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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를 떠난 하루 – 속리산(경업대,신선대,문장대,관음봉,묘봉)
1. 문장대 내려 관음봉 가면서 바라본 관음봉
그렇다. 산은 속세와 인연이 닿지 않는 곳에 위치하는 것이 아니다. 산은 인간에게 겁을 주듯이 또는 잘난 듯이 거기
그저 뽐내어 서있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깨치게 해주고 싶어, 비바람을 노 맞으며 추위와 더
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철따라 옷을 바꾸어 입어가면서 거기 인간 앞에 늘 그 모습을 드러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속리산(1,057m)은 산중에도 확실히 그만한 산이다. 그것은 산자락에서 쳐다보아, 봉우리마다가 둘러가며 기암괴석
을 머리 위에 올려놓고 있는 그 빼어난 아름다움에서 만이 아니다. 그 놓임새부터 유달라 그 산을 헤쳐드는 이에게
뜻하지 않는 깨침을 불러일으키게 해준다. 누구다 알다시피 백두대간의 큰 줄기가 소백산을 기점으로 하여 한반도
중심부를 대각선으로 질러나가면서 물줄기를 남서북의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소백산맥이지만,
그 소백산맥이 문경새재 언저리에서부터 사행선(蛇行線)으로 구불거리며 뻗어나가다가, 그 용트림으로 가장 크게
벌여놓고 있는 곳이 여기 속리산에 이르러서다.
―― 김장호(金長好), 『韓國名山記』 ‘속리산(俗離山)’(평화출판사, 1995)
▶ 산행일시 : 2026년 10월 4일(일), 맑음
▶ 산행인원 : 4명(캐이, 광인, 곰발톱, 악수)
▶ 산행코스 : 속리산파출소,법주사 입구,세심정,비로산장,금강골 쉼터,경업대,속리주릉,신선대,문장대,
981m봉,940m봉,관음봉,북가치,묘봉,북가치,여적암,속리산파출소
▶ 산행거리 : 도상 18.1km
▶ 산행시간 : 9시간 8분(07 : 45 ~ 16 : 53)
▶ 갈 때 : 수서역에서 KTX 열차 타고 대전역으로 가서, 곰발톱 님 승용차로 법주사 입구 상가지역 속리산파출
소 주차장으로 감
▶ 올 때 : 속리산파출소 주차장에서 곰발톱 님 승용차로 대전역으로 가서 저녁 먹고, KTX 열차 타고 수서역으
로 옴
▶ 구간별 시간
05 : 30 – 수서역
06 : 28 – 대전역
07 : 45 – 속리산파출소, 산행준비, 산행시작
08 : 04 – 법주사 입구
08 : 49 – 세심정
08 : 54 – Y자 갈림길, 왼쪽은 경업대 1.9km, 오른쪽은 천왕봉 3.2km
09 : 01 – 비로산장
09 : 30 – 금강골 쉼터, 휴식( ~ 09 : 45)
10 : 11 – 경업대(慶業臺)
10 : 30 – 속리주릉
10 : 53 – 신선대, 신선대휴게소
11 : 38 – 문장대(文藏臺, 1,031.7m)
11 : 53 – 981m봉
12 : 10 – 940m봉, 점심( ~ 12 : 30)
13 : 30 – 관음봉(觀音峯, 983m)
14 : 50 - ╋자 갈림길 안부, 북가치, 휴식( ~ 14 : 55)
15 : 11 – 묘봉(妙峰, 874.6m), 휴식( ~ 15 : 18)
15 : 31 – 북가치, 여적암 2.5km
16 : 12 – 여적암(汝寂庵)
16 : 53 – 속리산파출소, 산행종료
18 : 00 – 대전역, 저녁, 수서역 KTX 열차(18 : 59)
20 : 05 – 수서역
2. 산행지도
산행그래프
모처럼 그간 적조했던 악우들과 함께 속리산을 간다. 대전에 사는 곰발톱 님과도 함께 간다고 하여 수일 전부터
설렜다. 곰발톱 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02년 9월에 애기암봉과 장성봉, 막장봉, 남군자산을 산행할 때였다.
