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95) - 소중한 추억이 서린 우편과의 인연
이른 봄부터 늦가을에 이르기까지 숱한 꽃들이 피고 지는 가운데 어느덧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다. 11월 11일(목), 1년여 동안 적조했던 오랜 지인들과의 만남이 있어 낙엽 떨어지고 찬바람 부는 만추의 서울을 찾았다. 만남의 장소는 정례적으로 모이는 인사동의 전통한식집, 지하철 종각역에서 내려 안국동방향으로 가는 길목의 대한불교총본산조계사를 지나노라니 국화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꽃철의 끝자락을 화려하게 장식한 국화를 마주하니 모진 세월과 차가운 서릿발을 견뎌온 강인한 생명력과 그윽한 향기가 따스한 온기로 다가온다. 모두들 따뜻한 겨울 맞으시라.
제11회 국화향기 나눔전이 열리고 있는 조계사 정문 풍경 조계사 바로 옆에 사적 제213호 우정총국 건물의 본채가 남아 있다. 우정총국은 근대적인 우편업무를 시작한 관청으로, 1884년 11월에 업무를 개시하였고 그해 12월 4일에 열린 우정총국 개설연(開設宴)을 계기로 발생한 갑신정변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때 본채를 제외한 부속건물은 모두 불에 탔고, 1972년부터 본채가 체신기념관으로 지정되었는데 코로나로 무기한 문이 닫혀있다.
한국 최초의 우편관서로서, 초창기 우편업무를 관장한 우정총국의 모습
우정총국 지나며 떠오른 상념, 20여년의 공무원생활 중 1967년부터 1982년까지 15년을 우편전신전화업무를 관장하던 체신부에서 근무하였다. 인생의 황금시절을 보낸 곳. 그중 일선우체국의 실무과장으로 우편업무현장을 두루 익힌 일, 전국에 흩어져있는 우체국의 우편업무를 총괄하는 본부의 국내우편과장으로 3년여 재임하면서 언론사와 공동으로 전국어린이편지쓰기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한 일, 한겨울에 들판의 눈보라를 헤치며 우편물을 배달하다 순직한 집배원의 순직기념비를 전국의 직원들 모금으로 건립한 일, 지금도 거리에서 접하는 적갈색의 우체통을 이전의 철제에서 현재의 강화섬유플라스틱제품으로 전면 교체한 일 등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 당시 연말이면 폭주하는 연하우편특별소통, 자주 치르는 선거 때마다 몰리는 선거우편물의 관리도 주요업무. 이러한 인연으로 공무원으로 재임 중 취득한 석사학위논문의 제목은 ‘우정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간행한 저서는 체신보험을 다룬 ‘국민생명보험사업론’이었고 퇴임 후에는 지방우정청의 고객대표자회의의장으로 공무원이 아닌 고객의 입장에서 관련 업무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거리의 우체통
지금도 우체국은 단골거래처, 모든 입출금은 우체국계좌를 이용하고 해마다 발간하는 ‘인생은 아름다워’ 책자 등도 우편으로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팁, 책자 등을 우편으로 송부할 때 등기나 택배가 아닌 일반우편으로 발송하기를 권한다. 값도 저렴하고 분실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배달된다.(등기우편물은 수취인 직접 수령 등의 번거로움이 따른다.) 지난 시절 아름다운 사연의 매개역할을 잘 감당한 우편, 앞으로도 자주 이용하고 사랑하리라.
* 우편제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최근 한 잡지에 소개된 ‘우편-인류역사 비약적 증대 이끈 가동성(可動性)’을 요약 소개한다. ‘누구든 소정의 비용을 지급하고 일정한 규격만 맞춘다면 원하는 상대에게 편지나 소포를 부칠 수 있는 우편제도. 오늘날 그 존재가 너무도 당연한 이 제도는 1837년 영국의 교육자 롤랜드 힐(Rowland Hill, 1795~1879)이 일정한 무게 이하의 편지에 대해 1페니의 균일요금을 징수하는 방식을 제안하면서 태동하였다. 1840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우표를 발행, 이를 통해 편지를 부치는 데 필요한 요금지급 사실을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게 됐고 우표가 붙어 있는 우편물은 우체통을 통해 비대면으로 수거하거나 접수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근대적 우편제도의 시작이었다. 이후 미국·프랑스·독일 등에서 근대적 우편제도가 시행됐고, 1875년에는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제도적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국우편연합(Universal Postal Union)이 결성되기에 이르렀다. 동아시아의 우편제도는 1871년에 일본에서 처음 시작됐다. 한국에서는 전신(1885년), 전기(1887년), 철도(1899년) 등 다른 근대적 교통·통신 인프라보다 앞선 1884년에 우편제도 도입이 시도됐다.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편제도가 갖는 파급력과 혁신성을 중대하게 인식했음을 엿볼 수 있다. 1881년에 일본에 파견됐던 박정양은 귀국 후 시찰보고서를 조정에 제출했다. 이 보고서에는 당시 일본에 도입된 근대적 우편제도의 규칙이 한문으로 번역돼 실려 있는데, 우편(郵便)과 그것에서 파생한 우편물(郵便物)·우편국(郵便局) 등의 일본 용어를 소개했다. 영어의 post는 본래 교통통신 제도 운용을 위해 각지에 설치했던 역참을 의미했다. 역참이란 공용 통신을 위해 말과 같은 교통편과 숙박시설 등을 마련해놓은 거점을 말한다. 우편제도를 포괄하는 개념어인 post에 대응하는 한자어 우편(郵便)은 그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탄생했다. 이 단어에 쓰인 우(郵)가 본래 역참을 의미하기에 post와 어원적으로도 유사하다는 점에서 절묘하다. 오늘날 한국에서는 우편이라는 단어를 근간으로 삼아 우편물, 우편요금, 빠른우편, 우편환 등 우편제도와 관련한 단어가 쓰이고 있다. 한편 우체통·우체국 등의 용어는 우체가 post에 대응하는 요소로서 기능한다.'(월간중앙 2021년 11월호, 신웅철 경성대 연구교수의 ‘우편(郵便)-인류 역사 비약적 증대 이끈 가동성(可動性)’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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