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 입성한지 1년, 쉐보레 코리아에서 월급을 12번을 받았습니다.
대리운전, 노가다, 그리고 깔깔이 영업까지 해보았지만 살림살이는 여전히
궁핍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올 겨울은 내 생애 순위 안에 들만큼 추울 것
같습니다. 역대 급 복장을 하고 새벽을 깨웠습니다. 비니, 상의 4개, 하의2개,
-
등산양말까지 뒤집어 껴입고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나름 한경대 후문은 안성의 핫플레스입니다. 새벽4시까지는 도시가 지저분한데
30분 상간에 청소차가 자나갔는지 말끔해졌습니다. 장 대박, 야시장, 돈벼락,
오징어 나라, 숯불꼬치, 해미수산 정도가 제 단골집입니다. 최근에는 족발집이
-
가장 잘되는 것 같습니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지만 제 생각에는
마담이 친절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안성은 대체적으로 타지 사람들이 정착하기
쉽지 않은 곳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안성 거시경제는 일용직하는 이방인들이
감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특히 동구권 유럽인들이 유난히 많습니다.
-
그들은 한때 글로벌 넘버 1 이었어요. 아이덴티티와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안성 경제를 살릴 생각이면 안성 사람들은 배타적인 갑 질을 멈추고
자유 시장경제 원리를 편견 없이 적용해야할 것입니다. 이 일은 먼저 성당과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고 봅니다. 가톨릭은 잘 모르겠지만 프로테스탄트교회는
-
70-80년대 수준으로 보수화, 침체 화, 경직화되어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쉐링 시절 10년 넘게 신우 회 티칭을 했는데도 아직까지 단 한 사람의
지인을 만나지 못한 것은 왜 그럴까요? 안성사람들이 자기네 관계자 외에는
이방인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반증으로 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까지.
-
크리스천들은 ‘사귐‘을 내 쪽에서 시도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스왈드
챔버스라는 분이“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뭔가를 하는 것이 더 쉽다“
고 했답니다. 이 말의 뜻은 사귐보다 사역이 편하고, 주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주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 더 쉽다는 뜻입니다. 사용하기보다 사랑하고,
-
사역보다 사귐을 우선시 하는 공동체가 많이 그립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이웃과 사귐이 있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이 로고스(생명의 말씀)라고 합니다. 그는 말씀이실
뿐 아니라, 생명이십니다. 구약에서 로고스는 창조(시33:6), 구원(사55:1),
-
계시(겔33:7)을 대행했습니다. 이제 로고스를 생명과 연결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아니고는 사랑은 없습니다. 그 예수께서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으로
계시다가 성육신 하셨고, 이제 말씀을 남겨두고 승천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역사적 예수와 우리는 참다운 사귐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
저자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생명의 로고스를 전파하는 이유는 ‘사귐’을
위해서입니다(3). 사귐(코이노니아)이란 성도 간에, 혹은 성도와 하나님과 예수
사이에 갖는 교제를 뜻하는데 헌신을 동반한 영적, 물질적 나눔을 말합니다.
사도와 교회 간의 사귐의 기초는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각자가 갖는 하나님과
-
그의 아들 예수와의 사귐이 없으면, 기독교적 교제와 나눔은 무의미합니다.
모이기를 힘써야 하지만 무조건 모이면 계방 모임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고백하는 성도와 성도들의 사귐을 통해 종말론적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지요. 더 간단히 말하면 성경말씀 나눔(쉐어링)이 없는 모임은
-
기쁨도 줄 수 없고 물색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 경험을 지난 청년부
사역20년 동안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내가 진리가운데 있다는 말은 어둠이
아니라 빛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뜻입니다. 아주 중요한 기독론인데요,
하나님의 통치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자칫 삼신
-
할머니를 믿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 됩니다. 21세기 현재 진리 안에
거하기 위하여 내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방식은 ‘말씀을 통한 연합’입니다.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면 내가 예, 주님, 기도모임을 할 때 꼭 말씀을 읽겠나이다.
고 하는 형태입니다. 참다운 사귐은 우리가 진리를 행하며 빛이신 주님 안에 거할
-
때만 가능합니다(개개인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만). 진리를 떠나 어둠 가운데
거한다면 형제간의 사랑도, 하나님과의 사귐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만약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서 어둠가운데 행하는 자는 두 가지 잘못을 하는
것입니다(6). 첫째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둘째 진리를 행하지 않는 잘못이
-
있습니다. 캄캄한 하수구에 성냥불을 켜보시라. 빛과 어둠이 구별 될 것입니다.
빛은 절대로 어둠에 동화되지 않습니다. 내가 빛처럼 살면 어둠이 나를 피하는데
어둠이 나를 향해 도전하는 것은 내가 빛처럼 보이지 않거나 빛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편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두 가지 결과를 갖습니다(7). 첫째 성도 간의 교제를
-
시도합니다. 둘째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케 됩니다. 그 이유는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계시에 늘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폐지와 완성’이라는 주제에서 언급한 것처럼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더 이상 율법이 나를 정죄하는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물론 구원의 서정이라는 패러다임이 걸리긴 하지만, 우리는 매일 구원을 받고 날마다
-
새로워져야 한다는 전제하에 이것은 진리입니다. 진리 안에 거할 때만 우리가 범한
죄가 드러나고 우리가 죄인으로서 예수의 구속이 필요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언제까지 빛과 어둠을 넘나들며 살 것인가?
-
예수, 말씀, 사귐
진리, 빛, 사귐
진리와 사죄
-
빛 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도 빛 가운데 행하겠습니다. 성도 상호간의
교제도 빛 가운데서 행하겠습니다. 나의 죄악과 욕심, 그리고 허물들을
예수님의 손에 올려놓습니다. 다 용서해주십시오. 입으로 하나님을 말하면서
발로 어두운 데를 가지 않겠습니다. 손으로 더러운 것들을 만지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밝은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2018.12.12.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