24년 전 일이다. 그 이후로는 뜸하게 만났다. 물론 산에서다. 그 세월동안 나만 늙은 것 같다. 몇 해 전부터 곰발톱
님은 히말라야와 중앙아시아 등지의 고산 트레킹에 재미가 들어 수시로 해외를 들락날락한다. 그 얘기가 무척 듣고
싶기도 했다.
나는 수서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간다. 광인 님과 캐이 님은 서울역에서 간다. 내가 4분 먼저 도착한다.
새벽 첫 열차다. 승객이 한산하다. 한 사람이 두 개 좌석을 차지한다. 대전까지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여명이
과연 어떠할지 차창 밖 동녘 하늘을 바라보느라 졸 틈이 없다. 06시 10분께 오송을 지날 무렵 여명은 예상대로 장려
하였다. 얼른 카메라를 들었지만 초점을 맞추려다 보면 그새 산이 가리기에 눈에만 담았다.
대전역에 도착하자 곰발톱 님이 마중 나왔다. 진한 악수와 포옹하고서 동광장에 주차한 곰발톱 님 승용차에 동승한
다. 곧바로 속리산 들머리인 법주사 쪽을 향한다. 국도만 달린다. 저간의 서로의 묵은 회포를 푸는 정담을 나누느라
속리산 법주사 입구 상가지역이 금방이다. 속리산파출소 주차장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상가지역 지나고
법주사 가는 숲길 대로다. 나는 이 길 걷기를 무척 좋아한다. 하늘 가린 노거수들이 즐비해서다. ‘湖西第一伽藍’이라
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을 지난다. 호서의 호는 금강 또는 제천 의림지를 말한다고 한다.
법주사 입구 너른 화단에는 상사화(꽃무릇, 석산) 꽃이 이미 지고 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왜 사찰에는 경내에 상사화
를 많이 심을까? (꽃과 잎이) 서로 그리워한다는 상사화(相思花)가 출가한 스님으로서는 꺼릴 법도 한데 말이다.
원래는 상사화 알뿌리의 독성을 이용하여 탱화나 단청 등을 그리는 데 방부제나 살균제로 활용하였다고 한다. 그런
데 과연 그렇게 활용하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도리어 스님들이 상사화를 보며 남녀 간의 사랑과 희노애락 같은 세속
의 번뇌가 결국 뜬구름처럼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고 불도와 수행에 더욱 정진하는 계기로 삼는다고 한다.
법주사는 들르지 않는다. 대로의 숲길은 계속 이어진다. 법주사 궁현당(窮玄堂, 현묘한 깊은 진리를 끝까지 궁구하
는 집)을 지난다. 궁현당 담벼락 너머로 주련이 보인다. 그 주련의 내용을 알아보니 일관된 게송(偈頌)이 아니라 여
러 게송에서 골라 모았다. 가운데 주련은 대승경전인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 권 제17 아귀품(餓鬼品)에 수록
된 유서 깊은 불교 수행 경구라고 하는데 앞 2개 구만 골랐다. 우리가 흔히 쓰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 4구에서 왔
다고 한다.
汝得人身不修道 그대가 사람의 몸을 얻었음에도 도를 닦지 않는다면,
如入寶山空手來 마치 보배 가득한 산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오는 것과 같도다.
憂患苦痛欲何爲 스스로 우환과 고통만을 취해 장차 무엇을 하려 하는가?
如今自作還自受 지금 네가 지은 업에 따라 결국 네가 그대로 돌려받을 뿐이니라.
3. 이른 아침 법주사 쪽 가는 숲길
4. 개울 건너가 비로산장
5. 멀리 가운데 왼쪽이 상주 노음산(?), 그 오른쪽은 갑장산
6. 경업대에서 바라본 속리주릉, 가운데는 입석대
7. 앞 능선은 한남금북정맥, 그 뒤는 구병산 연릉, 멀리 가운데는 노음산(?)
8. 중간 왼쪽은 남산, 멀리 왼쪽은 갑장산(?)
