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아가 3,1-4ㄴ; 요한 20,1-2.11-18 ;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2024.7.22.
오늘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루카 8,2) 극적인 체험을 한 후로 다른 여인들과 함께 그분의 복음선포 활동의 시중을 들어드린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느 제자에 못지않게 그분의 가르침과 행적에 밝았으므로 그분에 대한 충실성과 사랑이 남달리 지극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제자’라 불릴만 합니다. 그 결과로 다른 제자들이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에도 그분이 돌아가시던 십자가 밑에 남아 있다가(마태 27,56) 무덤까지 지켰던(마태27,61) 인물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때가 안식일 전날 오후였기 때문에 임시로 빌린 돌무덤에 급히 모시고 나서 그는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시신에 향료라도 발라드리려고 무덤을 찾았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뵈올 수 있었던 증인이 될 수 있었고(요한 20,11-16) 겁에 질려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그분의 부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준, ‘또 다른 사도’가 되었습니다.(요한 20,15) '사도들을 위한 사도'라는 영예로운 호칭도 이래서 얻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교령 「사도들의 사도(Apostle of the Apostles)」, 2016.6.3.) 그래서 교회 전례력으로도 사도들에 맞갖는 예우로써 축일로 지냅니다. 교회역사상 다른 성인들은 그저 기념일로만 지내는 것과 비교하면 이 예우가 얼마나 각별한지 알 수 있습니다. 강생의 신비에 있어서 유일한 증인은 성모 마리아이시지만, 막달레나는 부활의 첫 증인인 것만 보아도 이 축일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축일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사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뵈옵기 전에도 부활의 은총을 누렸습니다.
그의 생애를 추적해 보면, 제자의 기준으로나 사도의 기준으로나 마리아 막달레나는 손색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이 일곱 마귀를 쫓아내어 주신 다음부터 그는 그야말로 다시 태어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마귀가 들어온 사례를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적이 있습니다. “더러운 영이 사람에게서 나가면,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지만 찾지 못한다. 그때에 그는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말한다. 그러고는 가서 그 집이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말끔히 치워지고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면 다시 나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 이 악한 세대도 그렇게 될 것이다.”(마태 12,43-45)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과연 마리아 막달레나가 그분을 알기 전에는 마귀가 들려도 그런 줄도 모르고 살았고, 그 마귀가 나간 다음에도 전과 다름없이 살다 보니 이번에는 더 악한 마귀 일곱 마리가 들어오게 된 것이었는데, 그런 상태에서의 삶은 지옥이 따로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괴로웠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영으로 그 마귀들을 쫓아내고 또 그 영으로 살게 되니 더 이상 이전의 생활을 계속할 이유가 없어서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 일행을 따라다니며 수발을 들어드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처지에서 일곱 마귀를 다시 쫓아낼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교회에서는 성령칠은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우리 교회의 현실에서 이 은사들은 견진성사를 받기 위한 통과의례로 여기거나 성령강림대축일의 또 뽑기 행사로만 기억되고 있지만, 사실은 일상의 생활과 사도직 활동에서 매우 긴요한 것이고, 특히 일곱 마귀가 들어와 살고 있는 경우처럼 인생의 밑바닥에서 아주 힘들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이들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찾아가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방방곡곡에 파견하셨던 예수님께서 그 제자들로부터 복음을 듣고 아예 스승을 찾아온 이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하신 바가 있는데, 그분이 이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시려는 안식이 바로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로 말미암은 은총입니다. 이 은총을 입어야 마귀들도 제압할 수 있어서 삶의 멍에도 편해지고 인생의 짐도 가벼워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처신을 후대 교황들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이라고 불렀는데, 이 선택을 계승함으로써 그분을 본받는 우리의 처신이야말로 귀한 은총입니다. 우리가 기복신앙과 같은 싸구려 은총에 머물지 않고 귀한 은총에로 들어가려면, 이 은총으로 인한 선택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또 어떠한 결과를 낳게 될지를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려는 귀한 은총을 힘입자면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에 대해서 피상적으로가 아니라 확실하게 인식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에게서 볼 수 있듯이, 십자가와 우리가 떨어져 있는 거리가 그분 부활과의 거리에 정비례합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짊어지는 만큼 부활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자신이건 또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건 일곱 마귀를 쫓아내고 그 대신 부활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도 일곱 은사가 필요해 지는 이치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마귀의 영향력보다 질적으로도 적지 않고 양적으로도 작지 않은 힘이라야만 은총은 우리네 삶을 확실하게 부활의 자리로 이끌어줄 것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의 삶과 신앙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이것입니다. 결국은 신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증인들이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에 주어진 수많은 매듭을 풀 수 있는 고리입니다.
