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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동료를 오래간만에 만났다.
안부를 묻고는 같이 소주를 마시면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들을 두런두런 나누었다.
동료: 회사 그만두고 나가니까 참 할 게 없더라구… 직장에서 월급만 받고 살다가 갑자기 퇴직을 하니까 할 줄 아는 것도 없고, 어디서 오라는 데도 없구…
나: 그렇지, 개밥에 도토리지
동료: 회사에서야 가만 앉아 있어도 꼬박꼬박 월급은 주지만, 밖에서야 어디 그런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돈 나올 데가 전혀 없는데…
나: 맞아 초상집 개 같은 입장이라고나 할까?
동료: 그러니까 당신도 아무리 열 받는 일이 있어도 절대 때려치우지 말라구… 괜히 객기 부렸다가는 후환이 두려워.
나: 그럼…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도 있잖아?
동료: 쓸데없이 승진 안 된다고 회사 때려치워봤자 나가면 개털인데 뭘… 쫄병으로 있어도 현직으로 버티는 게 낫지.
나: 그렇지, 그러니까 죽은 정승보다 산 개가 낫다고 하지 않던가?
동료: 당장 돈이 없으니까 결혼기념일이나 마누라 생일에 선물도 못 하게 되더라니까…
나: 개 보름 쇠듯 했겠구만
동료: 그러게 말이지. 근데 회사 다닐 때는 친구 놈들도 걸핏하면 전화해서 술 사달라 어쩌구 하더니 막상 그만두고 나가니까 술 한잔 사준다는 놈이 없어
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동료: 근데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도 못하고 그랬던 놈이 있는데, 아 이 자식이 장사해서 돈을 많이 벌었어. 그러니까 다른 친구 놈들도 걔한테는 자주 연락하는 모양이더라구…
나: 그럼 그럼…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라고 하지 않던가?
동료: 아 근데 뭘 하려고 해도 돈, 돈, 그 놈의 돈타령이야.
나: 그렇지. 하다못해 개장수를 할래도 올무는 있어야 될 거 아닌가베
동료: 그래서 퇴직금 받은 걸로 뭘 할까 생각하다가, 장사해 본 경험도 없고 해서, 좀 쉽게 돈 벌어볼 욕심에 프랜차이즈를 했지 뭐야. 근데 이 자식들이 말야 본사에서 인테리어비니 가맹비니 뭐니 잔뜩 바가지 씌우고, 매상에서 또 수수료 떼어가는데 이건 뭐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더라고… 그래서 그것도 때려쳤지
나: 죽 쒀서 개 줬구만
동료: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수수료로 떼어 가는데, 그것도 수수료율은 왜 그리 높은지… 내가 벌어놓은 돈을 눈 번히 뜨고 뺏기는 거 같아서 무지 억울하더군
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기분이었겠군
동료: 가게 오픈만 하면 한달에 오백 이상 번다고 하더니 순 거짓말이었어
나: 오백은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지
동료: 애초에 쉽게 돈 벌어보겠다고 생각한 게 무리였어
나: 우리 같은 월급쟁이 출신들한테 장사는 개 발에 편자지
동료: 그러고 거 프랜차이즈 그거 할 게 못 되더구만
나: 맞어. 개나 소나 심지어 말이나 닭까지 다 하니까…
동료: 그래서 이번에는 월급이 좀 적더라도 재취업을 하려고 했지. 그래서 들어간 게 학습지 회사야. 근데, 이건 월급이 적어도 너무 적고 말이지. 그나마 기본급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내가 뛰어다니는 만큼 수당으로 받는 건데, 차비 빼면 남는 것도 없더라구… 게다가 애새끼들이 말은 또 죽어라고 말을 안 들어요
나: 오죽하면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고 했을까?
