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앞에 다시 선 민주노총 단병호 위원장
“두산중공업이나 철도쟁의 등이 더 크게 확산되지 않고 마무리된 것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처럼 공권력 투입 등 자본편향으로 노사관계를 처리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단병호(54) 민주노총 위원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중재로 두산중공업과 철도쟁의가 마무리된 것에 대해 ‘이제야 상식이 통하게 된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서 가장 변화하고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노동정책이다.
4월3일 출소해 22일부터 업무에 복귀한 단 위원장은 현재의 노동정책에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부분이 있긴 하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짧지 않은 수감생활 이후 5월1일 노동절 행사 때 오랜만에 대중 앞에 섰는데, 감회는
=자유가 박탈돼 있다가 자유로운 몸이 되어 대중 속으로 돌아오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 그러나 너무 많은 과제들이 있어 앞으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하는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겁기도 하다.
-현 정부의 노동정책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친노동정책’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그런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럼 지난 정권은 아주 정상적이고 노사관계도 바람직했는데 이번 정권 들어 노동쪽 의견만 받아들인다는 얘기냐 그게 아니라 지난 정권이야말로 가장 친사용자적이었다. 일부 사안에 대해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화한 것이며 균형감각을 찾아나가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현 정부의 노동정책도 그렇게 친노동적이냐 하면 그렇게 볼 수 없다. 오히려 노 대통령이 후보 때나 인수위 때 말했던 것이 집권 2개월이 되면서 조금씩 후퇴하고 있다.
인권변호사와 대통령은 다를 것
-어떤 점이 그런가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등이 그렇다.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어서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겠다고 했으나 여러가지로 변형되고 있고 재론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아직껏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도 정부안만 내놓고 국회에서 노사가 협상하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이해당사자들끼리 논의해서 합의안을 만들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오히려 의지가 있다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그 문제들은 현재 노사정위나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노사간에 협상이 진행중인 문제가 아닌가. 벌써 후퇴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이 아닌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개혁은 집권 초기에 단기간에 확실히 틀어쥐고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역대 정권이 다 그랬다. 우리는 현 정권도 시간이 더 지나면서 사용자쪽 편향으로 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91년 구속됐을 때 노 대통령이 변호인단 중 한 분이었다. 95년 구속 때는 문재인 수석이 변호인단에 있었다.
-노동문제와 관련해 노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노 대통령은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해박하다 할 정도로 많이 알고 있다. 구속노동자의 변론을 직접 담당하기도 했고 국회의원 신분으로도 노동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정치인은 현실 정치로 깊이 들어갈수록 노동문제와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과거 1980년대나 90년대 초의 노무현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이 최근 방송사 토론회에서 “대기업노조가 바깥에서는 노동운동의 대의를 외치면서 내부적으로는 임금인상에만 힘쓴다. 더 어려운 중소기업 노동자 생각을 진정으로 해본 적이 있는가”라는 취지로 대기업노조의 운동방향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
불합리한 하청 먼저 지적했어야
=노 대통령이 ‘대기업노조의 이기주의’를 지적한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노동자와 하청·중소기업간 임금 차이만 놓고 대기업 노동자는 임금이 많은데 왜 더 챙겨가려고 하냐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월급이 많다는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기본급도 130만~14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연장근로에 철야까지 하루 평균 14시간씩 엄청난 장시간 노동을 해서 좀 더 받는 것 가지고 임금이 과도하게 많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국 노동자들은 비슷한 경제수준의 외국 노동자와 비교해 결코 고임금이 아니다. 오히려 불합리한 하청관계를 시정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지 못한 역대 정권에 책임이 있고 그런 것을 먼저 지적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 복귀할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우리의 공식 입장은 산별교섭과 노정 직접교섭 등의 중층적 교섭구조가 보장된다면 노사정위 복귀 여부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는 노동과 자본 간의 큰 쟁점과 정책을 협의하는 기구다. 이런 협의 외에 산별교섭도 필요하고 노정간의 직접교섭도 필요하다.
-노동계 최대 현안 중 하나가 주5일 근무제 도입이다. 현재 국회 환노위에서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노사간에 견해차가 너무 크다. 전망은
주5일제 중소업체도 실시를
=상당히 난항을 겪으리라고 본다. 민주노총은 최대한 대화를 통해 우리의 요구를 반영하기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겠다. 그 과정에서 타협점이 찾아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관철시킬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노사간에 합의가 힘들다면 어떤 대안이 있나
=정부가 주5일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면 안을 내야 할 것이다. 시행시기도 가능한 한 앞당기고 일제히 실시해야 한다.
