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아침 저녁 바람결이 확연하게 달라져 늘 입고 다니던 옷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다.
계절이란 것이 이리도 서둘러 달려온다는 말인가 싶어 새벽 산책은 이제 그만.
아침 햇살이 내려와 뜨락을 환하게 밝힐 즈음에 길을 나섰다.
이젠 제법 울어대는 매미가 하루를 점령하고 밤이 되면 귀뚜라미가 잠을 재촉한다.
아침 나절, 산새들의 합창도 여전하고 짙게 드리운 무성의 초록 잎새들도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아직 8월인데 싶어도 계절은 우리의 생각보다 먼저 자리를 꿰차는 듯하다.
그렇게 나선 길자락에 산골바람이 휘익, 갑자기 전율이 느껴진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산골 습기가 바람이 된 듯 차디차게 느껴지고
순간 오싹한 기운에 잠시 주춤거리며 멈칫.....발 밑으로 이미 몸체를 밟힌채 짓이겨진 잔해 뿐인 뱀이 시선을 끈다.
살아 생명이었어도, 죽은 흔적의 무생명이었어도 좋아하지 못한다.
아침 열시만 되면 뜨락 한켠 연못 바위에 올라와 태양을 탐닉하며 꼿꼿이 머리를 세우며 똬리를 틀어
늘 바라보는 시선을 불안하게 하였던지라 그런 기억만으로도 싫었고 언제 어디서 등장할지 몰라서도 싫었던 기억이다.
어쨋거나 조심스레 발을 옮기며 아래 위를 오르락 내리락 하며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젖은 빨래들을 세탁하고 내 좋아하는 빨래줄에 빨래를 널까 하다가 잠시 망서리다가 세탁건조기로 휘리릭.
예전에는 그 어떤 빨래라도 햇볕에 말려야 한다고 고집하였지만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개인적으로 내게는 사소한 재미로 추구하는 햇빛의 이름이 있다.
봄날의 부드러운 햇살, 여름날의 강렬한 태양, 가을날의 따사로운 양광, 겨울자락 한줌의 햇볕.
그런 무의미 하지만 개인적으로 의미 부여하는 햇빛을 칭송하는 것 역시 사사로운 즐거움 중에 하나.
어쨋든 그 햇빛이 좋아서 맑은 날이면 있는 빨래, 없는 빨래를 모두 꺼집어 내어 세탁기에 돌리고
멋지게 만들어 놓은 뒷뜰 ㅡㄷ빨래줄에 척척 걸어놓고 흐뭇해 하면서 "역시 빨래는 햇빛을 받아야 해" 였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 여름날에 코로나를 피해 무설재로 피신을 온 딸과 손자를 위해 특별히 전용 에어컨을 설치하고
그들을 위해 온전히 하루를 바치다 보니 아기에게서 나오는 빨래는 그냥 햇빛에 맡길 일이 아니었다.
해서 할 수 없이 딸내미가 손주 빨래를 살균 소독으로 마무리 되는 세탁건조기를 구입하게 되었다.
있는 동안에는 어찌나 편안하게 잘 활용하였는지 세상은 참 날이 갈수록 이로울 문명의 이기를 외면하면 바보겠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이 돌아가고 나서는 또다시 햇빛에 빨래를 말리는 일을 계속 하다가
어느날, 도대체 왜 고생을 사서 하나 싶어 다시 세탁건조기로 빨래를 집어넣고 다른 일을 하다보니
오호라 빨래의 양에 따라 한시간에서 두세시간이면 뽀송뽀송한 빨래로 완벽하게 정리되어 나온다는.
그리고 한마디 했다.
그래, 여태까지 햇빛의 힘을 빌렸으니 이제는 문명의 이기를 누려볼까나? 로
비가 오던지 말던지 바람이 불던지 말던지 습기가 차던지 말더니 눅눅하던지 말던지 눈이 오던지 말던지
이제 빨래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고 지역적으로 다르게 온도차를 느끼는 이곳 산골에서의 일상에 자유로음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사실 빨래를 널어놓고 시내롤 놀러나갔다가 갑자기 예고편 없는 비가 오면
열 일 젖혀놓고 미친듯이 달려오는 수고로움은 말할 수도 없이 많았는데 이제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이요
넗어놓은 빨래는 햇빛이 한창 따근할 오후 두시에 걷어야 뽀송뽀송한 관계로 늘 걷는 시간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그것조차도 아예 신경을 안써도 되니 참, 세상이 정말 좋아졌다 싶다.
아니어도 벌써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살았을 일이나 여전히 아나로그를 기억하면서
몸이 고달퍼도 그저 그런 재미를 소홀히 할 수 없다 였으나 이제는 세월값을 하는 몸이
편해지고 싶다고 사인을 보내는 중이니 앞으로는 문명의 이기에 함몰 될지도 모를 일이겠다.
암튼 오늘은 어쩌다 보니 햇빛에 의한 빨래는 아웃,
더러 필요할 때는 햇빛의 힘을 빌리겠지만 편한 기계 사용을 계속 시도하지 않을까 싶다.
도대체 누가 그런 발명을 해내었는지 고맙기 짝이 없다.
새탁건조기여, 영원하라......뭐 좀더 발전할 일 이겠지만 말이다.
첫댓글 나 역시 건조기 예찬론자가 되었답니다. 손주 덕분이지만 빨래 널기엔 먼지 많은 서울, 것도 널곳 마땅치 않은 아파트 공간에선 아주 편리하더라구요.
아마도 서울 하고도 아파트라면
더더욱 애정하게 될 듯.
이젠 편리함을 추구해도 뭐랄사람이 없을 나이이니
기꺼이 활용하는 걸로.
@햇살편지 하모 하모요 ~!
저도 제가 세탁기를 돌리는데.. 세탁 건조 햇살이 좋아요,,, 오늘은 가을비가 내리고 있는 월요일 아침입니다..좋은 한주가 되세요...
ㅎㅎ 그러게요.
너른 뜨락에서 햇살 가득 들여와
뽀송한 빨래를 걷으면 뿌듯하죠.
이젠 그런 재미는 반납할 요량입니다.
한주를 또 잘 지내보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