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문학기행
남해 유배문학관 – 파독기념관 – 원예 예술촌 - 물건방조어부림
강 문 석
남해대교를 건너 유배문학관으로 향하면서 짧아진 가을해 때문에 이충무공 순국공원 '이락사'를 그냥 지나치자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문학관은 읍내에 위치한 때문인지 탐방객들이 많아 해설사가 끝나길 기다려야만 할 정도였다. 유배문학을 연구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국내 최초로 들어선 문학관이었다. 권력도 부귀영화도 모두 빼앗긴 채 유배라는 절망적인 삶 속에서 문학과 예술을 꽃피운 기록이 눈물겨웠다.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주제별로 전시해 놓았지만 꼼꼼하게 둘러보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구운몽'과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쉰여섯에 유형의 삶을 마감했던 남해의 노도 섬. 이제 섬은 이름마저도 '노도문학의 섬'으로 바뀌었다. 벽련마을에서 섬까지 도선이 운행하고 있었지만 마음뿐 아쉬움을 안고 돌아서야 했다. 노도에 유배문학관이 들어서기 훨씬 전 금산에 오를 때면 빤히 내려다보이던 작은 섬이 노도였다. 살아오면서 섬나라 남해를 찾을 일이 많았다. 개인적으론 친구의 피조개 양식사업장에 초대받아 해상에서 일본으로 바로 피조개를 수출하는 현장도 지켜보았다.
사는 곳에서 거제보다 멀고 덩치도 작은 남해를 자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섬이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몸담은 단체들에서 장소를 정한 것이니 어떤 면에선 검정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땐 요즘처럼 스스로 '보물섬'이란 광고를 내걸기 훨씬 전인데도 그랬다. 남해의 지리를 확실하게 익힐 수 있었던 건 직장 은퇴 후 안전장구시험 용역업무를 맡아 3년 동안 차를 몰고 섬 구석구석을 훑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는 길도 물어서 가랬다고 문학기행을 준비하면서 남해가 고향인 작가에게 추천할 만한 곳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파독기념관’을 알려주면서 좋은 글감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붙였다. 파독기념관은 독일마을이 들어서고도 한참 세월이 지난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기도 했지만 파독 당시 사선을 넘나들었던 광부들의 영상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추천한 듯 했다. 지난 날 대전에서 만난 지인이 파독광부로 가서 보내온 봉함엽서를 통해 당시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오늘 엔드리스로 돌아가는 영상은 콧잔등을 시큰하게 만들었고 교복 입은 소녀들은 눈물까지 훔치고 있었다.
지구촌 사람들로부터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다는 독일 사람들. 반세기 전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우리 광부와 간호사들의 근면성실함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당초 남해의 독일마을은 야트막한 언덕바지를 오르면서 길 좌우로 들어섰고 동쪽 바다가 가까이 내려다보였다. 마을에서 조망하는 물건방조어부림 숲이 마치 이국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 마을 꼭대기엔 꽃과 나무를 소재로한 원예예술촌이 자리 잡았다. 나라별 이미지와 테마를 살려 조성한 주택이 스무 곳이 넘는 예술촌이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버스를 내린 곳은 생판 낯선 곳이었다. 우선 기존의 독일마을이 보이질 않았다. 알고보니 독일마을 고개 너머에 새로운 주차장을 만든 것이었다. 파독전시관을 만들면서 몰려드는 관광객을 소화하기 위해 마련한 것을 몰랐던 것.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악전고투한 삶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기념관에 도착하니 우릴 기다리는 손님이 있었다. 남해군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Y보건소장으로 우리 문학단체에 전하겠다고 분에 넘치는 찬조금까지 들고 있었다.
언니가 문학기행을 간다고 미리 연락해서 만난 것이지만 일요일인데도 깁스한 다리를 이끌고 도착하여 우리 일행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1963년 발족한 수필부산문학회는 우리나라 수필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그동안 치열하게 수필에 매달려 오늘에 이르렀지만 이제 오륙십 대가 청년 대접을 받을 정도로 조직은 고령화되었다. 그런데도 다들 문학을 향한 열정만은 식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굳게 믿고 있으니 노년에 이보다 더 가슴 뿌듯한 일이 있으랴 싶다.
당초 입장료 부담이 만만치 않은 원예예술촌은 건너뛰기로 했었다. 그런데 기부천사가 나타나는 바람에 상황이 달라져 입장료는 따지지 않기로 했다. 원예예술촌은 초창기보다 휘귀종 식물들이 더욱 많아졌고 이국풍의 집들도 단장을 바꾼 곳이 보였다. 오늘 문학기행에 나선 최고의 어른은 작품 <이모작 인생>으로 ‘전국수필가의날’에 대상을 받았던 망백의 L고문이시다. 원로께서는 살아오면서 줄곧 베푸는 삶으로 일관하였고 오늘도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고 일정을 소화해 후배들이 따르고 싶은 선배가 되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