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1 [禪宗] 의 뿌리를 찿아서
중국 선종은 bc520년 남인도의 초조 달마대사가 중국에 건너오면서부터
시작되여 제 2조 혜가,승찬,홍인,으로 이여지며 양자강 건너 소림사에 전
법 제자를 기다리며 혜능의 제자 하택 신회,는 남종의 계통을 육대설로
정해 후대 선종 교단의 큰영향을 주었음니다
*기다린 곳은 백마사 전법제자는 신라의 지명 법사 가져온 법문은법화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국의 선종 법맥은 제1조 보리달마부터 제6조 혜능까지 이어진 뒤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우리나라의 선종 법맥은 혜능을 이어 남악-마조-지장으로 이어졌다.
대각사의 연기를 찿아서
대각사의 불교 연기 약력
좋은 인연 의ㅡ서막이 오르며 인연되여진 박연서 3형제 인연으로 아푼
중생 구제와 새 생명을 잉태 하게 하는 보살의 선행으로 경주 건천 의
오봉산 기도 동참시**금척**의 신화를 막연히 보게되여 금척릉을 참배
하고자 들린 자리에서 대각의 혜명 선생은 그곳에서 동해쪽에 *보 *자
붙은 사찰을 찿아보라는 신 의 응답에 따라 찿게된 보경사로 부터 신라
불교의 연기를 깨달아 그 깨달음의 가피로 아미타 부처님을 목불로 친
히 조성 모시게 됨으로 시작 되였고
중국 백마사와 보경사의 연기
**중국에 불교 최초 도래지**
*중국 하남성 낙양시 에 백마사이다*
중국 후한시대에 인도의 2사람 섭마등 ,축법란 ,이 서기 67년 에
영평구법 법문을 (경문) 백마에 싣고 들어왔는데 그들을 맞이한
곳에 백마사를 세우게 되였다 .
이곳 백마사와 우리나라에 보경사에 얽힌 사연을 기록한
백마사와 보경사의 연기 (보경사 창건 설화에 나타난 설화)
참고로 백마사의 경전은 ***법화경*** 이다
** 보경사와 대각사에 연기 또한 우연이 아닐것으로 사료됨**
~~주제 : 사찰전설 국가 : 한국 시대 : 신라 지역 :
경상도 참고문헌 : 한국불교전설99~~
신라 *지명법사*는 중국에 가서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진평왕7년
(585) 진나라로 가는 사신들과 함께 불법 수학의 길에 올랐다.
사신들과 동행했기에 융숭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지명스님은
당시의 고승 *대덕과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면서 경·을 ·론 3장을
깊이 연구하고 익혔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지명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꼭 인가(인정)받기 위해 양자강 건너 북쪽 하남성 낙양에 자리한
중국 최초의 창건사찰 백마사에 다달았다.
「음, 과연 명찰이로구나!」
오색 창연한 백마사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예배드리는 순간
지명 스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접신의 현상?)
왜 처음 가 본 그 절 부처님 앞에서 마치 감회에 젖은 듯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는지 지명스님은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감격스런 참배를 마친 지명스님은 백발이 성성한 주지
스님을 친견하고 찾아온 동기를 밝혔다.
「으음! 계림국에서 불법을 구하러 왔다고 ?
참으로 오랫동안 기다리고 기다렸던 백마총의 임자가 왔도다.」
눈을 지그시 감고 염주를 굴리며 인사를 받은 노승은 알 수 없는
말 을 혼잣말처럼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를 따라오시오.」
지명스님은 영문을 모르는 채 노승을 따라나섰다.
노승은 길을 걸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불교가 처음 중국에 전해진 것은 인도의 , 마등과, 법란, 두
스님에 의해서였소.
그때 그 스님들은 석가모니 불상 한 분과 불경 그리고 12면경
과 8면경을 백마에 싣고 왔는데 애석하게도 백마는 중국에
도착 후 자기 임무를 다했다는 듯 명을 다했소.
두 스님은 백마의 공덕을 찬양하기 위해 중국 최초의 사찰을
건립하고 절 이름을 백마사라 불렸고 그 무범을 백마총이라
명했지. 지금 우리는 그 백마총으로 가는 길이오.」
이야기를 들으며 한 5리쯤 걸으니 곱게 단장돼 있는 무덤 하
(1)나가 보였다.
「저 무덤이 바로 백마총이오.」
지명법사, 백마총에 삼배를 올리고 백마총 비문을 읽어 내려갔다.
「여기 잠자는 백마는 속세의 인연으로 서천 중인도에서 말의 몸을
받았으나 그 지혜가 뛰어났다.
불상과 불경을 싣고 10만리길을 거쳐 진단국에 도착하여 목숨을
마쳤다.
