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청에 주차를 하는데
용무를 마치고 나오는 한 분이
“저기 잠깐 말 좀 물읍시다.”하고 부르신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일까
둘러봐도 저밖에 없어 바라보니
분명하게 저를 보고 말씀을 이으신다.
“차를 보니까 세월호 리본을 달아놨던데” 하니
옆에 있던 부인이
“그만 합시다.”하시며 만류를 하는데도,
아저씨는 똑바로 쳐다보시며
“그 세월호랑 가족이나 뭐 그런 거 됩니까?” 하신다.
대화를 하자고 하는 말씀이 아니었기에
“네. 그렇습니다.”하며 정중히 돌아서는데
“지긋지긋하다. 미칠 것 같네.” 화를 내시고
한참이나 쳐다보시다가 붙잡는 아주머니에게 끌려가셨다.
2.
아무 것도 돕지 못하면서 그저 리본이라도 달아놓고
잊지 않으려 애쓴 것뿐인데, 그것조차 불편하셨나보다.
한 마디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으셨나보다.
차에 리본을 달고 다닌 지 수 년이 지났고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분을 만났다.
다행인 게지.
더 심한 다툼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겠지.
그분도 분명 나름 이유가 있으셔서 화를 내시는 거겠지.
그렇게 이해를 하려고 애쓰면서 하루를 보냈다.
3.
그 날 밤 새 고성 화재 소식이 있었다.
피곤해 일찍 잠들었다가 잠시 새벽에 깨어나
강풍을 타고 급속히 퍼지는 불길을 보았다.
국회 운영위원회의 논쟁 소식도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안타깝게도 한 분이 사망하고
엄청난 피해가 있었지만,
신속하고도 최선인 대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하였음을 보았다.
이어서 어떻게 이처럼 대응할 수 있었는지
그동안의 변화를 알려주는 뉴스들을 보았다.
참 다행이었다. 고마웠다.
한편 씁쓸하고 슬펐다.
그때 그 배에서도 이런 대처가 있었다면.
그래서 피해가 최소화되고
아이들을 비롯한 승객들이 구조되었더라면.
그랬다면 그 아저씨의 날선 질문이 있었을까?
아무 일도 없이 지나치지 않았을까?
내가 굳이 그 리본을 안 달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에 마음이 아팠다.
4.
차에 노란 리본을 다는 것으로
나는 명확한 의사를 드러냈다.
그것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심각한 정치적 행위가 되었다.
분명 거슬려 하는 분들이 계실 걸 알면서도
나는 리본을 달고 또 이런 상념을 적는다.
그분을 불편하게 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거창한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잊지 않겠노라는 약속과
약자와 함께 하겠노라는 결심을 했던
나 자신에게 비겁하지 않고자,
진리를 따르는 신앙에 충실하고자
리본을 달고 뉴스를 살핀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한다.
리본을 보고 따졌던 그분이 맞는 거라면,
만약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고쳐주시길,
참된 소식과 진실을 알려주시길.
만약 바로 알고 있다면 힘을 주시길,
진실을 모른 채 분노하는 분들을 용납할 수 있길,
어떤 상황에도 진실을 따라 살 용기를 주시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