동료: 게다가 어떤 애는 아무리 봐도 공부 잘 하기는 글렀는데, 부모들 입장이 어디 그런가? 다 자기 아들이 천재인줄 알지. 되지도 않는 놈 성적 올려달라는데 마치 선생이 잘못 가르쳐서 성적 안 오르는 것처럼 생각하더라구…
나: 흰 개꼬리 굴뚝에 삼 년 묻어놔도 개꼬리는 개꼬리지
동료: 그래서 그것도 때려치고 나니까 할 게 없네. 그래서 몇 달 푹 놀다 보니까돈만 더 까먹었어
나: 쇠똥에 미끄러져 개똥에 코 박은 꼴이군
동료: 여기 저기 알아보고 지금 하는 일이 ‘애견샵’을 오픈한 거야. 이제 한 3년 되어가는데 처음에는 일도 익숙하지 않고 손님도 없어서 고생했지만 이제는 장사하는 요령도 생기고 손님도 좀 늘어서 처음보다는 한결 수월해졌어
나: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당연히 솜씨가 늘었겠지. 그래서 당구 삼년에 오백을 친다고… 아니 당구삼년(堂狗三年)에 폐풍월(吠風月)이라고 하지
동료: 지금 하는 일은 동물병원에서 하는 의료행위를 제외하고 모든 서비스를 하는데, 털 깎아 주는 거가 가장 큰 일이고, 염색도 해 주고, 외국에 나간다던가 집을 비우는 사람들 강아지 맡아주는 애견호텔, 그리고 어린이집처럼 아침에 맡겼다가 저녁에 찾아가는 놀이방 뭐 그런 것도 하고 있지. 돈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닌지 모르겠지만, 개 키우는 것도 돈 많이 들어.
나: 개팔자가 상팔자구만
동료: 위치도 대로변이 아니고 새로 오픈해서 알려지지도 않고 해서 처음에는 공원에 개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한테 일일이 개 간식 나누어주기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스티커도 붙이고 그랬었지
나: 개 싸지르듯 했겠구만
동료: 내가 원래 개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어. 집에 애가 개를 좋아해서 키웠었는데, 방에서 못 나오게 하라고 아주 엄하게 단속을 했어도 출근해서 보면 바지에 반짝반짝 하는 게 전부 개털이고 그래서 아주 싫어했었거든
나: 어디 가나 개털이 문제인가?
동료: 그래도 애견샵을 하다 보니까 지금은 개가 많이 귀여워. 지금 내가 기르는 개만 20마리쯤 되는데 매일 개똥 치워주고 사료 주고 하는 것도 큰 일이더라구…
나: 개만도 못한 입장인 건가?
동료: 근데 골치 아픈 게 한 마리가 짖으면 전부 왈왈거리고 한꺼번에 짖어대는데 동네에서 시끄럽다고 민원 들어올까 걱정이야.
나: 한 마리가 짖으면 다른 개들도 일제히 따라 짖는 걸 보니 우정이 돈독하군. 붕우유신(朋友有信)인가?
동료: 그래도 말이야. 강아지들이 달려들어서 꼬리도 흔들고 손도 핥고 하는 거 보면 이것들이 주인은 알아보는구나 싶더라구…
나: 그럼… 개도 사흘만 밥을 주면 주인을 알아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지
동료: 언젠가 팔려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강아지들하고 지내니까 정도 들고, 어떨 땐 못된 인간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어
나: 그렇지 인간 못된 건 개만도 못하지
동료: 우리 어릴 때야 마을에 어슬렁거리는 똥개밖에 없었지만, 요새 애완견으로 키우는 건 값도 비싸거든
나: 그렇겠지. 기껏해야 개 값이라고 우습게 볼 수 없겠지
동료: 애완견은 우선 혈통이 좋아야 되고, 너무 큰 개는 인기가 없고, 눈이 크고 인중이 짧아야 예뻐 보이거든. 그런 개들이 잘 팔리고 가격도 비싸지
나: 그래 봐야 개같이 생긴 거 아닌가?
동료: 내가 키우는 것 중에 팔뚝만한 요크셔테리어가 있어. 한번은 얘가 새끼를 낳는데 한 마리는 낳고, 또 한 마리는 나오다 걸려서 급하게 제왕절개를 했거든. 근데 에미가 병원에 있는 사이에 새끼가 두 마리 다 죽어버렸어
나: 저런… 개죽음이로군
동료: 근데 에미를 병원에서 찾아 데려다 놨더니 밤새도록 낑낑대면서 자기 새끼를 찾는데 참 짠해서 못 봐 주겠더라고…
나: 그럼… 개도 부모 형제는 알아본다는데… 자기 새끼가 없어졌으니 속이 탓겠지
동료: 근데 개도 키워보니까 말야, 사람만 그런 게 아니고 다 제각각이더라구
나: 개한테도 개성이 있단 얘긴가?
