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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도 제45차 산행]
1. 일자:
2. 날씨: 첫날 오전 가랑비 오후부터 흐리고 개이기 반복, 다음날 맑고 가시거리 매우 좋음
3. 인원: 2명
4. 대상: 향적사지와 중봉능선 / 경남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 소재
5. 코스: 한신지곡-중봉능선 (도상 20.5㎞, 첫날 8시간 10분, 다음날 9시간 25분 소요)
백무동(09:10)-가내소폭포/한신지곡들머리(10:25)-천령폭포(12:00~14:00/점심)-합수부(14:30)-장군대(15:30)-장터목(16:40)-향적사지(17:20~10:05/야영)-장터목(10:45)-천왕봉(12:10)-중봉샘-중봉(13:00)-중봉능선-칠선계곡등로만남(17:00)-창암사거리(18:35)-인민군사령부터(19:10)-백무동(19:30)
6. 후기
유달리 군대에 있는 아들이 기다려지는 가을이다. 지난 휴가 때 못했던 지리산 ‘화대종주’를 함께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아들이 나오자 문제가 생긴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9일, 그 중 2일은 오가면서 길바닥에 뿌려지고 7일만 남는다. 거기서 주중 3일은 지리산에 할당하고 주말에 서울로 떠난단다.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어른들이 계시기에 아들이 휴가 왔다고 바로 산에 갈 수 없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직장행사로 인해 금요일은 내가 몸을 뺄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결국 일정과 코스를 축소 조정한다.
이번 부자(父子) 간 산행은 백무동을 시작과 끝으로, 한 바퀴 순환하는 원점산행이다. 첫날은 한신지계곡을 타고 장터목에 올라
이제 홀가분하게 집을 나선다. 어제는 아들을 대동하여 본가 부모님과 점심을 했고, 처가에서 저녁을 먹은 것으로, 양쪽 어른들께 휴가신고를 끝냈기 때문이다. 함안 산인을 지날 무렵 서편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난다. 아주 온전한 상태로. 얼마 만인가. 부자 간 산행을 축하하는 하늘의 선물 같다. 그룹 레인보우의 ‘The temple of the king’ 을 흥얼거리며 기분 좋게 달린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으로 김치찌개를 주문하자 배추김치와 깍두기가 포함된 세 가지 찬이 나온다. 빠져도 될 게 두 개나 있는 셈이다. 이런데도 운영이 된다니 어이가 없다. 무지개에 녹았던 기분이 싹 사라진다.
백무교.
오전 9시가 채 안돼 백무동에 도착하니 주차장은 평일이라 한적하다. 잿빛 하늘에는 가랑비가 흩날리고 바람도 간간이 분다. 간단한 채비를 하고 오후부터 갠다는 기상청 예보를 믿고 산행에 나선다. 상가 거리를 지나 백무교를 건너기 전 뒤돌아 보는 아들의 생글한 모습이 좋다. 제법 큰 배낭을 멨는데도 말이다. 산길에 접어들자 온통 노랗고 붉은 단풍세상이 펼쳐진다. 여태 이곳을 지나면서 이토록 아름다운 느티나무산장을 본 적이 없다. 작은새골 초입은 그야말로 절정에 오른 느낌이다. 산꾼의 가을은 무더운 산정에서 땀을 훔치며 맞이하는 것인데 이처럼 편안하게 맞닥뜨리니 이미 가을은 산꾼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쉼터에서 휴식을 갖는다.
첫나들이폭포 위에 걸린 다리에서 내려다본 풍경.
첫나들이폭포 윗쪽의 협곡.
첫나들이폭포 위에 걸린 다리를 시작으로 세 개의 다리를 잇따라 건넌 뒤, 한신지계곡에 걸린 철다리에서 합수부를 내려다본다. 한신지계곡이 본류인 한신계곡에 흡수되는 합수점이자 연하봉에서 솔가한 연하북릉이 여맥을 다하는 곳이다. 가내소폭포에 못 보던 목재 데크가 가설되어 있다. 폭포를 감상하기에는 부족한 시설 같다. 부득이 데크 아래로 내려간다.
