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독일에서는 베를린주와 브란덴부르크주를 통합해 '프로이센(Preussen)'주를 창설하자는 주장이 제기돼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브란덴부르크주는 우리의 서울을 감싼 경기도처럼 베를린을 감싸고 있는 주이다.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양측의 논란을 상세히 전하면서 "재정문제 때문에라도 10년 내에 두 주의 통합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며 "논쟁의 핵심은 프로이센이라는 옛 명칭의 사용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는 독일사회의 보수 회귀에 대한 점이어서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프로이센은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의 전신이어서, 독일 내에서는 잊혀진 역사로, 불행한 과거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국민들은 슈피겔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1%가 찬성, 59%가 반대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직까지 독일엔 이러한 감정적인 우경화 현상이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어딜 가나 있다고 생각한다. 독일은 물론이고 전세계 어디에나 있는 차이나 타운이, 우리나라엔 없지 않은가. 조금 잘산다고 동남아시아나 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을 업신여기는 우리이기에 일본이나 독일의 우경화는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독일인들은 냉정할 때는 냉정하다. 국가 대항 축구가 국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긴 해도 독일인들은 여기에서 자존심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우리처럼 '스포츠 찌라시들'을 통해 되도 않는 허상이나 왜곡을 퍼뜨리지 않는다. 사람 사는 사회인지라 이런 옐로우 페이퍼들이 독일에도 없지야 않지만, 독일인들은 대부분 제정신을 갖고 축구를 사랑하고 있다.
우리는 독일 축구 대표팀을 '전차군단'이라고 부른다.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을 공포에 떨게했던 판쩌(Panzer : 독어로 '탱크') 3호와 4호, 그리고 타이거 전차의 성능과 그것들을 운용해 펼쳤던 전격전처럼 특유의 체력과 조직력으로 세계 축구에 큰 획을 그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의 어느 언론을 뒤져봐도 이런 표현은 없다.
그들도 물론 그들이 놀라운 성적을 거둬온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대표팀에 그 흔한 '애칭' 하나 붙여주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대표팀에 무관심하고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에게 대표팀은 그저 대표팀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인들은 이토록 현실적이다.
독일은 이번 2002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독일 축구팬들도 이번 대표팀이 브라질에 이어 두 번째로 통산 4회 우승의 위업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딴은, 독일은 그것 말고도 세계 제일이 될 수 있는 것들이 너무도 많다.
지난 겨울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렸던 '엿같았던' 그 동계 올림픽에서도 독일은, 금12 은16 동7으로 지난 나가노 동계 올림픽에 이어 2연패를 달성하기도 하였다. 독일 언론들이 이번 동계 올림픽 개막 전부터, 마치 우승이 예정된 것처럼 떠들었던 것처럼 이번 월드컵도 아주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는 독일의 축구인들이 한 목소리를 내는 바이다.
일단 대표팀 감독인 루디 푈러의 키커지와의 인터뷰가 단적인 예이다.
"공격 축구는 현대 축구의 흐름인 만큼 공격 축구를 통해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겠다. 진지하게 말해 독일의 월드컵 목표는 8강 진입이다. 우리 선수들은 각각 1 : 5 패배와 0 : 0 무승부를 기록한 월드컵 지역예선 잉글랜드, 핀란드 전에서 너무 수동적이고 소심한 플레이를 했다. 좀 더 창조적이고 위험도 감수하는 플레이를 선수들에게 요구할 것이다."
푈러의 이러한 발언은 어느 언론에서도 큰 비난을 받지 않았다. 잉글랜드 다음으로 훌리건이 많은 이 나라에서도, 이성적인 사람들은 그들이 8강 이상의 성적을 올린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순수한 실력만의 결과는 아닐 것이라는 데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자기들의 현재 축구실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그에 걸맞게 기대와 관심을 가져주는 합리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푈러와 함께, 서독의 '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주역이자 카이저슐라우테른의 사령탑인 안드레아스 브레메감독은 에스파냐를 우승 후보로 지목했다. 또 최근 축구황제 펠레도 브라질, 포르투갈, 이탈리아와 함께 에스파냐를 우승 후보로 꼽았었다.
사실 그의 발언은 독일을 우승후보로 꼽지 않아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는 에스파냐 신문 'AS'와의 인터뷰에서 에스파냐와 독일 대표팀의 차이점을 설명하면서 두 팀을 대조했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에스파냐는 '절대강팀을 만들 수 있는' 40명의 톱 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지만, 독일은 12명도 되지 않는다며, 에스파냐의 우승을 공언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에스파냐는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프랑스보다 강하다고 평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은 브레메가 마지막 선수생활을 에스파냐의 사라고사에서 해서, 그들에 우호적으로 발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직 조국의 현재 축구실력에 의거한 냉철하고 정확한 일침인 것이다.
독일이 이렇게 언뜻 보기에 패배적으로 보일 만큼 현실적으로 된 것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필자는 그것을 두 가지로 생각한다.
