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원의 신해혁명과 루쉰의 아큐(Q)정전은 중국이 아편전쟁으로 제국주의 국가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발돋움 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신해혁명은 국민당과 공산당과의 離合集散과 내전을 통해 장제스와 마우쩌뚱으로 갈라서고, 중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던 세 姉妹가 등장했다.
중국의 국부 쑨원, 중화민국의 총통 장제스, 공자의 후손이자 중국의 대부호 쿵샹시(공상희), 모두 중국 근현대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굵직하게 남긴 거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다. 바로 이 세 사람의 아내가 모두 ‘친자매’라는 사실이다.
쿵샹시의 아내인 첫째 아이링(宋蔼龄), 쑨원의 배우자인 둘째 칭링(宋庆龄), 장개석과 혼인한 막내 메이링(宋美齡)은 모두 쑹씨 집안(송가)의 핏줄을 타고난 한 자매였다
루쉰의 <아큐(Q)정전>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고 오인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아큐에 대해 잘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설사 소설에 등장하는 ‘정신승리법’의 자기기만을 규탄하는 사람이 제법 많다고 할지라도, 그게 아큐의 삶을 잘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령 질문을 바꿔 우리 시대의 아큐적 인물이 누구냐고 물으면 답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아큐는 루쉰이 형상화한 구중국의 민중 표상이다. 그런데 ‘자기기만’을 통한 생존이라는 모순적 행동방식은 풀뿌리민중뿐만 아니라, 힘 있는 권력자와 자본가들 모두 너나없이 보여주고 있는 아큐적 처세법이다.
소설 제목이 <아큐정전>이기 때문에, 아큐와 교섭하고 있는 인물들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신해혁명기의 중국 민중과 지배세력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들 모두는 다 아큐적 시대상황 속에서 엇비슷해져 있다. 가령 이 소설 속에서 구 사족계층을 대변하는 자오(趙)씨는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재빠르게 변발을 자르고 혁명당임을 가장한다.
혁명세력 역시 아큐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혁명을 빌미삼아 구지배층의 재산을 약탈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혁명군의 수장인 거인영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무고한 아큐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총살한다.
소설 속의 아큐에게 가장 큰 인생의 사명은 생존이다. 생존을 위해 그는 막노동을 하고 자영업에 뛰어드는가 하면, 도박판에서 인생역전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생존 너머의 생활이 없다는 점에서 역시 그는 무산계층이다. 아큐와 갈등하고 때로 그를 조롱하는 주변의 민중들은 어떤가. 신분제의 사슬에 순응하면서 입에 풀칠을 하며 살고 있다.
아큐가 이들과 다른 것은 신분제의 사슬에서 일단 벗어나 자유를 획득했지만, 뿌리박을 삶이 부재해 부유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부유하는 자유인과 노예상태의 민중들은 서로가 서로를 멸시하고 때로는 증오한다.
아큐가 겪고 있는 멸시와 증오의 상호갈등은 오늘의 민중들도 형태는 다르지만 공유하고 있는 속성이다.
노동이 극단적인 배제의 형태로 나타나니, 노동자가 勞動者를 멸시하고 배제하는 갈등과 투쟁은 이제 일반화되었다. 자본가가 노동자를,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이 알바노동자를 멸시하는 식으로 아큐적인 심성은 위계적으로 편재화되어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아큐는 실패자다.
그는 자신과 다르지 않을 민중을 멸시했으며 고귀한 신분적 혈통의 소유자라는 허위의식과 지배계층에 대한 선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그의 죽음의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큐는 단순한 패배자가 아니다.
그는 지배계층을 선망하면서도, 그가 선망했던 지배계층의 권력이 실상 얼마나 허약한 토대인가를 일찍 간파하고 비판했다.
아큐가 스스로를 혁명세력이라 자처하자, 향촌 사족인 자오씨는 물론 민중들이 그의 앞에서 온갖 형태의 아부와 순응을 보여주는 태도는 그것을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아큐는 모순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모순으로 가득 찬 인간에 의해서 최초로 ‘혁명’이란 말이 발설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요컨대 그는 혁명의 첫 발설자이자 그것의 첫 희생자였다.
사실 굴뚝 위의 두 남자를 생각하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대법에서조차 패배한 쌍용차 해고자들의 굴뚝투쟁이나 오체투지가 누군가에겐 ‘아큐적인 것’으로 보일 것이다.
생존권 투쟁이 노동운동이냐 하는 일부의 탄식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아큐에게는 생존권 투쟁이 혁명의 일부다.
물론 ‘아큐적인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더 많은 아큐들이 연합해야 한다. 역사는 이 모순으로 가득 찬 아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