다시 철다리를 건너와 한신지계곡으로 스며든다. 산길은 계곡 왼편으로 잠깐 이어지다 곧 바로 계곡에 내려선다. 수량이 많은 계곡을 거슬러 오르다 이내 막히고 만다. 우측으로 건너 바위벼랑 위로 우회하여 다시 계곡에 내려선다. 그리고 첫 번째 무명폭포가 반겨주는 곳까지 물줄기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진행한다. 수량이 많을 때는 가내소 폭포에서 되돌아 나와 철다리 건너기 직전 우회로를 따르는 것이 안전하다.
3미터 가량의 무명폭포가 나타나고 그 우측에 쇠 난간이 박혀있는데 산길은 그곳으로 열려있다. 수년 전, 이 폭포 앞에서 점심 먹다 소나기를 맞은 적이 있다. 순식간에 불어나는 황토색 폭포수가 장관이면서 자연이 주는 경고 같았다. 안전한 등산로가 확보되지 않은 우중의 계곡산행은 그래서 위험한 것이다. 울퉁불퉁한 바위 턱을 밟으며 올라간다. 한 모롱이를 돌아선 산길은 다시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잠시 후 또 다시 계곡을 벗어난다. 그리고 산등성이를 감돌아 넓은 반석이 깔린 횡단지점에 도착한다. 그 아래 팔팔폭포가 걸려 있고 휴식하기에 알맞다. 요기를 한다.
한신지계곡 풍경.
계곡을 왼쪽으로 건넌다. 얼마간 고적한 산길을 따르다 계곡으로 내려선다. 이제부터 계곡과 하나되어 오른다. 아담한 와폭과 징담이 잇따라 나타나고 한 줄기 바람이 낙엽비를 쏟아낸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골짝을 덮는다. 변화무쌍한 자연의 마술이다. 그저 신기할 뿐이다. 이 골짝은 지리산 계곡 중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아름다움을 지닌 계곡이며, 산꾼들에게는 추억의 골짜기로 남아 있다. 나 또한 학창시절 추억이 서린 곳이다.
천령폭포.
30여분 오르자 천령폭포다. 이 폭포는 20미터 정도의 2단 폭포로 깊은 소가 없는 것이 아쉽다. 물안개의 농도는 더욱 짙어지면서 으시시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그쳤던 가랑비가 다시 내린다. 폭포 왼쪽 벼랑을 타고 조심스레 오른다. 물기 묻은 바위면은 상당히 미끄럽다. 주의한다. 폭포 바로 위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밥과 찌개가 되는 동안 등심을 구워 소맥으로 자연이 주는 분위기에 순응한다. 오늘은 운행동력인 막걸리가 빠졌다. 막걸리는 이 골짝과 연이 닿지 않은 걸까. 지난번에도 그랬다. 우연치곤 묘하다.
짧지 않은 점심을 끝내고 일어선다. 본래의 산길은 계곡과 떨어져 나란하게 나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계곡에 바짝 붙어 오른다. 적당한 긴장감이 산행의 맛을 배가 시킨다. 뒤따르는 아들도 아까(정등로)보다 훨씬 낫단다. 산꾼의 자질(?)이 있는 걸까. 합수부에 닿는다. 연하봉 쪽으로 패인 골짝은 아직 들여다보지 못했다. 혼자라면 그리로 치고 오르겠으나 오늘은 참는다. 아들에게 한신지계곡을 오롯하게 이어주고 싶다. 그리고 지리산에 대해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말도 아낀다.
합수부. 위에 보이는 봉우리 한신지계곡 좌, 우 골짝을 구분하고 있다.
합수부 바로 위에서 본류를 우측으로 건넌다. 얼마 전 내가 야영했던 자그마한 터가 나오고 곧 내림폭포 아래에 선다. 거대한 암벽이 비스듬히 누워있다. 몇 갈래의 홈이 파여 있지만 수량이 적어 물줄기는 왼쪽 커다란 홈통으로 쏠려 있다. 몇 년 전 폭포수의 굉음은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다.
내림폭포.
내림폭포 우측 상단에 걸린 밧줄.
길은 오른편 비탈로 이어진다. 암벽 중간쯤에 서 있던 내림폭포 이정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한 발짝씩 조심스레 올라간다. 우측 상단의 밧줄은 그대로 있다. [지리99] 답지님이 달아놓은 것이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오른다. 늘 감사하면서 나누고 베풀며 살라고 아들에게 한 마디 한다. 처음부터 누군가가 독식하지 않고 공정하게 나누는 시스템이라면 특별하게 베풀 일도 없을 것이다. 물론 차등이 없는 공정이나 공평은 의미가 없겠지만. 폭포 상단은 휴식하기에 알맞고 조망도 아주 시원하다. 잠시 쉬는 사이 하늘은 흐리고 개이기를 반복한다.
