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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환비(燕瘦環肥)
조비연은 말랐어도 미인이고, 양귀비는 살쪘어도 미인이라는 뜻으로 미인은 마른 체형만 아니라는 말이다.
燕 : 제비 연(灬/12)
瘦 : 파리할 수(疒/10)
環 : 고리 환(王/13)
肥 : 살질 비(月/4)
중국의 4대 미인은 누구나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즉, 고래로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서시(西施), 왕소군(王昭君), 초선(貂嬋), 양귀비(楊貴妃)를 꼽아왔다.
이들을 다음과 수식하고 있다. 침어(沈魚: 서시), 낙안(落雁: 왕소군), 폐월(閉月: 초선), 수화(羞花: 양귀비)등이다.
그런데 4대 미인에서는 빠졌지만 그 다음으로 치는 미인이 조비연(趙飛燕)으로 작장중무(作掌中舞)라 수식하고 있다. ‘하도 가벼워서 손바닥 위(안)에서 춤을 춘다’ 는 뜻인데 가볍고, 말랐다는 말이다.
이름 ‘飛燕’도 ‘날으는 제비’라는 뜻이니 이 역시 조비연이 가볍고, 말랐다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 사람들에게 조비연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왜 일까?
교훈적인 것은 중국의 미인들이 멀기는 2000년을 넘게, 짧게는 1300년이 넘게 중국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오는 것은 예쁜 자태에 못지않게 마음씨가 착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조 때 미녀로 알려진 장녹수나 장희빈처럼 권력의 측근에 있으면서 총애를 빌미로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하지 않고, 모두 다 나라(고국)를 위해 또는 자기를 키워주고 아껴준 주인에게 은혜에 보답하였다.
즉, 서시(西施)가 고국 월(越)나라의 구천(句踐)을 위해서 헌신했고, 왕소군(王昭君),이 고국 한(漢)나라를 위해 기꺼이 흉노에게 시집을 갔고, 초선(貂蟬)이 황제를 넘보는 동탁(董卓)을 제거하기 위하여 여포와 이간시키는 왕윤의 연환계(連環計)에 스스로 뛰어들어 훌륭히 해냈고, 양귀비(楊貴妃) 또한 당(唐)현종과 순수한 사랑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착한 마음씨가 그들의 아름다움을 더욱 북돋아 주고 있어 오늘날까지도 중국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비연은 한나라 성제(成帝)의 황후로 권력을 농락했다.
조비연의 이야기가 길지만 전문을 옮긴다.
조비연(趙飛燕), 한나라 성제(成帝)의 황후다. 춤과 노래를 잘했고 자태가 아름다웠다고 한다. 날아가는 제비처럼 가벼워 손바닥 위에서 춤을 췄다고 해서 ‘나는 제비’라는 뜻인 ‘비연(飛燕)’으로 불렸다.
성제 때 입궁해 첩(婕)이 됐다가 나중에 황후가 된다. 평제(平帝) 즉위 후 서인(庶人)으로 전락하고 전전하다가 자살했다. 고대 중국 한나라를 대표하는 미인으로 일컬어지지만 악행과 문란한 행위로 오점을 남겼다.
조비연은 한나라 성제 유오(劉鷔)의 두 번째 황후다. 요사스러울 정도로 아름다웠고 쌀쌀하면서도 고왔다고 한다. 춤 솜씨가 절묘해 누이동생 조합덕(趙合德)과 함께 소의(昭儀)에 봉해졌고 10년 동안 성제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그렇게 많은 궁녀 중에서 조비연은 어떻게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 할 수 있었을까?
먼저 조비연의 가족부터 이야기해 보자. 조비연의 아버지 조임(趙臨)은 한나라 궁정의 가노로 매우 궁핍했다. 조비연이 태어나자 부양할 수 없어 아버지는 황야에 버려 버렸다.
밤에 조임이 울음을 그치지 않는 어린 아이의 꿈을 꾸고 나흘 후 찾아가 보니 그때까지도 살아있었다. 조임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데리고 와 키웠다.
조비연은 가난 때문에 어릴 적에 양아(陽阿)공주에게 팔려가 가희가 됐다. 천부적 재능을 갖춘 조비연은 매혹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고 탁월한 춤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성제가 하루는 미복으로 출행해 양아 공주의 집으로 갔다. 공주는 가희들을 불러 성제를 대접했다. 조비연의 넋을 빼는 눈매,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노랫소리, 유연하고 감미로운 춤 솜씨는 성제를 매료시켰다.