9. 신선대휴게소에서 바라본 칠형제봉 일부
10. 멀리 가운데는 노음산
11. 건너편 능선 가운데는 시루봉, 그 뒤 오른쪽은 연엽산
12. 멀리 가운데는 조령산, 그 오른쪽 앞 흰 암벽은 희양산
캐이 님은 한 달째 심한 감기로 목소리가 변했다. 미성이다. 몸 컨디션이 엉망인데도 곰발톱 님과 한 달 전에 약속했
던 터라 나왔다고 한다. 세심정 가기 전 쉼터에서 간단히 아침 요기한다. 모두 아침을 거르고 왔다. 세심정을 지나면
아스팔트 포장한 대로는 끝나고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오늘 산행은 곰발톱 님이 추천한 경업대, 신선대, 문장대,
관음봉, 북가치, 묘봉, 북가치 코스를 간다. Y자 갈림길. 오른쪽은 상환암을 지난 천왕봉으로 가고, 왼쪽은 경업대
지나 신선대로 간다. 왼쪽으로 간다. 나로서는 처음 가는 길이다.
처음 가는 길은 항상 가슴이 설렌다. 걸음걸음 아껴 걷기 마련이다. 비로산장을 지난다. 비로산장은 등로를 약간
벗어나서 개울 건너에 있다. 산장이 산정 또는 산정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산자락에 있어 산장의 멋(오오시마
료오끼치가 말한 ‘산장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아름답고 공기가 싱그러운 여름의 저녁. 거기서 우리가 꾸는 꿈은 언제
나 즐거우리라’)이 있을는지 궁금하다.
잔잔한 오르막을 꾸준히 오르고, 여간해서는 흔들릴 것 같지 않은 흔들바위를 지나고 금강골 쉼터다. 배낭 벗어놓고
오래 휴식한다. 입산주 탁주 마신다. 아무렴 탁주는 독작보다는 대작에서 더욱 맛이 난다. 그늘에 들면 선선하고,
햇볕에 들면 덥다. 아직은 냉탁주와 얼음물이 제격이다. 히말라야 고소에서는 아예 찬물에 손을 씻거나 얼굴을 씻지
않는다고 한다. 체온이 조금이라도 빼앗기기 때문에 아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곳은 대기가 맑고 땀을 흘릴 일
이 없으니 굳이 얼굴을 씻을 일이 없기도 하고, 체온을 빼앗기게 되면 두통, 현기증 등 고소증세가 온다고 한다.
금강골 쉼터를 지나면 등로는 여태와는 다르게 가팔라진다. 돌길에 코 박는 오르막이다. 등로 주변은 쓸쓸하다.
종종 바위틈에 보이는 구절초는 시들었고 풀숲에는 꽃향유가 듬성듬성하다. 돌계단을 연속해서 오른다. 높다란
암벽 밑을 돌아 숨 가쁘게 오르면 경업대 너른 반석지대다. 색 바랜 안내판의 내용이다. “이곳은 조선 인조
(1594~1646) 때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독보대사(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그의
이름을 경업대라 불리게 되었다.”
경업대는 빼어난 경점이다. 바로 곁이 속리주릉으로 임경업 장군이 7년 수도 끝에 세웠다는 입석대(1,016m)가
단연 돋보이고, 발아래는 천산만학이 꿈틀거린다. 통쾌하다. 아스라이 멀리, 유난히 우뚝하게 보이는 산은 상주
노음산이 아닐까?
경업대에서 속리주릉 신선대까지는 0.6km이다. 그중 0.4km는 되게 가파른 오르막이다. 계단마다 경점인 긴 테크
계단도 오른다. 벌써 하산하는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새벽인 5시에 올랐다고 한다.
이윽고 ┳자 갈림길인 속리주릉에 오르고 왼쪽으로 더 가면 신선대(1,029m) 지나 신선대휴게소다. 신선대는 들를
수나 있는지 모르게 지나쳤다. 신선대휴게소 암반에 올라 칠형제봉 일람하고 문장대를 향한다. 돌계단 뚝뚝 떨어져
내렸다가 나지막한 봉봉을 넘는다. 칠형제봉을 거느린 청법대(1,021m)도 들르지 않고, 그다음 문수봉(1,030m)은
오른쪽 산죽 숲길로 돌아 넘는다. 이어 법주사 쪽과 화북 오송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고 너른 쉼터이다.
