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문학기행
- 하동 이병주문학관 -
강 문 석
시월 초, 문학기행 목적지를 하동 이병주문학관으로 정한 후 가장 먼저 작가의 소설 목록을 적은 쪽지를 들고 시립도서관을 찾았다. 하지만 ‘지리산’을 비롯한 소설집은 도서관에 하나도 없었다. 미리 책을 읽은 후 여행 참가자들과 차안에서 작가에 대해 나누면서 문학관을 찾아가겠다는 바람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경남 하동에서 출생한 작가 이병주는 일본 패망 1년 전인 1944년 학병에 동원되었고 마흔 중반에 늦깎이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1992년 타계할 때까지 27년 동안 한 달에 평균 1천여 매의 원고지를 소화해낸 초인적인 집필활동으로 80여권이나 되는 작품집을 남겼다.
문학관 근무자는 작가에 대해서 안내문에 나와 있지 않은 예민한 부분까지 우리 일행에게 들려주었다. 작가의 나이 쉰 무렵에 국가의 최고 권력자와 사적으로는 만나 밥을 먹을 정도로 가까웠다는 얘기로 시작했다. 군사혁명이 일어난 1961년 무렵이었다. 작가가 쓴 “나에게는 조국은 없고 산하만 있을 뿐이다”란 이 하나의 문장이 필화사건으로 번졌던 것이다. 그것은 ‘나의 조국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집권세력 너희에게 길들여지긴 싫다. 너희의 정치하는 방식은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였고 그는 10년 징역형을 받았지만 2년 7개월 만에 풀려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출소 후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이 문학으로 들어선 계기가 된다. 잘못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공포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첫 작품 ‘소설, 알렉산드리아’는 프랑스에 있는 동생이 이국의 낭만과 자신의 일상을 감방에 있는 형에게 끊임없이 편지로 전하는 내용이다. 감방을 하나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넓혀가는 소설은 작가가 감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알아낼 수 없는 요소들이 작품의 군데군데 숨어있는 자전적 소설이었다. 작품 제목에 소설 하고 쉼표를 찍은 것은 ‘이건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야’라는 의미가 들어있다는 것.
단편을 시작으로 중편 장편까지 80여 편을 쓴 것은 당시로선 신적인 경지에 이르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해설자는 ‘내가 소중한 만큼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소중하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물들에 대한 고마움과 소중한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작가는 작품을 썼을 것이라고 했다. 오래 전 현직 때 직장선배가 이병주 선생 얘길 들려주었다. 선생께서 경남 진주농과대학 교수로 재직할 때의 얘기로 학생들에게 곧 전쟁이 터질 거라는 걸 알려주더라는 것. 그때 나와는 띠 동갑이던 선배가 쉰 중반이었다면 난 마흔 초반이었을 터이다.
그날 토요일 반나절 근무를 끝내고 부산 근교의 무지개폭포로 피서를 갔던 기억은 나는데 왜 그런 얘기가 선배 입에서 나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당시 이병주는 부산 국제신보 주필과 편집국장을 겸하고 있어서 그의 논설을 신문 사설란에서 볼 수 있었다. 6.25동란을 미리 예측했다는 얘길 듣고부터는 그가 쓴 신문사설도 다시 살피게 되었다. 섬진강을 따라 차를 달리다보면 “지금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을 지나고 있습니다”란 플래카드를 만나게 된다. 기초단체에서 내건 것이겠지만 굽이굽이 아름다운 강과 어우러진 비경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그러고 하동엔 그 섬진강을 만들어낸 명산 지리산도 자리한다. 해마다 가을이면 하동 북천역이 코스모스 명소로 떠올라 인터넷을 달군다. 작가 이병주 선생이 중학교를 다녔다는 북천을 만나볼 거라는 기대로 문학기행을 나서는 마음이 다소 설레었다. 하지만 지역에서 터를 제공해서 세운 문학관은 북천면이긴 하지만 기차역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년 코스모스 계절에 북천역을 찾을 때는 오늘 시간에 쫓겨 오르지 못한 문학관 2층까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하겠다. 우리 일행 중엔 1921년생인 작가와 비슷한 연배인 1926년생 원로도 함께 했고 실내와 마당에 설치된 작가의 실사모형에 붙어 추억을 남기는 시간도 가졌다.
일행이 문학관에 머무는 내내 푸른 가을하늘에선 눈부신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 아래 위치한 문학관에 들어 책을 펼치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일었다. 현실에 만약이 존재하긴 어렵겠지만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노산 이은상문학관이 잘 해결되어 들어섰더라면 우리 일행은 오늘 시간을 조절해서 귀로에 가고파의 고장 마산을 찾았을 것이다. 노산의 친일논란으로 문학관 건립이 한 발짝도 떼지 못하는 현실을 바라보는 가슴이 답답하다. - 남해 유배문학관 기행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