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전체가 온통 잿빛이다. 희망에 찬 새해 설계가 이어지고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번져야 할 시기인데 그와 정반대다. 제주항공 비행기 참사로 수백 명이 희생돼 함부로 행동하기가 어려운 게 요즘 상황이다. 헌재의 대통령 탄핵안 심사를 앞두고 여야가 날마다 삿대질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가 도시를 집어삼킨 형국이다. 이러니 정작 눈앞에 닥칠 겨울철 재난은 뒷전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다른 곳에 이목을 집중할 때 각종 재난이 발생한다. 인간의 무관심과 부주의를 시험하는 셈이다. 그런데 재난은 대개 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어렴풋이 경고를 보낸다. 인간의 주의력을 시험해 보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이 즉시 반응을 보이면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반면 몇 번의 경고음에도 불구하고 무감각하면 한꺼번에 몇 배의 위력을 가한다. 혹독한 대가를 치루고 난 뒤에야 사람들은 그것이 인재(人災)라며 부산을 떤다. 책임 추궁에는 철저하다.
중부권과 서해안 지방에 폭설 주의보가 내렸다. 오늘까지 최소 10㎝ 이상이 이들 지역에 쌓일 것이라고 한다. 북극 한파가 당분간 한반도에 머물며 폭설과 한랭전선을 유지할 것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이런 소식에도 울산 쪽은 아직 무감각하다. 울산지역엔 통상 2월이나 돼야 눈이 내리기 때문에 마치 남의 일 보는 듯하다. 지난 2015년 연초의 폭설 사태를 생각하면 이런 방심 자체가 바로 재난의 근원이다. 당시 2월도 아닌 정초에 13cm의 폭설이 쏟아질 것으로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당시 폭설에 대비해 사전에 별의별 대책을 다 세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폭설에 시가지 일부가 마비됐었다.
이렇듯 인간의 준비성을 시험하는 게 자연의 심술이다. 국립환경연구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울산이 전국에서 가장 기후변화가 심각한 지역이라고 한다. 이 말은 상식선을 벗어난 자연재해가 언제든지 이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겨울 재난에 대비해 세워둔 대책을 두 번, 세 번 점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긴장의 끈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은 겨울 한파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2011년 초 울산 수은주가 영하 13.5도까지 떨어진 적이 있다. 그런 강추위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당시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강의 한파로 도시 전체가 꽁꽁 얼어붙었다. 올해도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예상 밖의 상황이 바로 자연 재난으러 이어진다. 최근 비교적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어 시민들의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느슨한 상태다. 이런 상황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