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까는 미국 놈(?)의 정체! 극적으로 알아낸 그 자의 이름은 Don La Fontaine. 철저하게 베일에 싸인 채 오직 굵고 낮은 목소리 하나로 할리우드를 평정한 강호의 고수는 그렇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는 것이라곤 이름뿐. 이럴 수가! 망연자실도 잠시. 곧 후속 취재에 돌입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 내고야 말았다. 오, 신이시여, 정녕 이 모든 걸 제가 알아냈단 말입니까?
라 폰테인은 현재 할리우드가 제작하는 거의 모든 영화의 예고편 및 광고 내레이션을 맡고 있는 불세출의 성우. 일주일 평균 60편(6편이 아니라!). 1년이면 물경 3천편을 작업한다. 하루에 보통 12편에서 17편 정도라니 '거의 모든' 이라는 수식어가 괜한 과장이 아닌 것이다. 에이 그게 말이 돼? 지가 무슨 성우계의 남기남이야? 이렇게 의심하는 독자들 있겠다. 맞다. 남기남이다. 라 폰테인의 하루 일과를 동행 취재한 기사를 보면 한 편 녹음에 10분이 채 안 걸린다. 물론 리허설은 없다. 이 10분을 위해 영화사가 그에게 지불하는 돈이 적게는 576 달러에서 많게는 2천달러다.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 하루에 2~3시간만 일해도 1년이면 최고 78억원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허걱! 이러니 영화에나 나오는 고급 리무진을 타고 스튜디오에 갔다가 값비싼 골동품으로 가득찬 LA의 고급저택으로 돌아와 자기 집 마당 수영장에서 아이들 재롱을 감상하는 백만장자가 되는게 당연하다. 그럼 그는 언제 어떻게 성우가 되어 이런 상팔자 인생을 살게 되었는가? 때는 19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 영화사 직원으로 근무하며 우연히 [Gunfighters at Case Grande] 라는 서부영화 예고편 카피를 쓴 라 폰테인은 약속한 녹음 성우가 나타나지 않자 '땜빵'으로 목소리 녹음에 투입된다. 그리고 짱구를 굴렸겠지. 오호라, 이 전도유망한 직종에 선수는 기껏해야 네댓명이렸다. 그래 결정했어. 이후 38년간 전세계 관객에게 한결같은 목소리로 미국 영화를 선전하는 나팔수는 이렇게 태어났다.
보아하니 이 영화 저 영화 닥치는 대로 해치울 것 같지만 그에게도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다. 첫째, 노스트 라다무스 류의 허황된 예언을 설파하는 영화는 작업하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아주 위험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 이다. 둘째, 포르노 영화(이 대목에서 그는 "차라리 연기를 하라면 하겠다" 고 힘주어 말한다)도 마찬가지다. 셋째, 이 둘을 제외한 어떤 영화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냐? 아무리 별 반개 짜리 허접한 영화도 이 세상 누군가에겐 별 다섯개짜리 영화일 수 있으므로. 여기에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자제하고 무엇보다 소리지를만한 장소엔 아예 가지 않는" 방법으로 목소리를 관리한 프로정신으로 라 폰테인은 그 치열하다는 할리우드의 생존 경쟁에서 절대 강자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죽하면 할리우드에는 "라 폰테인 효과"라는 용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이 말은 검증되지 않은 신인에게 모험을 거느니 왠만하면 믿을만한 사람을 계속 기용하는 게 낫다는 제작자 마인드를 가리킬 때 요긴하게 쓰인다. 구관이 명관이고 계집질도 하던 놈이 한다던가? 라 폰테인에게 할리우드가 보내는 절대적인 신뢰는 그 때문이다.
예고편 목소리를 녹음하는 성우가 몇 명 더 있기는 하다. 레드 페퍼, 빌 미첼, 그리고 <스타워즈>에서 다스 베이더 목소리를 연기한 제임스 얼 존스 등이 그들이다. 그러나 미국 코미디언들이 즐겨 성대모사 대상으로 삼을만큼 독보적인 라 폰테인의 명성에 비하면 아직은 그 활약이 안쓰러운 수준이다.
첫댓글 저도, 저 나라 예고편 성우는 한 사람밖에 없는건지, 아니면 아예 목소리가 비슷한 사람들로만 뽑는지 궁금했는데.. 그렇군요... 왠지 신기하면서 부러움.. 우리나라 성우분들은 언제나 저렇게 많이 버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