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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0: 21 귀신이 맹인의 눈을 - 요 10: 24 마음을 의혹하게
요 10: 21 귀신이 맹인의 눈을 -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기적이나 이적을 귀신의 하는 일로 평가절하해 버렸다.
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1) 귀신
성경에는 사탄 말고도 숱한 귀신들이 나온다.
귀신(헬라 말로 '다이모니온') 또는 더러운 귀신(문자적으로는 '더러운 영') 또는 악귀(문자적으로는 '나쁜 영')는 사람을 사로잡아 완전히 부릴 수 있는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영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 마 7: 22 -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 막 1: 34 -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 요 8: 48 -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 마 10: 1 -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막 1: 23 -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 눅 8: 2 -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더럽다'라고 한 것은 이들이 사람을 부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곧 귀신에 들린 자들은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것이다('정결한').
(2) 귀신 들린 자
귀신에 사로잡힌 사람을 가리켜 '귀신 들린 자'라고 한다. 신약 성경에서 증언하듯이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류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를 알려준다.
곧 인류는 때때로 자신들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자신들을 망치는 세력들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또한 숱한 병들, 특히 정신적으로 병든 모습을 드러내는 여러 가지 행동을 사람들은 귀신의 영향으로 돌렸다.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써 귀신들을 몰아내실 때, 이는 악에게 다스림을 받던 세상에 예수께서 오심으로써 하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
* 마 12: 28 -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 눅 11: 20 -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을 이기셨다는 표가 된다.
* 눅 10: 18 -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님은 양의 문이시다.
양들이 그를 통해 들어가면 구원을 얻는다.
* 행 4: 12 -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죄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문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둘째,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왜 그가 선한 목자이신가? 그것은 그가 양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죄인들을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는 이제 자기 양들을 아시므로 그는 자기의 양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영생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 요 6: 39 -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셋째, 우리는 좋은 양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양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구원을 받는다. 그들은 한 우리에 들어가 한 무리가 된다. 그리하여 참 교회의 교인이 되는 것이다.
또 그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큰 목자이시고 목자장이시다.
* 히 13: 20 -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 벧전 5: 4 -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목사와 장로들은 주께서 세우신 작은 목자들이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들은 충성된 목자들이 되어야 하고, 교인들은 좋은 양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성경 구절들을 몇 곳 살펴보자.
요한복음 21: 15, 16, 17,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주께서는 베드로에게 목양의 사명을 주셨다.
사도행전 20: 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주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전통 사본).
목사와 장로들은 교회의 목자와 감독자로 세움을 받았다.
디모데전서 5: 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교인은 목사와 장로들을 존경해야 한다.
히브리서 13: 7,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그들의 믿음을 본받으라.”
히브리서 13: 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교인은 목사와 장로들을 본받고 그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5. 내 양이 아니므로 ( 10: 22-26 )
22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23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24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2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 도다.
수전절(修殿節)은 주전 165년 유대 지도자 마카비우스가 수리아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승리한 후에 성전을 정결케 하고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한 날로 유대인의 달력으로 9월 25일부터 8일간이며 우리 달력으로 12월 중순쯤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의 전도활동 초기부터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분명하게 증언하셨다. 또 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시는 일들, 즉 그의 행하신 기적들이 그를 증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은 그를 믿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들이 그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선택의 진리가 담겨 있다.
예수께서는 앞에서도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요 6: 44).
선택의 진리는 두렵고 심오한 진리이지만 성경에 명백히 계시된 하나님의 진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죄인 중 어떤 자들을 그들의 행위에 근거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셨다.
* 엡 1: 4-6 -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 딤후 1: 9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것이다.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구원에 필수적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택의 결과이다.
요 10: 22 수전절 -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
수전절(엥카이니아)은 "봉헌, 갱신"의 뜻으로 B.C. 165년 유다 마카비(Judas Maccabee)가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Anttochus Epiphanes)에 의해 더렵혀진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여 다시 봉헌하는 날을 기념한 것이다.
