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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8편 -
그날따라 하늘은 매우 높았다. 매우 더운 여름이었고, 매미소리가 너무나도 크게만 느껴지는 날이었다. 아저씨와 만나기로 한 지 1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저씨에게 계속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았다. 문자와 전화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받지 않았고 걸려오지도 않았다.
“ 오다가 넘어져라. 코가 깨져라. 다리나 부러져!”
너무 심하게 말한 것 같아 다시 정정하는 나였다.
“ 아니, 오기만 해라”
한숨을 쉬고 건널목에서 가까운 곳을 보았는데 이상하게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때에는 아저씨 생각 때문에 그 검은 연기의 정체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가게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나와서 가게에 무엇을 뿌리고 있었다. 점점 이상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액정에 ‘아저씨’라고 뜨자, 나는 얼른 받아 왜 안 오냐고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그리고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 지금 ○○ 병원인데요. 강지환씨가 지금 많이 다쳤어요. ]
내 머릿속은 백지화되었다. 혹시 내가 아까 했던 말 때문이라는 어이없는 생각까지 해보는 나였다. 많이 다쳤다는 말에 나는 얼른 택시를 세워 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택시 밖으로 보이는 장면은 내가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의 결과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빠르게 번져나가며 불타오르고 있었다.
“ 이은하!”
나를 부르는 소리에 꿈에서 깨어버렸다. 환자복을 입고 내게 달려오는 녀석은 진우였다.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숨이 거칠게 쉬었다.
“ 여길..”
“ 너 괜찮아? 정말 살아 있는 거야?”
내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며 묻는 녀석이다. 많이 놀랐는지 사색이 되서는 찾아왔다.
“ 괜찮지. 아!”
“ 뭐야, 괜찮아? 어디 아픈 거야?”
일어서려는 데, 등 뒤가 따끔했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던 진우가 내 몸이 밀착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괜찮다고 말하고는 진우를 밀쳐내자, 진우는 쉽게 밀려나갔다. 진우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분명 날 이상한 얼굴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하다.
“ 나랑 같이 왔던 애는?”
“ 몰라”
쓰러져 있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보였고 곧 간호사가 내려와 내게 환자복을 건네주었다. 그 간호사에게 내가 나랑 같이 실려 온 사람들에 대해 묻자, 병실호수를 알려주며 그곳에 잘 있다고 말해주었다. 다행이라고 낮게 말하는데 옆에 있었던 간호사가 진우를 보고 꾸짖는다.
“ 하진우씨! 지금 여기 내려와 계시면 어떻게요! 지금 주사 맞을 시간인데!”
“ 아줌마 여기 담당도 아니면서 괜히”
“ 김 간호사가 지금 진우씨 얼마나 찾고 계신 줄 아세요? 얼른 안 올라가요? 당장 병원장님한테 전화 걸어요!”
여기 병원장님이 진우씨 아버지인가 보다. 그러니 모두들 진우를 알고 있는 눈치였고 협박을 하며 되돌려 보내려고 했다.
“ 저기 혹시 제 보호자한테 전화하셨어요?”
내가 묻자, 간호사 분께서는 고개를 끄덕인다.
휴, 아저씨가 또 뭐라고 하겠네.
“ 저 괜찮아요. 이 링거만 다 맞고 갈게요.”
“ 옷이 다 젖어서 감기 걸리실 것 같은데요.”
“ 야, 얼른 갈아입고 와! 너 병원에서 안정을 취해야 된데!”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가지고, 안정이다 뭐다 하는 녀석이다. 아까 무너지는 것을 피하다가 등을 다친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젖어있는 교복이 찝찝해 얼른 갈아입고 싶은 마음에 나는 환자복을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 내가 도와줄까?”
“ 변태”
“ 은근 어렵다. 환자복 입기”
“ 백번도 더 많이 갈아입어봤어”
어렸을 때,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었던 적이 있었으니깐, 백번이 뭐냐. 하루에 한 번씩 치자면 백번은 너무 작은 숫자에 불과했다.
“ 뻥쟁이”
귀여운 척은.