13. 앞 오른쪽은 백두대간 청화산
14. 중간 오른쪽은 남산, 그 뒤 능선은 한남금북정맥
15. 중간이 구병산 연봉
16. (문장대에서 내려다본) 중간은 처마바위와 칠형제봉 일부, 건너편 가운데는 청화산
17. 문장대 북쪽 지능선
18. 앞 왼쪽은 백악산, 멀리 가운데는 대야산
19. 멀리 가운데는 조령산
20. 문장대에서 바라본 관음봉
22. 앞은 수정봉 능선
쉼터는 장터를 방불케 하는 대만원이다. 문장대 또한 내려앉을 것처럼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찼다. 일단 쉼터 옆
암봉인 1,016m봉을 올라 사방을 조망하노라니 그새 문장대가 한산하다. 어서 가보자 하고 완만한 돌길에 이어 가
파른 데크계단을 오른다. 그래도 사람들로 줄을 잇는다. 문장대. 사방 조망이 시원하다. 아마 속리산 주봉인 천왕봉
보다 문장대를 찾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접근하기 쉽고 여기에 오르면 사방 조망이 거침없고, 특히 서쪽
건너편에 듬직하게 좌정한 관음봉의 모습은 (나에게는) 속리산 제1경이다.
나는 문장대를 저 관음봉을 보기 위해서 오른다. 겨울에 눈 쌓인 모습도 보고 싶다. 문장대는 봉우리 정상 부근이 늘
안개구름에 싸여 있다고 하여 운장대(雲藏臺)라 불렸으나, 조선 세조가 피부병 치료와 요양을 위해 속리산을 찾은
일화에서 비롯된다. 세조가 꿈속에서 “인근의 신령스러운 봉우리에 올라 기도를 올리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올랐다고 한다. 봉우리 정상에 이르자 넓은 바위 위에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는데, 삼강오륜(三綱
五倫)을 명시한 책이었다고 한다. 세조가 그 자리에서 하루 종일 글을 읽고 감동하였다 하여 ‘글을 감추어 둔 봉우
리’라는 뜻의 문장대(文藏臺)로 고쳐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 속리산 이름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신라 말 진표(眞表) 율사는 법주사를 중창하기 위해 보은 땅으
로 들어섰다. 밭을 갈던 소들이 대사를 알아보고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농부들이 “짐승들이 저럴진대 하물
며 우리야”하며 대사를 알아보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그 길로 낫과 괭이를 버리고 속세(俗)를 떠나니(離)
속리산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월간산, 2018.12.18.)
문장대 아래 쉼터로 내려와서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휴식하고 있어 혼잣말로 급한 용변 좀 보자 하고 목책을 넘는
다. 길고 가파른 돌계단 내리막이다. 한참을 주춤주춤 내린다. 하긴 관음봉에서 문장대를 오를 때에도 녹아난 구간
이었다. 암릉에 들어선다. 곰발톱 님이 선등이다. 짜릿한 손맛 본다. 어려운 데는 고정밧줄이 달려 있다. 밧줄 중간
에 용수철을 감아놓아 붙잡기가 까다롭다. 용수철이 늘어졌다가 오므라들기를 반복하니 용수철 사이에 손가락이
아프게 낀다. 왜 용수철을 감아놓았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밧줄이 암벽과 잦은 밀착으로 닳아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981m봉을 재미나게 직등하고, 그 다음 950m봉은 왼쪽 테라스로 돌아 넘으며 조망 좋은 암반에 둘러앉아 점심밥
먹는다. 이 다음 940m봉도 돌아 넘는데 왼쪽 사면을 깊이 내렸다가 기어오른다. 걸음걸음 전후좌우가 눈부신 가경
이다. 점점 더 위압적인 관음봉의 암벽에 다가간다. 여럿이 가는 것이 큰 용기다.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 길을
지났는데 오늘은 낯설고 까다롭다. 이 길이었던가 고개 갸웃한다. 해가 바뀜에 따라 느는 게 겁이다.
