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도 잡아먹는 가장 큰 맹금류… 알은 2년에 한 개만
필리핀수리
▲ 필리핀수리가 날개를 살짝 들고 있어요. 날개를 다 펴면 너비가 최장 2.2m나 된답니다. /위키피디아
얼마 전 필리핀 남부 도시 다바오 부근에서 한쪽 눈을 다친 필리핀수리가 구조돼 보호받고 있대요. 필리핀수리는 나라를 상징하는 국조인 데다 멸종위기종이어서 몸 상태가 괜찮은지 관심이 많대요.
이름 그대로 필리핀 일대에서 서식하는 이 새는 직접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는 맹금류 중에선 지구상에서 가장 덩치가 큰 편에 속해요. 두 날개를 활짝 편 너비는 최장 2.2m에 이르고요. 머리 깃털부터 꼬리까지 몸길이는 최장 92㎝예요. 맹금류 중에서 남아메리카에 사는 콘도르나 아프리카에 사는 대머리수리 중에는 이보다 더 덩치가 큰 종류들이 있지만, 필리핀수리와 달리 이들은 사냥하지 않고 죽은 짐승의 사체만 먹는 청소부예요.
필리핀수리의 또 다른 이름은 '원숭이 먹는 수리(Monkey-eating Eagle)'예요. 원숭이를 사냥할 정도의 힘과 덩치를 갖고 있다는 뜻인데, 그렇다고 원숭이만 잡아먹는 건 아니랍니다. 다람쥐·사향고양이·박쥐·작은 사슴·뱀·도마뱀 등 숲에 사는 거의 모든 동물을 사냥해요. 심지어 자신보다 덩치가 작은 맹금류인 매나 올빼미까지도 잡아먹는답니다. 갈색 머리 깃털에 청회색 눈동자를 가진 필리핀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빽빽한 열대우림 위를 날아다니는 순간은 숲속 동물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일 거예요. 다만 우거진 숲속에서 덩치도 크고 힘도 센 먹잇감을 낚아채려다 다치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고 해요.
필리핀수리의 사냥은 특정 동물이 지나치게 번식하는 것을 제어해줘 숲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해준답니다. 필리핀수리의 시력은 사람보다 8배나 좋대요. 필리핀수리는 단독으로 사냥을 할 때도 있지만, 짝을 지어 협업하기도 해요. 한 마리가 먹잇감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사이 다른 한 마리가 기습하는 거죠.
필리핀수리는 철저하게 커플 생활을 한답니다. 암수가 짝을 지으면 평생을 함께할 정도로 금실이 남달라요. 번식철을 맞은 암컷과 수컷이 서로의 애정을 과시하며 공중에서 벌이는 구애 행동은 아주 역동적이고 멋지기로 유명해요. 짝을 이뤄 공중으로 확 치솟거나, 암컷이 급강하하면 수컷도 뒤따라가는 식으로 경주를 벌이죠. 수컷이 암컷의 등 쪽으로 발톱을 쭉 뻗으면 암컷도 몸을 뒤집어 발을 뻗기도 하고요.
여러 개의 알을 낳는 많은 새와 달리, 2년에 한 번씩 단 한 개의 알만 낳는답니다. 주로 암컷이 부화한 지 얼마 안 된 새끼를 품고, 수컷은 사냥을 전담하다시피 한대요. 새끼는 부모로부터 독립하더라도 생후 5~7년에야 완전히 어른이 돼 번식할 수 있어요. 이렇게 알도 적게 낳고 자라는 속도도 느리다 보니 서식지가 파괴되면 숫자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어요.
필리핀수리 한 쌍이 안정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1000~4000㏊ 정도 면적의 숲이 필요하대요. 먹이를 찾고 새끼를 키우는 터전인 숲이 개발로 파괴되면서 지금은 야생에 불과 400쌍밖에 남아있지 않아요. 이 새의 보호 필요성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 위해서 필리핀 정부는 2022년부터 필리핀수리가 멋지게 그려진 1000페소(약 2만4000원)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답니다.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