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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쭉빵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유연천리래상회
당신을 생각하며 한참 뭇 별을 바라보다가 무심코 손가락으로 별들을 잇고 보니 당신 이름 석 자가 하늘을 덮었다. / 서덕준, 별자리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해 당신이 비행한다 나는 당신이 남긴 그 허망한 비행운에 목을 매고 싶었다. / 서덕준, 비행운 당신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난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음성은 없던 바람에서도 빛깔을 느끼게 했다가, 가끔은 눈물겹게도 했다가, 혹은 나의 기승전결을 모조리 뺏어버리기도 했다. 나는 은, 는, 이, 가처럼 당신 옆에 나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그리고 당신의 숨소리에 섞인 음성의 사금을 몇 줌 훔치다가 그 목소리에 내 주파수를 맞춰도 보다가 문득, 이 목소리로 내 이름 한 번만 나긋하게 불러주면 나는 더 바랄 것 없겠다고. 내가 다 침몰해도 좋겠다고. / 서덕준, 세이렌 결말이 따뜻한 한 편의 소설 속 너와 내가 주인공이길 바랐지만 너의 행복과 슬픔, 그리고 일생을 읽는 동안 나는 등장하지 않았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지문에 눈물만 묻혀가며 말없이 페이지를 넘길 뿐이었다. 소설 속 나의 이름은 고작 '너를 앓으며 사랑했던 소년 1'이었다. / 서덕준, 등장인물 뛰어내리면 어느 낯모를 엽서가 사랑을 속살거릴 그런 자주색 세상의 절벽 끝에서 꿈에 나는 너의 쇄골에 귀를 대고 등을 쓰다듬고 너는 잃어버린 악보로 숨결을 연주하고 우리 왠지 짙은 사랑을 할 것만 같고 꿈에 너의 체온이 실화였으면 하고 너는 올이 촘촘한 감청색 스웨터, 테가 굵은 검정 안경 나는 전설처럼 그 품에 와락 안겨있고 꿈에 바람에 꽃들이 허공으로 나귀를 타고 꿈은 이렇게 서툴고 너의 머릿결과 호흡을 다 외우고 싶은데 우리 흑백이 되고 네가 없어지고 내가 저물고 꿈에 나는 마침표처럼 안녕을 말해야 하는데 지독하게 아름다운 그 꿈에. / 서덕준, 꿈에 너는 내 통증의 처음과 끝 너는 비극의 동의어이며 너와 나는 끝내 만날 리 없는 여름과 겨울 내가 다 없어지면 그때 너는 예쁘게 피어. / 서덕준, 상사화 꽃말 벽지에 검버섯이 피고 눈이 휘휘 내리는 시간 자주 재생된 탓에 오래된 테잎처럼 다 늘어난 네가 나오는 꿈 그렇게 먹먹한 악몽들 이불의 나이테가 늘어가는 뒤척임 가해자가 정해진 환상통에서 끝없이 망명하는 시간 눈보라가 밤 전차처럼 횡단하는 그 겨울 밤 / 서덕준, 눈보라 밤 전차 너는 꽃으로 쏟는 비 새로 돋은 이파리 그 청록의 산맥 달의 우아한 주름 너는 억겁의 아름다움 이 봄의 환생 너의 피어나는 웃음과 평행하고 싶어 원고지의 붉은 실들로 나의 생애가 얽혀도 나는 늘 너의 편지일게 온온한 문장일게 우연과 운명을 땋아 네게 쥐여 줄게 바닷속 바다까지 삶의 저편 그 어느 숲의 늑골까지도 너 나와 함께 가자 우리 손 놓는 것이 죽음인 듯 하자 너는 이 봄의 환생 너는. / 서덕준, 너는 가시가 달렸다는 남들의 비난쯤은 내가 껴안을게 달게 삼킬게 너는 너대로 꽃은 꽃대로 붉은 머릿결을 간직해 줘 우주를 뒤흔드는 향기를 품어 줘 오늘 달이 참 밝다 꽃아, 나랑 도망갈래? / 서덕준, 장미 도둑 네가 원한다면 나는 수천수만의 별들을 짜 맞추어 너만의 궁전을 지어줄 수 있어 나의 핏줄로 악보를 짓고 너를 쏙 빼닮은 꽃을 음표로 삼은 당신만의 웅장한 연주를 기대해도 좋아 말만 해, 이번엔 뭐가 필요해? 내 마음? 아니면 내 목숨? / 서덕준, 직녀 교향곡 너는 몇 겹의 계절이고 나를 애태웠다. 너를 앓다 못해 바짝 말라서 성냥불만 한 너의 눈짓 하나에도 나는 화형 당했다. / 서덕준, 장작 네 어깨에 월식처럼 내 어깨를 덧대는 일 그때마다 너는 내게 명도를 도둑맞은 것처럼 늘 어두웠지. 나의 가파른 마음에서 너는 금세 지치고 말았는지, 너는 없었고 나만 홀로 내려왔지. 네가 적힌 일기의 며칠만 눈이 뜨겁도록 몇 번이고 읽었지. 잠깐 스친 것이 영영 내 것인 줄로만 알고. / 서덕준, 월식 마음에 당신이 글썽인다 마음이 너무 많아서 허물어질 것만 남았다. 미처 장례를 치르지 못한 마음 무덤처럼 무릎을 끌어안고는 다시는 사랑하지 말아야지. 다 아물지 못한 마음의 끄트머리에 뺨을 대고 손톱 물어뜯듯 시를 외며 보고 싶은 마음 어찌하지 못하고는 마음에 당신은 밤새 글썽이고. / 서덕준, 마음에 당신이 날이 참 좋네요. 바람의 커튼 사이사이마다 당신의 향수가 날아들어요. 여느 때 없이 꽃술처럼 펄럭이는 그 속눈썹 하며 장미 덩굴 같은 당신의 갈색 잔머리가 나를 실타래처럼 풀어헤칩니다. 나는 나만 볼 수 있는 그 오색의 실로 당신과 나의 약지에 매듭을 짓죠. 손을 잡지 않아도 지저귀는 마음은 차마 숨길 수 없습니다. 그저 날이 참 좋다고 말 한마디 건넬 수밖에요. / 서덕준, 날이 참 좋네요 너의 푸르른 노랫소리를 사랑할게 청춘이니 꽃이니 하는 너의 붉음을 지켜줄게 새벽에 미처 못 다 헤던 너의 우울한 보랏빛도 내가 전부 한 데 모아 하늘로 쏘아 올릴게 네 눈물보다 많은 빛으로 산란하게 할게 전부 별처럼 빛나게 해줄게 너의 부서지는 바다색 웃음소리와 갈맷빛 눈썹이 조잘거리는 이야기에 귀 기울일게 향기로운 너만의 청사진을 함께 꿈꿀게 강물이 마르고 별이 무너져 내려도 너의 장밋빛 인생을 내가 기억할게. / 서덕준, 장밋빛 인생 억새가 강 옆에 꾸밈음처럼 자랐다 들풀이 웅성거리고 철새가 사선으로 빗금을 긋는 이 가을 네가, 내가, 우리가 저 노을을, 이 가을을, 뭇 사랑을 이 가을에 참으로 낭만적인 조사, 가와 을. / 서덕준, 가와 을 출처 서덕준 작가 인스타그램 @seodeokjun 서덕준 시집 존버단 모여라,,,,기다리다 미쳐벌여 문제 시 울며 자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