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중순부터 나는 증명서가 두 개 늘었다 - 복지부장관이 발행한 복지카드와 도로공사 사장이 발행한 교통할인권. 빌딩 지하나 먼 곳에 주차하고 가야할 곳으로 가려면 나는 수없이 많은 곡예보행을 하며 위험과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는 부정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장애인 등록(3급)을 하고 취득한 자랑스런(?) 증명서이다.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신축한 경영관에는 지하주차장이 있고, 내 방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수 있어서 비바람이 몰아치건 눈이오고 도로가 꽁꽁얼건 우산 쓰고 뛰어갈 일도 없고, 미끄러져 너머질 걱정을 크게 하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다. 금년 2월까지 학장을 할 때는 본관 4층 회의실 까지 1주일에 두 번은 가야했는데, 요즘은 경영관 이외의 건물로는 갈 필요가 없으니 참 좋다.
나는 약 5년 전 우리 대학 교수로서는 처음으로 사이버강의를 준비하였다. 칠판에 글을 써 가면서 학생들 얼굴을 보며 하는 대면강의에 너무나 익숙하기 때문이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는데 나는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상당한 노력과 돈이 필요함) 1년에 한 과목씩 두 과목을 준비해 두었다. 그 결과 이번 학기 학부 강의는 모두 사이버상에서 진행하여 강의실에 오고 갈 필요가 없으니 다행이다. 말 하는 것은 상당히 어눌하지만 사이버상에서 아무런 제약없이 학생들과 자유로이 대화를 나누고 있어 행복하다. 동성 친구들하고는 이곳 카페에서 늘 만나고, 재웅이 하고는 이메일로 자주 만나니 행복하다.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나에게는 차를 운전하여 내가 가고 싶은 곳에 내 몸이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과, 인터넷을 통하여 세계 어느 곳이든 내 마음대로 가고, 누구와도 마음대로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마음대로 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호사스러움을 만끽하는데 제약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운전하며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의사가 권고한 이후, 영비는 내게 학교를 오가는 것 이외에는 차를 운전하지 못하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부부가 함께 참석하는 모임에는 영비(wife의 인터넷 이름) 팔에 의지하여 참석을 하지만 나 혼자 가야하는 곳에는 누구와 동행하지 않으면 가지 못하고 있다. (이번 동창회 연말 모임도 비슷할 듯.)
지난 금요일 오후 4시 부터 내가 지도하는 박사과정생의 논문 2차 심사가 있었다. 심사가 끝나면 지도교수가 다른 교수들에게 고맙다고 간단한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회계학분야의 어설픈 전통인데 (모 대학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가 나이 많은 박사과정 학생에게 식사와 술과 여흥으로 바가지를 왕창씌우는 못된 관습을 보고는 우리 분야만이라도 학생이 아닌 지도교수가 간단한 저녁을 사기로 하였음.) 이날은 송년모임이 절정이라 심사위원들과 저녁을 함께하지 못했다. 나도 송년모임이 있었지만, 다행히 나를 배려해 거구장에서 만나기로 하여 박사과정 학생에게는 논문수정 사항을 이야기하기 위해 밤 9시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 유학와서 우리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애제자(애를 태우는 제자로서 한족 여학생)와 내 조교를 하다가 내년 봄 박사과정에 합격은 하였으나 막바지 논문작성이 한참인 학생에게 밤 10시와 10시 반에 각각 연구실로 오라고 하였다. (12월 20일 화요일이 심사일이라서.)
밤 9시부터 세 사람과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 덧 11시 반이라 집에 연락하고 (그래야 주차장에 나와 나를 데려갈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차를 운전했다. 서강대교를 거쳐 순복음 교회를 지나다 보니 금요일 밤 예배가 끝났는지 도로가 좀 혼잡했다. 마포대교 남단 네거리(여의도공원쪽) 직진차선에 좌회전하는 버스가 길을 막고 있기에 우측으로 빠져나오려고 깜빡이를 넣고 우측과 후방을 조심하면서 엑셀을 밟고 나오다 보니 앗 불사 바로 앞에 택시가 있는데 순간반응능력이 저하된 탓인지 브레이크를 늦게 밟아서 택시를 들이 받았다.(100% 내 과실) 정지하고 있다가 출발한 것이라 가벼운 접촉사고 였지만 택시에는 4명의 승객과 운전자까지 하여 5명이 있었는데 병원에 가 봐야 할지는 후에 결정하겠다고 하여 대인사고, 대물사고 신고를 하고 기겁을 하고 출동한 영비와 함께 집에 오니 밤 한시.
이 일로 학교는 오고 갈수 있었던 운전면허권 마저도 결국 영비에게 자진 반납하게 되었고 출퇴근 시에도 내 기사가 되겠다는 몇 달 전 offer를 accept 하게 되었다. 그 다음 날 토요일에 대학동기 차녀 결혼식이 있었는데, 친구 결혼식에 참석해야 하는 영비의 스케줄 때문에 나는 그 친구에게 참석 못할 것 같아 미안하다고 일단 전화는 했고, 10개월째 토요일마다 개근한 한의원에도 가지 못했다. (그 전 토요일 혁철이네 결혼식 때는 그 시간에 분당에서 침 맞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만 하여도 영비 몰래 운전하고 대학동기 차녀 결혼식장에는 다녀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객기를 부리기도 하였지만 이런 생각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부터 월급주지 않는 기사차를 타고 다니게 되었으니 역시 복이 많은 모양이다.
첫댓글 무어라 이야기 해야하나. 친구의 건강이 곧 나의건강인데... 사실 별로 친하지도 아니했고 교류도 없었느데 지금와서 되게 친한척,,,, 다 cafe 때문에 서로를 알고 걱정하고,, 이것은 동성 39라는 bondage때문인가.... 남주야 건강 해다오,,, 한번 서로 만나 보기나하자구나....
누구나 나이들면 모든 운동신경이 둔해지고 약해지기 마련이다.남주는 우리보다 좀 빨리 약해진것 뿐이다.그대신 박학다식과 좋은 부인과,그럼에도, 교수직을 보장해 주는 서강대학이 있지않니 ?.이남주 화이팅 !!!
참으로 가슴 아픈 일들을 담담하게 쓴 남주의 마음씨.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의 이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열심히 살자꾸나. 우리의 영원한 마담 남주 홧팅!!!
나는 남주 박사가 불편한 몸으로도 우리 큰 놈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준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 인사는 따로 하지 못했지만 마음만은 멀리 있어도 정을 마음으로 진하게 느끼고 있다. 고맙다 남주. 행운은 절로 따라 오는 건 아닐텐데. 남주 박사 후학을 위해 애쓰는 모습 자랑스럽고. 힘내라.
우와, 재웅아 반갑다. 그리고 봉수는 년말 귀성이냐?
봉수야! 우리 딸놈 시집가는데 축의금 보내주어 고맙다. 대략 모두에게 감사마음 전달 했건만 자네는 전화번호 몰라서 이 기회에.....
남주야 이제부터 시작이다. 힘내라. 그리고 언제든지 방문해 쉬었다 가렴. 봉수가 동면에서 깨어나 반갑다. 재웅이는 처음이고 오랫만인대 반갑고..좋구나
부부동반, 부부동행 가장 행복한 것임을 내가 부동산 사무소를 하며 마누라와 출퇴근, 업무를 같이하면서 느끼는 행복이다.남주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