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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완성은 감사!
참고말씀: 레14:1-9; 시50:23; 마9:28; 12:20,21; 눅5:13; 요4:50,51; 11:25,26
읽을말씀: 눅17:11-19
주제말씀: 눅17: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첫째, ‘우리의 최선을’ 보여야 합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 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눅17:12,13)
예수님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어떤 이들을 만나셨습니까? 열 명의 한센병자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11,12절)
우연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주님의 일에는 결코 우연이 없고 모두 필연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본문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우연히 그리로 가신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일부러’ 그들을 만나고자 그 길을 택하신 것입니다.
왜 그리로 지나가셨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11절 상) 왜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셨습니까? 고난 당하실 때, 즉 우리의 구속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실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순간에도 누구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까? 약하고 병든 자들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약하고 병든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임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12:20,21)
그러므로 우리도 본문의 열 사람처럼 어찌해야 합니까?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12절 상)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예수님 앞에 나와야’ 역사가 일어나고 ‘예수님을 만나야’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한 찬송가의 가사처럼 말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죄 사함 받으며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 예수 앞에 설 때에 흰 옷을 입으며 밝고 빛난 내 집에 길이 살리라 /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 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새찬송가 287장 ‘예수 앞에 나오면’>
한편, 왜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가되 아주 가까이는 갈 수 없었습니까? 당시 한센병자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멀리 서서...”(12절 중)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소리를 높여서 부르짖었습니다. 가까이 가지 못하므로 이렇게라도 해서 자신들의 절박한 심정을 전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소리를 높여 이르되...”(13절 상)
우리에게는 어떤 핸디캡(handicap)이 있습니까? 핸디캡이 있다고 위축되지 말고, 오히려 다린 이들보다도 더욱 소리를 높여서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육체의 소리뿐만 아니라 마음의 소리도 한층 높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무엇이라고 외쳤습니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주실 것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3절 하)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외침에는 무엇이 다 들어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기도제목입니다. 아무리 많은 기도제목이 있더라도 이 한 마디에 다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부르짖어 기도할 때마다 우리도 어떻게 외쳐야 합니까?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우리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주님께 부르짖기 전까지는 아직 우리의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란 점을 말입니다.
둘째,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눅17:14)
그들이 예수님께 최선을 보였더니,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의 몸을 보일 것입니다. 누구에게 보이라고 했습니까? 제사장들입니다.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14절 상)
그러나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한센병에 걸린 사람은 어느 때에만 제사장들에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까? 병이 완전히 치유되었을 때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제사장들에게 나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병 나은 것에 대하여 인증을 받는 절차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레14:1~9)
그런데 그들이 지금 다 나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한센병자였고, 여전히 문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직 병 나은 것도 아닌데 왜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리 말씀하신 것입니까? 심지어 병 낫기를 위하여 그들에게 손을 대시거나 ‘깨끗함을 받으라’(눅5:13)는 말씀 한 마디도 주시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눅5:13) /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14절 상)
왜 그러신 것입니까? 그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시기 위함입니다. 즉 기적을 행하시기에 앞서 기적의 전제조건으로 그들의 믿음을 보시기 원하셨기 때문에 그리 명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마9:28)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결국 그들은 어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가다가’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14절 하) 가버나움에 살았던 왕의 신하의 아들도 언제 고침을 받았습니까? 예수님을 믿고 가던 중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요4:50,51)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기에 앞서 우리의 믿음부터 보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감사를’ 보여야 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온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눅17:15,16)
이날 몇 사람이나 고침을 받았습니까? 열 사람 모두입니다. 그런데 몇 사람만 돌아와서 주님께 감사했습니까?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온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5,16절)
분명 열 사람이 모두 고침을 받았는데, 왜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돌아온 것입니까?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 돌리는 행위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8절)
즉 사마리아 사람은 사람이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으며,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시50:23 상) 감사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 돌릴 수 없다는 점을 알았기에 감사하고자 돌아왔지만, 나머지 아홉은 이를 전혀 깨닫지 못했기에 돌아오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진정 감사할 수 있음을 깨닫고,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명심하십시오. 감사하기 전까지는 하나님께 진정으로 영광 돌릴 수 없다는 점을 말입니다.
넷째, 기적의 완성은 감사입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17:18,19)
예수님은 누구를 기다리셨습니까? 사마리아인 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열 사람 모두를 기다리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17,18절)
왜 열 사람 모두를 기다리신 것입니까? 예수님이 주시고자 한 것은 병 고침이 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더 준비하고 계셨습니까? 더 큰 은혜입니다. 즉 병 고침뿐만 아니라, 영육 간에 온전해지는 더 큰 은혜까지도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절)
참고로, 여기서 ‘구원하였느니라’(헬, 세소켄)은 ‘완전하게 만들다’는 뜻으로써,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불완전했던 그가 비로소 온전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주님께로 돌아와서 감사했고, 결국 그 한 사람만 온전케 되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절)
결국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기적의 완성은 감사라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의 감사로 완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혹 지금 기적의 완성을 체험하길 원합니까? 하나님께서 준비한 100%를 온전히 받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감사하기를 원합니다. 사마리아인 한 사람처럼, 감사의 큰 그릇을 준비하여 온전한 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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