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보내고 딸들이 가고, 아무도 없는 세상에 버려진 기분이었다.
딸들과 같이 있었던 삼일간은 애써 참을 수 있었다.
무너져 주저 앉을 것 같은 다리가 구름을 밟는 것 같았다.
홀로 남겨져 하염없이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바다는 까마득한 절벽 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금방 절벽 밑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라면 한번 끓여 보지도 않았고, 세탁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몇 시간을 누워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파트 마트에 가서 소주을 사서 마시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병원이었다. 옆에는 아파트 경비가 서 있었다.
“마트 앞 의자 옆에 쓰러져 있는 것을 내가 데리고 왔어.
마누라 없어도 잘 버티어야지. 죽은 마누라가 살아서 올 것도 아니고, 그러면 마누라도 안좋아 해”
경비가 가고, 또 혼자였다. 딸들에게는 연락하기 싫었다.
창피했다.
병원 식사로 겨우 회복을 하고 다시 집으로 왔으나 여전했다.
더 많이 마셨던 것 같다.
이번엔 알콜 중환자 실이었다. 팔 다리가 묶여 있었고, 노란 수액을 4 일간이나 맞았다. 식사도 간병인이 먹여주었다.
알콜중환자실은 일반 중환자와 같은 병실이었다.
옆에는 죽어가는 환자들이 기계의 도움을 받고 죽은 듯이 누워 있었고, 하루에 두 번 기저귀를 가는 시간은 똥 냄새가 진동을 했다.
일반 병실로 돌아와 정신과 약과 치료를 같이 받았다.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일 홀로 컴퓨터만 만지다가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 이야기는 딴 세상이었다.
내가 책으로만 보아왔던 장면과는 틀림없이 다른 것들이었다.
교통사고 환자들, 산재 환자들, 알콜 환자들, 정신병 환자들, 사람들 마다 기막힌 사연들이 있었다.
나는 그에 비하면 행복한 편이었다. 내 자신이 창피했다.
나는 아내와 어머니에게 길들여진 어린 아이에 불과했다.
일반 병실에 두 번 입원하고, 알콜 중환자 실에 두 번 입원 하고 급기야는 정신병원으로 갔다.
첫날은 홀로 감금되어 있다가 다른 환자들과 같이 있게 되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환자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말이 없었다.
하루 종일 머리를 침대에 박는 할아버지, 하루 종일 종이를 찢어서 주머니에 보관하는 청년, 내 바로 앞 사람은 밤새도록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무슨 사연으로 여기에 왔을까. 그들의 행동으로 봐서는 나보다 더한 사연들로 짐작이 갔다.
정상적인 대화가 되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식당에 가서 쇠창살로 막혀 있는 창문 너머로 약간 보였던 동해 바다를 내려다 보았다.
병실을 빠져나와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식당이었다.
정신 병원을 퇴원하고, 겨우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듯 했으나 이번에는 술집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천곡동의 유명한 룸싸롱은 전부 다녔다. 외국 여성이 있는 술집에도 갔었다.
많은 여자들을 만났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국 여자 중국 여자 탈북여성 조선족 여성 그리고 엄청난 한국 미인들과 대학교를 다니는 어린 여자아이들 고아원을 나와서 홀로 버티며 사는 여자아이.......
병원에서는 남자들과 만났다면 술집에서는 여자들 뿐이었다.
술집 여자들의 사연도 기가 막혔다. 나는 또 창피해졌다.
그녀들에 비하면 나의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간 것은 교통사고 였다.
술이 취해서 내가 차를 박은 것인지 차가 나를 박은 것인지도 몰랐다.
깨어보니 중환자실 너머로 딸아이가 있었다.
“아빠, 많이 힘들었어? 나와 같이 살자”
나는 딸아이에게 괜찮다고 했다.
머리 수술을 하고 의식을 잃고 일 주일을 혼수상태로 있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가고 간병인의 도움으로 살다가, 동해로 후송이 되어 한 달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없는 텅 빈 집은 여전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머리가 어지러워 서 있을 수가 없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노인 요양병원으로 가야만했다.
거기도 역시 중환자실과 다를 바 없었다.
수 많은 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수 많은 죽음을 보았고 수 많은 장애인들을 보았다.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느낀 것은 나의 나약함이었다.
내가 살아온 삶은 그들에 비하면 너무나 행복한 삶이었다.
노인요양병원에 6개월을 있다가 퇴원을 하고, 원룸을 얻어 나왔다.
묵호의 중심가에서 거리를 걸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겨우 나를 찾아갔다.
세월이 약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깨닫게 해주었다.
강해진 것은 아니다. 겨우 살아가는 것이다. 겸손해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