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박서보 화백…‘그의 미술관’은 이제 시작
중앙일보
입력 2023.03.15
이은주 기자 구독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JW 메리어트 리조트&스파에 ‘박서보미술관’(가칭)이 건립된다.
14일 착공식에 참석한 박서보 화백은 “박서보미술관이 사람들 마음을 치유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은 서울 연희동 기지재단 마당의 박 화백. [사진 기지재단]
“얼마 전 폐암 3기 판정을 받았지만 지금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처음 2~3일은 (마음이) 흔들렸지만, 지금은 내가 암이라는 생각조차도 다 잊어버렸다.”
지난달 23일 암 투병 사실을 자신의 SNS에 공개했던 ‘한국 단색화 거장’ 박서보(92) 화백이 14일 오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가족들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JW 메리어트 제주 부지에 지어질 ‘박서보미술관’(가칭) 기공식에 참석한 그는 “이곳에 지어질 미술관이 사람들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치유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스페인 출신 건축가 메니스가 설계
‘박서보미술관’ 설계를 맡은 페르난도 메니스.[사진 JW메리어트]
미술관은 이날 착공을 시작으로 대지면적 1만2137㎡(3700평)에 건축면적 2407㎡(730평, 전시관 156.6㎡) 규모의 지상 1층, 지하 2층 건물로 내년 여름 개관할 예정이다. 박 화백의 이름을 딴 첫 미술관이다. 설계는 스페인 출신 건축가 페르난도 메니스(72)가 맡았다.
박 화백은 본래 자신의 고향인 경북 예천에 미술관 건립을 강력하게 희망해왔으나, 이 계획은 무산된 것으로 이날 확인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휠체어를 타고 간담회에 참석한 박 화백은 먼저 암 진단을 받은 데 대해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어쩌자고 나한테 이런 형벌을 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하지만 이 암을 친구로 모시자 함께 살자 생각했다. 새로운 작업을 위해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방사선 치료를 하면 일을 못한다. 옛날 신문들 모아서 한지로 배접한 뒤 신문지 위에 연필과 오일컬러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왜 제주인가.
“지난해 호텔 측이 먼저 제안해 추진됐다. 제주도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이어서 무척 기뻤다. 처음엔 한국 중견 건축가가 설계를 진행했으나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중단된 뒤 메니스를 만났다.
예천에 짓기로 한 미술관은 어떻게 되나.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에게 꼭 설계를 맡겨 완성시키고 싶었지만 결국 무산됐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공 미술관 설계를 수의계약으로 추진하는 것은 안 되더라. 노인 인구가 많은 인구 5만 명 규모의 지방 도시에 큰 예산 들여 미술관 짓는 일이 부담이라는 지적도 많았다.”
2024년 준공될 ‘박서보미술관’ 예상 이미지.
이로써 “예천시에 시대별 내 작품 변화를 보여줄 대표작 120점을 기증한다”던 박 화백의 계획은 없던 일이 됐다.
이날 간담회에는 건축가 메니스도 참석했다.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의 가장 큰 섬인 테네리페 출신인 그는 “제 고향 테리리페와 제주도는 쌍둥이처럼 닮은 점이 많다”며 “제주 자연의 빛과 그림자, 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건축가 메니스도 참석했다.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의 가장 큰 섬인 테네리페 출신인 그는 “제 고향 테리리페와 제주도는 쌍둥이처럼 닮은 점이 많다”며 “제주 자연의 빛과 그림자, 돌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지하 2층, 지상 1층의 미술관은 건물의 85%가 지하에 위치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메니스는 “자연이 주인인 이 환경에서 많은 공간이 지하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화백은 경북 예천 출신으로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했으며, 모교의 교수와 학장을 역임했다. 1967년 연필로 끊임없이 선을 긋는 묘법(妙法) 작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그의 묘법 작업은 한지를 풀어 물감에 갠 것을 화폭에 올린 뒤 도구를 이용해 긋거나 밀어내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유채색 작업으로 또 한 번 변화했다.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가리켜 그는 “수신의 도구”라고 말해왔다.
박 화백에게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 건립은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그가 몹시 중요하게 여겨온 프로젝트다. 2년 전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 “내 모든 것을 사회에 환원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왔다. 많은 사람이 그림을 소유하지 않고도 예술을 맘껏 향유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 이번에 착공된 미술관은 ‘박서보미술관’의 도입부라고 하는 편이 맞을 듯하다. 이날 박 화백은 “여기에 지어질 미술관은 크지 않다. 어쨌든 세상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미술관을 지어 놓고 떠날 수 있게 됐다”면서도 “예천에 지으려던 미술관과 이것은 별개의 프로젝트”라고 선을 그었다. 박 화백 작품을 기증 받아 소장하고 관람객을 만날 또 하나의 ‘박서보미술관’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박서보미술관 플랜’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제주=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
koob****2023.03.15 01:04
살아생전에 스스로 자신의 미술관을?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무덤을 만든 고대 이집트 왕들의 피라미드도 아니고...그림 그리는 작업이 박화백 자신에겐 수신의 도구는 될지는 몰라도 관람객들의 응어리를 풀어줄 치유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시는 것은 약간 오버하시는듯....(그의 삶을 폄하할 뜻은 전혀 없을 뿐만아니라 난 그의 그림을 매우 좋아한다. 다만 생전에 미술관을 짓내마내 하는 태도가 영 개운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