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
1
오랫동안 잊고 지내던 거을을 꺼내어서
내 습관의 언어들을 비춰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사투리들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편애하던 낱말까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떡갈나무 잎사귀처럼 바람에 일렁이다가
불길에 몸을 뺏기는 낙엽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이것을 배반이라 부른다 나는 이것을 내란이
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구원이라 부르고 싶다
2
서리 묻은 국화꽃 몇 송이를 사와서
비어 있는 원고지에 정성껏 문지르며
한밤 내 생각해 본다, 저 말들의 뿌리를
단풍물
가을에는 다 말라버린 우리네 가슴들도
생활을 눈감고 부는 바람에 흔들리며
누구나 안 보일만치는 단풍물이 드는 갑더라
소리로도 정이 드는 산 개울가에 내려
낮달 쉬엄쉬엄 말없이 흘려 보내는
우리 맘 젖은 물속엔 단풍물이 드는 갑더라
빗질한 하늘을 이고 새로 맑은 뜰에 서보면
감처럼 감빛이 되고 사과처럼 사과로 익는
우리 맘 능수버들엔 단풍물이 드는 갑더라
산인역
8월 하순
다 낡은 국밥집 창가에 앉아
온종일 질척이며 내리는 비를 본다
뿌리도,
없이 내리는
실직 같은 비를 본다
철로 건너편엔 완만한 산자락
수출처럼 난만하던 철쭉꽃은
지고 없는데
뼈 하나 묻히고 있다
구름
믿음이 없었다고 소쩍새가 운다
참아야 했었다고 소쩍새가 운다
하늘엔 부는 바람뿐 오래 묵은 그리움뿐
주소도 모르는 얼굴을 떠올리며
난간에서 나눈 얘기를 어제처럼 생각해내며
사소한 말 한 마디로 돌아섰던
길을 헤매며......
강은 제 흐름을 즐기며 가고 있고
풀꽃들은 가진 향기를 천지에 뿌리는데
그 무슨 방향도 없이
나는 바삐 흐르고 있네
- 시조선집 『비누』 창연,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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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걸 시인 시조선집 『비누』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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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
24.09.10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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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실직 같은 비는
어떤 빈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