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90도 인사, 尹 “열차 같이 타고 가자”… “주로 민생 얘기”
韓, 눈 맞으며 尹 기다려 ‘90도 인사’… 尹, 韓과 특검 시절 입던 패딩 차림
열차 1시간 마주앉아 함께 서울로
대통령실 “둘 다 ‘분열은 공멸’ 인식”… ‘尹, 黨지도부 초청 회동’ 등 검토
허리 숙여 인사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을 찾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허리를 90도 가까이 숙여 인사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입고 있는 남색 패딩은 한 위원장과 2016년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에서 한솥밥을 먹던 시절에도 입었던 옷이다. 서천=뉴스1
23일 오후 폭설이 내린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로 점포 227개가 소실된 피해 현장에 먼저 도착한 사람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한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보다 약 40분 이른 오후 1시경 현장에 도착해 소방대원들을 격려한 뒤 우산 없이 눈을 맞으며 윤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을 10분가량 기다렸다. 귀가 시린 듯 두 손으로 귀를 가리기도 했다. 이날 서천은 영하 6.3도, 체감온도는 영하 11.1도였다.
윤 대통령을 맞은 한 위원장은 90도로 깍듯하게 ‘폴더 인사’를 했고, 윤 대통령은 악수한 뒤 한 위원장의 어깨를 툭 쳤다. 한 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초록색 민방위복 차림인 반면, 윤 대통령은 2016년 한 위원장과 함께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에서 일하던 시절 입던 남색 패딩 차림이었다.
화재 현장이었던 만큼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피해 상인들을 만나 굳은 표정으로 약 20분간 현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윤 대통령이 현장 보고를 받을 땐 한 위원장은 한발짝 뒤에서 보고를 함께 들었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익산역에서 함께 대통령 전용열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정면충돌 양상을 보이던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현장 공동 점검을 계기로 자연스러운 소통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다만 한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갈등 관련 얘기는) 서로 없었다. 그런 얘기를 대통령 뵙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총선 앞 공멸을 막아야 한다는 데는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함에 따라 갈등이 봉합될 계기를 마련했지만 충돌의 불씨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 尹 “열차로 같이 갑시다” 韓 “자리 있습니까”
윤 대통령은 현장을 방문한 당과 정부 관계자 모두와 대통령 전용열차로 함께 상경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에게 “열차로 같이 타고 갈 수 있으면 갑시다”라고 제안했고, 이에 한 위원장은 “자리 있습니까”라고 묻고 윤 대통령과 함께 전용열차로 향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은 열차에서 바로 마주 보고 앉았다. 익산에서 서울까지 1시간 남짓 걸렸다고 한다. 화재 피해 상인에 대한 지원과 민생 현안을 잘 챙기자는 얘기가 주였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서민과 재해 지원을 실효적으로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얘기와 민생 현안 대화를 주로 나눴다”며 “당정이 적극 나서자는 교감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서울역에서 “대통령에 대해서 깊은 존중과 신뢰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대통령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민생을 챙기고 나라를 잘되게 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서면 브리핑에서 참석자를 소개하며 ‘미리 대기하고 있던 한 위원장’이라고 명시해 두 사람의 상하 관계를 분명히 했다.
● “불신·앙금 여전하지만 분열은 공멸 공감대”
두 사람이 민생을 고리로 아슬아슬한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완전한 화해보다는 일시적 봉합 수순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두 사람이 만난 결정적 이유는 코앞으로 다가온 총선이다.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할 정도로 한 위원장을 향한 윤 대통령의 불신과 앙금이 드러났지만, 여권 분열에 따른 총선 패배 시에는 국정 동력의 급격한 약화를 피하기 어려운 만큼 봉합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뜻이다.
공천 국면에서 친윤(친윤석열)그룹 의원들의 당내 여론 형성력이 예전만 못 한 점도 현실적으로 작용했다. 여권 관계자는 “지지 철회와 친윤 그룹의 연판장과 완력 행사에 따라 여러 번 당대표가 바뀌었던 기존 모습과는 다른 패턴”이라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두 사람 간에 극단적인 분열은 공멸이라는 점을 서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당 지도부를 대통령실로 초청하며 해법을 논의하는 자리도 대통령실 내에서 방안으로 거론된다.
한 위원장 입장에서도 ‘김건희 리스크’ 대응 방식을 두고 용산과 차별화하는 데 성공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과 대립을 이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론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한 위원장도 용산을 더는 자극하지 않으려는 흐름 같다”고 했다. 다만 21일 이관섭 대통령비서실장과의 만남을 “잘해보자는 자리”였다는 대통령실 설명 바로 이튿날 “사퇴 요구를 거절했다”고 정면 반박했던 한 위원장인 만큼 충돌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장관석 기자, 김준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