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위한 의자
김가영
그가 자연을 떠나게 된 날을 상상해 보고는 한다.
화창한 날이었을까. 아마 그랬을 것이다. 비가 내리면 벌목을 하기 힘들어지니. 생명의 소리만이 가득한 숲속에 쩍, 하며 나무가 드러눕자 빽빽했던 숲의 하늘에는 빛의 호수가 생겼다. 나무가 누워 하늘을 바라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숲속을 떠들썩하게 울린 새들의 소리가 그의 마지막 모습을 위한 것이었다면 애처로운 가지들의 떨림이 덜했을까. 목수의 사포질이 기도를, 탕탕거리는 못질이 태동을 닮아서 나무는 자신의 새로운 탄생을 톱밥으로 울어냈을까. 여러 공정을 거치는 동안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를 예전 이름으로 불렀다. 이거 참 좋은 나무네. 손아귀에 들어갈 만큼 얇아진 모습으로도 아직 자신이 나무라는 사실이 이상했을 것이다. 매끄럽게 갈린 표면에 발라진 반짝이는 껍질만큼이나. 그가 쿠션을 버거운 왕관처럼 올리고 창고를 떠나던 날 목수는 거친 손이라도 한번 흔들어 줬을까.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이삿날 나보다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은 가구들 사이에 의자가 있었다. 침대와 화장대 사이 빈 곳에 알맞게 들어가 있었다. 적당히 낡은 가구들 사이에 제법 낡은 의자는 자신의 존재를 가만히 숨기고 있었다. 눈치라도 보듯. 엄마는 정성스럽게 의자의 먼지를 걷어냈다. 옆으로 눕히고 걸레를 몇 번이나 새로 빨아가며 구석구석 먼지를 씻어내려 했다. 의자는 전에 살던 주인의 것이라고 했다. 아이들 방이었던 그곳에 아이들은 떠났고 방에는 색을 잃은 의자만이 굳은 허물처럼 남았다. 그제야 그의 낮은 존재의 채도가 이해됐다. 등받이도 모서리도 없이, 네모나지도 도톰하지도 않은 방석은 세월이라는 무심함 속에 덮여 있었다. 양동이 속 맑은 물이 탁해지고 나서야 엄마는 손을 멈췄다. 먼지를 닦아내고 보니 분홍 꽃무늬 쿠션의 낮은 나무 의자였다.
“닦으니까 쓸만하네.”
엄마는 이음매에 튀어나온 천 조각을 손바닥으로 털어냈다. 그렇다고 달랑거리는 천 조각이 붙는 것도 아니었지만 몇 번이나 같은 곳을 쓸어냈다. 엄마의 손은 늘 아픈 곳에 먼저 가 닿았다. 튀어나온 솜 한 조각을 손톱으로 밀어 넣고 이제 됐다는 듯 의자를 다시 화장대 사이에 세웠다.
“엄마 그 의자 여기 두려고?”
“응 빈자리에 딱 맞네. 이제 네 옆에 있을 때 침대 말고 의자에 앉으면 되겠다.”
“우리 것도 아니고, 그리고 이건….”
의자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들어 보는 엄마의 모습이 침대에 걸터앉을 때보다 편해 보여 나오려는 말을 멈췄다. 안에서 이어지지 못한 말들이 거품처럼 올라왔지만, 입 밖으로 꺼내면 날카로워질 것들이었다.
“응. 딱 좋네.” 마른침이 따갑게 목을 넘어갔다.
의자는 방안의 가구 중 내가 사용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물론 내 방을 찾은 사람들에게 잠시 휴식을 주는 건 다행이었지만 그 휴식을 나만 가질 수 없다는 건 썩 유쾌하지 않았다. 나의 공간에 자리 잡은 내 것이 아닌 물건. 사물에도 표정이 있다면 저 의자는 지금 울상일 것이다. 눈이 있다면 시선을 바닥에 떨구고, 있지도 않은 이를 악물고 옹이로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이유 없는 미움이란 그런 것이었다. 자꾸만 바닥에 달라붙게 만드는 것. 그 기분을 알면서도 미운 눈으로 의자를 바라보았다.