성제는 조비연을 데리고 황궁으로 돌아갔다. 조비연은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때로는 먼저 양보하라는 ‘욕금고종(欲擒故縱)’의 계책을 십분 발휘한다. 황제의 부름을 세 번이나 거절하며 성제의 욕망을 부채질하고 나서야 허락하는데, 이후 성제는 그녀 곁을 떠나지 못했다.
조비연의 수려한 용모와 유연한 몸매, 출중한 춤 솜씨는 후궁의 빈비(嬪妃) 중 군계일학이었다. 그녀가 추는 춤의 스텝, 꽃을 든 듯 가볍게 떨리는 손, 바람처럼 살며시 흔들리는 몸매는 성제를 미혹에 빠뜨렸다.
성제는 그녀를 위해 궁궐 태액지(太液池)의 영주(瀛洲) 정자에 무대를 설치했다. 성제는 옥환(玉環)으로 장단을 맞추고 풍무방(馮无方)은 생황으로 반주했다.
조비연은 '귀풍송원곡'에 맞춰 춤을 췄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 조비연을 못 가운데로 날려 버렸다. 다행히 풍무방이 그의 치마를 붙잡아 구했고.
그럼에도 비연은 그 상황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고 임금의 손바닥위에서 춤을 췄다고 한다. 그렇게 하여 ‘물 찬 제비, 또는 나는 제비’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이때 조비연이 물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녀의 발목을 급히 붙잡다가 치마폭의 한쪽이 길게 찢어지게 됐는데 이렇게 찢어진 치마는 오늘날 중국 여인들의 전통 의상인 유선군(留仙裙)의 유래가 됐다고도 전해진다.
성제는 궁녀들에게 수정반을 들게 하고 조비연이 그 위에서 춤을 추니 춤사위가 절묘해 성제가 더더욱 사랑하게 됐다고 한다.
조비연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마음씀씀이도 치밀했다. 성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녀보다 용모가 더 뛰어난 누이동생 조합덕을 성제에게 추천했다.
성제는 조합덕의 미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합덕의 부드러운 마음씨는 더더욱 성제를 정신 차리지 못하게 하였고, 성제가 조씨 자매를 보지 않으면 심신이 불안할 지경에 이르게 됐다.
이렇게 성제는 조씨 자매의 말을 절대 신임하게 됐다. 조씨 자매는 허(許)황후를 함정에 빠뜨려 폐위케 하고 조비연은 황후가 조합덕은 소의가 됐다. 조씨 자매가 후궁의 권력을 장악한 후 생사여탈권을 쥐고 한 시대를 풍미한다.
조씨 자매는 황제의 사랑을 독차지 했으나 임신하지 못했다. 다른 빈비들이 아들을 낳아 황후의 자리를 위협하지 않을까 염려돼 궁녀들을 학대하고 주살한다. “아들을 낳은 자는 즉시 주살하고 수도 없이 유산을 시켰다.”
당시 민간에는 “제비가 날아와 황손(皇孫)을 쪼아 먹는다”는 동요가 유행할 정도였다. 궁녀 조궁(曹宮)이 남자 아이를 낳자 주살 당했고 황자도 궁 밖으로 버려졌다.
허(許) 미인이 아들을 낳자 조합덕이 울고불고 하여 모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미색에 빠진 성제는 불혹의 나이가 돼서도 자식이 없었다.
조씨 자매를 위해 두 번이나 아들을 죽였으니 강산과 사직을 돌보지 않은 군주의 대명사가 됐다. ‘미인을 사랑하여 강산을 돌보지 않은’ 판본인 셈이다.
그렇다면 조씨 자매는 왜 임신하지 못했을까? 그녀들은 하얀 피부를 유지하기 위해 배꼽에 환약을 붙였다. 이 환약의 약효는 대단했다. 희고 매끄러운 피부를 유지했으며 은은한 향기를 풍기며 청춘을 간직케 했다.
사람을 매혹시키는 향기는 성제를 더더욱 자제할 수 없게 만들어 운우지정을 나누지 않으면 미칠 지경에 빠뜨렸다. 조씨 자매는 성제를 단단히 옭아매면 맬수록 성제의 정력은 고갈됐고 그러면 약을 조제해 복용시키면서 음욕을 만족시켰다.
