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찾아서
- Y의 비극 -
"K는?"
여러 밤을 고열로 앓아누웠던 Y가 실로 오랜만에 정신을 차려 겨우 꺼낸 말이 이거였다. 그 고생을 하고도 Y의 얼굴은 여전히 미색을 잃지 않았다. 창백하고 초점을 잃은 듯 한 애달픈 눈동자는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냈다. Y의 물음에 그녀의 남자친구 L은 Y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열은 없는 거 같은데...' 따위의 말을 중얼거렸다. Y가 L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야! K는 어디 있냐고?"
"무슨 헛소리야?"
"발뺌하지 마. K는 어디 있어?"
"..이년이 며칠 아프고 나니 정신이 오락가락 하나 보구나? 알았다. 하루 더 푹 쉬어라."
L이 Y의 이마를 장난스럽게 밀자 Y가 힘없이 침대로 떨어져 나간다. L은 Y의 머리끝까지 두꺼운 이불로 덮어씌우고 방을 나가려 했다. 못 보던 사이에 L은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Y는 L의 얼굴이 좋지 않게 변한 이유를 알고 있다. 오직 L과 Y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다. Y는 꾹 다물었던 입을 힘겹게 열었다. 울음이 저절로 섞여 나왔다.
"네가 죽였지?"
"......"
"K, 네가 죽였지?"
"...하루 푹 쉬어라."
L의 한숨 섞인 목소리와 함께 곧 방문이 닫혔고 Y는 이불 속에서 펑펑 눈물을 흘렸다.
* * *
앞에서 말했듯이 Y는 여러 날 간 꽤 길게 심각하게 아팠다. 우울증을 동반한 독감이었다. 가벼운 감기야 여러 번 걸려봤으나, 이처럼 깊게 아픈 적은 난생 처음이었다. 외로운 방안에서 혼자 끙끙 앓는 그녀를 찾아서 위로해 준 건 남자친구 L도 부모님도 친구도 아닌 낯선 사람이었다.
"내 이름은 K."
그의 이름은 K.
"이 집을 털러 왔어."
그는 자신이 도둑이라고 했다.
"근데 마음이 바뀌었어, 물건보다 더 탐나는 게 있거든."
K가 방긋하게 웃었다. 그는 흡사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처럼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다.
"근데 너, 어디 아픈가봐?"
K는 여태껏 받지 못했던 다정함과 보살핌을 Y에게 선사했다.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Y를 병간호 했다. 젊고 창창한 나이에 도둑이라는 흔치 않는 직업을 가진 그가, 왜 하필이면 자신의 집에 와서 왜 하필이면 자신에게 이렇게 하는지 Y는 궁금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입이 납덩이만큼 무거워져 말 한마디 내뱉을 수 없어 궁금증을 속으로 삼켰다.
"아프지 마."
"사랑해."
K는 반복해서 이 말들을 내뱉었었다. 다정스런 손길로 Y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애틋한 눈길을 보낼수록, L에게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에 Y는 점차 K에게 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K에 대한 감정이 깊어질수록 Y의 몸 상태 역시 나아졌다.
"K."
오락가락하는 의식 속에서 Y는 K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을 이렇게 표현하려고 애썼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지금에 와서야 겨우 숨을 헐떡거리며 K의 이름을 겨우 부를 수 있게 되었다. Y는 처음으로 K의 이름을 부르며 희미하게 웃었다. K가 놀란 듯이 웃고 Y에게 다가갔다. Y는 기쁨에 미소를 지었다.
"...K...K."
Y는 K를 기쁘게 하려고 K의 이름을 계속해서 불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K의 얼굴이 점차 굳어가기 시작했다. Y는 그의 표정에 불안한 마음으로 K에게 말했다.
"K, 사랑해."
K는 아무 대답 없이 방을 나갔다. 방문이 힘없이 닫히다가 다시 끼이익 거리며 열린다. Y는 K가 다시 온줄 알고 기뻤으나, 그것은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아 절로 열린 것에 불과했다. 다만, 그 문틈사이로 K의 얼굴이 보였다.
"가지마!!!"
Y가 있는 힘껏 그의 목소리를 불렀다. 그 때, Y에게 다가온 한 남자는 K가 아니라...
"씨발. 도대체 K가 누구야?"