어릴 때는 작은 공통점을 가진 것만 보면 다 친구라고 불렀다. 목소리가 큰 아이는 목청 큰 수탉이 친구고, 씻기 싫어하는 아이는 까만색 숯덩이가 친구였던 것처럼. 나의 친구는 모든 다리 달린 존재들이었다. 작은 접이식 식탁, 장롱, 고장 난 리어카와 안경. 다리를 가졌지만 걷지 못하는 존재들은 내 친구였다. 물론 입 밖으로 그들을 친구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아무리 어려도 그 말이 엄마를 슬프게 할 거라는 건 알았다. 그래서 혼자만의 비밀 친구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상상했다. 우리가 다 함께 걷게 되는 날을. 장롱도 대문 밖을 나서고, 리어카도 삐거덕거리며 언덕을 오르고, 안경도 담장마다 무지개색 그림자를 새기며 뛰어다니는 상상. 그리고 그사이에 나를.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의 동심은 한 겹 한 겹 성장이라는 옷을 갖춰 입었고, 과묵한 옛 친구들은 입이 없어 서운하다는 소리도 하지 못했다. 가끔 일상에서 문득 그들의 존재를 느낄 때면 서둘러 마음의 옷깃을 여몄다. 나의 동심을 알아볼까 봐. 보드라운 그것은 어쩐지 수치심을 닮아 다시 내보이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다 큰 아이에게 그것은 사치스러운 것이라 그냥 모른 척을 했다. 마치 딱딱한 친구들은 사귄 적도 없다는 듯. 그렇게 순수한 우정의 공통점은 불편한 동질감이 되었다.
눈도 내리지 않는 겨울밤. 침대에 누워 발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무릎에서 멈춘 온기가 얼음장 같은 발끝까지 내려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고요한 방에 작은 소리가 들렸다. 끼익 거리는 것도 같고 속삭이는 것도 같은 소리가 어둠 속에 퍼졌다. 한 방울의 색으로 단숨에 물들어버린 투명함처럼. 어둠은 빠르게 두려움으로 짙어졌다. 벌레라고 하기에는 계절이 맞지 않았고 겨울의 불청객 쥐라고 하기에는 소리가 달랐다. 그러면 혹시…. 아닐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귓가에 울리는 심장 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의자가 걷는 걸까. 내 은근한 미움의 눈빛을 못 이겨 이 방을 떠나려고 하는 걸까. 그 딱딱한 다리로 마룻바닥을 끼익 거리며 끌고, 옹이로 숨을 몰아쉬며 문으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온 신경이 소리를 따랐다. 어둠 속에 형체를 녹여 온몸으로 바닥을 훑으며 그 다리를 찾고 싶었다. 그리고 그 뻣뻣한 다리에 매달려 따라가고 싶었다. 우리의 다리가 행진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허무한 믿음이 있던 때처럼. 염치도 없이 그 다리에 매달리고 싶었다. 그가 방을 나선다면 어디로 향할지는 짐작이 갔다. 숲으로 가겠지. 자신의 일부인 그루터기에게로. 너무 변한 모습이지만 숲은 그를 알아볼 테다. 그루터기는 아직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까. 혹시 옆구리에 작은 새 가지가 돋아났을까.
이불 속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뿌리내리려는 나무처럼. 계속 이어지는 소리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핸드폰 플래시를 켰다. 어쩌면 확신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플래시가 켜지자, 사물들의 영혼 같은 짙은 그림자가 드러났다. 손을 천천히 의자를 향해 움직였다. 그림자들도 나를 따라 시선을 돌렸다. 불빛이 마침내 그에게 닿았을 때, 그는 그 자리에 있었다. 늘 그렇듯 침대와 화장대 사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그림자만이 애석하다는 듯 점점 더 벽으로 붙었다. 그럼, 소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힘이 풀려 버린 손으로 핸드폰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며 방 한가운데를 비췄다. 그곳에는 다른 의자가 있었다. 다리 대신 네 개의 바퀴가 달린 나만의 의자. 빈 휠체어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는 아주 긴 여정 끝에 내게로 왔다. 한국에서 주문한 휠체어가 메이드 인 차이나 표를 달고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기까지의 길이 얼마나 멀었을지. 머릿속에 지도를 떠올려 그의 발자취를 그려보려 했지만 이내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길을 잃었다. 집 밖으로는 잘 나가지 않아 골목에서도 방향을 잡지 못하는 내게 그의 여정은 실크로드를 지나던 카라반의 행렬만큼이나 아득하게 느껴졌다.
“바닥에 기름칠한 것처럼 잘 굴러가지?”
아빠는 바퀴를 손으로 힘껏 눌러보고 휠체어를 앞뒤로 움직였다. 공기를 채운 고무바퀴는 바닥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던 이전의 딱딱한 바퀴와는 달랐다.
통통거리며 고개를 흔들게 하던 보도블록도, 추락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던 문턱도 부드럽게 지나갔다. 평지에서 스르륵 미끄러지듯 움직일 때면 깃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학년마다 자라나는 발에 맞춰 신발을 바꾸는 것처럼 나는 성장에 맞춰 휠체어를 바꿔야 했다. 그리고 새 휠체어는 앉았다기보다는 신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몸에 딱 맞았다. 비록 두 다리는 아니지만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바퀴들의 멋짐에 누구라도 공감해 주길 바랐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건 오빠였다. 휠체어가 놀이터의 미끄럼틀보다 더 신나는 것이라고 해주던 오빠. 녹은 사탕처럼 달고 진득하게 이어진 자랑에 오빠가 휠체어에 앉았다. 난 침대에 누워 그 모습을 보며 팔을 휘저었다.
