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이 중순을 넘겼다.
어린학창시절 난 이맘때가 되면 아니, 그 시절은 누구나 그리했던 것 같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면 준비 할게 있다.
우선 주변에서 작년에 새 책을 구입했던 형, 누나한테
물려받을 책(교과서)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것마저 물려받지 못하면 이곳저곳 헌책을 스스로 구하여야만했었다.
그러니까 가격은,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화폐가 “환”에서 “원”으로
바뀌면서 기억으론 헌책이 권당 5원씩 거래? 되었으며.
그이후도 계속 오르는 것도 없고 내리는 것도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 새 책을 신청 구입하기는 하지만 어디 그런가,
농촌에 구차한 살림의 실정이 그러진 못한 것 같다.
한반에서 새 책을 구입한다하면 잘해야 20-25% ? 정도다.
난 늘 거기에 끼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어쩔 수없이 새 책을 구입해야 하는 때가있다.
문교부에서 교과서 내용을 변경하는 그때는 선생님이
미리 무슨 어떠한 틀린 과목은 미리 공지하기 때문이다.
내가 헌 책값과 화폐단위가 언제 바뀌었나 생생이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2학년이 되자 담임선생님이 다른 학교에서 부임하신 “이영옥”여선생님이었다.
그것도 낭자머리에 비녀를 하시고 나이가 많으셔서 모두가 어머니 선생님으로 불렀다.
먼저 학교에서도 그렇게 불리었단다.
그때“학급비”란 것이 있었다.
아마 “기성회비”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학급비란 것이 그 학급에서 필요한 소소한 물건을 구입하고
학습에 필요한 환경정리에 사용하지 않았나싶다.
여튼 다달이 거출 했나 아니면 분기에 낸 나 모르지만 20환씩
낸 것으로 기억된다.
으레 아침 1교시시작하기 전에 먼저 돈은 내 도록 한다.
20환을 들고 선생님께 갔었는데, 이제 이런 돈은 안 받는단다.
1원짜리 종이돈을 보여주면서 새로 나온 돈을 가져오라 하시며
반 전체 아이들에게 1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두개를 가져
와야 한다했다.
지금생각하면 내가 어릴 때부터 못된 성질머리가 있지 않았나 싶다.
20환의 동전을 다시 가지고 들어오는데 부끄럽고 어린 맘에 자존심이
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하면 무서운 분이시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가지고 들어오다 휙 돌며 칠판에 던져버리고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치고 나오긴 했는데 어찌나 뒷일이 무섭던지 화장실에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덩치 큰 급장이 잡으러 왔다.
끌려간 후 선생님한테 종아릴 디지게 맞았다.
어찌나 아프고 분하던지 어린 맘에 겁도 없이 복수심?이 아니
그냥 선생님을 놀려주고 싶었다 해야 옳을 것이다.
학교 교실이 모자랐던 관계로 그다음 주에는 오후반이 되어
점심을 먹고 등교하여 늦게 학교공부가 다 끝나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 한참 넘었는데 집에 안가고 선생님이 집에 가기만 기다려
선생님 퇴근길 골목에 숨어 기다리었다.
드디어 오후 늦게 혼자 걸어오시는 걸 보았다.
백노지(갱지)로 만든 작기장을 쭉 찢어 미리 준비한 질퍽한 소똥을
주먹 만 하게 뭉쳐 싸 들고 선생님이 지나가기만 기다렸다.
선생님이 지나가신 후 흙 담장 밑에서 나와 “어머니선생”하며
동시에 소똥을 던지었다.
선생님이 고개를 돌릴 틈도 없이 질퍽한 소똥이 선생님 등에서 터지고...
아마 그때 선생님 흰색 저고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난 꺾어진 담장을 따라 뒤도 안보고 뛰어 집에 왔다.
그리고 이튼 날 난 선생님과 눈을 안 마주쳤다.
선생님이 날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그때 벌을 받아 이 모양으로 사는가도 모른다.
아마 그런가보다...
죄로 따지면 큰 죄가 아닐 수 없다.
제자는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데
배우는 어린학생 놈이 공책을 찢어 소똥을 싸고 또 그것을
선생님의 등에 던졌으니 말이다.
아주 싹수가 노란하지 못해 아주 말라비틀어진 놈이다...
참! 그래 그렇게 새 학기가 시작되면 새로 구입해야 하는 것이
아니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갱지(신문용지)전지(지금의A0)를 구입하여 16절(A4)로 접어
가운데 접은 곳을 바늘로 듬성듬성 잘 꿰매 공책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나만의 노트인 것이다...
이제 10여일만 있으면 입학도 할 것 이고 새 학년이 시작 될 것이다.
나도 누런 백노지로 만든 나만의 노트를 가지고 학교에 가고 싶다.
내가 만든 공책의 모서리가 가지런하지 않아도 좋다.
공책을 바늘로 꿰매다 손을 찔러도 좋다.
가방이 아닌 보자기에 헌책을 싸서 둘러메고 가도 좋다.
그래서 그때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잘 못을 빌고도 싶다.
갈 수만 있다면...
아니 가더래도 술은 깨고 가야 한다...
- 쳨 -
첫댓글 나둥.
클바누 오랜만^^ 근디 모가 나둥이야?
술은 깨고 가야한다. ㅎㅎ
ㅋㅋㅋ
ㅋㅋㅋ
그래야 겠지. 술은 깨고 가야겠지...
과거를 묻지마오~~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용서를 비심이~~ㅎㅎ
비오날이면 요소푸데를 목부분하고 어깨가 나오게 양옆을 찢어 비옷대신 쓰고 왔던 그시절~~
그래두 비닐 푸데는 고품격 비 옷 임.ㅋㅋ
순한 사람이 화나면 무섭다드니 정말... (자존심이 엄청 댑따 상하셨던 듯) 소똥 던지는 어린 꼬마 상상해보며 오늘 아침도 상쾌하게 출발합니다.~
실은 지가 학급비를 가져오라는 기간에 못 냈을 겁니다. 아마 독촉에 독촉을 받은 상황에서 가져온다는 것이 구 화폐를 가져왔으니. 그랬을 겁니다. 아니면 공교롭게도 선생님이 기분이 안 좋았던 아침 이었나 모르고요. 여튼 그 상황에서 나에게 한말이 듣는 나 어린 맘에도 거부 반응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
한 성질 하셨네요...
오라비가 믿음직? 스럽제? ㅋㅋ
전혀 그럴학상 같지가 않더니 왠 일이었데요? 감히 그림자도 밟지 못할 그런 선생님께..그 어린것이 얼매나 속상했으면,,ㅎㅎㅎ
어설피 맞아서. 흠씬 맞아야 하는데 ㅋㅋㅋ
어쩌면 셈님께서 보시고도 못본 척하신건 아니신지...내두 이쁜 문구류를 보면 어릴때 생각이 나면서 무조건 사고픈 생각이드는데...오죽했음 친구들이 팬시점을 차리라는 말까지...ㅎ
전혀 눈치. 아니 못 봤음. 들키거나 눈치채게 그렇게 어설프게 시도 할 나가 아니져. 글구 나가 어릴 때 체구는 작았어도 쌈꾼이었습니다. 울 반에서 나이 많고 덩치 큰 몇몇만 제외하고 전부가 날 못 건드렸음. 요건 울 엄니가 인정했던 사실임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