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프로였다
이천이십오년 삼월오일. 아버지의 기일이다.
해마다 이날이 오면 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글을 쓴다. 내 글이 제사상 앞의 향이라고 할까. 내 글향이 시공을 넘어 아버지에게 전달되기를 기도한다.
아침에 일어나 오래된 아버지의 직업적 사진첩을 꺼냈다. 아버지는 조선일보 사진기자였다. 아버지가 찍었던 보도사진들이 남아있다. 여러 차례 이사하면서 아버지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필름들을 대부분 잃어버렸다.
지금 내 앞에는 손바닥 만한 낡은 흑백사진 한 장이 놓여있다. 양복을 입고 모자를 쓴 노인이 단 아래의 흙바닥 위에 양손을 마주 잡고 겸손하게 서 있다. 뒤로 보이는 단아래 부대를 상징하는 백마가 그려져 있다. 어느 사단의 연병장인 것 같다. 노인은 이승만 대통령인 것 같다.
단 위에 검은선글래스를 쓰고 한복을 입은 외국여성은 프란체스카여사가 틀림없는 것 같다. 대통령 앞에 차렷자세로 서 있는 뚱뚱한 군인의 뒷모습이 보인다. 사단장쯤 되는 것 같다. 대통령의 전방사단 방문광경을 사진기자인 아버지가 찍은 것 같다.
아버지의 기일인 오늘 나는 아버지가 자기 일에 어땠나를 생각해 본다. 아버지는 중학생 시절부터 사진에 호기심을 가진 것 같다. 길거리 사진관 앞을 지나가면 사진사가 부러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카메라작동법을 배웠고 동대문 부근에서 작은 사진관을 했다고 말했었다. 그러다 조선일보 사진기자가 됐다.
내가 대여섯살 무렵이었다. 한밤중에 들어온 아버지가 귀가 찌그러진 양철 소반에 놓인 밥과 된장을 먹으면서 하는 소리를 꿈결에 들었었다.
“신익희 선생 유세 현장에 갔었어. 기차 화장실에 숨기도 하고 하여튼 악착같이 따라붙었어.”
사진기자인 아버지는 남들을 몰래 따라다녀야 하는 불쌍한 일을 하는 것 같았다. 깡패가 기승을 부리던 자유당 시절이었다. 어느 겨울 아침 얻어맞아 피떡이 된 아버지를 사람들이 데려왔다. 찍지 말아야 할 사진을 찍다가 필름을 빼앗기고 폭행당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귀가 뭉개져 있었고 뭉개진 자리에 피가 굳어있었다. 아버지는 덩치가 크고 싸움도 잘한다고 했다. 그런 아버지가 왜 그렇게 처참하게 얻어맞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일곱살쯤이었다. 집 동네 큰 길에 데모대가 지나가는 걸 봤다. 데모대의 앞에서 가는 찦차 본넷트 위에 도끼를 든 남자가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부정선거를 얘기하고 이기붕 부통령을 욕했다. 한밤중에 돌아온 아버지가 넋두리 같이 한 이런 말이 지금도 내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광화문의 회사 앞을 나오는데 경찰관 한 명이 행길 건너편 쪽을 향해 카빈총을 조준하고 있는 거야. 어디를 겨누는지 그쪽을 봤지. 엉뚱하게 구두 닦는 꼬마인 거야. 아침이면 우리 회사 사무실에 와서 구두를 가져가는 아이였어. 잠시 후 총성이 울리더니 그 아이가 개구리같이 펄쩍 뛰더니 땅바닥에 자빠지는 거야. 나는 순간 골목에 피해 숨었어. 그 순간을 사진을 찍어뒀어야 하는 데 나는 못했어. 너무 무서웠어.”
아버지는 총에 맞아 죽을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아버지는 왜 항상 위험하고 이상한 데를 다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어렸던 시절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이 잘사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 같았다. 조선일보 기자라면 여기저기 공갈을 쳐서 돈을 많이 먹을 거라고 자기들끼리 수근거렸다. 나는 아버지가 공갈친 돈을 집에 가져오는 걸 보지 못했다. 집은 항상 쪼들렸다.
어머니가 뜨개질 품팔이를 했다. 어머니가 봉지쌀을 사 가지고 오는 걸 본 적도 있다. 부끄러웠다. 마당에 쌀가마니가 놓여 있는 다른 집이 부러웠다. 선거 때가 되면 동장이 집집마다 선물을 돌렸다. 그런데 아버지가 기자라고 우리집만 주지 않았다. 우리집은 아버지 직업 때문에 손해를 보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 삼학년쯤이었을 것이다. 화가난 어머니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백금 반지를 내게 주면서 전당포에 가서 돈을 빌려오라고 했다. 아버지가 또 사고를 쳤다고 했다. 아버지가 사건 현장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출입을 막는 형사를 카메라로 때려 벌금이 나왔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집안 살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사진기자인 아버지가 편집국장이 되고 높이 될 사람도 아닌데 왜 그런지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나는 노인이 됐다. 나는 돌아가실 때의 아버지보다 열 살이 더 많다. 지난밤 꿈에서 오랫만에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 가파르고 험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곧 굴러떨어질 듯 위험한데도 아버지는 침착하고 단호한 모습이었다. 저세상에서 아버지가 늙은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나는 이제야 아버지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버지는 프로였던 것 같다.
[출처] 아버지는 프로였다|작성자 소소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