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첨부파일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침공 후 몇 주 만에 전례 없이 많은 수의 우크라이나인이 전쟁 난민이 되어 고국을 떠나 다른 유럽 국가들로 피난했다. 특히 폴란드는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선택한 목적지 중 하나였다.
2022년 2월 이전에도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경제적 이주자(Economic Immigrant)들의 주요 목적지였다. 2014년 돈바스 지역에서 분쟁이 시작되고 러시아가 크림 자치 공화국과 세바스토폴시(市)를 점령하면서 폴란드로 이주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자국의 정치·경제적 상황으로 이주를 희망하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증가했고, 폴란드는 경제 성장으로 인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었기에 우크라이나 출신 경제적 이주자의 폴란드 유입은 급증했다. 실제로 2014~2022년 폴란드의 실업률은 9.2%에서 2.9%로 급감했다. 폴란드는 외국인 노동자 고용 측면에서 가장 진보적인 유럽연합(EU) 국가들 중 하나이다.
전쟁 발생 전 폴란드로 이주한 우크라이나인은 주로 남성 전문직 종사자들이었다. 폴란드의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 덕분에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을 포함한 외국인 노동자 비율이 급증했음에도 폴란드에서 심각한 사회적 긴장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근접성 때문에 우크라이나인은 폴란드 이주를 선호했다. 유럽연합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2021년 말 기준 우크라이나인 157만 명이 EU 국가 체류 권한을 부여 받았고, 그 중 3분의 1이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다. 폴란드 중앙통계청(GUS, Główny Urząd Statystyczny)은 전쟁 전 폴란드 거주 우크라이나인 수를 13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난민의 폴란드 유입 현황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우크라이나 이주민의 규모와 성향을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되었다. 폴란드는 헝가리, 루마니아, 슬로바키아와 더불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EU 4개국 중 하나로,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탈출하는 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목적지 또는 경유국이 되었다. 이주민들은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에 위치한 8개의 검문소를 통과해 육로로 폴란드에 입국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은 우크라이나를 떠나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전쟁 발생 당일 폴란드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국민은 약 3만 명 수준이었으나, 전쟁 2일차부터 난민의 수는 급증하여 둘째 주 최고조에 달해 2022년 3월 6일에는 하루 동안 14만 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이 폴란드에 입국했다. 전쟁 발생 후 수일간(2022년 2월 24~28일) 난민 35만 5,000여 명이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었고, 3월에는 누적 200만 명을 넘어섰다. 이후 점차 감소하여 매달 60~70만 명이 이주했다. 2022년 폴란드 국경 수비대가 기록한 전체 우크라이나인 입국자 수는 1,033만 명에 달했고 2023년 7월 기준 1,380만 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다른 국가로 이주하는 모든 국경 통과자(2,516만 명)의 절반 이상이 폴란드-우크라이나 국경을 통과했고, 전쟁 발발 이후 폴란드가 많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목적지이자 경유국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상당수 난민들이 러시아 침공 후 몇 달 만에 고국으로 돌아갔고, 일부는 폴란드를 제3국으로 이주하는 경유 국가로 활용했으며, 폴란드에서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도 여전히 많이 존재한다. UN난민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에 따르면 2023년 8월 1일 기준 전체 우크라이나 난민은 587만 3,000여 명이며 그중 96만 8,000명이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러한 기록적인 난민 유입으로 폴란드는 물류적, 구조적, 정치적 어려움에 직면했다. 전쟁 초기 약 15만 명의 폴란드인이 개인 아파트 및 주택을 난민들의 피난처로 내어주고 기본적인 식량과 위생용품, 교통편을 제공했다. 폴란드에서 가장 큰 기차역은 난민들을 대상으로 정보센터와 지원센터를 운영했다. 폴란드 국영 및 지역 철도회사들은 더 많은 수의 승객을 실어 나르기 위해 열차 640대를 추가 편성했으며 전쟁 첫해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무료 열차 이용권을 제공하기도 했다(열차 이용권 제공과 관련한 특별 규정은 2022년 7월에 종료).