“이렇게 이렇게 밀어봐!”
오빠가 바퀴를 잡고 밀자, 휠체어가 접시 위 얼음처럼 빙글 돌았다. 난 옆구리가 빵빵해질 만큼 숨을 마시며 깍깍댔다. 오빠도 내 웃음에 맞춰 더 빠르게 바퀴를 돌렸다. 우리의 떠들썩한 소리에 부엌에서 나온 엄마는 휠체어 탄 오빠를 보고는 잠시 굳었다. 그리고 등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화를 냈다. 당장 일어나라며 젖은 손으로 오빠의 등을 때렸다. 휠체어를 사고 누구보다 좋아했던 엄마의 예상 못 한 반응에 억울함을 삐죽거리려 했지만 신음 같은 말에 조용히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당겼다.
“내가 너까지 거기 앉은 모습은 못 본다.”
분명 등은 오빠가 맞았는데, 우는 사람은 셋이었다.
처음으로 휠체어가 부끄러웠다. 움직이지 않는 다리보다 나만 탈 수 있는, 탈 수밖에 없는 그 의자가 부끄러웠다. 그 후로 휠체어에는 누구도 태우지 않았다.
시간은 모래바람처럼 불었다. 세차게 스치는 그 기세에 무른 바위 같은 몸 위로 바람의 길목이 새겨졌다. 새것이던 휠체어도 소금 바람에 색을 잃어갔다. 닳아질 대로 닳아진 고무바퀴는 늙은 나귀처럼 숨을 뱉어내며 끼익 꺼렸다. 바퀴를 굴리던 팔도 사막의 식물처럼 점점 근육을 잃어갔다. 그렇게 낡은 수동 휠체어는 전동 휠체어로 바뀌었다. 그는 처음 내게 오던 그 모습으로 비닐에 포장되어 창고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가 새로운 이사를 앞두고서야 다시 나올 수 있었다. 이삿짐을 정리하던 엄마는 휠체어를 집 앞에 내놨다. 다시 수동 휠체어를 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묵은 먼지로 뒤를 따랐다. 다음날이면 쓰레기차가 가져갈 테지만 부디 오늘 밤에 비가 내리지 않기를 오랜 친구를 위해 잠시 빌었다. 하지만 소망이 구름에 닿기도 전에 집 초인종이 울렸다. 인터폰 화면에 여자가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어리둥절해 대문으로 나간 엄마는 한참 후 돌아왔다. 질문 가득한 표정인 내게 싱크대에 물을 틀며 말했다.
“밖에 내놓은 휠체어를 혹시 가져가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다 낡고 바퀴에 구멍이 났다고 했는데도 괜찮다네. 깨끗이 씻으면 된다고.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고.”
마른행주를 적셔 꾹 물기를 짜냈다.
“중풍 맞은 어르신이 있다네.”
엄마는 빈 식탁을 닦았다. 행주를 쥔 손가락이 잠시 하얘졌다가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휠체어가 다시 바퀴 굴리면서 달리게 해달라고 빌었나 봐”. 엄마를 웃게 하고 싶었던 말 뒤로 틈 같은 침묵이 파였다. 그러면 좋것다. 엄마의 마른 웃음이 틈을 메웠다. 그러면 쓰것어. 떨림이 침묵을 다독였다.
햇볕을 받고 자란 나무는 백열등 아래 그림자를 널었다. 의자가 된 그에게는 가지 대신 네 개의 다리가 있었다. 걸을 수 없는 다리였지만 그는 처음부터 그걸 원하지도 않았다. 나무는 본래 한자리에 뿌리를 내리는 식물이었다. 숲의 일부였던 그는 여전히 오고 가는 새들에게 그랬듯 자신을 내어줬다. 일어서는 이를 잡는 법 없는 그에게 미련이란, 장판 위에 새겨진 작은 뿌리의 흔적이 전부였다. 온 바닥을 휘저으며 자신을 갈아내는 고무바퀴는 이해하기 힘든 초연함이었다.
“엄마, 이삿짐에 작은 의자 실었어?”
“너 그 의자 싫다며 가져가려고?”
“응. 내 방에 오는 사람들이 앉으려면 의자가 있어야지. 마주 앉으려면.”
내 것이길 바랐지만 결국 그러지 못할 다리와 내 것이길 바란 적 없지만 평생을 함께해야 할 바퀴가 한 차에 실렸다. 타인만을 위한 의자와 타인이 되어야 가질 수 있는 의자가 새로운 방에 채워질 것이다. 지붕 없는 트럭에 시동이 걸렸다.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았다. 좋은 볕에 눈이 자꾸 깜빡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