관음봉 막판 슬랩과 맞닥뜨린다. 관음봉 정상은 암벽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곰발톱 님이 선등하여 슬랩 주위와
그 너머를 척후한다. 그런 다음에 내가 오른다. 사족보행이다. 관음봉 정상 표지석 아래 암반에 선다. 굳이 몇 미터
가파른 슬랩 위인 정상은 오르지 않는다. 거기서 보는 경치는 이 암반에서도 볼 수 있다. 장관이고 대관이고 특관이
다. 이제는 묘봉이다. 눈으로는 가까워도 발로는 멀다. 고정밧줄 붙잡고 슬랩 내리고 사면을 돌고 돌아 내린다. 당분
간은 숲속 길이다.
묘봉 가는 길. 어려운 데는 없다. 그래서다. 오지를 만들어 어렵게 간다. 우리가 가는 데가 곧 길이다 하며 간다.
속사치 지나고 봉봉을 넘을 때 직등하거나 등로를 좀 더 자세히 살폈더라면 수월했을 것을 경솔했다. 왼쪽 사면이
질러가려니 하고 흐릿한 수적을 쫓았다. 암벽에 막히면 더 아래로 내려가고, 그러다 가파른 사면을 트래버스 할 때
는 오금이 저렸다. 안부는 꼬박 오른다. 저 봉우리를 넘으면 바닥 친 안부인 북가치일까? 세 번이나 오판한다.
23. 관음봉 가는 길에 뒤돌아본 문장대
25. 앞 능선은 수정암 능선, 그 뒤 골짜기 오른쪽에 여적암이 있다
26. 관음암
27. 가운데 골짜기 중간이 법주사
28. 구병산 연봉
29. 멀리 가운데가 문장대
30. 왼쪽은 백악산, 오른쪽은 청화산
31. 가운데는 왼쪽부터 대왕봉,주추리봉, 백악산
32. 대왕봉(?)
북가치(754m). 금줄을 넘은 ╋자 갈림길 안부다. 묘봉은 직진 0.6km이고, 왼쪽은 여적암 2.5km, 오른쪽은 미타사
2.0km이다. 북가치는 ‘북쪽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가치’는 고개를 뜻하는 ‘티 또는 치(峙)에서 유래하였다.
방금 지나온 속사치(束沙峙)는 ‘거친 모래와 바위들이 있는 고개’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적암 쪽으로 갈 것이므로
북가치에 배낭을 벗어 놓고 묘봉을 오른다. 활목고개에서 왔을 일단의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미타사로 하산
한다.
잘난 등로다. 허벅지에 쥐나게 잰걸음 하여 오른다. 가파른 데는 데크계단이 있다. 단숨에 올라 기묘하게 생긴 묘봉
(妙峰)이다. 지도상의 묘봉은 0.2km를 더 가야 하는데 이 암봉이 표지석을 내세우고 정상 노릇한다. 너른 암반은
첩첩 산을 눈 아래 둔 일대 경점이다.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이 가깝고 그 너머 멀리 조령산까지 보인다. 북가치로
되돌아간다. 금방이다. 여적암 가는 길도 잘났다. 사면 길게 내려 골짜기에 다다르고 마른 계곡을 건너갔다 건너오
기를 반복한다.
산중 기화이초인 한 무리 흰투구꽃을 본다. 반갑다. 허리 굽혀 눈맞춤 한다. 산모퉁이 돌고 돌아 콘크리트 포장한
임도와 만난다. 여적암(汝寂庵)은 왼쪽 임도를 따라 0.3km 정도 올라가야 한다. 배낭 벗어놓고 들른다. 암자 아래
주차장에 성견 두 마리가 염불하듯 짖어댄다. 암자는 조용하다. 대웅전 풍경소리가 산객을 반긴다. 여적암은 조선
숙종 20년(1694)에 여적당(汝寂堂) 경수(景修)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빈 눈으로 가느니 대웅전 주련을 담아
간다. 불교의 의식집인 『석문의범(釋門儀範)』 중 ‘제불통청(諸佛通請)’의 ‘향화청(香華請)’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한다.
