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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생명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백대영
설교 동영상 링크 : https://youtu.be/_JipzE5ByD0
에베소서 5장 16절에 “속량하다”라는 동사(엑사고라조)가 한글 성경들에 아낀다고 번역되었습니다(엡 5:16).
이것은 “사다”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아고라조)에서 나왔고, “사다”라는 같은 뜻을 가지는 아람어(제반)를 한 번 번역하였습니다. 다니엘 2장 8절에 “너희가 시간을 사기 위한 것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이 죽음을 면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고” 시도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노예를 속량하기 위해서는 돈을 주고 그 돈과 노예를 맞바꾸게 되는데 이때 주는 돈이 속전이고 이러한 행위를 가리켜서 속량한다고 말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잡지 못하며 어떻게 보내든지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느냐는 그것을 시간과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기회를 가치 있는 것으로 맞바꾸어야 합니다.
NIV 영어 성경은 원어를 의역하여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모든 기회의 최대를 만들기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1.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을 다시 보면, “시간을 속량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시간을 아낀다고 번역된 말의 의미는 그 시간을 속량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서 시간을 되산다는 개념을 표현하는 용어입니다.1)
“시간”은 본문에서 시간이 주는 기회의 뜻으로 시간을 가리킵니다.2)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 안에 “카이로스”라는 조각이 있다고 합니다. “카이로스”는 헬라어로 “시간”을 의미합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추상명사를 신(神)으로 만듭니다. “카이로스” 신상은 앞머리만 무성하고 뒷머리는 없습니다. 기회는 지나가면 뒷머리가 없어서 붙잡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기회는 앞에 다가왔을 때 그것을 알아보고 붙잡아야만 합니다.
기대가 영원히 지금처럼 똑같이 주어지지 아니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회는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고 유통기한이 주어질 동안 잘해야 합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모든 우리가 반드시 그 크리스트의 심판대의 앞에 나타나야 함이니 선한 것이든지 악한 것이든지 각자가 성취한 바들을 향해 그가 그 몸을 통하여 도로 받았기 위해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휴대전화기, 드라마, 그것은 내 진짜 삶이 아니고 가짜라는 것입니다. 나에게 즐거움은 주겠죠! 그러나 그것은 진짜가 아니고 가짜입니다.
시간을 아끼라는 권면 동기는 “그날들이 악하다”는 것입니다.3)
악한 때이기에 시간을 아껴야만 하는데 지금이 악한 때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 흘러가면 악한 세상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세상 사람이 사는 대로 따라 살면 악한 삶을 살다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그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시냇물에서 물이 아래로 흐르며, 살아있는 고기는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왜?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물이 아래로 흐르면 물길 따라 떠내려간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가 악한 길로 흐르는데, 악한 길로 따라 떠내려가면 되겠습니까? 떠내려가는 사람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죽은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은 세상 물결 따라서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대로 떠내려간다면 악한 삶에 그냥 따라가다가 그렇게 죽는 것입니다. 지금이 악한 때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나 열심히 살았는데요! 열심히 살면 무엇합니까? 방향이 잘못인데요! 오른쪽이 옳은 쪽이고 왼쪽이 그른 쪽이고 좌파(左派)가 그른 쪽입니다. 우파(右派)가 옳은 쪽이죠!
왼쪽으로 달리면 열심히 달릴수록 옳은 쪽에서 더 멀어지는 것입니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달릴까?
‘나 열심히 인생을 살았어요. 내가 인생을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요. 하루에 네 시간 자고 그 외에 나머지 시간에는 인생을 열심히 살았어요.’ 열심히 살면 무엇합니까? 잘못된 길로 달려갔는데! 방향이 틀렸습니다. 방향을 잘못된 길로 달려가면, 열심히 살수록 더 잘못 산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은 쪽입니까? 옳은 방향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반대쪽으로 열심히 산다면 오히려 시간을 더욱 많이 낭비하는 것입니다, 옳은 방향을 정해 둔 후 그 길로 나아가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그 공중 권위의 통치자가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는 것입니다(엡 2:2). 악마가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바람에 요동하고 밀려다니지 않아야 합니다(엡 4:14).