내림폭포 상단에서 휴식 중.
장군대 직전 와폭에서.
내림폭포 위에서 산길은 왼쪽으로 건너야 하지만 한동안 계곡을 이리저리 거슬러 오르다가 장군대 직전에 왼쪽으로 벗어난다. 이 부근엔 희미한 길이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다. 장군바위는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다. 그 위에는 수십 명은 넉넉하게 앉아 쉴 수 있는 넓은 반석이다. 주위엔 야영 터도 있다. 여기서 하룻밤 유하는 것도 운치가 있을 듯. 파란 하늘이 부분적으로 열리면서 오공능선과 삼정산으로 뻗어 내린 중북부능선, 만복대의 서북능선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장군대.
장군대를 지나서도 계속 계곡을 따른다. 수량은 많이 줄었고 지난 태풍의 흔적도 간간이 보인다. 얼마쯤 올라 계곡을 벗어난다. 커다란 풍도목이 누워 있고 구상나무와 아름드리 주목나무도 나타난다. 뒤따르는 아들은 아직도 팔팔하다. 몇 년 전 겨울, 대학입학을 앞두고 천왕봉을 오르며 힘들어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서울로 보내면서 특별히 해줄 건 없고 지리산 정기라도 담뿍 받아줄 양으로 천왕봉에 올랐는데, 그 때에 비하면 체력이 엄청 강해진 것이다. 이번 산행을 계획하면서 아들에게 당부한 것이 체력이었다. 그 때마다 하는 말이 “아버지, 그래도 군인이다.” 맞다. 그래 군인이다. 자랑스런 대한민국 육군이다.
주목나무.
장터목산장을 눈 앞에 두고 왼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혹시 맞닥뜨리게 될지 모르는 공단직원과의 실랑이 장면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같은 산행을 ‘도둑산행’으로 정의하고 싶다. 규정을 어기고 숨어서(?) 하는 산행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행하는 ‘범법’의 강도는 시야가 확실하게 확보된 편도 2차선 곡선도로에서 중앙선을 살짝 침범하는 정도로 여길 뿐이다. 산림 규정에 대한 나의 견해가 비난 받더라도 어쩔 수 없다.
향적사지 너럭바위에서 내려다본 문창대와 황금능선.
백무동-하동바위-장터목 간 정등로에 올라서고 3, 4분 뒤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한다. 평일인데도 산객들이 많다. 형색을 보니 대부분 ‘산상 호텔’에서 주무실 분들 같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친다. 산희샘에서 식수를 확보하고 곧바로 향적사지로 향한다. 길은 거칠고 사납다. 잡목이 배낭을 잡아채고 얼굴을 때린다. 제석봉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길과 만나 얼만큼 내려가니 큰 바위 아래 평평한 터가 나타난다. 바로 향적사지다. 기와조각과 샘도 보인다. 거대한 바위가 앞 뒤로 서 있다. 가운데 너럭바위에 서자 산 그림자가
머리 위로는 바람이 쌩쌩 불어대지만 그래도 이곳은 낫다. 서둘러 집을 짓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바람이 내려온다. 도저히 밖에서는 안되겠다. 집으로 들어간다. 밥하고 고기 굽고 찌개를 끓인다. 더불어 술잔도 기울인다. 지리산 속살을 헤치고서 이렇게 텐트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술잔을 맞대는 게 그리 흔한 일은 아닐 성싶다. 둘 중 한 명은 속살을 더듬을 능력이 있어야 하고, 범법(?)을 초월하는 ‘도둑산행’과 지리산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기에 지금 이 시간이 행복하고 소중한 것이다. 술이 끝나고 각자 머리를 반대방향으로 해서 눕는다. 잠이 와서가 아니라 텐트가 작아 둘이서 오래 앉아 있기가 불편해서다. 산정을 넘나드는 바람의 기세는 아직도 여전하다. 어쩌다 한 번씩 내려와 텐트를 할퀴기도 한다.
