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30대가 넘어서면서 영화나 비디오를 보는 횟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요즘은 왠지 예전 같이 영화가 주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데서 그런지 아니면 삶을 살아가는데 찌들어 져서 그런지 자문을 해 보기도 하지만 근래의 영화들은 확실히 매력을 잃어 가고 있다. 20세기 말 이데올로기 해체는 영화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예고하였다. 영화 탄생과 시작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대립은 영화전반에 걸쳐 풍부한 소재 거리를 제공하였다. 영화는 예술이란 측면 이면에 산업적 요소가 더욱 강한 면이 내재 되어있고 상업적 뒷받침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야누스적인 장르의 예술이다. 영화란 자체가 개인작업도 아니며 상업적 측면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행할 수도 없는 예술매체이기 때문에 항상 영화 관객들과 타협해야 한다는 선상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관객들은 영화 스토리의 선-악의 대결인 이분법적 요소로 이끌어 가길 바라며 상호 충돌로 영화에 빠져들기 시작한다. 21세기로 들어서면서 100년간 인간의 사상을 지배해 오던 이데올로기의 해체는 상호간에 선-악적 구도를 상실하게 되었으며(좋은 의미나 나쁜 의미 모두를 말한다) 정치 사회 예술 전방에 걸쳐 정신적 공황에 빠지게 된다. 결국 선-악의 주체가 사라진 시점에, 그 대안으로 떠 오른 것이 컴퓨터를 매개로 하는 사이버 세상이다. 영화는 신-구세대의 틈을 엮어주는 매개체로 여겨졌지만 오늘날 영화가 가지는 그 매력은 스크린이 아닌 스포츠로 전이 됐으며, 오히려 영화 전반에 걸쳐 등장하는 사이버란 존재로 신-구의 갈등 구조는 더욱 극명하게 벌어지게 되었다. 기존의 구세대는 사이버란 상상적 세계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 환멸을 가지게 되었으면 신세대들은 그들의 이상적 가치를 가지게 되는 사이버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구세대들을 자신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저차원적 세계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들의 신-구의 대치는 비디오 숍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이들의 비디오 대여 내역이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비디오 숍주들은 비디오테잎의 구입을 예전과 다르게 이들 두 부류로 나눠 구입해야 하며, 세대간에 공통적 소재를 다룬 영화의 실종은 비디오숍의 수익에도 크나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다양해진 영화 장르로 말미암아 비디오 숍주들은 비디오 구매액이 올라가며 반대로 테잎마다 가지는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면서 비디오 시장이 고사하고 있는 영화란 매체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제는 활동 계층에서 구세대로 바뀌어 가고 있는 나로서도 영화가 가지는 다양성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디오 숍에 가서도 한편의 영화를 고르기가 쉽지 않으며, 더 더욱이 자신만이 희망하고 느끼는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쉬운게 아니다. 난 어린 나이에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보기 시작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절망을 느꼈고, 테크놀로지의 무서움을 접했지만, 불혹의 40세를 바라보면서 그 영화가 내게 영향을 준 구석은 하나도 없었음을 느낀다. 영화와 소설이 가지는 매력, 그것은 인생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인생을 변화시키는 영화, 그런 영화는 화려하지도 않으며 자극적이지도 않다. 다만 그 속에 내재된 진실과 인간사의 휴머니티가 보는 관객을 하여금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 속의 나타난 화려한 장면처럼 살아가길 원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을 뿐이다. 결국 사람들은 영화 속의 한 장면의 씬 처럼 한 순간만이라도 자신의 삶을 꿈꾸며 스크린으로 빠져 들어간다. 난 오늘 그런 영화를 보았다.