옷을 갈아입고 화장실 거울로 등을 보자,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흉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저래 여기저기 상처가 생겨 속상하기만 하다. 간호사 언니에게 말해둬야 할 것 같았다. 젖은 교복을 들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자 그 녀석은 툴툴거리며 내 교복을 빼앗아 든다.
“ 미친 짓이었어.”
“ 알아”
“ 알면서 왜 그런 짓 했어?”
그 녀석은 심각하게 내게 물었다. 애교가 섞인 장난스런 말투였던 녀석이 심각해지자, 웃음이 나왔다. 진우는 웃는 내가 못마땅한지 내 머리를 콕 때리고 말았다.
“ 아! 너!”
내가 눈을 째리자, 그런 내가 귀엽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이럴 때 보면 우리 둘 다 바보가 된 기분이지만, 이 기분도 나름 좋았다.
“ 다시는 상처주고 싶지 않았어.”
“ 만약 그 일로 어떻게라도 되었다면 내가 상처받았을 거야.”
내가 피식하고 웃자, 또 내 머리를 콩하고 때리려고 하는 지 내게 달려든다. 내가 피한다고 했는데 피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되자 곧 잡혀버렸다. 그런 사이에 간호사 언니께서 내게 왔다. 링거를 다 맞은 것 같다며 빼주겠단다. 내가 빼도 되는 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을 꼭 다물었다.
“ 등 좀 봐줄 수 있나요?”
내가 조심스레 묻자, 간호사 언니는 알겠다며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진우 녀석도 들어오려고 하자, 간호사 언니는 들어오지 말라면서 커튼을 휙 소리 내어 친다.
“ 어머! 안 아팠어요? 이거 잘하면 상처 생길 수도 있겠다.”
“ 그래요? 휴. 시집 다 갔네”
장난스럽게 건넨 말에 간호사 언니는 웃었다.
“ 좋은 약 줄 테니깐 엄마한테 발라달라고 그래요. 계속해서 신경써주면 안 생길 거예요.”
엄마는 없는데...
엄마 같은 아저씨는 있지만.
“ 왜 이렇게 말랐어요? 다이어트 심하게 하지 마세요. 그러다가 골병난다고요.”
내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시는 간호사 언니가 싫을 만한데 싫지 않았다.
“ 아줌마! 그만 잔소리해! 내 친구가 무서워하잖아”
밖에서 진우가 소리치자, 간호사 언니는 발끈해서 내 등을 꾸욱 눌러버렸다. 내가 소리 내어 아픈 소리를 내자
“ 아, 이런. 미안해요! 저 녀석이! 당장 병실로 안 올라가?”
간호사 언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커튼이 열리더니 살짝 땀에 젖어서는 내 이름을 부르는 아저씨가 보였다. 등이 훤히 보이고 있었다. 아저씨 너머로 그 녀석이 머리를 긁적이며 나를 보고 있었고 나는 얼른 몸을 가려야만 했다.
“ 보호자 분이신가보네요. 지금 약 바르고 있으니깐 잠시만..”
아저씨는 또 간호사 언니의 말을 싹둑 무시하고는 내게 다가와 나를 안아버렸다. 은근슬쩍 닿는 손길에 움찔거렸다.
“ 미안해요”
걱정만 끼치게 하는 것 같아서 미안해. 아저씨.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어쩔 수 없다는 거지만. 이번에는 정말 어쩔 수가 없었는걸요.
내 책임도 없지 않아 있던 거였으니깐.
내가 아저씨의 등을 토닥이자 아저씨는 나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헛기침을 하며 간호사 언니에게 죄송하다고 하고는 밖으로 나가면서 커튼을 친다.
“ 누구예요?”
간호사 언니는 다시 내 등에 약을 발라주며 물었다.
“ 예비 애인이요.”
* * *
『목격자를 찾습니다.』라는 광고가 보였다.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큰 플랜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나는 그 플랜 카드를 보고 경찰서로 연락했다. 그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도착한 나는 어떤 경찰 아저씨의 안내를 받고 조사실로 향했다. 말끔하게 차려 입고 앞에 앉아 있는 아저씨의 얼굴이 보였다. TV에서 봤던 형사의 이미지와는 너무 달라 조금 놀랬다.