동료: 어떤 놈은 내가 가면 반갑다고 달려드는가 하면 어떤 놈은 사료를 줘도 본체 만체하는 놈도 있고…
나: …
동료: 그래 지금은 어느 정도 기반도 잡히고 그럭저럭 유지는 되니까 이것만 해도 성공이 아닌가 싶어
나: 창업하면 열에 아홉은 망하는 세상이니까, 그 정도면 성공이지
동료: 돈을 벌려면 개를 키워서 팔아야 되니까, 아직은 버는 대로 전부 강아지 사는데 투자하고 있지.
나: …
동료: 근처에 애견샵이 하나 더 있는데, 이것도 경쟁이랍시고 개 털 깎는 것도 그쪽 가게 눈치가 보여서 가격을 못 올리고 있네. 그 가게가 없어지든지 망하든지 하면 내가 장사하기는 더 편하겠지만…
나: 사이가 좋지는 않겠군. 견원지간(犬猿之間)인가?
동료: 근데 이것도 내 장사랍시고 벌려놓으니까 신경 쓸 게 많더라구… 종업원 쓰는 것도 얼마나 신경이 쓰이는지… 처음에 썼던 종업원은 잘 하는 듯 하더니 좀 지나니까 말썽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밖에 나가서 가게 험담을 하질 않나
나: 개 못된 것이 들에 나가 짖는 격이군
동료: 옆 가게 종업원하고 툭하면 싸움을 해대는데 이거 뭐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그러는 거야. 그러니 걔 찍히는 건 둘째치고 우리 가게 평판도 안 좋아지고…
나: 사나운 개 콧등 아물 날 없다더니…
동료: 거기까진 그나마 양반이지. 지가 이뻐하는 개는 사료고 물이고 잘 챙겨주면서 지 맘에 안 드는 개는 나 없을 때 두들겨 패질 않나
나: 복날 개 패듯이?
동료: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근데 내가 자리 비우거나 할 때가 있잖아? 몇 달 지나서 이제 믿고 맡겨도 될만하다 생각했더니 매상을 삥땅을 치질 않나, 나중에는 은행 심부름한다고 통장에 있는 돈까지 들고 튀어버렸어
나: 기르던 개한테 발뒤꿈치를 물렸구만
동료: 그러게… 사람 못된 건 진짜 개만도 못한 거 같애
나: 어허… 오히려 개가 들으면 섭섭하겠는걸. 아무튼 그래서 개는 믿을망정 사람은 못 믿고 산다는 말도 있지 않나
동료: 그러니까… 하긴 그것도 내 복이겠지. 근데 말야. 그… 저기… 뭘… 같… 응…
나: 뭔 소리야? 말을 똑바로 해. 그렇게 개 입에 벼룩 씹듯 웅얼거리지 말구
동료: 아니 뭐 별 거 아니야. 이미 지난 일인데… 참 그건 그렇고… 요새 장사가 좀 되니까 슬슬 건물주 눈치가 보이는 거 있지? 옆에 다른 가게는 장사가 안 되니까 임대료 올려달라는 얘기를 못하는데 우리 가게만 장사 좀 된다고 갑자기 임대료 올려달라 그러면 골치 아픈데…
나: 그러면 되나? 개도 나갈 구멍을 보고 쫓으랬다고… 얘기 들어보니까 아직은 그렇게 떼돈 버는 것도 아니구만
동료: 그러게…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그런 일은 없어야 맞는 거지만… 세상 사람들 맘이 어디 내 맘 같애야 말이지
나: 그래도 그런 개 같은 경우가 있으면 안 되지. 근데 아까 그 종업원은 어떻게 됐어? 붙잡아서 콩밥이라도 멕여야 되는 거 아닌가?
동료: 경찰에 신고를 했지. 근데 처음 채용할 때 갖고 온 주민등록등본에 있는 주소에 가보니까 거기 살지도 않더라구… 글구 경찰에서도 그런 사소한 거는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지도 않고…
나: 검둥개 목욕하듯이 건성건성…?