1. 2006 월드컵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세대교체에 대한 재도전
2. 그 동안의 발전적 추이에 따른 신축적인 사고방식
독일은 2006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EU 역내의 경제적인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서도 있지만, 그들은 2006년 월드컵을 통해 옛 영광을 부활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 독일은 독자들도 아다시피, 옛날의 독일이 아니다. 마테우스는 `94 미국 월드컵에 출전하면서 "이번에 우리의 우승에 대한 걸림돌은 오직 우리의 자만심이다"라고 했었다. 지금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80년대 유럽과 세계를 제패했던 독일은 FIFA가 코카콜라와 함께 처음으로 축구에 랭킹제도를 도입했던 1993년 8월엔 당당히 1위였다. 그리고 `94 월드컵 직전까지도 1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2월 랭킹은 12위에 머물러 있다.
대표팀엔 사실 골키퍼 칸 말고는 스타가 없고, 이는 위기관리 능력이 떨어짐을 의미한다. 게다가 신예 다이슬러의 오른쪽 무릎 수술 후유증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기에 오른쪽 윙백과 스토퍼로서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었던 레머마저 지난 3일 오른쪽 발목 부상을 입어 당분간 출전이 곤란해졌다.
이토록 힘겨운 월드컵 준비를 하게 된 까닭은 아무래도 '세대교체의 실패'이지만, 독일은 그동안 계속 유망주를 길러왔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어느 정도 가시화 되고 있다. 물론 제한적인 사례겠지만, 우리나라 축구팬들도 어느덧 독일의 유망주들을 서서히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기량이 절정에 오르는 2006년 자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그들은 노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번에 레버쿠젠에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한 미카엘 발락의 인터뷰에서 나타난다.
"어떤 성취에 대한 목적없이 오로지 돈만 바라는 축구선수는 한 명도 없다. 돈만 따졌다면 더 많은 액수를 제시한 레알 마드리드로 갔겠지만, 독일에 남는 것이 좋겠다는 베켄바워와 푈러 감독의 말에 바이에른 뮌헨으로 방향을 정했다"
베켄바워와 푈러는 발락에게 독일에 왜 남으라고 했는가? 그것은 간단하다. 베켄바워는 그와 함께 뮌헨에서 늙기를 바라는 히츠펠트 감독이 조련하게 될 바이에른 뮌헨을 믿는 것이다. 다이슬러까지 영입한 뒤, 바이에른 뮌헨 관계자는 두 선수 외에 젊은 대표급 선수들을 더 끌어들여 8명 정도의 대표선수를 보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 선수들은 챔피언스리그 등 유럽에서 벌어지는 세계 최고 수준의 클럽 대항전을 통해 기량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바이에른 뮌헨의 생각인 것이다. 그리고 뮌헨은 이번에도 역시 챔피언스리그 8강에 무난히 올라갔다.
이러한 '작은 대표팀'을 조련하게 될 히츠펠트는 "물론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고 싶다. 하지만 나는 팀을 발락과 다이슬러, 그 밖에 새로 입단할 선수들 중심으로 재편할 작정이다"며 강한 독일 대표팀 만들기에 동참할 뜻을 분명히 했다. 그는 발락과 다이슬러를, 다음 시즌 에펜베르그를 대신해 바이에른 뮌헨의 게임 메이커로 쓸 예정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독일은 이번 월드컵에서 마음을 비우고 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독일의 성적은 단지 포기가 아닌, 2006년을 위한 쓰디 쓴 밑거름이 될 것이다. 그 예로 독일은 며칠 전, 2003년 개최국은 오스트레일리아, 이집트, 포르투갈, 남아프리카 공화국, 미국 등이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아직 정해지지도 않았는데, 이미 2006년 월드컵 리허설로 벌어질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협회는 축구선수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신뢰까지 두터운 푈러를 2006년 월드컵까지, 두 번째의 연장계약을 통해 그에게 장기적인 계획 아래 대표팀을 이끌게 해주었다. 독일인들은 젊은 유망주들과 최고 명문구단의 절묘한 결합이 결실을 맺을 2006년에는 축구영웅 베켄바워의 노력으로 자국에서 열리게 된 2006 월드컵 정상에 오를 것으로 굳게 믿고 있다. 그가 해서 안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독일은 앞서의 내용에 관련해 대표팀의 완성을 느긋하게, 아니 조바심이 나도 참으면서 기다리는 입장이다. 독일이 처음으로 우승했던 `54 월드컵 이후로 20년만에 그들은 우승을 일궈냈고, 자국에서 열렸던 `74 월드컵 이후 그들은 다음 우승까지도 16년이 걸렸다.
그들은 매번 독일이 우승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독일 축구팬들은 기꺼이 1990년 이후 또 다시 20년을 기다릴 것이다. 이것은 정해진 공식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독일이 자기들을 영원한 우승후보라고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인들의 자존심은 단단해 보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는 유연함을 품고 있다.