그 공덕으로 축생의 몸을 받지 않고 세세생생 정토에 태어나 동진
출가하여 선지식이 되고 중생을 교화제도하여 마침내 최 , 정각을
이룰지니 이 얼마나 거룩하고 장엄한 원력인가!
그 빛은 진단국과 해동에 널리 비출 것이다.」
비문을 다 읽은 지명스님은 노스님의 설명 없이도 자신이 전생에
백마였으며 이제 인연이 닿아 다시 오게 됐음을 깨닫고 감회에
젖어 눈물을 흘렸다.
그때였다.
노승이 주장자를 3번 치더니 벽력같은 소리로 외쳤다.
「오늘 백마총 임자가 여기 왔으니 호법신령과 신장은 그 법보를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하라.」
노승의 외침이 끝나자마자 백마총 옆땅이 갈라지면서 돌상자
하나가 솟아올랐다.
「지명수좌! 저 석함을 열어보게.」
석함은 종이 장처럼 가볍게 열렸다.
뚜껑뒷면에는 글씨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동국 조선 해뜨는 곳 종남산 아래 백척의 깊은 못이 있으니
그곳이 동국명당이다.
그곳을 메워 이 경을 묻고, 법당을 청건하면 만세천추에 불법은
멸하지 않을 것이니 너는 그곳에 태어나 인연을 지어라.>
이 수기를 마등·법란 두 도인에게서 받았다.
다시 대불사를 일으켜 세세생생불법이 흥하여 정토를 이루게
함이다. 일조근시.」 지명스님은 4백 50년전 백마사 주지였던
일조스님이 자신의 전생이 있으며, 그 전생이 백마였음을 거울
보듯 재삼 확인케 되자 그냥 눈물이 앞을 가렸다.
석함속에는 8면경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자! 지명수좌는 이 8면경을 잘 호지토록 하라.」
지명스님이 8면경을 받아 지니자 석함은 저절로 땅속으로 사라
졌다.
「이 8면경은 비록 돌로 다듬어 졌지만 보배스런 거울이니 8면
보경이라 부르라.」
노승은 8면경을 8정도의 뜻에 비유하여 설명하면서 삼라만상
을 비추는 거울처럼 8면보경은 인간의 마음을 비출 것이니
지극히 호지할 것을 당부했다.
이렇게 이른 후 노승은
「이제 나는 할 일을 다했으니 이 몸을 버려야 할 때가 왔구나.」
면서 좌탈입망에 들었다.
노승의 49재를 마친 지명스님은 백마사에서 주는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장안에 도착하여 다시 고승대덕 을 친견한 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실로 20년 만에 귀국하니 왕과 조정대신은 크게 환영했다.
지명법사는 낙양 백마사에서 호지하고 온 8 면보경에 대해
왕에게 세세히 고하고 대불사를 일으킬 원력을 밝혔다.
「참으로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이오. 수 10만리 만경창파를
헤치고 보경을 계림국에 모셔온 호법인연이 과인에게도
주어진 것을 심히 영광으로 생각하며 곧 대작불사를 일으킬
것을 삼보전에 맹세합니다.」
이리하여 왕은 지명법사와 함께 신하 10여명을 대동하고
해맞이(영일)고을로 출발, 동해안에 이르렀다.
일행이 명당자리를 찾고 있을 때 문득 하늘을 쳐다본
지명법사가 구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보살모양의 5색 구름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명당을
찾을 것입니다.」
구름은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 내연산에 머물렀다.
1만 2천봉에 12폭포 가 절정을 이루고 있는 계곡에는
평원처럼 고요하면서 넓은 연못이 있었다.
일행은 일제히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이 바로 8 면보경을 모시고 금당을 세울 성역인가
합니다.」
「과연 그렇게 생각되오.」
왕과 일행은 모두 기뻐하고 환희에 들렸다.
곧 연못을 메우고 그 중앙에 8 면 보경을 봉안한 후 대가
람이 완성되니 그 절이 바로 원진국사·원각국사 ·오암대사
등 호국승장과 고승대덕을 배출한 보경사다.
