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일간신문을 끊은 이유
내가 신문을 처음 구독하기 시작한 것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를 시작할 때(1964)
부터이니 60년이 된 것 같다.
일간신문 한 가지보다 두 가지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두가지 보기시작한 것은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30여년 된 것 같다.
이 두 개의 신문은 우리 나라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가장 전통 있는 대표적인 신문이다.
나는 좋은 기사와 사진이 나오면 꼭 스크랩을
해 두는 것이 취미다.
두 신문은 참으로 국민과 희로애락을
같이한 대표적 신문으로 국민의 사랑을
많이 받은 신문이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둔한 내가 보기에도 두 가지
신문중 한 신문의 사설이 이상한
것을 느꼈다.
중대한 글이 올라와야할 때도 꿀먹은
벙어리다. 한 두달이 지나도 여전했다.
참을만큼 참았는데도 사설은 여전히 엉뚱한
글만 올라왔다.
신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설이다. 사설만 봐도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금방 알 수 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는가?
목숨걸고 불의와 싸웠던 0 일보가
거세된 소와 같이 침묵 일변도였다.
나는 참다참다 못하여 신문사 지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신문 중에 한 신문은 사설이 죽었어요.
죄송합니다.
아무 신문 내일부터 배달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몇 십년을 보든 신문을 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산 신문을 봐야지 죽은 신문은 새장 청소할 때
똥받이하는데도 쓸 수 없는 것이다. 눈감고 죽은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이다.
들리는 바로는
신문이 좌파에 먹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죽은 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숨을 쉬지 않는다.
파리가 들끓고 썩은 내세가 나기마련이다.
내가 군목으로 있을 때 인격지도 시간으로
군대영창 방문이 있었다. 그때, 한 죄수 병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누구인가? 물었다.
병사왈, 있는 힘을 다하여 정면을 응시하며
고함을 쳤다.
“예잇 000번 김00 상병!
대답하겠습니다.제가 생각할 때, 이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는 ‘추억 속에 잊혀진 여인 입니다’
아직도 내가
60년 보든 신문이 발간되지만 구독자가
반의 반으로 줄었을 것으로
김상병의 말처럼, 추억 속에 잊혀진 여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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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참, 세상많이 달라졌네요.
나는 그 병사가 자신이 불쌍한 것 생각지 않고
추억속에 잊혀진 여인이 불쌍하다 한 말이 배꼽을 잡습니다.
영창에 있어도 할 말은 다 하고 있습니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