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4일(토)
* 시작 기도
주님...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고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여 주소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나이다.
하여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옳습니다 하나이다.
주의 보혈로 나를 정결케 하사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아담 안에 있는 본성인 나의 옛 사람을 이 아침에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하여 나는 날마다 죽사오니 오직 예수의 부요함으로 이 하루를 살게 하소서.
나의 없음과 무력함을 인정하는 오늘 하루가 되기 원합니다.
날 받으사 긍휼히 여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삼상 19:1-7
제목 : 하나님 앞에서 작은 꼬맹이가 큰 자가 되고, 스스로 큰 자인 사울이 작은 자가 되다.
1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라 말하였더니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다윗을 심히 좋아하므로
2 그가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3 내가 나가서 네가 있는 들에서 내 아버지 곁에 서서 네 일을 내 아버지와 말하다가 무엇을 보면 네게 알려 주리라 하고
4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칭찬하여 이르되 원하건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까닭 없이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6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 맹세하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7 요나단이 다윗을 불러 그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고 요나단이 그를 사울에게로 인도하니 그가 사울 앞에 전과 같이 있었더라.
* 나의 묵상
다윗은 여호와의 영이 그와 함께 하시므로 나가서 싸우는 전쟁마다 승리하였다.
이를 본 사울은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사실 다윗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함에도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왕위를 위협하는 다윗이 두려울 따름이었다.
한편 그런 사울은 요나단과 자기의 모든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명하였다.
하지만 요나단은 다윗과 언약을 맺고 자기의 생명 같이 사랑할 정도로 그를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이를 다윗에게 알린다.
내 아버지 사울이 너를 죽이려고 한다.
그러니 내일 아침에 들에 있는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면 내가 아버지와 함께 나아서 네 일을 이야기 하다가 무엇을 알게 되면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겠노라고 하였다.
다음 날 요나단은 사울과 함께 밖으로 나가서 다윗을 칭찬하며 다윗은 아버지에게 선한 일을 행하였으므로 그에게 범죄하지 말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그 다윗은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으며 이것을 왕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셨냐고 하면서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 것을 구하였다.
이에 아버지 사울은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다윗을 죽이지 않겠노라고 하였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다윗을 불러서 사울이 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울에게로 인도하여 전처럼 왕을 모시게 하였다.
오늘 본문은 사울과 다윗의 자리가 마치 뒤바뀐 것 같다.
다윗이 왕이고 사울이 신하처럼 말이다.
다윗이 큰 사람이고 사울은 그 존재가 아주 미미한 작은 자이다.
사실 사울이란 이름은 ‘큰 자’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름이 큰 자라고 하여 그가 큰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고 큰 사람처럼 행하여야 큰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에서 다섯 달란트 받은 자나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고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사울은 지금 자기가 앉아 있는 왕의 자리에 연연해서 그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노심초사하고 있다.
다윗은 그 자리를 전혀 탐내거나 엿보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다.
그저 자기의 왕위를 지키고자 하는 조바심이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악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윗은 자기가 무슨 일을 이루고자 어떠한 일도 억지로 꾸미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맡기며 무엇보다 왕권을 가지고 있는 사울의 옷자락을 베는 것조차 두려워하였던 자이다.
(삼상 24:4-6)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 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조차 자기의 마음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또한 사울의 기름 부음 받은 왕으로 끝까지 인정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자기 자신을 낮추고 부인하는 겸손의 자세이며 하나님 앞에서 진짜 큰 자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말씀이신 아들은 창세전부터 시작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이후에도 오직 아버지의 말씀에 철저히 복종하여 자기 자신을 낮추셨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나 못나고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였지만 그런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께서 하신 그 명령과 뜻을 이루실 뿐이었다.
그 복종은 사람들이 볼 때는 진짜 밟으면 꿈틀하는 지렁이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우리 주님은 그렇게 가장 작은 자가 되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가셨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에 죽는 죽음의 자리이며 죽은 시체로 무덤에 장사되는 자리였다.
그런 자리임을 모를 리 없으신 우리 주님은 그런 수치와 모욕 그리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기꺼이 받으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복종하신 우리 주님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3일 만에 부활케 하심으로 살아나셨다.
그것이 복음 중에 복음이다.
나는 그 복음을 믿는다.
내가 복음을 믿는 것조차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 복음을 알기까지 허공에 대고 손을 젓는 것처럼 갈팡질팡하는 자였다.
복음이 무엇인지 몰라서 아내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아는 선배 목사에게 물어보기도 하면서 배웠다.
그런 와중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찾아왔다.
그 고난은 그동안 내가 쌓아놓았던 모든 것을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뜨리는 극한의 고통이었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면서 몸부림을 쳤는지 모른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나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런 고난의 와중에 나를 부르시고 복음생명선교회를 통하여 진정한 복음을 듣게 하셨다.
많은 분들이 복음 복음 하지만, 정작 복음의 핵심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들은 복음은 그저 관념적이거나 지식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복음에 실재가 될 수 있도록 아주 정확하고 통합적인 복음이었다.
단순한 십자가만 복음이라고 하는 차원을 넘어 십자가와 무덤에 장사됨 그리고 부활과 현현을 통틀어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행위로서의 복음이며 이를 곧 통합복음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적인 복음은 창 3:15절의 원시복음이며 메시야적 행위로서의 복음은 고전 15:3-5졸까지의 내용을 그 근거로 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극한 상황에서 이 통합복음을 듣게 되었고 내가 당한 모든 환난과 곤고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내게 환난이나 곤고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여러 가지 환난과 곤고함 등 상황적인 무덤은 닥쳐오지만 능히 복음으로 이를 이겨낼 수 있음이 내게 복이다.
정말 연약하고 미련하며 아무 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무력한 자를 주님께서는 부르시고 복음을 주셔서 그 복음을 증거하는 자로 세워주셨다.
나는 오늘도 이 복음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주님과 가장 가까이서 친밀함으로 나아간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연약함을 가장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시며 또한 이곳까지 보내심을 믿습니다.
내가 보기에 좋은 대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 이루시는 모든 일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순종쟁이가 되게 하소서.
내가 나의 상황을 억지로 이루어 내거나 하나님을 협박하여 나의 뜻을 이루는 억지 믿음은 무덤에 장사하고 오직 주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주님이 옳습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하는 고백으로 살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로 서게 하시되 나를 드러내는 자기주장의지는 십자가에 못 박고 우리 주님을 따라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서게 하옵소서.
하지만 나는 약합니다.
나로서는 할 수 없으니 오직 주님의 은혜만 바라보나이다.
주께서 행하시옵소서.
연약한 나를 통하여 주의 뜻을 이루소서.
그 뜻인 영생을 날마다 이루어가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