성제의 쾌락을 위해 방사들은 단약을 조제해 바쳤다. 성제가 단약을 복용하면 정신이 극도로 흥분돼 미인을 가까이 할 수 있었으니, 청춘이 회복된 듯 보였다. 그러나 장기 복용하게 되고 복용량을 늘리면서 죽음에 이르게 됐다.
성제는 조합덕의 침대에서 죽자 조야가 진동했다. 조정 대신들은 조 씨가 재앙의 근원이라 성토했다. 조합덕은 스스로 벗어날 수 없는 대죄를 지었다고 판단하고 자살로써 생을 마감했다.
조비연은 한 성제의 조카 유흔(劉欣)의 즉위를 도우면서 새로운 황제의 은혜를 입어 황태후 자리를 보존했다.
6년 후 애제(哀帝)가 죽자 대사마 왕망(王莽)은 황손을 살해한 죄를 지었다며 조비연을 자진토록 했다. 잠시 동안 영광을 누린 조비연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가희의 신분에서 황후의 보좌에 오른 것을 기회로 삼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제의 호색 심리에 영합한 결과였다.
성제의 환심을 사기 위해 누이동생 조합덕을 바쳤고 성제의 음심을 유혹하기 위해 환약을 사용했으며 성제의 성욕을 위해 춘약을 대대적으로 복용하게 했다.
자신은 노래와 춤의 재능을 십분 발휘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성제를 미혹시키고 황후를 함정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했으며 후손을 주살했다.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천하를 횡횡했으나 결국은 횡사하는 비극을 맞이했다.
이후 ‘연수환비(燕瘦環肥)’라 하여 조비연은 날씬한 미인의 대명사로 상징되고 당나라 때 현종의 비로 호사스러운 사치를 누렸던 양귀비는 풍만한 미인의 전형으로 삼게 된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은 불행하게 마감한다. 미인박명일까? 아니면 자업자득일까?
▶️ 燕(제비 연)은 ❶상형문자로 㷼(연)은 본자(本字), 鷰(연)은 동자(同字)이다. 제비가 나는 모양을 본떴다. 음(音)을 빌어 주연(酒宴) 또는 쉬다의 뜻으로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燕자는 '제비'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燕자는 제비를 그린 것이다. 燕자의 갑골문을 보면 긴 꽁지가 특징인 제비가 그려져 있었다. 집 처마 밑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는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길조로 인식되었다. 제비는 겨울이 오기 전에 따뜻한 중국 남부와 동남아로 떠나는데, 이전에는 중국 남부를 강남 지방이라 불렀기 때문에 '강남 갔던 제비'란 말도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燕(연)은 (1)주대(周代)의 제후국(諸侯國). 무왕 때 소공석이 지금의 하북(河北)을 영토(領土)로 하여 북경에 도읍(都邑)했음. 점차 북동으로 발전하여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칠웅(七雄)의 하나로 됨. 기원전 222년, 진(秦)나라에 망함 (2)4~5세기에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중 선비(鮮卑)의 모용씨(慕容氏)가 세운 나라. 전연(前燕; 337~370), 후연(後燕; 384~409), 서연(西燕; 385~394), 남연(南燕; 398~410)의 네 나라가 있었음 (3)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하나. 북연(北燕)이라 불리었으며, 후연(後燕)을 정복하여 건국했음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제비(제빗과의 새) ②잔치, 향연(饗宴), 연회(宴會) ③연(燕)나라, 나라의 이름 ④잔치하다 ⑤즐겁게 하다 ⑥편안(便安)하다 ⑦예쁘다, 아름답다, 얌전하다 ⑧함부로 대(對)하다, 업신여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면과 면을 맞추기 위하여 문짝 따위 기구의 모서리를 을모지게 엇벤 곳을 연구(燕口), 잠깐 들러 쉬게 베풀어 놓은 방을 연실(燕室), 하는 일없이 집에 한가히 있음을 연거(燕居), 하는 일없이 집에 한가히 있음을 연식(燕息), 일을 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음을 연석(燕席), 주연을 베풀고 놈을 연유(燕遊), 아무 근심 걱정이 없고 몸과 마음이 한가함을 연한(燕閑), 조상이 자손을 편안하게 도움을 연익(燕翼), 제비의 꼬리를 연미(燕尾), 제비의 집을 연소(燕巢), 제비의 발을 연족(燕足), 제비와 참새를 