악마가 사람을 어떻게 유혹합니까? 나쁜 짓으로 사람을 유혹합니까? ‘너 도둑질해’, ‘너 사람을 죽여’, 그렇게만 유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 이것을 하면 참 즐거워, 드라마 보면 참 즐거워’ 이렇게 유혹합니다.
드라마 보면서 시간 보내며 현실에서는 전혀 시간을 사용하지 않아요! 드라마 보고 가짜세계에 푹 빠져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 악마의 전략이고 가상세계에 푹 빠져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악마의 음모라는 것입니다.
악마가 늘 도둑질, 살인, 나쁜 짓으로만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맛있고 달콤한 사탕을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사람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악마가 늘 독약으로 쥐약으로 사람을 유혹하면 사람이 넘어가겠습니까?
사탕으로 유혹하니까 아이들이 그 사람 따라서 가고 유괴되는 것이죠! 악마가 사람들을 이렇게 달고 즐거운 방법을 통하여 유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마의 유혹에 따라 즐겁게 살다가는 지옥으로 끌려가는 것이죠!
사람들이 행하는 악행들의 배후에 무서운 지옥의 세력이 있습니다.4)
이 세상 즐겁게 살다가 지옥으로 끌려가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일단 지옥에 가면 다시 나올 수 없고 영원히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악마가 주는 즐거움에 유혹되어서 시간을 허비하면 안 됩니다.
시편 1편 1절에 “죄 있는 자들의 길 안에 계속 서 있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너희는 폭이 좁은 문을 통하여서 들어가라 멸망 안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으며 그 길이 광대하고 그것을 통하여서 들어가는 자들이 많으며. 생명 안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으며 그 길이 압박되고, 그것을 발견하는 자들이 소수(少數)기 때문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이 넓은 길, 휴대전화 보며 즐거운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멸망하게 되는 것이죠!
좁은 길, 남들과 다른 삶, 다른 것에 가치를 두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 그런 삶이 바로 믿는 자들의 삶이 되어야 하고 그 길은 좁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걸어가아만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습관대로 사는 때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하고 결단하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살던 습관을 바꾸려면 살지 않았던 삶이기에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뀌기 위해 결심하고 결단하고 이전 삶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힘들어도 습관을 버리겠다고 결심하고 결단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습관이라는 것은 단지 한 번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일을 100번 하고 1000번 하는 때, 그것이 습관이 되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그렇게 100번 하고 1000번 하여, 그것이 습관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습관이 되었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었으니 그렇게 살면 편하죠! 어떤 일이 습관이 되면 사람이 아무 생각을 않고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고치는 과정이 매우 힘듭니다.
그러나 고치는 것이 옳은 길이기에, 힘들어도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 믿지 않은 때는 넓은 길을 걷고 넓은 길을 걷는 것이 편했으나 이제는 좁은 길을 걷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걸을 때 그것이 아직 나의 습관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 비록 힘들지라도 걸어가려고 힘쓰는 것입니다. 옳은 길을 반복해 걷다 보면 이제는 옳은 길이 걷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죠! 살 뺀다는 결심이 3일밖에 가지 않습니다.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 끊겠다고 결심한 후에 3일밖에 가지 않습니다. 4일째 되는 날 더 참을 수 없게 되어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담배 피우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끊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4일째 담배 피운 후 또 작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3일 담배 안 피우고, 하루 피우고, 다시 3일 안 피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담배 안 피우는 습관을 쌓아 나가 결국은 끊게 되는 것입니다. 나쁜 습관을 바꾸는 일이 힘들지라도 작심하고 바꾸어 나가야만 합니다. 20년 동안 생긴 나쁜 습관을 바꾸는 일이 힘들다 해도 바꾸어야 합니다.
습관대로 사는 때 편하지만 편하다고 옳은 삶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편하지만 넓은 길이라는 것이며 그렇게 계속 살다가 멸망하는 것입니다. 좁은 길, 불편하지만 힘들지만 고쳐 나가는 길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시편 1편 2절에 “만일 하나님의 율법 안에 그의 즐거움이 있으면 그의 율법 안에 그가 낮과 밤에 묵상하노라(muse)”라고 하였습니다.
복된 사람은 밤낮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읽고 묵상하는 사람입니다.5) 휴대전화와 가까이하는 자가 아니라, 성경과 가까이하는 자가 복됩니다.