많은 상념이 스치지만 지나온 지리 여정이 문득 머릿속에 똬리를 튼다. 이 산행이 올 들어 지리산 18차인데, 블로그에 산행기록을 올리고부터는 100차가 되는 셈이다. 그 전에도 수없이 지리에 들었지만 제대로 된 기록이 없다. 그래서 기억나는 것만 추억으로 남아있다. 기록의 소중함이 새삼스럽다. 지리산 100차 산행, 아들이 동행해줘 고맙고 기쁘다. 지난 산행을 더듬어본다.
하나(1/7토), 묵계/정골/외삼신봉/삼신봉/내삼신봉/박단골/청학동, 임진년 지리 첫 산행으로 초라한 시산제를 지냈다.
둘(1/21 토), 중산리/엎어진골/곡점능선/백운암골/중산리, 백운암골에서 엄청 고생하고 간신히 빠져 나왔다.
셋(2/4 토), 덕동/오얏골/우측능선/서북능선/고리봉/지능선/언양골/달궁, 서북능선과 언양 좌, 우골을 가르는 지능선을 러셀했다.
넷(2/25 토), 달궁/달궁능선/심마니능선/심원능선/심원, 이달 초순에 이어 또 다시 달궁에 들었다. 전 구간을 러셀하다시피 했다.
다섯(3/10~11), 외둔/신선대/강선암/원강재(야영)/내원재/내원능선/회강골/원강재, [지리99] 소들의 모임에 참석했다. 다음날 산행 때 입선이와 재길이가 애써 주었다.
여섯(3/31 토), 당동/간미봉능선/간미봉/천은사, 구례로 갔다. 간미봉능선을 타고 미끄러지듯 천은사에 떨어졌다.
일곱(4/7 토), 청학이골/관음봉/혜일봉능선/내원골/쌍계사, 혜일봉능선 막바지 벼랑지대에서 복병을 만나 고생했다.
여덟(4/28~29), 한수교/좌측능선/습지/야영지(야영)/왕시리봉능선/왕시리봉/봉애산/한수교, ‘왕의 강’ 섬진강을 원 없이 내려다보았다.
아홉(5/5 토), 청래골/거림능선/와룡폭포(도장골)/곡점능선/백운암능선/중산리, 청래골에서 거림능선을 넘어 와룡폭포를 보았다.
열(5/26~27), 덕평산장/비린내골/선비샘(야영)/벽소령/소금쟁이능선/덕평산장, 광대골을 찾았다. 선비샘과 덕평습지 사이 야영지에서 손톱만한 똥파리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당했다.
열하나(6/9 토), 범왕교/범왕골/우측지능선/범왕능선/토끼봉능선/목통, 칠불사 아자방의 유혹을 뿌리치고 토끼봉능선을 끝까지 이었다.
열둘(7/21 토), 홍계/딱바실골/달뜨기능선/백운동계곡/점촌, 백운동계곡에 피서팀을 풀어놓고, 삼장과 단성을 연결했다.
열셋(7/28 토), 쟁기소/봉산골/심마니능선/달궁능선/좌측지능선/달궁, 봉산골로 파고들었다. 오찬이 너무 길었던 탓에 일출식당 사장께 신세를 지고 인월에서 하룻밤 잤다.
열넷(8/9~10), 의신(박)/원통암/칠불사/연곡사/석주관/천은사/실상사, 아내와 함께 사찰과 사당을 찾았다. 의신 정대장과 술 한잔 나누었다. 이른 아침 원통암 스님이 살갑게 맞아주었다.
열다섯(8/11 토), 곰골/웅석봉/청계계곡/청계저수지, 곰골에 대한 숙제를 풀었다.
열여섯(9/1 토), 백무동/작은새골/곧은재능선/큰새골/백무동, 백무동계곡 본류를 건너는데 애를 먹었다. 곧은재능선에서 태풍에 떨어진 겨우살이를 수확했다.
열일곱(10/3 수), 거림/북해도골/청학연못/도장골/거림, 북해도골로 파고들었다. 길 흔적이 전혀 없는
다음 열아홉 번째는 제석봉골과
다음날 아침 6시경, 눈을 뜬다. 사실 밤사이 몇 번 눈을 떴었다. 바람이 가만히 나두지 않은 탓이다. 바람은 지금도 계속 불어댄다. 아들도 눈을 뜬다. 그렇지만 밖으로 나갈 엄두가 안 난다. 그냥 침낭 속에 있기로 한다. 바람이 멎은 사이 아침을 지어먹고 철수를 서두른다. 당초 8시쯤 떠날 예정이었는데 두 시간을 미뤄놓은 상태다. 급할 것도 없다. 하산하다 어두우면 불 달면 된다. 게다가 대한민국 육군이 호위하고 있지 않은가.
