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집착에 세계최강 제조업도 ‘흔들’...이 나라의 선택은
독일은 오래전부터 최강의 산업경쟁력을 갖춘 나라로 평가받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독일에서 산업 공동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 독일 상공회의소 연합회(DIHK)가 지난 1일 자국 기업 약 33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무려 40%가 독일내 생산 축소 또는 생산 거점 해외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같이 응답한 비율은 지난 2022년 16%에서 지난해 31%, 그리고 올해 40%로 뚜렷히 급증하고 있습니다.
獨기업들 흔드는 高에너지 비용
이 같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이유는 비교적 분명해 보입니다. 독일내에서 에너지 비용이 매우 높게 형성돼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산자 물가지수를 기준으로 한 독일의 에너지 가격은 2019년을 100으로 설정 했을 때 지난 6월 기준 178에 달했습니다. 1월에는 181이 넘었기 때문에 그나마 최근 조금 떨어진 겁니다. 하지만 계속 매우 높은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에너지 중에서도 천연가스 가격은 231로 높게 나타납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2022년 10월 천연가스 가격이 674까지 치솟았을때 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코로나 펜데믹 이전 대비 여전히 2배가 넘는 수준입니다. 전력 가격 역시 177로 2022년 9월(309)보다는 떨어졌지만 역시 코로나 이전의 2배에 육박한 수준입니다.
이처럼 에너지 비용이 높게 고착화된 상황은 전적으로 독일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기인합니다
. 탈원전, 탈탄소, 탈러시아까지 한번에 세마리 토끼를 좇고 있는 현 독일 정부는 지난해 4월 탈원전에 이어, 올해 3월과 4월 총 15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폐쇄했습니다. 대신 신재생 에너지와 가스 화력 확대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전력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신재생에너지원의 가격 자체가 비싸기 때문입니다. 현재 독일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신재생 에너지 가격 경쟁력이 개선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원전과 석탄화력 폐쇄 이전과는 비교할수 없게 가격이 비싸졌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습니다. 즉, 신재생 에너지원의 경제성이 옹호론자들의 주장만큼 개선되지 않은겁니다.
가스 가격 역시 러시아로부터 가스관을 통해 공급받는 대신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면서 운송비가 추가되고, 석탄을 가스화력으로 전환하면서 가스 사용량이 늘었기 때문에 높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코로나 19 이전으로 복원되지 않는 獨 생산력
독일의 제조업 생산지수를 코로나 19 펜데믹 이전인 2019년을 역시 100으로 설정해 살펴보겠습니다. 독일 제조업의 양대 축인 화학과 자동차 공업의 생산 수준은 코로나 충격으로 동반 하락했는데, 특히 자동차 공업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에 따른 영향은 상대적으로 화학 공업에 컸습니다.
DIHK의 조사에 따르면 에너지 집약형 산업에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독일내 생산 축소나 생산 거점의 해외 이전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화학 공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형 산업으로 대량의 천연가스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스 공급이 불안정해지면 독일내 생산을 축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천연가스 가격이 최악의 시기와 비교하면 떨어진 덕분에 독일 화학 공업의 생산 수준은 코로나 펜데믹 이전 대비 90% 수준까지 회복했습니다. 그럼에도 저렴한 러시아산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기에 독일내 가스 가격이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해외 이전을 피하기는 어려운 것이죠.
독일 100대 기업중 30여개가 본부를 두고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는 국가 GDP의 2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독일의 최대 산업 중심지 입니다. 최대 공업지대인 루르(Ruhr)공업지대로 여기에 있죠. 한국기업들도 다수 진출해 있는 곳입니다. 화학공업은 이 지대의 중심이 되는 산업중 하나인데, 해외 이전이 진행되면 뒤셀도르프를 중심으로 독일 서부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적어도 독일 기업들 대다수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숄츠 정권의 레임덕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연립 3당은 각 정당 지지자들에게 어필하는데만 집중하며 결속력을 잃고 있습니다. SPD는 노조의 요구를 중시해 추가 최저 임금 인상, 주 3일 근무제 도입 등에 적극적 입니다. 반면 FDP는 산업계의 목소리를 중시하면서 규제 완화와 정부 지출 억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녹색당은 정당 이름에 걸맞게 환경 정책과 탈탄소 노선을 한층 강화 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현재 독일 정부에서 에너지 정책이 수정되길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차기 정권서 탈원전 노선 수정 가능할까
다만 이때에도 원전을 운영했던 대형 전력 회사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가 또 다른 관건이 될 것입니다. 과거 독일에서는 대형 전력사 3곳이 원전을 운영했는데, 이들 3개사는 정부의 뜻에 따라 10년 이상에 걸쳐 단계적으로 탈원전을 진행했습니다. 때문에 Union이 정권 탈환후 원전 재가동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이들로서는 당장 호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탈원전’ 하려던 한국, 내년 원전 4기가동 중단 영향은
현재 한국에서 가동중인 원전은 총 26기인데 내년이면 이중 4기가 수명이 다해 가동 중단될 예정입니다. 원전은 수명이 다해도 안전성과 경제성을 평가해 계속운전 여부를 판단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과거 탈원전 정책으로 연장 운전중인 원전이 현재 1기도 없습니다. 계속운전 허가 사례로 고리1호기와 월성 1호기가 있지만, 월성1호기는 2019년 조기 폐쇄됐습니다.
원전은 한 번 가동을 멈춘뒤 재가동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고리 2호기의 경우 가동 중단된 1년4개월간 손실이 1조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연속성 있게 가동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인 셈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소요되는 막대한 전력수요뿐 아니라 ‘2050년 탄소중립’ 이라는 목표를 위해선 원전 도움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원전 8기가와트 정도의 전력을 태양광으로 대체하려면 여의도 면적의 120~160배의 부지가 필요합니다. 원전 선진국들이 안전성 심사를 거쳐 수명이 다한 원전도 계속 운전하고 있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