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지 팬들은 소규모 이기주의 집단], ['나' 와 '너']
서태지의 음악에는 '나' 와 '너' 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1집에서는 '나'와 '그대' 가 많이 나오기에 제외 시킨다.
본격적인 그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2집 부터는 ......
하여가 , 우리들만의 추억 , 죽음의 늪 , 너에게 , 마지막 축제
여기엔 공통되게 '나' 와 '너'로 연관되어 지는 가사가 들어 있다.
'나' 와 '너' 의 관계에선 소규모의 세상이 존재 할뿐 , 큰 규모의 사회라는 것은 우리가 될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너' 와 '나'의 세상은 이기주의와 소규모 이기주의 일어나는 현상을 초래
하기도 한다.
지금 부터는 추측이다. 주관적인 관점이다.
서태지는 1집에서 거리감 있는 '나' 와 '그대'의 표현을 썼다.
허나 그의 큰 성공과 함께 그 자신 스스로가 자신만의 팬층의 확보를 염려했을 것이다.
그 어떤 누구보다 특별한 그 자신은 그의 팬들 또한 특별해야 했다.
2집에서는 그는 '나' 와 '너' 의 관계처럼 직접적인 형태의 가사를 보여준다.
그로 인해 많은 팬들은 좀더 그와 친숙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한 예로 여러 서태지의 곡중 '너에게'가 크게 인기가 있는것도 하나의 이유다.
혹 소규모 이기주의 집단으로 내몰릴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3집으로 인해 사라졌다.
3집은 혼재된 양상을 보여 주지만 분명 3집의 커다란 축을 이루는 '발해를 꿈꾸며' 와 '교실
이데아'는 '우리' 와 '사회' 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것은 직접적인 형태에서 변화되어 하나가 된것이다. '나' 와 '너' 의 관계에서 이미 하나가
된것이다. 내면속의 직접적인 형태는 이기주의 집단의 모습일지 몰라도 비춰지는 모습은 그러
하지가 않다는 얘기 이다. 우리들 스스로는 가슴속에 서태지와 하나됨을 느끼고 있다.
그런 모습이 사회속의 눈에서는 달갑게 보이지 않기에 서태지는 그 모습을 하나로 승화시켰
다.
2집의 일대일 상응관계에서 3집의 하나됨과 동시에 사회라는 곳에 질타를 가하고,
4집에 접어 들면서 그는 복합적인 형태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슬픈 아픔 과 필승 에서의 자신의 관한것과 시대유감에서의 자신을 탄압했던 언론들에 관한것
19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해쓸때 에서의 사회에 관한것 굿바이에서의 '나' 와 '너'
컴백홈에서의 우리들에 관한것 까지 그리고 보너스 트랙
5집의 양상 또한 계속 되는 복합적 형태의 모습이다.
서태지 그 자신은 스스로 자신만의 팬을 만들었다. 서태지와의 직접적인 교섭은 2집에서 만들
어 졌다고 볼수 있다. 분명 그의 맹목적인 사랑은 2집 부터 확연히 나타났다.
그를 설명할 길은 무궁 무진 하다. 어디서 어떤 형태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는지는 알수가 없
다. 나 역시 그의 대한 맹목적인 사랑의 출발점은 2집 부터였다. 처음으로 리어커 앨범이 아닌
정식 앨범을 산것도 2집 이였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에 의해서 그에게 집착하게 되었고, 그런것에 의해 서태지 팬들은 소규모
이기주의 집단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서서히 개인주의로 돌변하고 있다. 그런 세상에 이기주의 집단은 그나마 낳을지도 모
르지........^^;; 다른 팬들은 안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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