향적사지 앞 바위 위에서 바라본 천왕봉 방면.
야영지.
10시 5분, 야영지 주변을 정리하고 천왕봉으로 떠난다. 바로 치고 올라가면
제석봉 돌밭길에서 뒤돌아본 주능선. 노고단 10시 방향에 무등산이 조망된다.
진양호, 주간, 남해바다, 하동 금오산이 보인다.
이제부터 주능선을 걷는다. 온통 돌밭이다. 마주치는 산객도 많다. 돌밭 길이 부담스러운지 뒤따르던 아들이 스틱을 챙긴다. 파지법과 주행 요령을 알려준다. 우측 고사목 초원지대에 못 보던 비석이 서있다.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통천문 직전 도깨비바위 쪽으로 비켜나 마음을 가다듬고 옷 매무새도 바로잡는다. 천왕을 알현하기 위함이다. 오색 딱따구리로 보이는 새 한 마리가 주위를 맴돈다. 버려진 과일 껍질 등을 눈치껏 챙기는 저 녀석과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 과일과 양갱을 든 내가 다를 게 없다. 다 살자고 하는 짓이다. 통신골을 내려다본다. 어느 11월 초순이었던가 장터목에서 하룻밤 유하기로 돼있어 굳이 천왕봉으로 바로 올려 치지 않고 통천문 방향으로 틀었는데 그때 동행했던 일행의 얼굴이 하나 둘 떠오르고, 그 위로 와인 한 병이 겹쳐진다. 통신골을 어렵사리 올라온 와인이
칠선계곡.
통천문이다. 글자 그대로 하늘로 통하는 문이다. ‘부정한 자는 출입을 못한다’는 말도 있다. 발아래 펼쳐진 칠선계곡과 통신골을 곁눈질하며 한발 두발 오름짓을 한다. 고행이 따로 없다. 100리터가 넘는 배낭도 한 몫 거든다. 천왕을 만나는 일이다. 힘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문제다. 이런 고행 길을 뾰족구두와 미니스커트도 올라간다니 기가 막힐 일이다. 당분간 수면 아래로 내려간 지자체의 로프웨이 건설안이 언제 악령으로 되살아날지 모를 일이다. 부디 천왕님께서 물리쳐 주시옵소서.
천주(天柱). 하늘을 받들고 있는 기둥, 음각된 각자를 보고 정상에 선다. 조선조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은 조위, 유호인, 한인효 등의 제자들과 천왕봉에 올라 성모사에서 잠을 자던 중 달이 환하게 떠오르자 그 기쁨에 밖으로 나와 이런 말을 했다. ‘다행히 그대들과 더불어 뜻을 같이 하였으니, 혼돈한 가운데라 할지라도 옳지 않은 일에는 휘말리지 말아야 할 것이로다.’ 오늘 우리들이 깊이 음미해 볼만한 구절이다. 아들 인증사진 두어 장만 남긴 채 천왕봉을 뒤로한다. 평일인데도 산객들이 많고 바람까지 불어대기 때문이다.
중봉과 하봉.
중봉으로 가는 길은 별천지인 양 산객도 돌판도 없는 고적함만 있다. 정등로라도 이런 한갓진 길이 좋다. 안부에 배낭을 내리고 점심용 식수 확보 차 중봉샘으로 내려간다. 낙엽이 떠 있는 샘의 수량은 넉넉하다. 낙엽을 걷어내고 물을 깃는다. 야영 터의 마른 풀이 올 초 멀리 떠나버린 동생을 생각나게 한다. 어느 날, 밤중에 동릉의 암벽을 오롯이 타고 올라 천왕봉에 섰다가 여기서 초롱한 별을 보며 그와 하룻밤 지냈는데, 그 때 그가 채취한 곰취로 아침을 먹었던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중봉에서. 황매산과 의령 자굴산도 보인다.