최근 독일 하노버에서는 전자 박람회 '체빗(CeBIT) 2002'가 열리고 있다. 이 박람회에서 독일 굴지의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은 둘둘 말 수 있을 정도로 유연성이 뛰어난 새로운 형태의 CD를 선을 보여 화제가 되고 있다. 이 CD는 놀랄 정도의 유연성으로 현재 나와 있는 단단한 원반 모양의 CD를 시장에서 급속도로 몰아낼 것으로 전망되는데, 베텔스만은 체빗 전시회에서 이 '플렉스 CD(flex CD)'를 둘둘 말거나, 세제병, 아침용 시리얼 박스 속에 집어넣어 보이는 등 뛰어난 신축성을 뽐냈다.
이번 월드컵에서 그들이 대표팀의 성적을 바라보는 관점은, 이렇게 그들이 만든 단단해 보이지만 실은 알고보면 유연하기 이를 때없는 CD와 같이 신축적인 것이다. 우리의 16강처럼 그들에겐 우승이 '염원'이 아님을 우린 알아야 한다. 그들은 이미 통산 15회, '30 우루과이 월드컵과 '50 브라질 월드컵을 제외하고는 연속 13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고, 우승과 준우승도 각각 세 번이나 했다. 2006년엔 모르지만, 지금은 확실히 무리하려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독일인들 가운데에서 대표팀의 우승을 바라는 이도 없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독일 사회에서 눈에 띠는 목소리들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대표팀에 대한 애정, 그리고 부담주지 않고 오직 그들의 축구사랑과 대표팀 사랑만이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의 기사들이 눈에 띨 뿐이다.
실제로 지난 2월 13일에 있었던 이스라엘과의 평가전에서도 어김없이 2만 4천여 명의 관중들이 카이저슐라우테른의 프리츠 발터 구장을 찾아 자기들이 8골을 다 넣는 희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전했다. 그리고 분데스리가는 아직까지, 뭐 언제나 그래왔지만 평균관중 3만을 채우고 있다.
독일 대표팀의 큰 틀은 이미 짜여져 있다. 골키퍼는 바르테즈와 함께 유럽 최고의 골키퍼로 꼽히는, 그들의 새로운 주장인 칸과 도르트문트의 레만이 맡게 될 것이다. 스위퍼는 부동의 중앙 수비수인 노보트니가 버티고 교체멤버로는 바우만을 데려갈 것이다. 왼쪽 스토퍼로는 린케와 하인리히, 오른쪽 스토퍼는 뵈른스와 메첼더를 준비하고 있다.
게임 메이커감이 없기도 하거니와 3-5-2를 고집하지 않는 푈러 감독의 전술적 원칙에 따라 네 명이 설 것으로 보이는 미드필더진은 사실 가용인원이 적은 편이다. 왼쪽 날개엔 치게와 뵈메, 또는 발락이, 오른쪽 날개엔 슈나이더와 다이슬러, 또는 리켄이 양쪽 측면에서 경기를 하게 될 것이다. 중앙의 수비형 미드필더 두 자리엔 발락과 라멜로프와 켈, 예레미스, 프링스 정도를 세울 것이다.
쓰리톱의 가운데인 센터 포워드엔 아무래도 장신의 비어호프나 얀커가, 왼쪽 공격수는 보데나 클로제, 노이필레가 그리고 오른쪽 공격수엔 최근 회복한 숄이나 아자모아가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 A-2에서의 깜짝 발탁도 가능성은 있지만, 푈러는 이미 신진 발굴에서는 손을 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사실 우승팀의 면모를 갖추진 못했다. 그러나 독일인들 누구도 우승권에서 멀다고 해서, 지금의 대표팀에 돌을 던지지 않는다. 그들은 지독히도 현실적이다. 그래서 "녹슨 전차."니 "독일은 맛이 갔다."느니 하는 먼 극동의 어떤 나라 호사가들의 말장난에 신경쓰지 않는다. 지금의 대표팀의 현실을 직시하며 오직 묵묵히 이번 월드컵을 그들의 상황과 장기적인 계획에 맞게 최대한 알차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푈러가 이끄는 대표팀은 선배들이 펼쳤던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4년 뒤에는 아니다. 그들은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유로 2004를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 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2006년에 그들이 우승권에 근접한다면, 우리나라 스포츠 찌라시들은 다시 게르만 전차군단 부활이니 어쩌니 하고 떠들어 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우리나라 축구를 씹고, 병신 만들기도 재미없어진 스포츠 찌라시들이 해대는 되도 않는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대표팀이 '전차군단'이든 '퀵보드 군단'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할 것이다. 그저 순수한 우리 팬들이 우리 대표팀을 사랑하는 것처럼, 독일축구연맹이 창설된 1900년 이후 102년 동안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들의 대표팀을 사랑하고 애정이란 단비를 계속 내려줄 것이다. 냄비처럼 빨리 멍청히 식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온기를 유지하며 말이다.
설마 독자들은 앞으로 영원히 독일이 우승을 못하리라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 때를 위해 다시 시작하고 있을 뿐이며, 그 과정에 비하면 이번 월드컵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독일은 조만간 월드컵을 치켜들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인구 8,200만의 거대 국가인 독일에서도, 우리나라만큼 독일 대표팀이 전차군단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에게 전차군단이란 없다. 그저 언제나, 자랑스러운 아들러 문양을 가슴에 새긴 독일 대표팀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