October Sky (10월하늘) 제목처럼이나 맑은 영화이다. 이 영화는 가을에 흔히들 만들어지는 멜로영화는 아니다. 화려한 장면도 없고, 극적인 반전도 없으며, 유명한 스타도 없는 아주 평범한 영화이다. 흔히 우리가 TV에서 볼 수 있는 한편의 베스트극장 같은 드라마에 "죽은 시인의 사회"의 내용이 담긴 영화라고나 할까? 그러나 왠지 이 영화는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그 잔영이 내 머리를 맴돈다. 어느덧 이 영화의 테잎을 비디오데크에 3번씩이나 넣으면서 말이다. "죽은시인의 사회"와 "옥토버 스카이"의 차이점은 상류층과 하류층의 계층의 교육적 환경실태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 종착점은 세대간의 갈등으로 걸어가고 있다. "옥토버 스카이"를 보면서 "죽은시인의 사회"가 떠오르지만 뭔가 확연히 다른 감흥 앞에 이 영화를 해부 해보려 한다.
2차 세계대전후 이 지구에는 두 나라의 패권만이 남았다. 전쟁의 현장에서 찌들었던 유럽의 榮華는 사라져 갔고 전쟁의 무풍지대였던 미국과 마르크시즘으로 무장한 소련이 출현이 이 지구란 작은 땅떵어리를 차지하게 된다. 1950~60년대 미국은 지구상의 첫 번째 패권국가로 웅트림하는 시기였다. 끊이 없는 소련과의 무기경쟁과 급속히 변화하는 산업적 환경에서 정치 경제적으로는 황금기로 접어 들기 시작했지만, 이 과정에서 밀려난 소외계층의 문제가 사회의 중심적인 문제로 들어서게 되었다. 문제인 인종 민족 계층 세대의 차이가 엄청난 괴리를 나타내며 사회의 전반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옥토버 스카이"는 교육, 계층, 세대간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냉전이 지속되는 1957년 콜우드라는 한 탄광 마을에, 긴급 뉴스가 타전된다. 소련의 인공위성인스퍼트닉의 발사로 인류의 신기원 이뤄졌다는 보도를 콜우드의 마을 사람들은 경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냉전의 새로운 장 사이에서 미국 국민이 불안에 떤다는 뉴스 멘트가 마을사람들의 귀를 울린다. 곧이어 위성 스퍼트닉이 10월의 미국하늘을 비췰 거라는 멘트가 이어진다. 콜우드 탄광촌 하나 뿐인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이곳이 마지막 학창 시절이며 이곳 졸업하면 자신의 아버지가 다니는 탄광으로 귀속된다. 유일한 탈출구는 미식축구 선수로 장학생으로 뽑혀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지만 그건 몇몇 소수에 해당되는 상황이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탄광이란 절망의 구렁텅이로 자신들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에 자괴한다. 자본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지며 서부개척의 프론티어 정신을 모티브를 삼는 미국인들, 그들에게도 엄연히 직업의 귀천이 있다. 탄광의 광부라는 직업은 엄연히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인생의 마지막 파난 처이다. 거기에는 생명의 존귀함이란 존재치 않으며 단순한 석탄을 캐는 도구로서 인식된다. 광부들은 새로운 세계로 나갈려는 의지도 없으며, 인생의 패배자로서 현실에 안주하려 들며, 그 자식들에게도 그 생활을 전도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탄광촌에 학생들의 미래는 존재하는가? 운동도 못하여 대학 진학이 암울한 그들에게, 암울한 탄광촌의 미래에서 탈출구를 찾는게 이 영화의 주제이다.
탈출의 시발점은 작은데서 부터 출발한다. 수업시간 소련의 인공위성 스퍼트닉은 학생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거리로 자리 잡는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9천킬로미터의 상공에서 1만8천마일의 속도를 달리는 역사적인 사건의 장을 연 인공위성에 호감을 갖지만, 단지 하나의 흥미꺼리에 불과하다. 10월의 밤하늘을 지나는 스퍼트닉을 바라보는 주인공인 '호머 히컴'과 그 친구들은 로켓트 연구라는 새로운 인생의 이정표를 세운다. 아침 식사 시간 주인공은 가족들에게 스퍼트닉은 아니지만, 작지만 하늘을 가를 수 있는 로켓트를 만들겠다고 말하지만 집안 식구들은 모두 비웃는다. 주인공의 제안에 아버지는 호머를 무시하고 미식축구선수인 큰아들에게만 아버지의 부정을 쏟아 넣는다. 주인공 아버지인 존은 콜우드 탄광의 유명한 소장으로서 그 인생의 전부가 광부이지만 큰아들에게만큼은 현실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로 보고 큰아들에게 인생을 건다. 호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로켓트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지만 연이은 실패를 거듭하게 된다. 미국의 뱅가드 로켓트 발사 실패를 TV로 지켜본 호머는 물리학작인 '본 브라운'박사에게 로켓트 제작에 어려움을 편지로 호소한다 호모는 로켓트 제작에 큰마음을 먹고 학교에서 공부 벌레로 통하는 왕따 학생인 퀸튼을 로켓트 제작의 일원으로 끌어들이며 로켓트 제작이 진일보 하게 된다.
