대장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한다면 니가 예전에 말한 광주사람들은 전두환을 광주시청 직원이라고 생각했다는 개소리와도 전혀 맞지를 않잖니?

  • 작성자 08.01.25 04:22

    그리고 니 개소리를 주욱 늘어놓다가 왜 갑자기 삼천포로 빠지는 지는 의문이다만 정호용에 관련된 글도 이미 내글 본문에 써 있으니 쳐 읽기를 말한다. 이미 내가 한말을 주구장창 반복해야만 하는 이 상황이 정말 웃기구나. 내 글을 잘 좀 쳐 읽고 논박할 것이 있으면 조목조목 논박하여 새글로 써라. 니가 생각해도 비겁하지 않니? 글자수 제한에 글자 강조도 못하고 밑줄도 못치는 댓글에 주구장창 개소리 나열하는 것이? 다시 한번 말한다만 내 글 본문이나 쳐 읽고 헛소리를 써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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