佛身普遍十方中 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에 두루 가득하시니
三世如來一體同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한 몸처럼 다 같으시네
廣大願雲恒不盡 중생을 구제하려는 넓고 큰 원력의 구름은 항상 다함이 없고
汪洋覺海渺難窮 한없이 넓고 넓은 깨달음의 바다는 아득하여 끝이 없어라
여적당에서 잠시 내리면 농로인 아스팔트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속리산파출소까지는 약 3km이다. 환속한다. 민판
동 지나 수정동이다. 속리교로 달천을 건너면 속리산파출소다. 세면탁족할 데도 없고 그럴 틈도 없다. 속리산주차장
에서 청주 가는 버스는 진작 끊겼다. 그냥 웃옷 갈아입고 곰발톱 님 승용차에 올라 대전역을 향한다. 차안에서 서울
가는 열차편을 알아본다. 산행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상하지 못해 미리 서울 가는 열차표를 예매하지 않았다.
대전에서 서울 또는 수서 가는 KTX 열차표는 완전 매진이다. 입석 좌석도 매진이다. 그래도 어쩌다 나오는 표를
잡으려고 코레일 사이트 ‘새로 고침’을 반복하며 들여다본다. 표가 나왔다 싶어 얼른 잡았으나 결제하려고 하면
누군가 내 먼저 차지했다. 그러기 여러 번이다. 무주물 선점하는 게임이다. 요행히 세 사람 모두 열차시간을 달리했
지만 열차표를 잡았다. 나는 수서역으로 가는 열차다.
대전역에 도착하니 광인 님과 나는 50분 남짓 여유가 있고, 캐이 님은 빠듯하다. 곰발톱 님과는 저녁을 함께 할 시간
이 없어 아쉽지만 그만 작별인사를 한다. 광인 님과 나는 역사 2층 음식점에 들어 짬뽕과 짜장면을 주문한다. 시원
한 소맥을 잔 가득하게 부어 하산주 나눈다.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으면 경험이라고 한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
인 마야 안젤루(Maya Angelou, 1928~2014)의 말이다. 오늘 산행도 추억이 될 것이다.
33. 멀리 가운데는 대야산 중대봉과 상대봉
34. 왼쪽부터 대왕봉, 주추리봉, 백악산
35. 왼쪽은 관음봉, 맨 오른쪽은 문장대
36. 왼쪽은 상학봉, 오른쪽은 토끼봉
37. 속리주릉, 맨 오른쪽은 천왕봉
38. 묘봉 정상
39. 왼쪽이 지도상의 묘봉
40. 북가치에서 여적암 가는 길
42. 투구꽃

첫댓글 좋았으면 추억, 나빴으면 경험. ㅎㅎ
속리산 하면 아련한 추억속의 경험이 떠오르네요. 어느 해 겨울날 문장대에서 고생하며 설산을 즐기고 나서 지능선을 탈 때, 앞서간 선배들이 암봉에 앉아 막걸리 잔 높이들고 빨리 오지 않으면 잔 없다는 말에 달려가다가 암봉앞에 제대로 멈추지 못하고 암봉틈에 한 발이 끼어버렸었지요. 그때 다친 무릎이 요즈음도 날씨 험해지면 신경쓰게 하니 겨울 속리산의 추억이자 경험입니다. ㅋㅋ
속리산에 대해 추억과 경험이 공존하시는군요.
선배님들이 짓궂네요.
저 역시 산애서 크고 작은 사고를 숱하게 당하지만
그때마다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속리산입니다.
훤한 바위산 조망에 눈이 참 즐겁네요....
오래 전에 법주사 식당에서 곰발톱과 버섯 전골 먹다가 버스 시간이 없어 반쯤 남기고 온 기억이 납니다.^^
반가운 악우들과 함께 산행하니 내내 즐거웠습니다.
이런 날이 좀 더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