난민들에 대한 지원 및 구호 활동은 민간인 수천 명의 자발적인 참여와 지역 및 지방 정부의 지원시스템이 어우러져 시행되었다. 우선, 난민들을 위한 기본적이고 단기적인 지원 물품 제공에 집중했다. 많은 도시에 난민 수용시설과 더불어 개인, 민간기업, 지역 정부, 공공기관 등의 기부 물품을 분류 및 배급하는 지원센터가 설립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난민들에게 필요한 교육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넘어선 장기적인 문제이다. 폴란드 신분증을 발급받은 우크라이나 난민의 87%가 여성과 어린이였으며 2023년 3월 기준 등록된 전체 우크라이나 난민의 47%가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 지방정부는 폴란드 교육 시스템에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이주 어린이를 통합하기 위해 추가 공간과 자원을 마련해야 했다. 또한 대다수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은 폴란드 대도시에 정착했다. 전쟁 발발 후 첫 3개월(2022년 3~5월) 동안 수도 바르샤바(Warsaw) 전체인구에서 우크라이나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6%(2022년 5월 기준)에 달했고, 우크라이나 난민의 70%가 폴란드 내 12개 대도시에 머무르고 있다. 전체 인구에서 우크라이나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폴란드 남동부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 도시인 제슈프(Rzeszov)로 전체 인구의 약 40%가 우크라이나 인이다. 제슈프는 폴란드에 도착하는 우크라이나 난민에게 중요한 도시이자 제3국에서 폴란드를 거쳐 우크라이나로 전달되는 인도주의적 그리고 군사적 지원 물품의 주요 공급 허브이다. 난민들이 인구 감소 추세를 보이는 소규모 도시 및 마을로 이동할 경우 긍정적인 경제 자극효과가 발생할 수 있으나 아쉽게도 대부분의 난민들은 대도시와 마조비에츠키에(Mazowieckie), 돌노스키에(Dolnśląskie), 비엘코폴스키에(Wielkopolskie) 등 발전된 도심지역에 머무르고 있다. 전쟁 발발 후 1년 동안 바르샤바에 거주하는 공식 우크라이나 난민 수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높은 교육 및 의료 시스템 접근성뿐만 아니라 고용 시장 접근성 또한 대다수 난민들이 대도시를 선호하는 이유이다.
폴란드로 유입된 우크라이나 난민의 법적 지위는 2022년 3월 12일 제정된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관련한 우크라이나 국민 지원 특별법(Act of 12 March 2022 on assistance to citizens of Ukraine in connection with an armed conflict in the territory of this country)』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동 특별법은 2022년 2월 24일 이후 폴란드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지위와 권리를 소급 적용하고 우크라이나 난민의 합법적인 거주, 취업 시장, 교육, 의료 시스템 및 기타 공공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보장하고 있다. 또한 동 법은 우크라이나인이 2022년 2월 24일부터 18개월 동안 폴란드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데, 해당 내용은 최근 개정되어 합법적 체류 기간은 2024년 3월 4일까지로 연장되었고 학생 및 보호자의 경우 2024년 8월 31일까지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이는 전쟁 전에 비자 및 임시 거주 허가를 받아 폴란드에 입국한 우크라이나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동 법에는 노동시장 접근성과 실업자 또는 구직자의 지위를 보장하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다. 해당 조항은 기존의 취업 허가와 관련한 별도 요구 사항을 삭제하고 근로 시작 후 14일 이내에 고용주가 고용 사무소에 근로 사실을 통보하는 것으로 요건을 간소화하였다. 또한 우크라이나인이 폴란드인과 동일한 조건에서 사업 활동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도 추가되었다. 어린이와 학생의 교육권도 명시되었다. 폴란드 교육과학부(Ministry of Education and Science)에 따르면 2022년 2월 24일 이후 이주한 우크라이나 유아동 19만 명(유아 4만 3,000명, 초등학생 12만 명, 중학생 2만 8,000명)이 폴란드 교육 시스템에 편입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 숫자는 최근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폴란드 대학에는 2만 1,000명 이상의 우크라이나인이 재학 중이며 이 중 60%가 폴란드의 학사연도 시작일인 2022년 10월 1일에 학업을 시작했다. 더불어 이 법은 난민에 대한 물질적 그리고 사회적 지원에 대해서도 규정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인은 가족 및 교육 혜택의 형태로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무료 심리상담 및 건강보험 적용, 국가 장애인 재활기금(State Fund for Rehabilitation of Disabled Persons)이 보장하는 장애인 지원도 받을 수 있다.