-프랑스나 일본 등 외국에서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대기업부터 먼저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기업규모에 따라 시차를 두고 도입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소업체와 비정규직, 영세노동자들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는데 또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사회적 차별을 확대시키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구분 없이 바로 주5일제를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지적도 많다.
=중소사업장에 대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부가 지원해줘야 할 것이다.
대표성 확보·대안제시 노력
-민주노총의 과제는
=이제는 정규직 노동자만으로는 전체 노동자의 대표성을 가질 수 없다.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업과 함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해나가야 한다. 둘째로 민주노총이 전국 중앙조직으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는 데 힘써야 한다. 아직 중장기 정책을 제때제때 생산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안 돼 있다. 또 노조운동의 가장 기본인 간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교육시스템도 취약하다. 이와 함께 민주노총이 노동자만이 아니라 농민·빈민·시민단체의 고민도 주도적으로 받아안고 함께 가야 한다.
글 오상석 기자 oss@hani.co.kr>oss@hani.co.kr사진 황석주 기자 stonepole@hani.co.kr>stonepole@hani.co.kr
단병호 위원장은
고향서 농사 거들다 행상 전전
현장주임 신분 노조결성 주도
단병호 위원장은 1949년 경북 포항에서 태어나 상고를 졸업했다. 마땅한 직장을 얻지못해 농삿일을 거들고 행상을 하기도 한 그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피살됐을 때 ‘무척 애석하게’ 생각했고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을 때는 ‘김대중씨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결혼 2년 뒤 달랑 10만원을 들고 서울로 올라와 서울 동대문구 면목동에 반지하 단칸방을 얻어 청량리 일대에서 행상 등을 하며 근근히 생활했다.
1983년 전신주와 흄관을 만드는 (주)동아콘크리트에 입사한 것도 순전히 생계를 위해서였다. 몇년 뒤 동아건설 창동공장으로 이름이 바뀐 이 회사에서 그는 노조를 결성(87년 7월)하고 위원장이 되면서 본격적인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노조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현장노동자의 본능적인 욕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시멘트를 뒤집어쓰고 휴일도 없이 일해도 월급은 16, 7만원에 불과했다. 당시 60여명의 노동자를 거느린 주임직급이었던 단 위원장은 사람들에게 잘 해줘서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크게 욕얻어먹지 않는 주임’이었던 단 위원장은 자연스레 파업을 이끌었고 주도적으로 노조 결성에 나서 성공한 것이다.
이후 단 위원장은 지역별로 노조연대활동에 참여해 서울지역노조협의회 2대 의장이 됐고, 지역노조협의회의 전국조직이자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을 거쳐 민주노총 위원장이 됐다.
오상석 기자
인터뷰 뒤안길
투사와는 거리 먼 소탈한 이미지
자녀진로 걱정할땐 평범한 아버지
노동절 행사 다음날인 2일 오후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만난 단병호 위원장의 목소리는 팍 쉬어있었다. 30일 화물운송노동자들의 과천집회와 고려대에서 열린 노동절 전야제, 1일의 공무원 노조 대학로 집회 등 각종 집회에 참석해 소리높여 연설을 하다보니 목이 잠긴 것이다.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얼굴로 천상 노동자처럼 생겼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단병호 위원장.
60만 조합원의 민주노총을 이끄는 노조운동 지도자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살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의 대학 진학을 걱정하는 고3 수험생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인터뷰 중간 잠시 쉬는 시간에 자녀들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컴퓨터 디자인을 전공하겠다는 아들이 “열심히 하는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고 털어놓았다.
대학 4년생으로 사법고시 공부를 위해 휴학한 딸 얘기가 나오자 걱정스럽게 말했다.
“딸은 이제 겨우 22살인데 만약 1, 2년 안에 합격하면 사법연수원 2년 거치더라도 25, 26살에 판사가 된다. 사회경험도 거의 없는 어린 나이에 한 인간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판사가 된다는 게 너무 불안하다.”
분당 수퍼마켓의 한평 남짓한 구석에서 야채 장사를 하는 부인과 관련해서는 “집사람 아니면 난 일(노동운동) 못했을 겁니다”라고 말한다.
“돈한푼 안갖다주고 걸핏하면 구속되는 남편을 믿고 지금껏 버텨온 사람”이라며 “그래도 힘들어하긴 하지만 크게 발목잡진 않는다”고 웃었다.
오상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