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문화생활] 6년 연애의 끝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 뿐이다]

출처 : 여성시대 핑계로 성공한 사람은 김건모 뿐이다

         천국에 관한 문장은 요시모토 바나나 'n.p'의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6년 연애의 끝

내 미래에는 늘 그가 있었다.
결혼
임신
육아
꿈
모든 미래에 그가 등장 한다.
그와 결혼을 해서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비슷한 시간에 퇴근하여 맛있는 저녁을 먹고
그 날 겪은 안 좋은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위로 하고, 위로 받고.
그의 무던한 성격을 닮은 아이를 낳아
끔찍히 사랑해주고
그와 아이가 모든 잠든 새벽에 홀로 글을 쓰고.

행복할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그와 함께라면 이 모든 것이 순탄하게 이어질거라고 확신했다.

결혼식을 예약하고
상견례를 했다.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가기로 하고
내가 일정을 짜기로 했다.
그러나 나는 인터넷에 한번도 '하와이'를 쳐본 적이 없다.
나는 오랫동안 아팠다.
결혼식 예약을 파기해야 했다.
나는 매일 울었고, 그는 매일 지쳐갔다.
언젠가 한번은 살고 싶지 않다며 엉엉 울었는데,
그 역시 "너가 없으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냐"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때 다시 한번 확신했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서로가 지독히도 필요하다는 것을.

20대때의 나는 천방지축에 부정적이라
나를 스쳐가는 모든 사람들을 험담했는데
그는 그 모든 사람들을 같이 험담 해주었다.
지하철에 내 발을 밟은 사람
못된 직장 상사
예쁘고 성격도 좋아서 늘 질투했던 직장 동료
나와 안 맞는 친구들
내 어깨를 치고 간 아저씨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지하철
맛없는 커피를 파는 커피숍
비싸기만 한 식당

사람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 불쾌감을 준 장소까지도 같이 험담 해주었다.
그리고 늘 마지막엔 말했다.

"니 잘못 아니야"

구원 받은 기분이였다.
나만은 언제나 이 천국속에서 살아갈거만 같았다.
그는 매일 나를 구원해주고 편안하게 잠을 청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구원은 없었다.
그는 신이 아니였기에 지쳐갔고, 나 역시 똑같은 방식의 구원에 지쳐갔다.
이렇게도 안정적이고, 달콤하기까지 했던 우리는
별 일도 아닌 일로 헤어졌다.
그가 회식을 한다는 말을 안했다는 이유로 나는 이별을 통보했다.

그래도 그는 계속 연락을 해왔고
나는 받지 않았다.
나는 그때, 다른 구원자를 만나고 싶었다.
더 돈이 많고,
더 잘생긴 새로운 구원자를 만나 다른 방식으로 구원 받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남자들과는 몇 번의 만남이 끝이였다.
더 발전된 관계로 까지 넘어가지 못했다.

그 후로도 몇 달간 그는 나에게 연락을 했고,
나도 힘든 일이 있거나 갑자기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연락을 하곤 했다.
아마 그때까지 나는 그가 영원히 나를 기다려 줄거라고 믿고 있었다.
언제든지 돌아가기만 하면 다시 우리는 천국 속에 살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닿지 않았고
나는 혼자 어리둥절했고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나를 기다릴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속에 살았다.

그는 더이상 내 전화, 내 문자에 답이 없었고
조급한 마음에 그의 회사 앞까지 찾아갔지만
그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외근 나왔어. 다시 볼일 없을거야. 잘 살아라'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이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끝이 나는 건가
그럼 그 6년은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6년 동안 우린 뭘 한걸까
6년 동안의 우리는 어디로 가는걸까
6년은......

정말이지 6년은 어디로 가버리는 걸까

함께 갔던 곳들
함께 먹던 음식들
서로 꼭 안고 자던 밤들
입맞춤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
그 많은 대화들
눈물
같이 본 영화들
함께 웃던 tv프로그램
영원히 내 자리라 생각했던
그의 차 옆자리
그 자리의 안전벨트

이것들은 어떻게 어디로 사라져 버릴것인가.
어느 곳에 이것들을 묻어야 하는가.