사람의 인생을 “일생(一生)”이라고 하는데 이생이 아니라 일생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한 번뿐이고 주어진 기회도 한 번뿐이라는 의미입니다.
불교에서는 ‘다음 생애에는 좋은 인연으로 만나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다음 기회는 절대 없습니다. 이 생애가 영원한 운명을 정합니다. 기회는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뿐이므로 우리가 기회를 사야 합니다.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은 저 하늘나라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기회입니다. 삶은 나그네와 같이 지나가는 것이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짧은 일생이 영원한 내세를 결정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기회로 생각하고 선용하여야 하는 이유는, 그날들이 악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엡 5:16, 마 12:39, 16:4, 갈 1:4).
예수님께서는 이 세대를 “악(惡)하고 간음한 세대”라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께서는 현재의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빼내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악한 세대”의 물결을 따라 헛된 것들에 기회를 허비하여서는 안 되고 그 시간을 속량하고 그 기회를 되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조건 열심히 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아무리 열심히 달린다고 해도,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반대 방향으로 달리면 오히려 열심히 목적지로부터 더 멀어지게 됩니다.
사도 파울은 “내가 불확실하지 않은 것처럼 달리노라”라고 하였는데, 경기에서 달리는 방향을 불확실하게 잡는다면 결코 골인할 수 없습니다. 권투경기를 하는 사람이 허공을 때린다면 이길 수 없습니다(고전 9:26). 너무 바빠 하나님과 교제할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하여서는 안 됩니다.
다니엘 12장 4절에 “끝의 시간까지 그 말들을 막고 문서를 봉인하라, 많은 자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지식이 많으리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말세의 특징은 많은 사람이 정신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정말 빨리 왕래하고 바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하루 살 동안 얼마나 영적(靈的)인 일에 시간을 투자하였습니까? 스마트폰 없이는 하루도 못 살면서, 하나님 없이는 잘 살지 않았습니까? 스마트폰을 보며 5분 10분 보내고 게임을 하며 1시간 2시간 허비하면서, 너무 바빠 말씀을 읽는데 5분 정도 낼 시간이 없다고 변명할 것입니까? 이 모든 것은 변명일 뿐입니다. 모든 것이 변명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대상과 함께하는 것이며 함께 보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핑계일 뿐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는 것을 즐거워할 것입니다.
사랑은 둘만의 시간이며 사랑에는 둘만 있는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주일날에 하루 교회에서 예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부족한 법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 둘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며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되사야만 하는 이유는 그날들이 악한 이유 때문입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며, 매스컴들로 악한 가치관들을 주입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악한 가치관들에 세뇌당하게 됩니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보고 듣는 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 나가 살며 보고 듣는 것이 온통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시간을 속량하여야 하고 우리에게 있는 기회를 되사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하니, 지금 이 시대는 악한 날들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17절에 “이러므로 너희는 미련한 자들이 되지 아니하나, 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엡 5:17).
시간을 아끼지 아니하고 낭비하며 사는 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며, 우리는 이러한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드라마 보면서 보내고 세상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어리석으며, 그렇게 살다가 지옥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하고 시간을 아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시간을 아끼면서 사는 자들이 지혜로운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뜻,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가까이하여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살아가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2. 우리는 술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않도록 하라 이 안에 방탕이 있노라, 그러나 영(Spirit) 안에 채움을 받아라(be filled with)”라고 하였습니다.
술 취한다는 것은, 술로 채움을 받는 것이며 술로 충만함을 뜻합니다. 혈관이 알코올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알코올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사람이 술에 취하면 용감해집니까? 용감해지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는 때 알코올이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진정제 역할을 합니다.
술의 알코올이 대뇌의 판단력, 이성, 자기 통제 능력을 마비시킵니다. 이렇게 마비되니까, 사람이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뭐만 남습니까? 감정적인 욕구, 감정적인 욕구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을 바로 판단하게 되는 판단력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평소에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스타일의 이성과 함께 술을 마신 후에 호텔에 가서 섹스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왜 그랬는지 후회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섹스한 것입니다. 왜? 대뇌의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과 성적인 욕망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둘이서 술 먹고 같이 호텔에 가서 같이 자고 그러는 것입니다. 왜? 술의 알코올 때문에, 대뇌의 판단과 이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술이라는 것은 평소에 용기 없던 사람을 용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 가치 있는 중추신경계, 대뇌를 마비시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사람에게 오직 동물적인 본능만 남겨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 취하면 개가 되는 것이죠!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게 됩니다.
