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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는 22살 때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27살 때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잃었다. 부모가 차례로 사망하는 5년 동안 그는 대한민국의 퍼스트레이디였다. 박 대표는 이 당시를 “개인의 자유도 없고, 무거운 부담만 있는, 전혀 매력 없는 생활”로 기억한다. 첫사랑도 없었고, 질풍노도의 시절도 없었지만, 신중하고 절제된 언행을 이때 배웠다.
기자들은 박 대표가 발언할 때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들을 때의 절반 정도만 신경을 기울이는 편이다. 그만큼 예측가능하고, ‘서프라이즈’가 없다. 말 실수도 없다. 그의 라이벌인 이명박 서울시장,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말로써 구설수에 오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쉽게 흥분하지도 않는다. 1년에 한두 번 정도 박 대표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뉴스가 될 정도다. 이미 22살 때부터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하면서 자신보다 20~30세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숱한 연설, 인사말, 기념사를 한 덕분이다.
박 대표가 20대에 했던 말을 한번 들어 보자. 박 대표는 27세 때인 1979년 ‘새 마음의 길’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사단법인 새마음봉사단의 총재 자격으로서 낸 이 책은 충(忠), 효(孝), 예(禮)를 강조하고 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잘 되어가는 국가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맡은 바 주어진 직분을 성실히 하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충(忠)은 자신의 모든 정성을 다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으로 풀이되고, 이것이 또한 국가에 대한 최대의 공헌이 되는 것이다” “충, 효, 그리고 예 안에 바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길이 있으니 이것을 익히고 학생 여러분 모두가 더욱 더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성숙되어 우리 사회, 우리나라를 빛낼 것을 온 마음으로 기대하겠습니다.” 박 대표는 여러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30년 가까이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박 대표는 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치인이다. 어느 자리에서건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박 대표는 지난 7월 한나라당이 낸 LPG 특별소비세 면제 법안과 관련, 이런 말을 했다. “야당은 노선이 정확해야 된다.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야당이 국민에 약속한 법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반대를 한다하더라도 야당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 법안은 현재 한나라당이 이번 정기국회 통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핵심법안의 하나다.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덕분에 그의 보좌진은 늘 바쁘다. 김선동 대표 비서실 부실장. “박 대표는 민생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국민과 약속한 것을 일일이 점검한다. 대강 넘어가는 법이 없다. 박 대표가 민생현장에서 약속한 것은 반드시 정책국에 연결돼 진행 정도가 점검된다. 박 대표는 자신이 말한 것이 얼마나 진척됐는지를 알 수 있도록 진행표를 만들어 달라고 해 눈코 뜰 새가 없다.”
박 대표가 9살에 청와대에 들어가 20년 가까이 생활하면서 투철한 국가관을 가졌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적 야망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해석을 낳는다. 우선 ‘청와대에 또 입성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미련을 두고 있지 않다’는 분석이 있다. 한나라당 한 의원의 말이다. “박 대표는 뭔가 꼭 돼야 하겠다는 것이 없다. 권력욕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국가를 위해서 걱정하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무엇이 바람직한지가 우선이다. 그래서 여론조사 지지율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차례로 흉탄에 쓰러진 것을 본 그로서는 청와대가 그다지 애착이 가는 장소가 아니다’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정반대의 분석도 있다. 이미 퍼스트레이디 대행을 하며 권력의 속성을 파악했기에 아버지의 대를 이어 치국(治國)하겠다는 뜻이 강하다는 것이다. TK지역의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박 대표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박 대표는 이명박 서울시장과의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판단돼도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이 시장이 양보할 사람도 아니고…. 거기에 한나라당의 비극이 있다.”
정치인은 대부분 고집이 세지만, 박 대표의 고집도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대로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다. 지난 7월 당내 소장파가 중심이 돼 혁신안을 내밀며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했다. 내년 6월 임기만료에 앞서 박 대표의 사퇴를 사실상 요구한 것이다. 이때 박 대표는 단 한 가지 입장으로 맞섰다. “만약 내년 임기만료에 앞서 전당대회 개최가 결정되면 대표직을 사퇴한다”는 것이다. 이는 박 대표를 지지하는 의원들에게는 ‘혁신안을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 지난 8월 한나라당 워크숍에서는 혁신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 주성영 의원은 “혁신안은 사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논란 끝에 당 지도부의 잔여임기를 보장해 주기로 결론이 났다. 박 대표가 승리한 것이다.
10·26 국회의원 재선거에 홍사덕 전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공천심사에 불복, 출마하려 하자 딱 한마디를 했다. “홍사덕 총무가 만약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정서상 우리 당과의 관계지속이 어려울 겁니다.” 박 대표는 홍 전 총무의 출마로 한나라당 지지표가 갈릴 경우 낙승하기 어렵다는 점을 우려한 듯 작심하고 말을 한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원외 지구당위원장은 “박 대표는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다가 한번 토라지면 더 이상 보려고 하지 않는다”며 홍 전 총무와의 관계가 사실상 절연(絶緣)됐다고 평가했다.
