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고를 격파한 뒤 로마는 그 여세를 몰아 동방과 에스파냐로 진출하여 많은 나라들을 정복했다.
로마가 이처럼 세력을 넓혀감에 따라 정복지로부터 들어오는 막대한 세금은 로마의 지배층을 더욱 부유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광대한 토지를 소유하는 한편, 많은 노예들을 사들여 대규모의 농장, 목장, 과수원을 경영해 나갔다.
게다가 동방의 지배층이 보여주는 사치풍조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로마인의 검소한 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그들은 호화롭고 넓은 저택과 별장을 건설하고, 퇴폐적인 낭비풍조에 물들어 갔던 것이다.
이러한 지배층과는 반대로 오랫동안 대외 전쟁에 병사로 참전하였던 중소 자영 농민층은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어 불구가 되었고, 다행히 무사하게 귀환했다 해도 자신들의 토지는 이미 오랫동안 돌보지 못한 탓으로 황폐해져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토지는 부자들의 손에 헐값으로 넘어가게 되어 빈곤에 허덕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들은 라티푼디아(Latifundia)라 불리는 부자들의 대규모 농장 내지 목장에 고용되거나, 아니면 남은 토지를 팔아버리고 로마 시내로 들어가 국가의 보호를 받는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가 되는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무산계급을 지칭하는 프롤레타리아라는 개념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로마의 시민으로서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이라곤 군대에 내보낼 자식밖에는 없었던 이들을 망라하여 부르던 말이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자 병농일치의 원칙에 서 있던 로마 군제는 더이상 유지하기가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로마로 몰려든 몰락 농민들은 때때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치가를 지지하는 폭력집단이 되기도 했다.
정치가들은 이들을 무마하고 계속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빵과 서커스'를 제공했다.
정치가들이 제공한 서커스 중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검투사들이 벌이는 결투 경기였다.
이 경기는 맹수와 검투사, 또는 검투사들이 칼을 쥐고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것으로써 경기장에 몰려든 수만 명의 빈민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정치가들은 흥미 있는 오락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대규모의 향연을 베풀어 로마 시내에 있는 수많은 빈민들의 호의를 사기도 했다.
로마의 지배층은 이민족을 착취하여 얻은 부로 큰 부자가 되고 그 부의 일부를 떼어내 빈민들의 표를 끌어냈던 것이다