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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에 이르도록 연단하라!
참고말씀: 시85:8; 잠26:11; 단6:10; 마25;3,4; 막1:35; 눅2:25; 22:39; 행3:1; 10:2; 22:12; 골2:8,18,19,23; 딤전1:4; 4:3,13,16; 6:3; 딤후3:5; 4:4; 딛1:14; 3:9; 히12:1; 약1:27; 벧후2:22
읽을말씀: 딤전4:7.8
주제말씀: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첫째, 버려야 할 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합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딤전4:7 상)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무엇을 버리라고 했습니까? 망령되고 허탄한 것들입니다. 여기서는 특히 무엇이 언급되었습니까? 신화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딤전4:7 상)
참고로, 여기서 ‘신화’는 고대 그리스 로마와 영지주의 예온(Aeons)에 의한 창조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한 집안 또는 도시의 기원을 어떤 신에게까지 소급시키는 풍조를 가리킵니다.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딤전1:4 상) /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1:14)
당시 이런 신화 외에도 또 어떤 망령되고 허탄한 것들이 있었습니까? (디모데전서와 골로새서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① 끝없는 족보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자신의 족보를 이스라엘의 유명한 조상들에게 억지로 연결시켜 이것을 구원의 조건 인양 내세우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 같이 족보에 집착하는 경향은 유대교뿐만 아니라 헬라나 로마 사회에서도 유행했었다고 전해집니다.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딤전1:4 중) /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은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딛3:9)
② 자의적 금욕주의
금욕주의는 인간이 만든 규정을 하나님의 지지를 얻는 수단으로 강요하는 것으로써, 성도들에게 아무 유익을 끼치지 못하며 오히려 인간을 가식적인 존재로 만들기 때문에 단호히 배격해야 합니다. 당시 디모데가 있는 곳에서는 어떤 금욕주의가 유행했습니까? 영지주의와 유대교의 한 분파인 엣세네파의 극단적인 금욕주의가 혼합된 것으로, 결혼 무용론과 육식과 음주를 철저히 배격하였습니다.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딤전4:3 상) /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골2:23)
③ 철학과 헛된 속임수
이는 영지주의 철학을 의미한 것으로 하나님의 영적 진리를 떠난 세상적인 학문이나 가르침에 불과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④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
천사 숭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사람이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직접 경배드리는 것은 교만하므로 그보다 못한 천사에게 경배해야 하며 그것이 곧 겸손의 행위라고 주장했는데, 이는 인간의 이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생명력 있는 복음과는 상관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골2:18,19)
왜 이런 것들을 과감히 버리라고 했습니까? 백해무익(百害無益)하기 때문이거니와, 자신을 연단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경건에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운동선수가 비싼 명품 코트에, 명품 가방에, 명품 구두를 신고서 제대로 달리거나 훈련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바울은 무엇이라고 권면합니까? 망령되고 허탄한 것들을 과감히 벗어버릴 것입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딤전4:7 상) 즉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지 말고 돌이켜서 진리로 향하며,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4:4) 또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있는 믿음의 경주에 집중하라고 권면합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히12:1 하)
참고로, 당시 고대 그리스의 ‘쥠나시아’(gymnasia)에서는 운동선수들과 다른 사람들이 육체적 훈련을 했는데, 그곳에서 남자들은 훈련을 위해서 발가벗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무엇을 철저하게 버려야 하며, 또한 어떤 것을 과감하게 벗어버려야 합니까?
둘째,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해야 합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4:7 하)
바울은 디모데에게 망령되고 허탄한 것을 버리는 것과 동시에 무엇에 힘쓰라고 했습니까? 경건에 이르도록 자기 자신을 부지런히 연단할 것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4:7 하)
어째서입니까? 다시는 망령되고 허탄한 데로 돌아가지 않기 위함입니다.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시85:8) /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26:11) /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벧후2:22)
여기서 ‘경건’(헬, 유세베이아)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기독교 신앙, 즉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는 성도의 삶입니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딤전6:3)
이 같은 경건에 이르려면 어찌해야 합니까? 매일 같이 훈련해야 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기회를 만나면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참고로, 여기서 ‘연단’은 문자적으로 당시 고대 그리스의 ‘쥠나시아’(gymnasia)에서 운동선수들과 다른 사람들이 받던 육체적 훈련을 말합니다.
매일 같이 훈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체력이나 운동 수준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매일 같이 훈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성장이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하기 쉽습니다. 매일 같이 훈련하되, 무엇을 꼭 붙잡아야 합니까? 특별한 신앙 훈련의 기회입니다. 즉 수련회나 성경공부, 부흥사경회 같은 특별한 기회는 날마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기회가 오면 반드시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경건에 이르는 일이 쉽습니까? 물론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앙 훈련을 생활화하고 습관처럼 할 수만 있다면, 보다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 갔더니.”(눅22:39)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5) /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단6:10 하) /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행3:1)
경건에 이르는 일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입니까? 아닙니다. 오랜 시간의 인내와 훈련을 통해 되어집니다. 즉 체력단련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 것처럼, 신앙훈련도 오랜 시간 동안 인내를 가지고 훈련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딤전4:16 상)
신앙훈련을 육체의 훈련과 굳이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딤전4:8 상) 신앙훈련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와 미래에 신령한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4:8 하)
그러니 이왕에 단련하려면 무엇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합니까? 신앙 훈련입니다.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4:7 하) /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딤전4:13)
경건에는 어떤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까?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능력입니다. 각각 어떻게 구분될 수 있습니까? 경건의 모양이 교회 출석, 봉사, 전도 등과 같은 외형적인 신앙생활이라면, 경건의 능력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내면적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둘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까? 둘 다 갖추되, 특히 경건의 능력을 더 소유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 /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25;3,4)
이로 보건대 참된 경건이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고,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항상 기도하기를 힘쓰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며, 구제를 많이 하는 능력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약1:27) /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10:2) /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행22:12) /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눅2:25)
지금 우리는 경건에 이르도록 힘쓰고 있습니까? 힘쓰고 있으면 어떤 신앙 훈련을 하고 있습니까? 매일 같이 신앙 훈련에 힘쓰되, 특별히 어떤 기회를 붙들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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