술뿐 아니라, 나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내가 그것에 빠지게 만드는 것, 게임, 드라마, 그런 것에 푹 빠져서 사는 것이 술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것에 취하지 말라는 것이며, 세상 것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쾌락에 취하지 말라는 것이며, 땅의 것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마가 하와 할머니에게 나타나 선악과를 따서 먹게 유혹한 것입니다. 왜? 내 인생 주인은 나인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면 되는 것이지!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는 것이지! 그것이 나의 인생의 행복이야!
악마의 말을 듣고 이렇게 살다가는 멸망하고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지옥에 도착하니까, 내 인생 주인은 내가 아닌 악마였음을 알게 됩니다.
악마의 유혹을 듣고 산 것이 악마의 뜻에 따라 살았음을 알게 됩니다.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아니하고 주의 뜻을 이해하여야만 합니다.
컵에 물이 채워지듯이 술 취한다는 말은 술로 채워졌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 자신을 술로 가득 채우지 아니하여야만 하겠습니다.
3.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술 취하지 않도록 하라 이 안에 방탕이 있노라, 그러나 영(Spirit) 안에 채움을 받아라(be filled with)”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세상의 쾌락 세상의 즐거움으로 채우지 아니하고 드라마는 즐거움을 줄 수 있으나 드라마로 우리 자신을 채우지 아니하고 우리의 영(spirit)은 성령님(Spirit)으로 가득하고 채워져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으로 채워지고, 우리를 통하여 성령님께서 드러나셔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살지 아니하고,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채우다는 말이 한자로 “충만”인데,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야 합니다.
성령(the Spirit)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입니다(갈 5:22).6) 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나 때문에 기쁨이 사라지게 된 것은 아닙니까? 내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 방식의 삶입니까? 우리의 삶에 기쁨이 있습니까? 즐거움과 기쁨은 다른데 드라마는 즐거움을 주나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드라마를 보면 즐거워도 드라마가 마음에 기쁨을 주지는 않는 것인데, 성령으로 충만하면 기쁘며 참된 기쁨이 마음 안에 흘러난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하여야 합니다.7) 우리는 우리의 몸이 그 성령님의 성소임을 알아야만 합니다(고전 6:19).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감당하여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십자가를 취하고 예수님께 뒤따라야 합니다. 그러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마 10:38).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만일 어떤 사람이 나의 뒤에 왔기에 바란다면, 그는 자신을 부정하고 그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 나에게 뒤따르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 그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시고 앞서가신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들어 올리고 예수님께 뒤따라야만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를 피하고 싶고 자신을 부정하기를 싫어합니다. 누구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역시 십자가를 피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사람이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일이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자기 뜻대로 살라’고 계속 우리 속에 속삭이고 있습니다. 평생 내적 투쟁을 겪어야 하며, 항상 복종하여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복음은 가짜며 고난을 말하지 않는 복음은 가짜입니다. 예수님 잘 믿으면 부자 되고 잘 먹고 잘살게 된다는 말은 가짜 복음이며, 복음에서 십자가를 빼고 모두가 접근하기 쉽게 만든 복음은 가짜입니다. 십자가가 없고 영광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복음은 가짜입니다.
예수 크리스트를 통하여 세상에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사는 사람이 진정한 크리스천입니다(갈 6:14). 나의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내가 크리스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이제 내가 살지 아니하나 크리스트께서 사시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 D. M.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❺ 영적 광명』,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5), 587.
2) Andrew T.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2, 배용덕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659.
3)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659.
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❺ 영적 광명』, 581.
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❺ 영적 광명』, 590.
6) D. M.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❻ 영적 생활』, 서문강 역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9), 27.
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❻ 영적 생활』, 59.

첫댓글 설교 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잠 21:8).
💖우리들의 삶이란 나이 들어 살아가면서 느끼며 알 수가 있지요!
정답이 없는 인생 길 이란걸^^ 삶이란 가꿀수록 아름다워지고 애착이 가며
사람마다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란걸~
오늘도 어제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시길 바라며 건강한 날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