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증거된 아래 본문의 말씀은 주로 축도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어 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상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함께 살아서도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인 것일 뿐 아니라 죽어서도, 영원토록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모든 인생들에 있어..
그러한 심판들을 당연히 그대로 행하셔야 하고 사실 그것으로 끝내셔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계획, 준비하시며, 게다가 아무 공로도 없이 다만 믿음으로 값없이, 더군다나 오히려 독생자 예수님의 목숨값에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전부 다 희생케 하심과 함께 대신, 대속해서 가능할 수 있게 하신 것이기에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역사들, 곧 그 위치와 역할에 따른 역사들에 있어서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그와 같은 특별 은총이든지, 또는 여러 모양의 일반 은총이든지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역사들에 있어서,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에 있어 단 하나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결코 별개일 수가 없고 사실 그 십자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에..
다시 말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도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깨어지고 단절되며 죄악과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완전히 직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로 인해 전적으로 가능한 것이기에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을 대신 다 치르신 구주 예수님의 역사들, 곧 그 위치와 역할에 따른 역사들은 한 단어로 표현할 때 은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사랑과 그를 위해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목숨값으로 모든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신 구주 예수님의 은혜에 있어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인 성령님께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그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것이기에..
그러한 성령님으로 인한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는 실제와 경험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은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교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 실상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적인 사랑, 또한 구주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 게다가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의 실제적인 교통이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고, 언제나 함께 가 아닐 수 없는 것이며, 사실상 그렇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하늘의 힘과 역사도 성립 자체가 불가인 것인데..
곧 단순하게 예를 들면 기도를 한 번 하더라도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야 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과 통치와 섭리에 속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뿐만 아니라 반드시 구원자이시자 중보자이신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 진정 믿음과 함께 한 기도 응답이라는 값없는 은혜에 있어서도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이 어떤 식으로든 별개일 수가 없는 것이며, 게다가 그렇게 실제로 기도를 할 수 있는 믿음이 되는 것과 같은 하늘의 힘은 물론 그러한 기도에 있어 응답을 정말 누리고 경험함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가 없이는 누리고 성취됨이 불가능인 것이며..
더 나아가 잘 통찰해 보고 따지고 보면 무에서 유로의 천지창조를 위시해서 구약과 신약 성경에서의 모든 하늘의 힘과 응답과 역사들에 있어서도, 특히 이신칭의와 같이 믿음으로 실제로 구원에 참예케 되고 하나님의 것으로,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남에 있어서도, 더 나아가 이 땅에서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들을 생생하게 누리는 일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세상 끝 날에 정말 신령한 몸으로 부활케 됨에 있어서도 모두 다 마찬가지의 이치와 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마다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중심과 근본과 실체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사실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그 삼위일체라는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무엇보다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에 본질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모든 세계, 구원의 세계, 복음의 세계에 있어서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모든 근간이자 실상이며 전부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특히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의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실제와 경험들에 있어서야 말로,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어느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인가가 결코 별개일 수가 없는 것이고 사실은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린도 후서13: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월 18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