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水湖誌) - 174
수호지 제75회-2
송강과 두령들은 모두 금사탄에서 사신 일행을 영접하였다.
향화와 등촉을 밝히고 징과 북을 울리며 영접하고, 어주와 조서가 든 상자를 각각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진태위가 배에서 내리자 송강 등이 영접하면서 엎드려 절했다. 송강이 말했다.
“얼굴에 유배 문신을 새긴 소리(小吏)의 죄악이 하늘까지 어지럽혀 귀인께서 욕되게도
이곳까지 오시게 하였는데, 접대도 소홀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이우후가 말했다.
“태위께서는 조정의 귀하신 대신이신데, 너희들을 초안하러 여기까지 오셨으니 이는 결코
작은 일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물이 새는 배를 대기시켰느냐? 게다가
사리를 모르는 시골 도적놈을 태워 보내 자칫했으면 귀인의 목숨까지 잃을 뻔하게 했단 말이냐!”
송강이 말했다.“저희들에게 좋은 배가 있는데, 어찌 감히 물이 새는 배에 귀인을 태웠겠습니까?”
장간판이 말했다.“태위의 옷이 젖어 있는데, 너는 어찌하여 아니라고 우기느냐?”
송강의 배후에는 관승 등 오호장(五虎將)이 바짝 붙어 있고, 좌우에는 화영 등 팔표기장(八驃騎將)이
호위하고 있었는데, 이우후와 장간판이 송강의 면전에서 삿대질을 하면서 반말 짓거리를
하는 것을 보고 놈들을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송강 때문에 감히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송강은 진태위에게 가마에 올라 산채로 가서 조서를 읽어 주기를 청하였는데, 서너 번이나
청한 후에야 진태위는 가마에 올랐다.또 말 두 필을 끌고 와 장간판과 이우후가 타게 하였는데,
이 두 놈은 자신들이 대단한 인물이라도 된 듯 으스댔다.
송강도 말에 올라 풍악을 울리게 하고 세 관문을 통과하였다.
송강 등 백여 명의 두령들은 진태위 뒤를 따라 충의당에 이르러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진태위를 충의당에 오르게 하고, 정면에 어주와 조서가 든 상자를 놓았다.
진태위·장간판·이우후는 왼쪽에 서고, 소양·배선은 오른쪽에 섰다.
송강은 두령들을 불러 모았는데, 모두 107명으로 이규만 보이지 않았다.
때는 4월이었는데, 두령들은 모두 전포를 입고 당상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조서가
낭독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진태위가 상자에서 조서를 꺼내 소양에게 건넸다.
배선이 먼저 절을 하자 두령들도 모두 따라서 절을 했다.소양이 조서를 큰소리로 읽었다.
<문(文)로는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고, 무(武)로는 나라를 평정할 수 있다. 오제(五帝)는
예악에 의거하여 제후를 봉했고, 삼황(三皇)은 정벌로 천하를 평정하였다.
일에는 순역(順逆)이 있고, 사람은 현우(賢愚)가 있다. 짐은 조상으로부터 대업을 계승하여
일월과 같은 광휘를 열어 천하에 신복하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너희 송강의 무리가 산림에 모여 여러 고을을 약탈하였다. 본래는 군대를 보내
토벌하려 하였으나, 백성을 괴롭힐까 염려하여 이제 태위 진종선을 보내 초안하노라.
조서가 당도하는 즉시 모든 재물·식량·무기·마필·선척 등을 관아에 바치고 소굴을 없앤 다음
경성으로 올라오면, 죄를 면해 주겠노라. 하지만 만약 양심을 속이고 짐의 명을 거역하면, 천병을
보내어 한 놈도 남김없이 쓸어버릴 것이다. 이에 조서를 보내 알리니, 마땅히 알고 따르도록 하라.
선화(宣和) 3년 여름 4월>
소양이 읽기를 마치자 송강 이하 모든 두령들이 노한 기색을 띠었다.
그때 대들보 위에서 흑선풍 이규가 뛰어내렸다.소양의 손에서 조서를 빼앗아 갈가리 찢어 버리고,
진태위의 멱살을 잡고 주먹으로 패기 시작했다.
송강과 노준의가 이규의 허리를 끌어안고 말리자 이규는 할 수 없이 손을 놓았다.
이규가 막 손을 놓았는데 이우후가 꾸짖었다.“네놈은 누군데 이렇게 간 큰 짓을 하느냐!”
팰 놈이 없어 주먹이 근질근질하던 이규가 이우후의 머리를 붙잡고 패면서 소리쳤다.
“이 조서에 쓰여 있는 말은 대체 어떤 놈이 지껄인 말이냐?”장간판이 말했다.
“그... 그것은... 황제의 성지입니다.”이규가 말했다.“너희 황제는 우리 형제들을 잘 모르는구나.
이 어르신들을 초안한다면서 되레 큰소리를 친단 말이냐! 너희 황제의 성이 송가라면 우리 형님의
성도 송가다!너희만 황제 해먹고 우리 형님은 황제 되지 말란 법 있냐! 이 시커먼 할아버지를
잘못 건드리면, 조서를 쓴 관원 놈들도 모조리 죽여 버릴 것이다!”
두령들이 모두 달려들어 흑선풍을 억지로 끌고 나갔다.송강이 말했다.
“태위께서는 너그럽게 봐 주십시오. 저 덜 떨어진 놈의 잘못은 마음에 두지 마시고,
어주를 내리셔서 저희가 천자의 은혜를 느끼게 해 주십시오.”송강은 보석이 박히고
금으로 꽃을 새긴 술잔을 가져오게 하고, 배선으로 하여금 어주 한 병을 따르게 하였다.
