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무 잎새마다
고요하게 깃들인 새들의 저녁 晩歌 들으며
둥글고 둥글은 마음 안에 보금자리 편다.
한없이 평화로운 둥그러운 열매들을
저 지상의 두 팔 위에 내려놓는다.
세상의 모든 저녁이 바구니를 들고 있다.
2
오래 전부터 내게는 의미 깊은 저녁이
가라앉아 음악을 이룰 때가 있다.
햇빛이 과일 속에 단맛을 들여놓듯,
어둠이 마음의 시원인 내 안에 무게를 내리듯.
나는 과일의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검은 살과 물로 형상 짓는 일은 그분.
나는 잎사귀거나 그 잎사귀의 수많은 각자일 뿐.
무성히 매달려 꼭지 짓는 것은 그분.
3
내게 눈을 가리고
나를 편안히 따는 그분.
나를 편안히 소쿠리에 담는 그분.
나는 그분이 한가한 날에 따는
맛 든 과일이고 싶다.
-地上의 바구니/조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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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는 본성을 따른다는 라틴어 격언이 있다.
가지지 않은 것을 줄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마태7,17)고 하신다.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 나무일 수 없고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나쁜 나무일 수 없다고 하신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사람의 열매는 말과 행동으로 드러난다.
이해인 수녀님 표현처럼
'내가 뿌려놓은 말의 씨앗들이 어떤 열매를 맺었을까?'
말을 통해 그사람이 드러난다.
말 실수를 하고는 당황한 적이 여러번 있다.
말은 마음을 담은 것이기에 더 당황스러웠다.
누구나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한가지 실수만 가지고 그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다.
남을 판단하지 말라(마태7,1)는 말씀은
그것이 당신께 유보되어 있음을 기억하게 하신다.
남의 허물을 들어 그를 단죄한다해서
내가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만 시끄러울 뿐이다.
그저 그분의 자비를 청하며 기도가 필요하다고 고백해야한다.
밀과 가라지를 구분하는 종말의 때에
그분께서 하실 일.
'양의 옷차림을 한 게걸든 이리'(마태7,15)
양의 옷차림은 '양의 탈을 쓴'이다.
보여주기 위한 모습, 보이려고 하는 모습은
감추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이며,
게걸든 이리는
속에든 탐욕을 표현한 말이다.
그럴듯한 신앙인임을 드러내던 바리사이들에게
그리고 여전히 갈길이 먼 내게 건네시는 말씀이다.
그분 소쿠리에 담기는 그날
맛든 과일이고 싶다.
평안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