그 뒤로도 술이 취한 새벽이면 나는 그에게 전화를 했지만
한번도 통화 할 수 없었다.

그는 나와 헤어지고 더 잘 살아가고 있었다.
즐겨 피던 담배를 끊고,
수영을 더 열심히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고.

나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시선들을
많은 곳에 분산시키고 있었다.
좋아보였다.
늘 볼룩하던 배는 탄탄하게 바뀌어 있었다.
더이상 그의 일상에 나는 없다.
그가 온 힘을 다하여 나를 없애버린 것인가.

나와는 그저 함께 자고, 먹기만 했던 주말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듯 했다.

나는 이토록 엉망이 되었는데,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실패하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은데,
나는 자꾸만 비틀거리는데,
그는 자꾸만 더 제대로 서 있는 듯 했다.

구원자가 없는 날들은 지독히도 길었다.
잠이 많아서 타박받던 날들이 많았는데,
오랜 불면증에 시달렸다.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면 고민은 더 심해졌다.
누군가들에게 비난을 들으면 어찌할 수 없음에 고개를 숙이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를 100% 이해해주던 사람이 이제는 지하철에서 스치는 사람들보다
멀리 있다는 것이 영 적응되지 않았다.

새로운 남자들을 몇 번 만나기도 하고, 사겨보기도 했지만
그들은 조금이라도 손해를 본다는 느낌을 받으면 관계를 정리했다.

이제 더이상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그의 SNS를 훔쳐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가끔씩
바닥의 머리카락을 치우다가,
슬픈 노래를 듣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잠자리를 뒤척거리다가,
문득 문득 생각이 난다.

그와 나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
아마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깊고 길었던 연애의 끝은 결국 완전한 남이 되는 것이다.

우연히 길거리에서 만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한 날들은 내가 태운 적도 없는데, 재도 남지 않고
완전히 타버리고 사라져졌다.
그가 온 힘을 다하여 태워버린것인가.

그렇다면 어느 곳으로 가서 애도를 해야 하는가.

그래도, 나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온전히 '나' 만을 위해 살아가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

한때 구원 받았다는 것이,
둘 만의 천국에서 오래도록 머물렀다는 것이.

그저 이제 하고싶은 말은,
고마워
뿐이다.

내 곁에 있어줬던 거, 고마워.

그리고 우리가 함께 본 영화들은 이제, 많이도 낡았어

[트윗트위티]

짧은 인연이었는데도 공감이다

[ㅎㅣㅁ]

연애 5년차에 약간 흔들리고 있는 과정인데 글 읽고서 많은 생각이 든다..

[여행매니아]

남녀를 떠나서 그냥 인간대 인간으로 좋았고, 때론 그립고, 아직도 저릿하고 그렇다... 너무 좋은 글이야

[도라버려]

아 공감되고 좋다 7년 연애했는데 보는내내 마음이 회색빛이었어..

[구름의바다]

글 되게 잘 썼다.. 한 연애 과정을 요약해서 본 느낌 ㅠㅠ 우울하네

[라라도도]

나도 6년 연애했는데 공감된다~ 헤어질때 너무 아팠는데 너무 나쁘게 헤어졌지만 그 시간들 너무 소중했던거 같애

[뿌르르뿌로]

글 너무 좋다.. 여시 행복해

[집밖은위함해]

5년 연애하고 헤어졌는데 구구절절 공감한다... 그냥 너무 낡은 과거를 붙잡고 살기 싫은데 지금은 조금 슬퍼하고싶다 ㅠㅜ

[야옹강쥐]

눈물나서 도저히 못 읽겠다....

[승기편]

이 글 너무 좋아서 겨우겨우 찾아 다시 읽으러왔어 이 글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여시 요즘도 글을 쓰나요?

[일방통행]

완전 지금 진행중인 내 상황이네 글 너무 잘써서 나도 덤덤하게 된다 고마워 여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