동료: 그렇지. 결국 나중에 잡기는 잡았어. 근데 알고 보니까 다른 가게에 가서 또 그런 식으로 도둑질하다가 잡혀온 거더라구
나: 하긴… 만주에서 개 타고 말장수… 아니 맘 잡아 개장수라고… 제 버릇 개 주겠어?
동료: 하여튼 나는 이거 잘 하면 괜찮을 거 같애. 업종선택은 잘한 거 같고… 사람이 개 시중드는 거라고 생각하면 좀 이상할 수도 있지만 열심히 해서 돈 번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어?
나: 그렇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되는 거지. 그러고 뭐든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어? 개도 부지런해야 더운 똥을 얻어먹는다고…
동료: 그나저나 내가 그 동안 장사하느라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요새 뉴스 보니까 말도 안 되는 게 많더구만
나: 나라 꼴이 우습게 돼가고 있지. 정말 개가 웃을 노릇이야
동료: 명색이 대통령 측근이라는 사람들이 돈 받아 처먹다가 줄줄이 깜빵에 가질 않나…
나: 원래 그런 놈들인걸. 개가 똥을 마다하겠어?
동료: 그 무슨 인수위인가 뭔가 골때리는 사람들만 모아 놨더구만
나: 개 눈엔 똥만 보이는 법이니까…
동료: 거 뭐 대변인이라는 놈은 아주 막말로 유명하다며…?
나: 개 입에서 개 말 나오지 그럼, 설마 개 입에서 상아 날까?
동료: 어떻게 그렇게 깜도 안 되는 놈들이 감투를 쓰고 앉아 있을까?
나: 개뼉다구에 금멕기한 꼴이지
동료: 그런 놈들 높은 자리에 앉혀 놓으면 돈도 많이 받아 처먹고 그럴 걸?
나: 개가 겨를 먹다가 나중에는 쌀도 먹는다고… 처음에는 좀 조심해도 나중에는 다 받아 처먹겠지
동료: 근데 그렇게 해서 빵에 가고 그래도 아주 뻔뻔한 거 같애
나: 개도 꼬리를 흔들며 제 잘못을 안다는데… 개만도 못한 것들이지
동료: 개중에는 아주 점잖은 무슨 교수 출신 어쩌고 하는 놈들도 거룩한 낯짝을 하고 앉아 있다가 나중에 보니까 돈 받아 먹었다고 하데
나: 얌전한 개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가는 격이지. 뒤로 호박씨 까는데 교수라는 타이틀이 뭐 중요하겠어
동료: 그 와중에 정작 최고책임자라는 놈은 앉아가지고 국민들 수준이 낮아서 그렇다는둥 헛소리나 하고 있더군
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지
동료: 아니 그거 수백 억 수천 억씩 처먹어서 다 뭐 할거야? 자기가 다 쓰지도 못할 건데… 우리 같은 사람들 나눠주면 고맙다는 소리라도 듣지 싶은데…
나: 나 먹기는 싫어도 개 주기는 아깝다고… 그런 놈들이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리가 있나? 애초에 그런 생각이 있었으면 그렇게 많은 돈을 빼먹지도 않았지
동료: 하여튼 그런 것들은 싹 다 잡아다가 족쳐야 돼
나: 그렇지. 미친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라고… 뜨거운 맛을 보여줘야지
동료: 근데 그런 사람들이 이런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나 할까?
나: 어디 개가 짖느냐 하겠지
동료: 그래도 가끔은 아주 멀쩡하게 올바른 소리도 하고 그러더라구… 난 그게 더 신기해
나: 개발에 땀나는 경우하고 비슷한 확률이겠지
동료: 그래. 자네도 회사에서 잘 버티기 바라고… 감기 조심하게. 난 지난 여름에 우연히 감기에 걸려서 아주 죽을 고생을 했어
나: 저런…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지금은 괜찮은가?
동료: 잠깐… 집에서 전화가 왔네?
나: 어서 받아 봐. 근데 개도 먹을 때는 안 때린다는데 하필 이 시간에…
동료: 내가 개만도 못한 모양이지
나: -_-;;
결국 간만의 술자리는 개로 시작해서 개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