L이었다. 평소에도 난폭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Y의 남자친구 L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는 Y에게 계속해서 K가 누구인가를 물었다. Y가 끝내 대답하지 않자, L은 거실로 뛰쳐나갔다. 살짝 열려진 문틈사이로 K와 L의 얼굴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Y는 당장에 거실로 뛰쳐나가고 싶었으나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눈물에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띵해진 Y는 어지러운 머리를 움켜쥐다가, 손에 피를 묻힌 채 자신을 향해 놀란 표정으로 보고 있는 L과 눈이 마주쳤다.
그게 기억의 전부였다. Y는 그 이후로 완전히 정신을 잃었다.
* * *
Y는 벌떡 일어나서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는 L이 붕대를 감은 손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Y는 L의 가증스러움에 몸을 떨었다.
"K는 어디 있어. 개자식아."
"쉬어라 했다."
"쓰레기만도 못한 살인자새끼."
"Y."
"닥쳐.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당장 내 집에서 나가."
Y가 소리쳤다. Y는 내심 L이 K처럼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주먹을 꼭 쥐고 주변의 물건을 L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L은 흥분하거나 날뛰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애처러운 얼굴로 Y를 바라보았다. 그의 행동에 Y는 더 미쳐서 눈물 흘리며 소리 질렀다.
"...네가 말한 K, 사랑해? 그럼 나는?"
L이 힘겹게 꺼낸 말이 고작 이거였다. Y는 분노로 L의 뺨을 갈겼다. L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 것을 Y는 보았으나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거칠게 말했다.
"난 K를 사랑해. 그리고 너 같은 쓰레기 자식과 K를 비교하지 마."
"그게 네 대답이니?"
"그래."
"윤가인. 네가 어떤 말을 하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가지만..."
"헛소리 그만하고 꺼져."
Y의 냉정하고 차가운 말에 L은 무어라 대꾸하려 하였으나, 입을 다물었다. L은 문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Y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는 차갑고 시린 이슬이 맺혔다. 쓸쓸하고 애잔하게, L은 입을 열었다.
"아프지 말고... K는 아마 죽지 않았을 거다."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렇게 증오한 그였지만 뒷모습이 쓸쓸해 가슴이 욱신거렸다. 그동안의 사귄 정 때문일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K가 죽지 않았다니, 그럼 그 피는 무엇인가? K는 어디에 있지?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될까? 아니면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야 될까? Y의 머릿속이 터질 듯 혼란스러워 지자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수를 해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함이었다. 화장실에 들어간 Y는 깨어진 유리에 화들짝 놀랐다. 누군가 주먹으로 쳐서 깨진 듯, 거울의 한 가운데는 그런 금이 가 있었다. 순간 Y, 아니 가인의 머릿속에는 손에 붕대를 감은 L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인은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희태!! 이희태!!!"
가인은 L의 이름을 미친 듯이 불렀다. 하지만 L은 없었다. 그녀는 후회 한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으나 L은 없었다. 그 이후로 Y는 L을 찾을 수 없었다. K또한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K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K는... L안의 '다정함'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해 윤가인. 아프지마."
K. 아니, L의 목소리가 Y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그리움으로 없어지지 않았다.
첫댓글 이해력이 딸려서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K와L은 동일인물..??? 음ㅋㅋ 왠지 이니셜로 넣으니깐 색다른데요 ^^
네 소설에 나와있듯 K와 L은 동일인물이예요!
아 .. 정말 좋군요 K가 환상속의 인물이라고는 생각했지만 L의 다정함이 K였을 줄은요 , 너무 잘봤어요 '-'
잘보셨다니 좋네요. 소설 처음 쓸때 K를 생각하다가 이야기가 어떻게 이어졌네요, 혹시 억지스럽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ㅁ;
번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다시 이어지는 ~
그렇죠? 저도 쓰다보니 약간 뭐가 부족한 거 같기도 하고... 번외를 써도 될 거 같은데.
K와 L이 동일인물이었군요.. 남자가 너무 불쌍한걸요 ㅠㅠㅠ 정말 잘 읽었습니다.. 번외 기다려도 될까요?
L의 이야기 번외편 원하신다면 써드릴게요. 히히히.
아ㅠㅠ댓글부터읽고말았어요ㅠ.ㅠ결말을알고봐도멋진소설이네요~!
이런 댓글부터 먼저 읽고 보시다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