그런데 따르고 보니 시골 막걸리였다.
나머지 아홉 병을 모두 열어 따러 보니 그것도 전부 시골 막걸리였다.
그걸 본 두령들은 모두 깜짝 놀라며 하나씩 충의당을 내려가 버렸다.
노지심이 철선장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제 어미와 붙어먹을 좆같은 놈들아! 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속인단 말이냐! 저따위 술을 어주라고 속여 우리에게 먹이려 하다니!”
적발귀 유당이 박도를 들고 뛰쳐나오자 행자 무송도 쌍계도를 뽑아 들었다.
몰차란 목홍과 구문룡 사진도 분통을 터뜨리고, 여섯 명의 수군두령들도 욕을 하면서
관문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송강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달려들려는 두령들을 몸으로
가로막으면서 급히 명을 내려 가마와 말을 가져와 태위 일행을 산 아래로 호송하고 다치지 않게
하라고 하였다.하지만 그때 대소 두령들 태반이 소란을 피우자 송강과 노준의는 친히 말에 올라
태위 일행을 관문 아래로 호송하였다.송강은 땅에 엎드려 죄를 빌었다.
“송강 등이 귀순할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서를 작성한 관원들이 저희 양산박의
실정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만약 좋은 말로 위무하셨다면, 저희들은 충성을 다하여
나라에 보답하고 만 번 죽어도 원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태위께서는 조정으로 돌아가시면
말씀을 잘 해 주시기 바랍니다.”
급히 호수를 건네주자 진태위 일행은 오줌을 질질 싸면서 똥줄이 빠지게 제주로 줄행랑쳤다.
한편, 송강은 충의당으로 돌아와 다시 두령들을 연석으로 불러 모아 말했다.
“비록 조정의 조서가 분명하지 않다 하더라도 여러 형제들은 너무 성급했소.”오용이 말했다.
“형님! 고집하지 마십시오. 초안에도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노하는 것을
어찌 나쁘게만 생각하십니까? 조정에서는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한가로운 얘기는 모두 집어치우고, 형님께서는 명을 내려 마군은 말을 정비하고 보군은
무기를 갖추며 수군은 배를 정돈하게 하십시오.조만간에 필시 대군이 토벌하러 올 것인데,
저들의 인마를 철저히 쳐부수어 갑옷 하나도 온전히 돌아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들이 꿈속에서도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든 다음 다시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여러 두령들이 말했다.“군사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그날은 자리를 파하고 각자 거처로 돌아갔다.
한편, 진태위는 제주로 돌아가 양산박에서 일어난 일을 태수 장숙야에게 얘기했다.
장숙야가 말했다.“심한 말을 하신 것 아닙니까?”진태위가 말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마디도 한 적이 없소!”“이미 일이 이렇게 되어 헛되이 힘만 쓰고 일은 틀어져
버렸습니다. 태위께서는 빨리 경성으로 돌아가셔서 성상께 아뢰십시오.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진태위·장간판·이우후 일행은 밤을 새워 경성으로 돌아가 채태사에게 양산박의 도적들이
조서를 찢어버린 일을 자세히 얘기했다.채경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며 말했다.
“그 도적놈들이 어찌 감히 이렇게 무례하단 말인가! 당당한 송나라 조정이 제멋대로 구는 그놈들을
어찌 그냥 둘 수 있겠는가!”진태위가 울면서 말했다.“만약 태사님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저는 양산박에서 온몸이 가루가 되었을 겁니다. 오늘 다행히 죽음을 벗어나 이렇게 태사님을
다시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채태사는 즉시 동관·고구·양전을 상부로 불렀다.
얼마 후 세 사람이 태사부 백호당에 당도하여 좌정하자 채태사가 장간판과 이우후를 불러
양산박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얘기하게 하였다.양태위가 말했다.
“어찌하여 그 도적놈들을 초안하자고 주장하셨습니까? 애초에 누가 그걸 천자께 상주했습니까?”
고태위가 말했다.“그날 내가 조정에 있었더라면 반드시 막았을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내버려뒀겠습니까!”동추밀이 말했다.“그런 쥐새끼 같은 도적놈들은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재주 없지만 군대를 이끌고 가서 청소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나머지 세 사람이 말했다.“내일 천자께 상주합시다.”그날은 이렇게 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조회 때 대신들이 만세삼창을 하고, 군신 간의 예를 마친 후 채태사가 출반하여
양산박의 일을 천자에게 아뢰었다.천자는 크게 노하여 물었다.
“그날 짐에게 초안을 상주한 자가 누구인가?”천자 옆에 시립하고 있던 급사중(給事中)이 아뢰었다.
“어사대부 최정입니다.”천자는 최정을 붙잡아 대리시(大理寺)로 보내 죄를 묻게 하라고 명하였다.
천자는 다시 채경에게 물었다.“그 도적놈들이 해악을 저지른 것이 오래되었소.
누구를 보내 토벌하는 것이 좋겠소?”채태사가 아뢰었다.“대군이 아니면 토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추밀사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가야만 승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천자가 추밀사 동관에게 물었다.“경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양산박 도적들을 체포하겠소?”
동관이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옛사람들이 이르기를 ‘효도를 할 때에는 힘을 다하고,
충성할 때에는 목숨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신이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여
뱃속의 우환을 제거하겠습니다.”고구와 양전도 동관을 보증하였다.
천자는 즉시 성지를 내려 금인(金印)과 병부(兵符)를 하사하고, 추밀사 동관을 대원수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각처에서 군마를 선발하여 양산박 도적들을 소탕하라고 명하였다.
- 175회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