연작(燕雀), 제비의 새끼를 연추(燕雛), 볏과에 딸린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풀을 연맥(燕麥), 제비가 날아올 즈음 기러기는 떠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소식 없이 지냄을 이르는 연안대비(燕雁代飛), 자손을 위하여 숨겨 놓은 계책을 일컫는 말을 연익지모(燕翼之謀), 소인의 무리를 일컫는 말을 연작지도(燕雀之徒), 안심하고 있어 재앙이 닥쳐오는 것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연작처당(燕雀處堂), 편안히 지내느라 장차 화가 자기에게 닥칠 것을 깨닫지 못함을 비유한 말을 연작처옥(燕雀處屋), 제비 같은 턱과 범 같은 머리라는 뜻으로 먼 나라의 제후가 될 생김새나 후한의 무장 반초를 이르는 말을 연함호두(燕頷虎頭), 봄과 가을에 엇갈리는 제비와 기러기처럼 서로 반대의 입장이 되어 만나지 못함을 한탄하는 말을 연홍지탄(燕鴻之歎), 제비가 날아올 즈음 기러기는 떠난다는 뜻으로 사람이 서로 멀리 떨어져 소식 없이 지냄을 이르는 말을 연안대비(燕雁代飛), 영 땅 사람의 글을 연나라 사람이 설명한다는 뜻으로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억지로 끌어대어 도리에 닿도록 함을 이르는 말을 영서연설(郢書燕說), 물고기의 눈과 연산의 돌이라는 뜻으로 두 가지가 옥과 비슷하나 옥이 아닌 데서 허위를 진실로 현인을 우인으로 혼동함을 이르는 말을 어목연석(魚目燕石) 등에 쓰인다.
▶️ 瘦(파리할 수)는 형성문자로 膄(수)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병질엄(疒; 병, 병상에 드러누운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叟(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瘦(수)는 ①여위다 ②파리하다(핏기가 전혀 없다) ③마르다 ④메마르다 ⑤약하다, 희미하다 ⑥작고 가늘다 ⑦오똑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윌 척(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살찔 비(肥)이다. 용례로는 얼굴이나 몸이 야위어 건강하지 않게 보이는 상태에 있음을 수척(瘦瘠), 굶어서 여위어 죽음을 수사(瘦死), 파리하고 약함을 수약(瘦弱), 부실하고 피폐함을 수폐(瘦弊), 마른 몸이나 수척한 신체를 수신(瘦身), 야윈 얼굴이나 마른 얼굴을 수용(瘦容), 여윈 것과 살진 것을 수비(瘦肥), 몹시 여윔을 수삭(瘦削), 수척한 몸이나 빼빼 마른 몸을 수구(瘦軀), 글자의 획이나 그림의 선 따위가 가늘면서도 힘이 있음을 수경(瘦勁), 필치가 가냘프고 긺을 수장(瘦長), 마른 말이나 파리한 말을 수마(瘦馬), 간자미로 가오리의 새끼를 수분(瘦鱝), 쇠약하고 수척함을 소수(銷瘦), 조비연은 말랐어도 미인이고 양귀비는 살쪘어도 미인이라는 뜻으로 미인은 마른 체형만 아니라는 말을 연수환비(燕瘦環肥) 등에 쓰인다.
▶️ 環(고리 환)은 ❶형성문자로 环(환)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구슬옥변(玉=玉, 玊; 구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둥글게 되어 있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睘(경, 환)으로 이루어졌다. 둥글게 되어 있는 구슬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環자는 ‘고리’나 ‘둥근 옥’, ‘두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環자는 玉(구슬 옥)자와 睘(놀라서 볼 경)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睘자에는 여러 글자가 결합하여 있지만 둥근 옥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갑골문에서는 睘자가 ‘둥근 옥’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여기에 玉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環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環자는 ‘둥근 옥’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지만, 지금은 주로 ‘둥글다’라는 뜻으로만 쓰인다. 