“ 안녕하세요.”
내가 인사하자, 자신도 고개를 까닥하고 인사하고는 이름을 밝혔다. 이름이 ‘탁사마’라는 말에 내가 웃자, 그 형사 아저씨는 헛기침을 하며 웃지 말라고 무언의 압박감을 주었다. 형사 아저씨는 그 때의 상황을 말해달라고 했기에, 나는 그 때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형사 아저씨는 내 이야기를 듣고 노트북에 뭔가를 쓰는지 ‘탁!탁!’ 타자소리를 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 그 사람이 무언가를 뿌리고 있었단 말이죠?”
“ 네.”
“ 그리고 바로 불이 났고요?”
“ 네”
내가 대답하는 동시에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꾀죄죄한 옷차림의 여학생이 내게 달려들었다.
“ 똑바로 말해! 아니잖아! 누구한테 사주 받은 거야!”
이 아이를 알고 있었다. 우리 반 반장이었다. 성적도 좋은 편이었고 얼굴도 예쁘장해서 반 아이들이 좋아했다.
“ 저기..”
“ 아빠는, 아빠는 자살할 분이 아니란 말이야! 절대로 우리를 두고 죽지 않는다고! 네가 뭘 안다고 그래! 흑흑. 절대로 우리를 두고 가지 않는다고”
난 기막힌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도와주려고 했을 뿐이었다. 혹시나 방화범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를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뜻밖의 이야기로 전개되어갔고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 김지애학생, 이 학생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
“ 악!!!! 엄마. 아빠!!!!! 흑흑흑 거짓말 하지 말란 말이야! 거짓말이야! 얼굴 봤어? 정확히 봤어? 봤냐고!!!! 흑흑”
내게 따지 듯 묻는 녀석의 눈동자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형사 아저씨는 지애를 내게 떨어뜨려내며 말했다.
“ 학생, 사업이 망해서 사채 빚이 10억이 넘고, 유서까지 발견되었어요. 이젠 인정하세요.”
“ 아저씨, 그래도 말이에요. 우리 아빠는 먼저 죽거나 하지 않아요. 나를 버려두고”
“ 학생, 이 얼굴이었나요?”
내게 사진을 들이밀며 묻는다. 지애는 내게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아니라고 대답하란다. 아저씨는 묵묵히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빠는 먼저 죽거나 하지 않아요. 나를 버려두고.’
김지애는 모르는 게 있었다. 아무리 착하고 멋진 아빠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때면 어떠한 선택도 하게 되어있다는 걸 말이다. 너희 아빠가 빚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우리 아빠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죽음을 선택했으니깐.
김지애. 울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
슬퍼하지 마.
인정하지 않으려 애쓸수록 돌아오는 건 슬픔과 외로움이니깐.
“ 그래서 뛰어들었어?”
아저씨는 환자복 입은 나를 보고 윗옷을 벗어 내게 걸쳐주며 말한다. 왜 뛰어들었냐는 질문에 나는 지애와 엮였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그 동안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고 일주일 후, 지애는 전학을 갔다.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그 때 마침 우리도 이사를 해야 했기에 전학을 가야만 했던 것이다. 딱히 예전에 있었던 학교에 미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새로운 것에 적응하는 것이 싫었었다. 아무튼 전학 왔던 나는 그 곳에서 지애를 만났다. 전학 올 당시에는 우리 반이 아니었지만 2,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다. 나를 모른 척하고 지냈기 때문에 나 또한 그렇게 지냈다.
“ 도와주고 싶었으니깐, 상처주고 싶지 않았으니깐”
“ 결과가 어땠든.”
“ 알지만”
“ 휴.... 그래, 다시는 그렇게 무모하게 뛰어, 아니. 그러니깐 내 말은... 미안하다”
아저씨는 운전하다가 나에게 시선을 두었다. 신호가 걸린 상태였다. 아저씨는 내 눈을 맞추다가 곧, 이내 시선을 피해버렸다. 그리고 무언가 신경 쓰이거나, 불안할 때 검지를 일정한 박자로 핸들을 두드렸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그 동안 내게 친구를 만들 수 없게 한 이유인지, 아니면 김지애에 대한 일? 아니면 다치게 된 일? 아니면 다 일까?