1] 예루살렘에 수전절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수전절"은 유다의 매코비가 성전을 중수한 뒤, 그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정했다. 그것을 말함이다.(매코비 4: 51, 메코비 10: 5-8).
이날은 12월 25일로 오늘날에는 하누카(Hanukkah) 혹은 빛의 축제(집집마다 등잔불을 켜서 불을 밝히기 때문)라고 부르는 이 행사는 기슬레월(11, 12월 중) 25일에 시작하여 8일간 계속된다.
수전절 자체는 마카비 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성전 봉헌 의식과 같은 것은 이미 있었다.
* 민 7: 10 - 제단에 기름을 바르던 날에 지휘관들이 제단의 봉헌을 위하여 헌물을 가져다가 그 헌물을 제단 앞에 드리니라.
* 대하 7: 9 - 여덟째 날에 무리가 한 성회를 여니라. 제단의 낙성식을 칠일 동안 행한 후 이 절기를 칠 일 동안 지키니라.
* 느 12: 27 –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게 되니 각처에서 레위 사람들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행하려 하매
성전을 빼앗겼다가 되찾은 경험이 있는 유대인들에게는 이 절기는 구속자적인 의미도 부여하고 있다.
이때가 겨울이라고 한 것은 23절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와 관계있는 것으로 외부에서 활동하시기보다는 성전 내에서 활동하셨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요 10: 23 솔로몬 행각 -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거니시니 (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
"솔로몬 행각"은 비를 피하기 위하여 시설한 현관과 같은 것을 가리킨다.
1]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솔로몬 행각은 헤롯 대왕이 새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의 바깥 뜰 동쪽에 있는, 지붕과 기둥만으로 된 방이다. (요 10: 23)
* 행 3: 11 -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 행 5: 12 -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곳은 이방인들도 들어갈 수 있었고, 종교적인 가르침을 주고받을 때 쓰던 공간이다.
팔레스타인에는 12월이 우기(雨期)이므로 예수님께서 그 때에 솔로몬 행각에 다니신 듯하다.
요 10: 24 마음을 의혹하게 -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
예수께서 솔로몬 행각을 거니실 때에 유대인들이 그를 에워싸며 언제까지 그들의 마음을 의혹하는지 본인이 직접 밝혀주기를 청하였다.
1]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이르되,
예수의 답변을 들을 요량으로 예수가 다른 곳으로 피할 수 없도록 그 주위를 겹겹으로 에워싸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위는 예수를 모멸하는 일이었다.
2]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하게 하려 하나이까?
주님께서는 자기가 메시야이신 사실을 직설(直說)하심보다, 흔히 비유적으로 하시고 밝히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그때 민중의 메시야 관념이 그릇되어서 정치적 메시야를 기대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들은 자신들의 마음을(아이리스) "일으키다, 들어올리다"의 뜻인데 상징적으로는 '마음을 졸이다'의 뜻도 있다.
한마디로 '자신들의 마음을 들었다 났다' 하신다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이면 밝히 말씀하소서. 하니
이들은 어떤 결의에 차 있는 듯하다.
예수를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 밝히 말씀하소서.’라고 한 것은 이제 결단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31절의 말씀으로 보아 현재 이들은 돌을 들고 예수를 치려고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사건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 요 2: 1-12 – 가나의 혼인 잔치
* 요 7: 14-15, 46 –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46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 요 9: 16 -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그런데도 자신들이 기대하던 것과는 달리 행동하시는 예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아 그들은 갈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일이 없었다. '왜 그랬을까?'의 의문은 예수께서 이 사실을 공식적인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인정하심으로 이 말씀으로 고소되고 십자가를 지시게 된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이제 남은 사역을 마칠 때까지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시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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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람은 망설이지만 시간은 망설이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오늘도 내일도... 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고
최고의 하루를 보내십시요.💖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