‘사도들을 위한 사도’로서 교회가 기리는 이 축일에 또 하나 우리가 묵상해야 할 것이 여성의 존엄 문제 또는 양성 평등 문제입니다. 막달레나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건넨 첫 마디 말씀은, “여인아, 왜 우느냐?”(요한 20,13)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막달레나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차림으로 보아 정원지기인가보다 하고 짐작했을 따름입니다. 그분의 고유한 음색이 담긴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막달레나는 이전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야!”(요한 20,16) 이는 마치 아가에 나오는 신부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니며 밤새도록 허탕을 치고, 성읍의 거리와 광장마다 돌아다니면서도 헛수고를 되풀이하다가, 야경꾼을 지나치자마자 겨우 찾은 바로 그 심정과도 같았습니다.(아가3,1-4)
이와 똑같은 간절한 심정으로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찾아보자면, “여인아, 왜 우느냐?” 하시던 예수님의 물음이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확인합니다. 본래는 역사적으로 한민족은 초창기부터 제천의식(祭天儀式)과 천손의식(天孫意識)으로 하느님을 믿어온 특별한 집단이었습니다. 이는 하늘에 대한 종교적 감각, 인간에 대한 인격적 감각을 표상합니다. 중국이나 일본 같은 이웃 민족들의 신화를 비교해 보거나, 수메르의 신화나 그리스와 로마 신화 등과 비교해 보아도 이토록 종교적이고 인격적인 감수성을 지닌 민족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고자 천문관측 기술과 제도가 발달한 데에서도 나타나듯이 하느님을 받들어 알아낸 뜻이 모두가 하느님의 자손이라는 것이었기에, 우리 조상들은 환인 즉 하느님뿐만 아니라 환웅을 강림신(降臨神)으로, 곰 토템족 여족장을 지모신(地母神)으로,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왕검을 인신(人神)으로 공경해 왔으며, 이 삼신적 신관에서 유래한 천손의식은 모두가 하느님의 자손으로서 귀하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 히브리 민족의 선민의식이 배타적이고 편협했던 데 비해, 또 중국 민족이 천자와 백성을 차별했던 데 비하면 대단히 선진적인 평등사상이었던 것입니다. 다만 이런 삼신적 신관은 상고 시대의 어느 민족의 자연신관보다 탁월했으나 하느님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한 채로 민간 사이에서 특히 여성들을 통해 도도한 지하 저류처럼 무려 4천 년 동안 흘러왔었습니다. 지배층, 지식층, 부유층 등 겨레를 이끌던 리더십이 하느님을 잊어버린 채 불교와 유학 등 이방의 사조들을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부부유별(夫婦有別)을 강조하는 유학의 삼강오륜(三綱五倫)이 마치 종교처럼 자리 잡으면서 단순히 남녀를 구별하는 정도를 넘어서 차별하는 질서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이래로 이 땅의 여성들은 2등 인간의 질곡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재주가 뛰어났던 몇몇 엘리트 여성만 이름을 남겼을 뿐 대다수 여성들은 마귀에 들리기라도 한 것처럼 남존여비의 굴레 속에서 자아실현의 기회를 박탈당하여 한숨과 눈물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시된 신관인 그리스도 신앙이 들어와 삼위일체 도리를 알게 되면서 비로소 올바른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남녀를 동등하게 존엄한 인격체로 대하셨다는 그리스도 신앙의 기본 진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천주교 교리는 신(神)에 관한 진리에 있어서 종교적 복음이었을 뿐만 아니라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질곡에서 살던 여성들에게는 사회적 복음이었습니다. 그 결과 백 년의 박해 과정에서 조정에서는 신자들을 믿는다는 이유로 죽이는데, 천민 계층과 부녀자 계층은 꾸준히 천주교에 입교하는 역사적 기현상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이제 부활의 첫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눈으로 우리네 여성이 처한 현실을 바라보면 이렇습니다. 여성은 여성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인격을 실현합니다. 여성의 인격이란 남성의 인격을 보완하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온전하게 성화시키려는 하느님의 계획의 후반이요 결론입니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을 선으로 그리고 또한 인간 전체를 하느님 계획에로 이끌어 갈 동반자적 직책과 사명을 받고 있습니다.(평신도 의안 중 가톨릭 여성 특별의안, 5항) 사회 안에서 여성에게 큰 역할이 맡겨져 있는 가정 사도직은 사회 사도직의 원형인 바, 여성 평신도들은 자신의 가정을 선교와 대화와 봉사의 공동체로 육성해야 할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9항) 또한 여성 수도자들은 이 교회의 소중한 문화와 전통은 물론 앞으로 다가올 민족 복음화의 소명과 전망도 간직한 예언자가 되어야 하는(수도자 의안, 30.36항)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인아, 왜 우느냐?”고 물으셔야 할 만큼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양성 평등의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현안으로 남아 있는 오늘날, 사도들의 사도로 추앙받고 있는 막달레나 성녀처럼, 여성들이 부활의 증인으로서 소명을 다하고 또 그 역할이 존중받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 문제가 여성들만의 관심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관심사가 되어야 할 이유는 이렇습니다.
문명은 인류의 생활양식이 변천하는 데 따라서 도시화되고 인간화되어 왔지만, 아직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 역할의 고정 관념과 이에 따른 성 불평등 현실입니다. 인류 역사의 초기에 짐승을 사냥하거나 물고기를 잡는 일 등 신체적 힘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야외활동은 남자들이 주로 맡아서 했고, 아이를 낳고 기르거나 집안일을 하거나 나물을 채취하는 등 섬세한 영적 돌봄이나 지속적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실내활동은 여자들이 주로 맡아서 해 왔는데, 여기서 비롯된 성 역할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면서 현재도 이데올로기처럼 지속되고 있는 탓에 성 역할 분담에 있어서 불평등이 남아 있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낮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도 예수님의 실제 복음선포 활동에 참여한 여성 제자들은 마리아 막달레나를 비롯해서 수산나, 요안나 등 예루살렘 부인들과 함께 제자 일행의 시중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시절에도 신자 공동체를 지도하던 그 활약상은 대단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뜻을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은 부활하시어 그에게 가장 처음 나타나신 발현 사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교회는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해야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는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되도록 앞장서 교회 현실을 개혁하기도 해야 합니다. 이미 양성이 평등한 세상을 이룩해야 한다는 흐름이 문명 복음화의 선두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교회 내 여성의 지위와 역할 존중 문제는 여성 사제의 서품 문제로 이어지게 되어 있고, 평신도들의 양성 평등 의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현실을 반영해야 할 뿐 아니라 인류 문명의 질적 도약을 위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