그래서 環(환)은 ①고리 ②둥근 옥(玉) ③고리 모양의 옥(玉) ④둘레 ⑤두르다 ⑥돌다, 선회(旋回)하다 ⑦두루 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⑧물러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사람이 생활하는 주위의 상태나 생활하기 위해 만든 물리적 조건을 환경(環境), 예전 군복에 갖추어 차던 군도를 환도(環刀), 빙 둘러 에워 쌈을 환위(環圍), 여러 사람이 죽 둘러앉음을 환좌(環坐), 주위를 에워쌈을 환주(環周), 빙 둘러 에워싸고 있는 벽을 환벽(環壁), 둘러싸고 들이 침을 환공(環攻), 고리처럼 속이 비고 둥글게 된 꼴을 환상(環狀), 고리 모양을 이루는 방식을 환식(環式), 넓은 터를 가운데 두고 그 둘레로 집이 고리 모양으로 배치되어 이루어진 마을을 환촌(環村), 둘러 안음 또는 사면으로 둘러 쌈을 환포(環抱),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환해(環海), 환상 또는 두 개의 동심원 사이에 있는 도넛 모양의 도형을 환형(環形), 고리 모양의 무늬을 환문(環紋), 눈동자의 주위에 흰 테가 둘린 눈을 환안(環眼), 둘레를 에워싸고 있는 일체의 형상을 환상(環象), 바퀴와 같이 둥글게 둘러친 모양을 환열(環列), 한 차례 돌아서 다시 먼저의 자리로 돌아옴 또는 그것을 되풀이 함을 순환(循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물의 일부분을 일환(一環), 세상에 쓸 만한 사람이 없음을 탄식함을 이르는 환고일세(環顧一世), 은혜를 잊지 않고 기필코 보답한다는 말을 결초함환(結草啣環), 수레를 타고 천하를 돌아 다닌다는 뜻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여행함을 이르는 말을 철환천하(轍環天下), 사물의 성하여지고 쇠하여짐이 서로 바뀌어 도는 이치를 이르는 말을 순환지리(循環之理) 등에 쓰인다.
▶️ 肥(살찔 비)는 ❶회의문자로 月(월; 고기)과 巴(파; 卪절)의 합자(合字)이다. 肝(간)과 몸에 관계가 있는 月(월)과 물건의 알맞은 모양이 후에 파(巴)로 변한 절(卪=卩, 㔾)의 합자(合字)이다. 알맞게 살이 찐 사람이나, 동물에서는 주로 소나 양이 살진 것을 일컬었다. 지금은 사람이나 동물 또는 토질(土質)에 모두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肥자는 ‘살찌다’나 ‘기름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肥자는 ⺼(육달 월)자와 巴(꼬리 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巴자는 ‘꼬리’라는 뜻이 있지만, 본래는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고기를 뜻하는 ⺼자가 결합한 肥자는 마치 손으로 앞에 있는 고기를 끌어당기는 듯한 모습이다. 肥자는 이렇게 식탐을 부리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살찌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肥(비)는 ①살찌다 ②기름지다 ③살지게 하다 ④비옥하게 하다 ⑤넉넉해지다 ⑥두텁게 하다 ⑦투박하다 ⑧얇게 하다 ⑨헐뜯다 ⑩거름, 비료 ⑪지방(脂肪), 기름기 ⑫살진 말 ⑬살진 고기 ⑭물의 갈래,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기름 유(油), 살찔 방(肪), 기름 지(脂), 기름 고(膏),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여윌 수(瘦), 여윌 척(瘠)이다. 용례로는 살지고 굳셈을 비강(肥强) 또는 비경(肥勁), 살지고 몸집이 큼을 비대(肥大), 토지의 생산력을 높이고 식물의 생장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경작지에 뿌려 주는 영양 물질을 비료(肥料), 거름을 주고 가꿈을 비배(肥培), 몸집이 크고 힘이 셈을 비장(肥壯), 걸고 기름진 흙을 비토(肥土), 살져서 두툼함을 비후(肥厚), 살지고 맛이 좋음을 비감(肥甘), 살지고 깨끗함을 비결(肥潔), 살찌고 뚱뚱함을 비만(肥滿), 땅이 기름지고 좋음을 비미(肥美), 몸에 살이 찌고 습기가 많음을 비습(肥濕), 땅이 걸고 기름짐을 비옥(肥沃), 살이 쩌서 기름진 고기를 비육(肥肉), 살지고 번지르르함을 비윤(肥潤), 몸의 살찜과 야윔을 비척(肥瘠), 살지고 무거움을 비중(肥重), 자기 몸과 자기 집만 이롭게 함을 비기윤가(肥己潤家), 제 몸만 살찌게 함 또는 제 이익만 취함을 비기윤신(肥己潤身), 자기에게만 이롭게 하려는 욕심을 비기지욕(肥己之慾),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이 썩 좋은 절기임을 일컫는 말을 천고마비(天高馬肥), 가벼운 가죽옷과 살찐 말이라는 뜻으로 부귀영화를 형용해 이르는 말을 경구비마(輕裘肥馬)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