묻고 싶은 것이 많지만, 묻지 않아도 아저씨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저씬, 어쩌면 내가 생각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뭐가요?’라고 물으면 분명 아저씨는 ‘이거 저거 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묵묵부답으로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버릴 것이다. 난 그래서 묻지 않았다. 아저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이라도 난 괜찮다고 생각했다.
“ 나 시집 다 갔데요”
“ 왜?”
“ 등에 상처가 날지도 모른데요.”
“ 뭐?”
“ 내 등에 상처가 난 것보다 엄마가 없으니깐 슬퍼요.”
“ ......”
“ 엄마가 발라주라던데”
아저씨는 긴 침묵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내 쑥스러운 듯 차 밖의 백미러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한다.
“ 시집”
“......?”
“ 나한테 오면 되지”
풋.
귀엽게 헛기침을 하고서는 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절대로 내 마음과 같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저씨는 나와 같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말이다.
“ 네”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쑥스럽기도 했지만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분명 아저씨한테는 내가 어린 꼬마처럼 보이겠지만 마음만은 절대로 꼬마가 아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내 마음은 진정이니깐, 절대로 쉽게 볼 수 없다고 말이다.
집에 도착해서 씻은 후에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소파에 앉아 아저씨의 코코아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영미언니가 급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언니는 헐레벌떡 와서는 내 상태를 이리저리 둘러본 후 안도의 한숨을 내리쉬었다. 아마도 어디선가 내 소식을 듣고 걱정되어 달려 왔나보다. 아저씨는 내게 코코아를 건네주었다.
“ 괜찮은 거야?”
영미언니는 아저씨에게 물어본다. 내게 물어봐도 되는 것을 말이다. 아저씨는 고개를 까닥인다.
“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 헤헤”
“ 이게 어린 것이 어른 놀라게 하는 데 뭐 있어!”
“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내가 궁금해서 묻자, 언니는 TV뉴스를 보고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씻는 사이에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었고 아저씨는 내가 집에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 얼굴 나왔어요?”
“ 뭐 언듯 나오긴 했는데 잘 모를 거야.”
언니는 ‘에고고’라는 말을 하며 소파에 편하게 누웠다. 요즘 많이 피곤했는지 얼굴이 참 안되었다. 언니에게 내가 먹기 전의 코코아를 건네주었다. 언니는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물었다.
“ 등에 문신 생길 것 같아요.”
장난으로 했던 말에 언니는 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장난이었는데 참.
“ 언니, 그런 얼굴 하지 마요. 정말 괜찮아요. 살짝 데었을 뿐이에요.”
“ 다시는 그러지 마”
언니는 나를 꼬옥 안고서는 말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진심으로 걱정 받는 다는 거, 귀찮은 게 아니라 기분 좋고 행복한 느낌이 든다는 걸 새삼스레 느꼈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것도 어쩌면 어떠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니는 오늘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겠다며 씻으러 들어갔다. 아저씨는 언니가 들어가자 내 옆에 앉았다. 내가 아저씨에게 어깨를 기대자 아저씨는 내가 편할 수 있도록 몸을 낮춘다.
“ 피곤해?”
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꼭 감았다. 아저씨의 숨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 졸려?”
내가 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방에 가서 자야지”
“ 조금 만요.”
이번에는 아저씨가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나를 품에 안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솔직히 피곤하긴 했지만 졸리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 있었는데 방에서 달칵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영미언니가 나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이대로 잠든 척을 해야 할지, 일어나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이에 결국 선택의 여지없이 자는 척을 해야만 했다.
“ 편하게 입을 옷? 어?”
“ 쉿”
“ 피곤했나보네, 방에 옮겨야지”
“ 조금만”
영미언니는 뭐라도 먹을 생각인지 냉장고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 뭐?”
“ 조금만 더 있다가”
“ 흠....”
영미언니가 무엇을 먹는지 아삭 아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이 든 것 같다. 아저씨는 나를 아기처럼 안아 방에 눕혔다. 그리고 내 머릿결을 쓰다듬어주며 이불을 덮어준다.