현재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 난민의 법적 지위는 법제화를 통해 안정화 되었으나 그들의 미래는 결국 우크라이나 본국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2023년 4월 폴란드 중앙은행(Polish Central Bank)이 발간한 ‘폴란드 내 우크라이나 이주민의 생활 및 경제 상황(The living and economic situation of Ukrainian migrants in Poland)’ 보고서에 따르면, 폴란드에 거주하는 우크라이나 난민의 19%(2022년 11월 기준)가 폴란드 영구 체류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1년 이상 장기 체류를 선택한 난민과 1년 미만의 체류를 희망하는 난민들이 각각 14%와 15%로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러한 이원화된 응답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상황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들이 얼마나 오래 폴란드에 머무를 예정인지 확신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러시아 침공 이후 폴란드로 이주한 난민의 4분의 3이 전쟁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응답했다.
<그림 1> 우크라이나 난민과 전쟁 이민자들의 폴란드 체류 계획
자료: NBP, “The living and economic situation of Ukrainian migrants in Poland – the impact of the pandemic and the war on the nature of migration in Poland. Report of the questionnaire survey”, 13.04.2023
전쟁 전 폴란드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의 응답은 전쟁 후 이주한 난민들과 상이한 양상을 보였다. 전쟁 전 이민자의 절반 이상이 폴란드에 영구 체류를 희망한다고 응답했는데, 전쟁이 폴란드 이민자들의 영구 체류 의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설문에 응한 전쟁 전 이민자의 29%가 향후 체류 기간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다고 응답했고, 전쟁 난민이나 2020년 이전 이주자들에 비해 종전 후 우크라이나 귀국을 희망하는 비율이 훨씬 낮았다. 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에 폴란드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이민자들이 전쟁 이후 폴란드로 피난 온 난민들보다 폴란드에서 더욱 확실한 미래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설문 조사에서 전쟁 전 이민자의 절반 이상이 폴란드 영구 체류를 희망한다고 응답한 것은 전쟁의 영향으로 이주의 성격이 ‘단기 거 주 (Circulatory)’에서 ‘정착(Settlement)’으로 변화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설문조사에서 시행된 폴란드 체류 시 필요한 지원 형태에 대한 질문에 전쟁 전 이민자들은 주로 △ 정주 관련 법규 완화(47%) △ 폴란드어 교육과정 개설 (27%) △ 의료시스템 접근성 제고(26%) 등을 기대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나 전쟁 후 이민자들은 △ 폴란드어 교육과정 개설(43%) △ 취업 지원(35%)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결론 및 시사점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향방을 예측하기 어렵고 종료 시기 또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폴란드 동쪽 국경의 상황은 폴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의 상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미 난민 중 일부는 우크라이나 귀국을 결정했고 국경을 넘는 이민자 수는 현재 하루 약 3만 명 정도로 안정되었으나, 전쟁의 지속 여부는 우크라이나인 거주 안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폴란드 및 다른 국가로 피난한 난민들의 우크라이나 복귀 비율은 줄어들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종식되면 일부 난민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겠지만 다수의 난민들에게는 우크라이나로의 귀국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종전은 단어의 뜻 그대로 전쟁의 종료일 뿐, 우크라이나가 안고 있는 경제문제 및 국가 안정성 등의 문제는 상존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우크라이나 내 많은 지역이 황폐해졌고 특히 동쪽 지역은 삶의 터전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 국가경제 또한 위기상황이기에 종전만으로 급속도의 경제 성장과 이전 삶으로의 완전한 복귀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분쟁의 종식으로 흩어졌던 가족들의 재결합은 이루어질 수 있으나 이것이 난민들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 18 ~60세 사이의 우크라이나 남성은 출국이 금지되어 있고 전쟁에 동원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종전 후 이들은 가족 구성원들이 정착해 살고 있거나 더 나은 경제적 기회와 생활 수준을 제공하는 타 국가로 이주하는 새로운 이주 물결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 시기를 가늠할 수 없는 지금, 우크라이나 난민들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국제사회의 관심 및 지원이 절실히 요구된다.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