중봉 조망바위에 걸터앉는다. 내가 애용하는 곳이다. 이 곳은 늘 한적하고 포근함이 묻어난다. 중봉과 써레봉 일대는 나의 모산(母山)이기에 더 그렇다. 1980년 2월, 지리산 첫 산행에서 천왕봉-중봉, 써레봉 암릉구간이 가장 힘들었던 곳인데 이제는 여기가 편안하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 산에 대한 태도는 첫 산행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순례자가 성지를 가는 마음으로 산에 들어야 한다’는 프랭크 슈마이더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산꾼은 산에 대한 경외심을 항상 지니고 살아야 한다. 중봉은 천왕봉에 가려 찾는 산객의 발걸음은 뜸하지만 “골수 산꾼”들은 이 곳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양보다 질이란 이를 두고 이름이다. 조망도 좋다. 손에 닿을 듯한 천왕봉을 비롯해 주능선과 서북능선, 칠선계곡, 동부능선, 치밭목, 조개골, 황금능선, 마야계곡, 달뜨기능선이 보인다.
바람이 차고 만만치 않은 하산길이 기다리고 있는데도 일어서고 싶지 않다. 누군가 산에 들 때와 그 속에 있을 때는 신체리듬이 최고조에 달하지만, 산에서 날 때쯤이면 어김 없이 아픈 병이 도진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골수 산꾼”이자 영원한 이인자인 중봉을 좋아하지 싶다. 하산은 중봉능선 끝자락에서 칠선계곡에 떨어졌다가 다시 창암능선을 넘어야 한다. 칠선폭포 바로 위에서 칠선계곡 본류와 지류인 대륙폭포골이 갈라지는데 그 두 골짝을 양편에 끼고 뻗어 내린 줄기가 바로 중봉능선이다. 나로선 초행길이다. 그래서 설렌다. 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아들은 짐작이나 할까.
중봉능선 암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중봉능선 단풍.
양편으로 사태 난 지대를 지날 땐 마음이 쓰라린다. 어쩌면 이 또한 자연의 변화이고 섭리인 것이다. 상처 나고 치유하기를 억겁의 세월 동안 해왔을 것을 순간에 사는 내가 뭐라고 말한다는 게 오히려 우습다. 얼마쯤 내려오자 화려한 세상이 펼쳐진다. 꼭 붉은 것만 좋은 게 아니다. 노랑에다 파랗고 거무튀튀한 것도 어울려야만 아름답다. 그런 단풍이 중봉능선을 물들이고 있다. 우리 인생사도 다르지 않다. 단풍이 주는 교훈이자 산이 주는 가르침이다. 한 시간쯤 내려온 적당한 지점에서 점심상을 펼친다. 누룽지에 멸치칼국수, 소주 반 병이 전부지만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다.
능선이 끝날 무렵 칠선계곡 등로에 내려선다. 길 잇기에 두어 번의 어려움이 있었는데도 불평 없이 따라준 아들이 대견스럽다. 합수부 삼거리에서 배낭을 내리고 대륙폭포로 향한다. 물줄기는 ‘성수기’에 비해 확 줄었다. 그러나 그 위용만은 대단하다. 칠선계곡에서 남성적이고 가장 웅장한 폭포가 대륙폭포라면 잠시 후에 만날 칠선폭포는 다소곳한 새 각시를 연상케 한다. 1950년대 칠선계곡 개척단의 일원으로 나섰던 대륙산악회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선점의 효과다.
대륙폭포.
합수부 부근 칠선계곡 본류.
대륙폭포를 뒤로하고 본류를 건너 조금 더 내려가자 우측 아래에 하얀 폭포수가 쏟아지는 칠선폭포가 눈에 들어온다. 이틀간의 산행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폭포다. 무차별 폭격하듯 퍼부었다는 지난 태풍도 이곳만은 건드리지 못했다. 일곱 선녀가 곱게 지켜내었나 보다. 칠선폭포의 자태를 보고 있노라니 할머니가 손수 빚어낸 막걸리 한 잔이 생각난다. 폭포에서 내려다보는 칠선계곡도 너무나 아름답다.
칠선폭포.