<한국불교전설99>
내연산 보경사의 12폭포 의 연기
1)상생폭포 2)보현 폭포 3)삼보 폭포 4)무풍 폭포
5)연산 폭포 6)관음 폭포 7)연산폭포 8)은 폭포
9)복호 1폭포 10)복호 2폭포 11)실폭포 12)시명 폭포
지나온 흔적으로 보는 연기의 기도처는 2018년 서안의 백마
사친견 이후 2024년 백중 합동 천도제의 완성적인 선생님의
능력(신력)을 인정 받으시고 중생구제의 보살행에 명패를
받기위한 출행을 언급 한것이라 생각한다면
이제는 대각의 이념에 맞는 ( 대승 불교의 종지 법화경 에
선종의 근본을 확실히 하기위한) 출행 이라 생각해서 중국
최초의 초조인 1)백마사와 수대에 걸쳐 변화하고 다듬어진
2)용문석 굴 당대의 양귀비 대에 종교 가치를 볼수있는 3)
3)양귀비 석굴 로 숭산의 소림사 외 중국의 토속신앙의 대가
4)관우 장군의 관림 , 그들의 역사속에 변화한 삶에 현장 5)
5)회족거리 외(선택) 운대산 과 화산 , 대안탑, 고궁 등
대각의 혜명 선생님의 발 자취로 추이 해보는 진리의 대각은
2014년 까지의 무속인으로서의 본분에 최선을 다하는 무당
으로서의 명성을 쌓아오면서 부처님과의 필연적인연을외면
보살의 기본을 수호 하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불보살의 역활
을 수행하는 역활로 중생을 보살피는 생활로 오로지 신령님
의 제자로서 외길을 고집스럽게 고집해 오던중 2014년 경
부터 부처님의 일대사 일연을 쫏아 선대의 덕망 있으신 스님
이나 성현님들의 자취를 쫏아 선암사 대각암의 의천 대사
님과 인연을 짖고 서두에 기술된 내용과 같이 본격적인 스님
의 길을 쫏아 수핼 하시든중에 신령님에게 불명(혜명)을 하사
받아 2016년부터 본격적인 대각의 인생도 대학을 천명 함께
하는 도반인 신도들과의 큰 그림을 그리기에 이르렀음니다
2024년 드디여 때를 맞춰 모든것에 기준으로 삼았던 대각암
의 의천 대사님 연기로 우리 대각의 주불이신 아미타 부처님
의 미타전을 건립 부처의 방을 만들고 ,부처의 옷을 마련 ,
부처의 말을 전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받았기에 그 동안의
발자취와 대각의 의미를 재 확인하고 뜻을 공고히 다지기위한
백마사, 보경사, 대각사 연기를 확인 하러가는 출행이지 않을
까 생가해 봄니다.
**소안탑 관련 : 천복사는 원래 현복사로 648년 사망한 당의 고종
의 극락 뢍생을 위해 뢍실이 짖고 소안탑은 당나라 의정 스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위해 지은것이다 ,고로 대안탑은
현장 법사 소안탑은 의정 의정은 선박을 타고 남방으로 다녀온 소승
이라면 현장은 북방 대승(법화경) 쪽으로 생각할수있다
밀교의 접속 부분(중국 서안 밀교 의 자취)
1) 서안의 한성 토성(한성고성)중국 8대 고성중 하나로 삼묘(3묘)를
한성 문묘,관성묘,성황묘 , 의 참배
2)밀교의 종찰서안 대흥선사 265년 진나라때 창건 장안에서 가장
오래된밀교 사찰 로 당나라 고종 에서 현종때가 (100년) 성행시기
였으며 대승 불교의 기본을 세운 밀교로 금강저(재석천이 아수라와
싸울때 사용)를 이용한 수련으로 밀교를 발전 시켰으나 지금은 일본
이 가장 발전 시킨 밀교가 되였다
밀교의 1문은 천왕문과 명랑 법사, 급강지 와 불공화상을 이해 한다
천왕문은 대열 여래,(중) 동으로 아촉불,서 로는 아미타불, 남으로는
보생불, 북으로는 불공 성취불 또한가지 왕도 천축국전 이라는 인도
여행기로 유명한 신라의 혜초 스님도 대흥선사에 주석하며신통력이
뛰여난 밀교 스님으로 유명세를 가져 기우제로 이름을 남겼다
인도에서 온 밀교 승려는 선무 외 일행 금강지,불공화상 ,밀교 경전
은 즉신 성불 (선무:637-735-741) 혜초스님은 16세 유학 불공 화상
의 제자로 밀교를 배웠다
아무튼 우리 나라 신라의 혜초 스님도 바로 이 곳
대흥선사에서 불공화상을 모시고 열심히 공부해서
그 당시 중국에서 존경받는 밀교 스님이 되었던 것입니다.
<왕오천축국전>에 나오는 20대의 어린 혜초 스님이
고향 신라를 생각하며 남긴 <망향가>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月夜瞻鄕路
뜬 구름은 너울너물 돌아가네 浮雲颯颯歸
그 편에 감히 편지 한 장 부쳐 보지만 緘書沗去便
바람이 거세어 화답이 안 들리는구나 風急不聽廻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我國天岸北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 他邦地角西
일남에는 기러기마져 없으니 日南無有雁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 誰爲向林飛
참고자료 조계종 사천 왕상
세계의 중심 에는 수미산 을 중심으로 재석천(고대 인도에서 숭상하던
귀신들의 왕)을 모시고 불가에 귀의해서 도량의 불자을 보호하는 4대
천왕은 동으로 지국천왕, 서로는 광목 천왕, 남에는 중장천왕,북으로는
다문 천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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