호머 일행은 제공소의 바이코프시키의 도움으로 외형적으로는 로켓트 제작에 성공하고, 수학선생인 라일리의 응원에 힘입어 로켓트 제작에 힘을 얻게된다. 하지만 로켓트 탄도는 어딘가 모르는 불균형으로 발사 궤도를 이탈하여 아버지의 작업장으로 날아든다. 이를 못마땅히 여긴 아버지 존은 아들 호머의 로켓트제작 도구를 집밖으로 내뺑겨 친다. 이에 실망한 호머는 일행을 데리고 집에서 12킬로 떨어진 지점에 로켓트 작업장인 일명 콜우드 미사일기지를 세운다. 이를 두고 호머의 아버지 존과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비웃지만 아버지 존은 그나마 호머에게 흥미를 가지며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바이코프스키는 호머를 도와줬다는 이유로 제공소에서 막장으로 쫓겨난다. 호모는 바이코프스키에게 용접을 가르켜 달라자 바이코프스키는 중단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기술을 전수한다. 어느 날 콜우드 미사일기지에 흑인 조종사가 찾아온다. 로켓트 발사 실험을 지켜본 흑인 조종사는 로켓트가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용접한 분사구 워셔가 열에 녹아서 궤도를 이탈한다고 가르켜준다. 분사구의 재질은 강철로 하여야 하며 제작은 용접이 아닌 가공으로 해아 한다고 일러 줘 그들은 로켓트 제작에 큰 분기점을 만든다. 그러나 연속되는 실험 발사속에서 로켓트는 열을 이기지 못하고 본체가 파열된다. 이들은 연료의 문제가 있다고 보고 폭발력이 좋은 연료보다 가연성이 좋은 연료로 대체해 발사한다. 이들의 비밀스러운 실험 발사에 마을사람들이 몰려온다. 호머의 형이 주변사람에게 실험내용을 발설한 것이다. 실험은 대성공한다 주인공 호머는 학교에서 가장 인기있는 학생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 라일리선생은 호머에게 미적분 수학책을 선물하지만, 교장은 라일리선생에게 선생은 교육을 가르키는 거지 꿈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고 나무란다. 호머의 형은 바라던 대학에 장학생으로 들어가게 되고 호머의 로켓트 실험은 연이은 대성공을 이룬다. 실험 발사 직후 산불이 로켓트 발사 실험으로 인해 점화 됐다고 일행은 경찰서로 연행된다. 경찰서에서 석방된 일행은 눈물을 머금으며 실험장소인 콜우드 미사일기지를 불지른다. 그러던 어느날 탄광 막장에서 큰사고가 나고 바이코프스키는 죽고 호머의 아버지 존은 큰 상처를 입는다. 호머는 아버지의 병원비 마련과 사옥을 이용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두고 광부로 입신한다. 그를 보는 라일리 선생은 호모를 외면한다. 처음으로 막장으로 들어가는 호머 그눈에 들어오는 첫 풍경은 하늘을 지나가는 인공위성 스퍼트닉이었고 그다음은 암울한 암흑의 세계`인 막장만이 존재하였다 어느덧 광부로 적응해 가는 호머, 병상에 누운 아버지를 바라보며 아버지 존을 이해하려 한다. 광산으로 찾아온 친구들을 바라 보며 호머는 그들과의 이야기에 공통 소재를 찾지 못한다. 병상에서 나은 아버지 존은 호머의 타고난 광부생활에 흡족해 한다. 그러나 호머의 모친은 못마친 고등학교생활을 마치기를 바라는데, 존은 과감히 외면한다. 광부로 일상에 지친 호머에게 깊은 중병에 걸린 라일리선생의 와병소식이 전해진다. 병문환하러 온 호머에게 라일리선생은 꿈을 버리지 말라고 충고한다. 호머는 팀을 재정비하여 산불을 냈다고 추정되는 미사일의 궤도를 추적해 나간다. 미사일의 잔해를 찾은 호머는 로켓트 탄도 궤도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나가면서 탄도 때문에 산불이 난게 아니고 주변 공군기지에서 발사된 조명탄에서 점화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면죄부를 얻은 호머는 교장선생의 추천으로 과학경진대회에 참여하게 된다. 