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도 늙어간다… 20대이하 헌혈 18년새 30만건 줄어
5060 헌혈비율은 같은 기간 10배로
헌혈가능 인구는 줄어 수급 비상
“많은 사람 참여 헌혈문화 조성해야”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혈의집 광화문센터에서 김의중 씨(61)가 헌혈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헌혈의 11.7%는 김 씨와 같은 ‘5060세대‘가 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에 따르면 만 70세부터는 헌혈을 할 수 없다. 이한결 기자
200회 넘는 헌혈 기록을 가진 최민규 원광대 의대 명예교수(해부학교실)는 다음 달 25일 생일이 지나면 헌혈이 불가능해진다. 현행 혈액관리법 시행규칙이 ‘만 70세 이상’의 헌혈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제자들에게 헌혈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하다 ‘모범을 보이자’는 생각에 50대 중반부터 헌혈을 시작했다”며 “건강 상태가 사람마다 다른데 70세라고 일률적으로 헌혈을 금지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최근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70대 이상 인구가 늘고, 수혈이 필요한 고령층도 덩달아 증가하고 있지만 헌혈 가능 인구(16∼69세)는 줄고 있어 혈액 수급난이 만성화되고 있다. 전문가 사이에선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혈액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만큼 헌혈 연령 제한 재검토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장년층 헌혈 비율 10배로 올라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헌혈 건수는 총 277만6291건이다. 이 가운데 11.7%는 50∼69세 장년층의 헌혈이다. 전체 헌혈에서 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5년만 해도 1.2%에 불과했으나 18년 만에 10배로 높아졌다. ‘헌혈 정년’인 70세가 돼 헌혈을 그만두는 이도 늘고 있다.
반면 헌혈 가능 인구(16∼69세)는 2018년 3946만309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5년 만에 60만 명가량 줄었다.
인구가 줄어도 젊은 층의 헌혈이 늘면 혈액 확보에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은 반대다. 20대 이하(16∼29세)의 헌혈은 2005년 186만7188건에서 지난해 152만8245건으로 30만 건 이상 줄었다. 여기에는 최근 대학 입시에서 헌혈 실적을 ‘개인 봉사활동’으로 제출하지 못하게 되면서 고교생들의 헌혈 참여가 줄어든 영향도 있다.
이 때문에 외출이 줄어드는 겨울철만 되면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리는 모습이다. 안정적 수급을 위해선 최소 5일분의 혈액을 비축해야 하는데 24일 현재 혈액 재고량은 4.7일분에 그친다. 특히 A형과 O형 혈액은 보유량이 3.6일분씩에 불과하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갈수록 헌혈 가능 인구가 감소해 혈액 수급에 어려움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 미국 영국 호주 등 헌혈 상한 연령 없어
1971년 혈액관리법이 생길 때 헌혈하는 이들의 건강을 고려해 ‘64세 이하’만 헌혈을 할 수 있게 했다. 당시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62.7세였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2022년 82.7세로 높아졌지만 헌혈 정년은 2009년 ‘69세 이하’로 한 차례 조정된 채 유지되고 있다.
미국은 헌혈 연령 상한을 두지 않고, 영국 호주 등은 젊었을 때 헌혈을 한 경우 연령 제한 없이 헌혈할 수 있게 한다.
2022년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해외 사례 등을 감안해 의사가 건강하다고 판단할 경우 70세 이상도 헌혈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혈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보건복지부 혈액관리위원으로 활동하는 이희복 상지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는 “한국은 일부 헌혈자들이 100번, 200번씩 헌혈하는 걸 바탕으로 혈액을 수급하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젊은 층도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헌혈 문화를 조성해야 혈액 수급이 지속 가능하게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