“ 너 혹시?”
아저씨는 ‘쉿’소리를 내며 방을 소리 없이 나갔고 그리고 방문이 닫혔다. 밖에서는 언니의 환호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아마도 난 잠의 나락으로 빠져든 것 같았다.
* * *
" 언제부터야?"
은하를 침대에 눕히고 나와 내게 달려들어 묻는 영미의 모습이 먼저 비추어졌다. 영미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조금은 머쓱해하며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자, 괜히 부끄러워한다며 자신 일처럼 부끄러워한다.
“ 술 할래?”
“ 응?”
“ 술”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눕고 싶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이 녀석과 함께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술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항상 그 녀석이 오면 탐냈던 스카치블루 17년산을 꺼냈다.
“ 아줌마 왔다 가셨나? 과일이 잔뜩 있었으면 좋겠는데”
은하가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라 아주머니에게 과일을 시도 때도 없이 사다놓으라고 당부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밥을 잘 챙겨 먹지는 않았지만, 과일을 좋아했던 은하는 밥 대신 과일과 코코아를 대신하기도 했다.
“ 너네 집에 오면 이런 과일들을 많이 먹을 수 있어서 좋단 말이야!”
“ 얼른 앉아”
고개를 까닥이며 여러 과일을 다과 칼로 깎기 시작하고 접시에 예쁘게 올려놓았다.
“ 고백한 거야?”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림짐작해버리는 녀석이다.
“ 은하가 많이 좋아했겠다. 알면서도 너도 참 대단해. 은하는 뭐라고 대답해?”
또 내가 아무 말 없자, 머리를 갸우뚱하더니
“ 혹시 내가 착각한 거야?”
“ 아니”
조심스럽게 말하자, 조금은 실망한 기색이다.
“ 축하해”
과일을 깎다 말고 웃으며 말한다. 그것이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걸 느끼게 했다. 그런 녀석에게 스카치블루를 따라 주었고 잔을 들었다. 그러자 녀석도 따라 잔을 들고는 ‘챙’소리가 나게 부딪치고는 벌컥벌컥 마신다. 항상 독한 양주를 먹고는 과일을 꼭 입에 챙겨 넣더니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 축하해, 임마”
“ 뭘 말이지?”
“ 조금은 용기를 낸 거 아니야?”
그리고 다시 내 앞에 놓인 술을 자신의 잔에 따르더니 마셔버린다.
“ 아직 뭐다 할 단계는 아니지만, 은하를 마음에 넣는 걸 허락했다는 말 아니냐고”
끝말은 하기가 힘들었는지 술잔에 남긴 술을 조금씩 먹으며 말했다.
“ 아, 조금은 괴롭네. 사실 너희 둘 잘 되길 빌었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참”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릿속으로 열심히 단어를 고르는 중일테다. 녀석은 가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저렇게 눈을 굴리며 생각하곤 했으니깐 말이다.
“ 무튼, 축하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었지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몰라서 그저 그 녀석과 술 상대를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몇 잔을 들이키던 녀석은 눈이 살짝 풀려있었다. 얼굴을 여러 번 세차게 때려 희미해지는 눈을 손 등으로 여러 번 비벼 덴다.
“ 이제와 궁금한 거지만 너네 어떻게 같이 살아?”
“ 사람들은 왜 그런 게 궁금한지 모르겠군.”
“ 네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님 내가 이상한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내가 궁금하다는 거지.”
“ 빚을 졌어”
녀석은 눈은 풀려 있었고 이젠 탁자에 얼굴을 턱에 묻었다. 그리고 잠시 뒤, 불규칙했던 숨소리가 천천히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 그 분을 지키지도 못했어. 지키지도 못한데다가 내 손으로 쏴버렸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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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 했고 여러가지 일이 많았답니다.
지애와의 일을 풀어버렸습니다.
이젠 지환과의 일이 남았네요.
무튼 제 글로 인해 행복한 누군가가 있길 빌며
특별한 낙원 팸원 비야 올림.
PS. 미아사랑 고마워!!! 언제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