아버지 존에게 광부를 그만 두겠다고 일언지하로 전하는 호머, 그리고 지방 과학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고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 본선에 올라간 호머는 여론적으도 수상이 유력해지는 과정에서 출품한 로켓트와 분사구를 도난 당한다. 급히 콜우드 탄광촌으로 로켓트 재제작을 요청하지만 탄광은 노사분규에 휩싸이게 된다. 극적인 노사 타결로 로켓트는 보내지는데..... 수상식장 호머는 바이고프스키가 준 727 새겨진 행운의 동전을 만지면서 대상수상의 감격을 누린다. 자기가 존경해 마지 않는 본 브라운박사의 축하 인사를 받은 호머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
마지막 로켓트실험, 호머는 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본 브라운 박사는 훌륭한 과학자이지만. 자신의 영웅은 아니라고, 존에게 마직막 로켓트 실험발사를 요청한 호머, 로켓트는 눈에서 사라질 정도로 높이 올라가고 로켓트의 궤적은 온 마을 사람들이 지켜 볼 수 있게끔 하늘을 찌른다. "옥토버 스카이"의 마지막 자막은 이렇게 올라간다. 로켓소년 모두 대학을 졸업했다 퀸튼은 석유회사의 화학공학자로 재직중이다 로이는 자동차딜러이자 퇴직한 은행가이다. 오델은 목장주이며 보험회사를 가지고 있다 호머의 어머니는 1979년 머틀 해변으로 이주 했으며 라일리 선생은 31살에 하지킨 병으로 사망했다. 호머의 아버지 존은 1976년 탄진폐로 사망했다. 1965년 콜우드 광산은 영구폐쇄 됐다. 호머는 나사의 엔지니어로 우주비행사들을 훈련 시킨다.
이 영화는 실화이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그들이 훌륭한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서 느낀것은 과감한 현실타파에 이은 도전정신이다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인공위성인 스퍼트닉이 하나의 꿈이 되었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무한한 공간과 기성세대의 이해가 있었다. 이것이 미국의 힘이며 저력인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는 주제, 미국의 프론티어정신이다.
그러나 옥토버스카이는 미국사회가 감추고 싶은 인종 민족 계층간의 차별을 조금이나마 감추려고 한다.
'옥토버 스카이' 제목 만큼이나 밝은 미국의 미래를 보여 주려는 영화. 그러나 거기에는 너무나도 아픈 미국 기성세대의 생활상이 담겨져 있다. 모진 세월을 살아온 미국 기성세대들 그들은 이 영화를 보며 무었을 생각하게 될지 무심코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란 영화가 생각난다 미국 역사 또한 착취의 역사였다는 것을....... 솔직히 "옥토버 스카이"는 작품성이나 오락성이 철저히 배제된 영화이다. 영화를 분석해야 할 정도의 복잡한 영화도 아니다 단순 명료한 영화, 거기에 이 영화의 맛이 있는 것이다. 거기엔 우리의 일상이 있기 때문에.....
첫댓글 중국 대장정은 마루리 잘 되셨는지 궁금하네요.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일이 바쁘셔서 아직 못가셨다던데...9월에 가신다고 하던가? 암튼 차후에 출발 하신다구 했어..
밑에 부하직원이 갑자기 그만두는 바람에 일이 차질이 생겨 못 떠났습니다...사람 구하기가 왜 이리 힘든지요...이번주 토요일 위해에 잠시 다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