지리산꾼이자 지리산 수필가인 산나그네님은 그의 저서 <지리산 황금능선의 봄>에서 칠선계곡을 색다르게 이야기한다. “칠선계곡은 분명 청춘의 계곡이요 젊음의 계곡이다. 그러기에 청춘을 넘긴 사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계곡인지도 모를 일이다. 칠선계곡은 이, 삼십대의 계곡이다. 이미 젊음을 잃어버리고 지난날의 꿈을 먹고 사는 오, 육십대의 계곡이 아니라 하다못해 무르익은 사십대 장년의 계곡이다.” 오십 대에 들어선 나에겐 섭섭한 말처럼 들리지만 동행한 아들에겐 희망 같은 이야기다. 출입을 막고 있는 공단에서도 하루빨리 통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청춘을 맘껏 발산하고 불사를 수 있도록 말이다.
오후 5시 30분쯤, 창암능선에서 내려오는 지계곡을 건너 칠선계곡 등로를 버리고 빨치산루트로 들어선다. 노란 단풍이 맞아준다. 너덜이 주를 이루는 이 사면 길은 창암능선을 넘어 백무동으로 이어진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지리산에서 빨치산의 이름을 딴 유일한 길일 것이다. 꽃다운 젊음을 붉게 물들이지 못하고 노란 꽃으로 승화한 것인가. 어쨌든 가슴이 아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사이 길을 잘못 들었음을 발견한다. 능선까지 절반이나 남았을까. 지능선 하나를 에돌기 전에 벌어진 일이다. 낙엽이 뒹굴고 풍도목이 쓰러지고 땅거미가 짙게 깔린 길을 긴장하지 않고 운행한 탓이다. 얼마나 벗어 났을까. 되돌아갈까 하다가 그대로 진행한다. 마치 내가 빨치산인 양 산죽과 잡목을 헤집고 바위를 타며 치열하게 진행한다. 아들도 묵묵하게 뒤따른다. 지능선 등날에 서자 길이 윗쪽에 있음을 감지한다. 조금은 편안하게 올라간다. 길을 만난다. 짧게 끝낸 것이 다행이다. 아들에게 일러준다. 지리산에서는 길을 잃고 다시 만나고 하는 것이 다반사라고. 하지만 정말로 잘못되었을 땐 되돌아가야 한다고. 머릿불을 단다.
빨치산루트의 노란 단풍.
창암능선을 넘는다. 산죽비트를 지나 너덜을 만나면서 길은 다소 거칠어진다. 마을 터를 거쳐 인민군총사령부 터를 지난다. 현수막이 걸려 있다. 현역 군인을 대동하고 이 곳을 지나는 기분이 묘하다. 어느새 나타난 백무동-두지동 간 탐방로 안내판이 이 길이 개방되었음을 알려준다. 백무동에 도착한 것이다. 이 산행의 여운은 오래갈 듯하다. 끝.
첫댓글 아드님과 함깨하신 지리산 100차산행 감축 드림니다.
저도 큰애 작은애 둘다 대학생이고.큰애가 제대하고 다시 복학으로 학업에 정진하는 하는데.지리산 둘레길,노고단등산 한번 동행치고는
지리산은 쳐다를 안보니...ㅠㅠ.
자식들과 동행 산행하는 분들이 최고로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애들 스스로 찾을 때까지 기다려야죠.
저는 애들 어릴 때부터 가끔 산행도 하고 야영도 했는데,
지금은 잘 안 따라 나서죠.
그래서 명분을 만들어 이번 산행에 동행한 것입니다. ㅎㅎ
늘 산행기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 산행 많이 하십시오. ^^*
산학동자님의 산행기는 한편의 서사시 같습니다 ^^
아 가고 싶어라,,,
사설이 많고 진부하지요.
그래도 잘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언젠간 뵐 날 있겠지요. ^^*
아들과 함께 ~
지리속으로 ~
머찜니다 !
늑대님 고맙습니다. ^^
언제 지리산에서 뵈었으면 좋겠네요.
언제 읽어도 동자님의 필력은 대단합니다.
아드님과 함께한 지리산 100회차 산행 감축드립니다. ^^
산행기는 이렇게 써야 한다는 교본을 보여 주시는 듯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런 정도의 필력은 못되지만 그런대로 글을 썼는데
요즘은 도통 글이 안 나오니 ... 산행도 부럽고 필력도 부럽고 ^^
과찬의 말씀입니다.
오랜 만에 아들이 함께한 산행이라 산행기를 쓰긴 했는데
길고 진부한 내용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그러이 잘 봐 주시니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