지난 8월 처음 열린 노무현 대통령과 박근혜 대표의 회담은 여러 면에서 ‘박근혜 스타일’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3시간 가까이 열린 이날 회담에서 격정적인 노 대통령과 흥분하지 않은 박 대표는 비교가 됐다. 노 대통령은 박 대표가 집요하게 “경제가 어렵다”고 지적하자 “국민이 그러면 이해하겠는데, 야당 대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 대표는 또 “대통령이 되신 후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서 무엇을 하셨느냐”고 파고들었다. 당시 배석했던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모두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이고 짜증을 냈다”고 말했다.
시종 차분한 스타일의 박 대표는 주변 사람에게도 반말을 하지 않는다. 보좌관, 비서관에게 모두 존댓말을 쓴다. 동생인 지만·근영씨에게만 반말을 할 뿐이다. 또 여간해서는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모두 젊은 시절부터 지도자의 자질을 익히고 또 익힌 덕분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주변사람이 접근하기 어렵고, 정치인으로서의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게 아니다 싶은데도 한 번 계획을 세운 것에서 쉽게 방향전환을 잘 하지 못한다.
지난 3월 박 대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 신안군을 찾았다. 박 대표는 이곳에서 “신안군은 여러분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정치인인 김대중 대통령과 한화갑 의원이 난 곳이다.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 호남의 발전을 위해서 같이 노력하자. 우리가 노력하면 한나라당이 여러분이 제일로 지지하는 당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박 대표가 주민간담회를 가진 시간은 30분이 채 못 됐다. 광주에서의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 1시간 만에 급히 빠져나왔다. 광주에서의 약속을 지켰을지는 모르나 그 짧은 시간으로 신안군민을 감동시키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다음번에 쉽게 찾을 수 있는 광주 방문을 포기하고 앞으로 쉽게 찾기 힘든 신안 지역 주민과 더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가 2002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와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불공정 경선을 이유로 탈당했다가 복귀한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평가가 나온다.
정치에 입문한 후 별 다른 정치적 시련 없이 정치를 해온 박 대표의 리더십은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3선인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은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서 박 대표의 리더십을 이렇게 비판했다. “박 대표의 리더십은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 국가 비전을 제시하고, 위기돌파를 위한 전략전술을 구사하는 데는 상당한 한계가 있다.” 모두 박 대표가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넘어서야 할 벽이다.
박근혜의 사람들
측근 4인이 굳건한 병풍 역할… 대인관계 한정돼 박근혜 대표는 대권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측근이 많지 않은 정치인이다. 박 대표는 현재 당내에서 ‘4인의 장막’에 싸여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김무성 사무총장,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 유승민 전 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이 그들이다. 3선인 김무성 의원은 올해 1월 사무총장에 임명된 후 박 대표 체제를 유지하는 굳건한 병풍이 되고 있다. 김 총장은 당료들을 장악, 4·30 재보궐 선거와 10·26 공천에 사실상 관여하면서 박 대표를 위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김 총장은 가끔씩 중요한 회의석상에서 박 대표를 견제하는 발언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여 제압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지낸 김기춘 여의도연구소장은 법률 문제를 주로 자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려고 할 때 김 소장에게 많이 의지했었다. 박 대표가 여의도연구소장에 3선의 김 의원을 임명한다고 했을 때 당 안팎에서 반발이 많았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주로 성장해온 김 의원의 이미지가 여의도연구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이런 반발을 무릅쓰고 여의도 연구소장에 임명, 돈독한 관계임을 시사했다. 전국구 의원을 사퇴하고, 대구 동을 선거에 출마한 유승민 전 비서실장은 박 대표의 두뇌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요한 전략적 판단을 할 때 어김없이 유 전 실장의 판단이 개입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재선거에 출마한 것에도 박 대표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대구 동을 선거에 15명이 공천을 신청했으나 신청도 하지 않은 유 전 실장이 공천된 것은 박 대표의 두터운 신임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재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유 전 실장의 역할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여옥 대변인은 박 대표가 늦은 밤 자택에서 만나는 거의 유일한 측근이다. 전 대변인은 가장 늦은 시간까지 박 대표와 통화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전달한다. 전 대변인은 박 대표 취임 직전인 작년 3월 대변인이 돼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동안 ‘대졸 대통령론’ 등 발언으로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올랐으나 박 대표는 전혀 교체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현재 박 대표에게 전 대변인은 같은 여성으로서 단순한 측근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 밖에서는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최필립 전 한나라당 국책자문위원도 박 대표가 자주 대화하는 인물로 꼽힌다. 최 이사장은 외교관 출신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의전, 공보비서관을 지냈으며 스웨덴·리비아 대사 등을 역임했다. 또 동생인 지만씨도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첫댓글 2007년 대한민국대통령 박근혜
나그네 지부장님 좋은 글 고이 간직하고 갑니다. 홧팅!!!
길어서 읽기 한 번 힘들었습니다. 현수막 잘 다셨는지요. 그리고 오늘 고생 많으셨습니다.
총무님.고생많으셨습니다
"영원한 우리들의 대통령 박근혜"
대한민국 만세!, 박근혜 만세!, 박사모 만세!.
고름님 추운날씨 수고몽땅 했심다
나그네님 고맙습니다..제가 선택한 이길이 옳은길임을 재 확인 하는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구미 박사모님들 어제 고생하셨습니다. 화이팅 ^*^
구름 나그네 지부장님!!! 좋은글 올려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림니다...
지부장님 노고가많으심니다 완승의통쾌감 자축하입시다 화이팅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